'안방극장'에선 처음 또는 다시 볼 만한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세월의 흔적이 묻은 작품부터 아직 국내에 정식으로 소개되지 않은 작품까지 다양하게 다루려고 합니다.[편집자말]
기자 에디(톰 하디 분)는 드레이크(리즈 아메드 분)가 이끄는 거대 기업 '라이프 파운데이션'이 은폐한 비밀을 조사하던 중 문제를 일으키며 연인 앤(미셸 윌리엄스 분)과 헤어지고 회사에서도 해고당한다. 이후 에디는 라이프 파운데이션의 비윤리적인 임상 시험에 죄책감을 느낀 도라(제니 슬레이트 분) 박사의 도움을 받아 연구소에 몰래 침입했다가 극비리에 연구 중이던 외계 생명체 '심비오트' 가운데 하나인 '베놈(톰 하디 목소리)'의 숙주가 되어버린다.

지구 대기에서 살려면 호흡 가능한 숙주와 결합해야 하는 심비오트를 대상으로 인간을 이용한 임상 시험에서 비밀리에 진행하던 드레이크는 에디와 베놈의 성공적인 공생과 엄청난 힘을 접하고 연구 결과를 손에 넣고자 추격을 시작한다.

2014년 개봉한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의 성적이 부진을 면치 못하자 스파이더맨의 실사화와 극장판의 영상화 권리를 소유한 소니 픽처스는 스파이더맨의 원작 코믹스 및 소설의 판권을 가진 마블과 협업을 선언한다. 그 결과 소니 픽처스는 마블이 제작한 스파이더맨 영화(<스파이더맨: 홈 커밍>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의 배급권과 이와 관련한 이익을 갖는 대신에 마블은 자사가 만드는 다른 영화(<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어벤져스: 엔드 게임>)에 스파이더맨이 출연할 수 있게 되었다. 

소니 픽처스가 스파이더맨을 마블에 잠시 보냈다고 해서 스파이더맨 판권에 속한 캐릭터를 활용하는 '소니 스파이더맨 유니버스(Sony's Spider-Man Universe)'까지 포기한 건 아니었다. 2018년 공개한 <베놈>은 1984년 5월 코믹스에 처음 등장한 이래 검은 스파이더맨 모습과 강력한 힘을 앞세워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대표적인 빌런으로 자리 잡은 '베놈'이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소니 스파이더 유니버스'의 서막을 열었다. 

그러나 공개 당시 국내외를 막론하고 평단의 평가는 좋지 않았다. 미국의 로튼토마토 신선도는 불과 30%에 불과하다. <캣우먼>(2004) <그린 랜턴: 반지의 선택>(2011) <판타스틱 4>(2015) 등 슈퍼히어로 장르의 전설적인 망작 취급을 받았다. 반면에 관객의 팝콘 수치는 81%로 높다. 흥행 수익도 대단해 북미에서만 2억 1천만 불, 해외에선 6억 4천만 불을 벌어들여 2018년 세계 흥행 성적 7위를 기록했다. 우리나라에서도 400만에 가까운 관객을 동원하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베놈> 영화의 한 장면

▲ <베놈> 영화의 한 장면 ⓒ 소니픽처스코리아

 
<베놈>의 내용은 단순하다. 외계 생명체가 지구로 오고 야욕으로 가득한 과학자가 그것을 이용하려 들자 다른 외계 생명체와 결합한 주인공이 물리친다는 게 전부다. 비슷한 시기에 나온 슈퍼히어로 영화 <원더우먼> <로건> <블랙팬서>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 비교하면 평범하게 느껴진다. 각본의 완성도도 낮다. 개연성이 떨어지는 대목이 적지 않다. 대표적인 극의 구멍을 꼽자면 베놈이 안티히어로로 변하는 과정이다. 자신의 동족을 불러 지구를 파괴하려던 베놈이 갑자기 생각을 바꾸는 건 도덕성의 판단인지, 아니면 생존 때문인지 이해하기 힘들다.

우주에서 온 생명체, 과학의 발전과 인류의 미래를 명분 삼아 자신의 탐욕을 드러내는 천재 과학자 등 설정은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에 나왔던 <스폰> <데어 데블> 등 과거 영화의 유물처럼 느껴진다. 악당 격인 드레이크의 동기나 행동도 1차원 수준에 머물며 아카데미 4회 노미네이트에 빛나는 미셸 윌리엄스가 분한 앤 캐릭터도 제대로 활용하질 못한다. 각본만 본다면 낙제점을 줘야 한다.

장점도 분명하다. 베놈의 비주얼이 빼어나고 톰 하디 연기가 일품이다. 베놈을 활용한 액션도 준수하다. 먼저 베놈의 비주얼을 보자. 2M가 넘는 거대한 키, 에나멜가죽처럼 반짝거리는 검은색 피부, 상한 우유를 연상케 하는 커다란 눈, 180도로 펼쳐지는 턱, 날카로운 이빨과 긴 혀 등 베놈의 비주얼은 <스파이더맨 3>(2007)에 나왔던 베놈과 비교를 불허한다.

최근 선보인 슈퍼히어로 영화의 캐릭터 중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강렬하다. 제작진의 설명에 따르면 베놈이 등장하는 장면은 컴퓨터 그래픽과 CG 작업을 통해 만들어졌지만, 거대한 몸집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2M에 달하는 장신의 대역 배우에게 참조용 구가 달린 헬멧을 쓰게 하여 다른 배우들의 연기에 도움을 주었다는 한다.

배우 톰 하디는 선한 에디와 악한 베놈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는 모습을 매력적으로 연기한다. 영화는 베놈이 에디의 내면에 존재할 땐 목소리로 표현하고 때론 베놈을 에디의 몸에서 뻗은 가지 형태로 보여주기도 한다. 에디와 그의 내면에 있는 베놈이 말과 행동으로 티격태격하는 장면들은 영화의 가장 좋은 부분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마치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정체성의 갈등을 코미디 영화로 보여주는 듯하다. 한편으론 1980년대~1990년대 인기를 끈 <비버리 힐스 캅> 시리즈나 <리쎌웨폰> 시리즈 등 버디 무비의 분위기가 묻어난다. 톰 하디는 귀에 꽂은 인이어를 통해 미리 녹음한 베놈 목소리를 들으면서 연기했다고 후문이다.
 
<베놈> 영화의 한 장면

▲ <베놈> 영화의 한 장면 ⓒ 소니픽처스코리아

 
<베놈>은 액션의 규모가 크진 않으나(순수 제작비는 1억 달러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치곤 작은 편이다) 연출은 상당히 좋다. 베놈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아파트 장면은 라이프 파운데이션의 요원들에 맞서 에디의 몸 일부가 신체 변형을 하며 싸우게끔 구성했다. 도로 위를 질주하는 오토바이와 자동차의 추격에서도 베놈의 신체 특징을 활용한 연출이 돋보인다. 대런 아노로프스키 감독의 작품들과 <아이언맨>(2008)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컴턴>(2015) <스타 이즈 본>(2018)을 촬영한 매튜 리바티크 촬영감독의 영상도 한몫을 톡톡히 한다. 

아쉬운 건 초중반에 힘을 쏟은 탓인지 극의 대미를 장식하는 베놈과 또 다른 심비오트 '라이엇'의 대결 장면이 무척 싱겁다는 사실이다. 덧붙여 15세 관람가(미국에선 13세 미만은 보호자 동반이 요망되는 PG-13 등급을 받았다)를 노린 작품이라 엄청난 대량 학살, 총격, 파괴가 벌어지는 판국에도 피가 그다지 보이지 않는 점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베놈>을 연출한 루벤 플레셔 감독은 "무엇을 하든 이번 영화가 다른 영화와는 달라 보여야 한다는 것에 집중했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대다수 슈퍼 히어로 영화들이 정치, 사회적 텍스트를 가미한 무거운 톤과 진지한 내용을 파고들 때 <베놈>은 그야말로 B무비스러운 즐거움에 우선하며 차별화를 이뤘다. <데드풀>(2016)처럼 말이다. 

무엇보다 <베놈>은 "스파이더맨 없이 베놈이 존재할까?"란 의구심을 말끔히 지워버렸다. 스파이더맨과 관련한 요소를 집어넣지 않고도 독립적인 형태의 '소니 스파이더맨 유니버스' 영화가 가능하다는 걸 증명했다. 앞으로 '소니 스파이더맨 유니버스'는 <베놈 2: 렛 데어 비 카니지>(2021년 10월 13일 개봉) <모비우스>(2022년 개봉) <크레이븐 더 헌터>(2023년 개봉)로 이어질 예정이다. 참고로 소니가 보유한 스파이더맨 판권엔 900개가량의 캐릭터가 있다고 알려진다.
 
<베놈> 영화 포스터

▲ <베놈> 영화 포스터 ⓒ 소니픽처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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