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 폭력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늘고 있다. 늘었다는 표현보다 그런 피해자들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는 말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어쨌든 갈수록 데이트 폭력이 늘어나는 것 같다. 그리고 드는 의문 하나. '왜 그들은 상대방으로부터 맞아가면서까지 데이트를 하고 연인관계를 이어갈까'이다. 

지난 9월 28일 MBC < PD수첩 >은 '2021 데이트 폭력 보고서' 편을 통해 이 문제를 다뤘다. 데이트 폭력 피해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한 이날 방송은 어떻게 폭력이 일어나는지, 또 어떻게 진행되는지와 함께 해결책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취재 이야기를 듣고자 방송이 끝난 다음 날인 9월 29일,  '2021 데이트 폭력 보고서' 편 취재 연출한 김인수 PD와 만났다.

다음은 김 PD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김인수 PD

김인수 PD ⓒ 이영광

 
- '2021 데이트 폭력 보고서' 편을 취재 연출하셨잖아요. 방송 끝났는데 소회가 어떠세요?
"저희 방송에 나오신 분들이 생생하게 어떤 피해를 당했는지, 어떤 점이 힘들었는지 전달해주셨어요. 그런 측면을 잘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 혹시 예전부터 데이트 폭력에 대한 관심이 있으셨나요.
"저도 비슷했어요. (데이트 폭력으로) 죽는 경우죠. '어떻게 저 지경까지 됐을까' 이런 생각은 기존부터 해 왔는데 막연하게 그런 결말까지 이르는 데 대한 궁금증이 있었어요."

- 취재하면서 데이트 폭력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나요.
"데이트 폭력이 다른 폭력과는 다르잖아요. 길 가다 싸워서 누구한테 맞은 게 아니라 내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한테 당하는 문제잖아요. 방송 내용을 보면 아시겠지만, 누구한테 얘기한다는 것도 상당히 어려워요. 그 얘기는 경찰 조치가 미흡하다는 얘기가 아니라 자기의 대단히 개인적인 일이기 때문에 주변에 도움 요청한다는 게 어렵다는 거예요. 부모님에게조차 말하기 껄끄러운 부분도 있고요. 그러다 보니 사건이 더 깊어진 다음에야 이야기되는 측면이 있더라고요."

- 처음 이소연(가명)씨 사연으로 시작했잖아요. 왜 그렇게 하셨어요?
"대단히 전형적이었어요. 남자의 처음 폭행이 있고 헤어지자고 하고 다시 또 집착하고 스토킹하는 전반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죠. 그리고 경찰이나 주변 사람들의 2차 가해도 존재하고 대단히 전형적인 케이스라서 다루게 됐습니다."

- 이소연씨 같은 경우 남자친구의 의심 때문에 폭력이 시작된 거 같은데.
"싸우는 이유도 다양하죠. 결국에는 데이트 폭력이 일어나는 이유 중에 제일 큰 이유는 상대방 연인을 한 명의 인격체로 보는 게 아니라 '내 거'로 생각하기 때문이죠. '내 거'라는 건 어떻게 보면 달콤하고 좋은 말이잖아요. 하지만 그 말이 말 그대로 '너는 내 소유다. 내가 하자는 대로 해야 하고 내가 원하는 대로 해야 하고 다른 이성을 만나서는 안 된다'가 되면 정말 심각한 데이트 폭력이 되는 거죠."

- 데이트 폭력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 '왜 맞으면서 만나냐'는 거잖아요. 취재해보니 어떠셨나요.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취재해보면 때린 사람 대부분이 처음엔 용서를 구해요. 내가 잘못했다고 이야기하고 울면서 매달리기도 하고 다시는 안 그럴거라고 하죠. 상대방도 한번 정도는 '얘가 실수였구나'라고 생각하고 받아주죠. 그런데 그게 계속해서 반복되는 거죠. 맹점이 뭐냐하면, 폭력에 익숙해지는 거예요. 때렸지만 사과하면 받아주면서 '아 이 사람이 날 사랑하긴 하는데 이점만 고치면 좋겠다'라는 식이 되는 거죠. 그게 문제였던 거 같아요. 저희 방송에 나온 두 번째 사례자의 경우, 한 번 데이트 폭력을 당했을 때 바로 경찰에 신고하고 고소했어요. 어떻게 보면 그분 같은 경우가 현명했던 거죠."

- 경찰청이 데이트 폭력에 대한 집계를 시작한 2016년 이후, 5년 만에 건수가 두 배로 늘었다고 하는데요. 
"전문가 분들이 이야기하시길, 여성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는데 미투 분위기가 한몫 했다고 해요. 실수로 받아들이던 여성들이 이제는 그러지 않는 거죠."

- 2016년부터 집계하기 시작했는데 좀 늦은 감이 있네요.
"경찰청 같은 경우에도 예전에 카테고리가 없었던 거죠. 데이트 폭력 범주가 아니라 폭력이나 살인 쪽으로 들어간 거죠. 그러다 경찰청에서도 이게 심각하다고 인지를 하고 따로 구분해 놓은 것 같습니다."  

- < PD수첩 >에서 2019년과 2020년 데이트 폭력 사례를 분석하셨는데.
"케이스 보면 다 똑같아요. 전혀 나아지지 않았어요. 계속해서 폭력을 당했고 신고를 했는데도 죽는 분들이 생겼어요. 사회 인식이 바뀌어서 이게 해선 안 되는 일이 된 거죠. 그런 일 많잖아요, 옛날에는 노상 방뇨도 지금보다 더 많았고 무단횡단도 지금보다 더 많았지만, 사람들이 '더 하면 안 되는 일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데이트 폭력도 마찬가지로 처벌을 해야 줄지 않을까 생각해요. 근절시킬 수 있는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더라도 일단 법으로 엄하게 다스리면 폭력이 좀 줄지 않을까요."

- 가정 내에서 폭력을 행사하면 처벌을 받았잖아요. 데이트 폭력을 처벌할 수 있는 법은 있어야 할까요?
"가정폭력 같은 경우는 특별법으로 간주돼 더 엄하게 처벌받습니다. 마찬가지로 데이트하는 관계에서, 남자가 여자를 때린다면 더 엄중하게 처벌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걸 가정폭력 법으로 해결하자고 발의했던 거고요."

- 그 관계를 증명하기 애매하지 않나요? 가정 폭력의 경우, 법적으로 관계 증명이 가능하지만 연인관계는 어려울 것 같은데.
"방법이 없는 게 아니라고 저도 생각하거든요. 친밀함의 문제인데 만약에 피해를 당한 여성 측에서 '이 사람은 나와 교제 중이었다'라는 걸 증명할 수 있는 수단이 있잖아요. 요즘에 문자도 있고 카톡도 있고요. 예전보다는 훨씬 더 증명하기 쉽지 않냐는 생각이 들고요. 두 사람이 연인 관계였다는 걸 증명한다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 방송을 보면, 데이트 폭력의 피해자가 남성인 경우도 있던데요. 
"당연히 가능하죠. 현재로선 여성이 훨씬 더 많은 피해를 보는 것도 사실이고요. 왜냐면 물리적인 힘 때문이죠. 반대로 정신적으로 피해를 주는 경우도 있잖아요. 남자가 신고하는 비율이 이전보다 늘고 있어요."

- 데이트 폭력 피해자들도 만나셨는데, 어떠셨나요.
"그분들을 보면서 안타까웠어요. '왜 만나줬나요' '왜 용서해줬나요' 라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런 질문을 하는 게 힘들었어요. 왜냐하면 그분들한테 그게 2차 가해로 느껴질 수 있는 거잖아요."

- 피해자의 증언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이 있다면.
"피해자들에게서 공통점을 찾는 건 무의미할 것 같아요. 그런데 가해자들에게는 공통적인 특성이 있어요. 뭐냐면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상호 존중해주는 관계가 아니라 '내가 위야, 너는 내 거야'라는 생각이죠."

- 취재하며 느낀 점이 있을까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데이트 폭력을 근절시킬 수는 없지만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메시지를 주는 건 분명 필요해 보여요. 올바르지 않은 행동이고 해선 안 되는 행동이라는 걸 사람들이 더 많이 알았으면 좋겠고요.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도 그걸 확실히 알아야 할 것 같아요. '이건 완전히 잘못된 행동이야'라고 생각하고 끊을 수 있도록 널리 알려지면 좋겠습니다."

- 취재하며 어려웠던 점은 뭔가요?
"대단히 내밀한 관계이기 때문에 말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어요. 피해자들이 잘못한 것까지는 아닙니다만 뭔가 밝히기 어려운 부분도 분명히 있어요. 왜냐하면 연인 관계고 무슨 일이든 있을 수 있는 거니까요. 어디까지 방송에 내보내고 어떤 부분을 빼야하나 고민이 좀 있었어요. 그런 부분이 많이 어려웠어요."
김인수 PD수첩 데이트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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