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봅니다. 그 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 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편집자말]
JTBC 드라마 <인간실격>을 보려면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느리고, 우울하고, 무거운 분위기의 드라마 속 감정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드라마 방영 초기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시청을 했다. 그런데도 드라마를 보고 나면 어김없이 마음이 가라앉았다. "같이 죽자"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는 등장인물들의 우울이 내게도 스며들 것 같았다. 시청하지 않으면 이런 감정을 피할 수 있었겠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이 드라마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드라마가 중반을 막 넘어선 요즘엔 달라졌다. 이제 이 드라마를 보고 나면 마음 깊은 곳에서 따뜻함이 올라온다. 잔잔하게 깔리는 따스한 음악이,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드라마 속 인물들의 용기가, 위태위태 한 사람들 곁에서 함께 해주는 주변 인물들의 모습이 자꾸만 떠오른다. 우울하고 위태한 삶을 살아내는 부정(전도연)과 그녀의 곁에서 함께 하는 사람들. 이들이 빚어낸 마음의 이야기를 살펴본다.
  
 부정은 강재와 나란히 침대에 누워 '사라지고 싶으면서도 살고 싶은'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는다.

부정은 강재와 나란히 침대에 누워 '사라지고 싶으면서도 살고 싶은'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는다. ⓒ JTBC

부정이 깊은 우울에 빠져든 이유
 
죄책감, 무가치감, 절망감, 허무와 공허, 짜증.

이 드라마의 주인공 부정이 보여주는 정서 상태는 대체로 이렇다. 이는 깊은 우울을 지닌 사람들이 보여주는 전형적인 정서들이다. 부정은 남편 정수(박병은)가 조심스럽게 건넨 한 마디에도 톡 쏘듯 대답하고, 직장을 그만 둔 것과 같은 중요한 일조차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배우 아란(박지영)에 대한 분노를 뿜어내다 자살을 생각하기도 한다. 우울증 인터넷 카페서 만난 정우(나현우)와 '함께 죽기'를 도모하며 유서까지 써 놓은 그녀. 도대체 부정은 왜 이토록 지독한 우울에 빠져든 걸까.

심리학에서 우울은 여러 가지 이유로 설명된다. 정신분석에서는 사랑하는 대상을 상실한 슬픔과 떠나버린 대상에 대한 분노가 자기 자신에게 향하는 것이라 하고, 인지치료에서는 자기 자신, 주변환경, 미래에 대한 부정적 사고가 우울을 유발한다고 한다. 행동치료에서는 긍정적 강화가 부족할 때 우울해진다고 하고, 생물학적 관점에서는 호르몬과 뇌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 등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부정은 아버지에게 남긴 유서에서 '누구라도 고개를 끄덕일 만큼 그런 대단한 이유가 아니라서 죄송해요'(6회)라고 적었지만, 실은 위의 모든 이유에 해당된다. 먼저, 아이를 잃고, 작가로서의 꿈을 키우던 직장을 잃고, 남편의 외도를 경험했다는 건 상실을 의미한다. 유산은 사랑하는 대상의 상실이며, 작가의 꿈을 포기한 건 자기 자신의 상실을 의미한다. 남편의 외도는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신뢰를 상실한 것과 다름없다. 드라마 속 이야기가 펼쳐지기 1년전 부정에겐 이런 사건들이 한꺼번에 닥쳤고, 이는 깊은 슬픔과 우울을 불러왔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기 자신과 주변 환경, 미래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또한, 시어머니(신신애)의 끊임없는 비난은 부정적인 강화로 작용했을 것이며, 유산을 경험하면서 생리적 요소의 불균형 또한 더해졌을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은 부정을 우울로 이끌었을 것이다. 결국 부정은 이런 자기 자신을 '나빠지고 아무것도 되지 못한 존재'로 인식하고 분노한다. 그리고 이 분노를 불행의 촉발요인이라 여기는 아란에게 쏟아낸다. 하지만, 아란을 향한 분노는 실은 자기 자신에 대한 분노가 투사된 것일 가능성이 크다.
 
우울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마음
  
 아버지 창숙은 부정을 끊임없이 긍정적으로 바라봐주고 지지해준다.

아버지 창숙은 부정을 끊임없이 긍정적으로 바라봐주고 지지해준다. ⓒ JTBC

 
우울한 부정을 지켜보는 주변 사람들의 마음은 어떨까? 남편 정수는 늘 부정의 눈치를 살핀다. 4회 부정은 남편에게 아란이 나오는 TV프로그램을 보고 있다고, 자신이 선물 받은 케이크에 대해 혹평을 한다고 다짜고짜 화를 낸다. 6회에도 부정은 정수와 대화하던 중 갑작스레 짜증을 내며 주방에 딸린 작은 방으로 숨어들어 버린다. 정수로서는 억울할 법한 상황들이었다. 하지만 정수는 이에 맞받아 화를 내기는커녕 부정이 타다만 커피를 타다주며 "내가 많이 답답하지?"라고 사과한다.

정수의 모습은 우울한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가족의 고통을 대변하는 듯했다. 늘 눈치를 살피고 조심스레 말을 걸지만 되돌아오는 건 짜증뿐인 상황에서 정수 역시 무척이나 외로워 보였다.
 
아마도 이토록 배려하는 남편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는 부정이 참 너무한다 싶을 것이다. 하지만 우울한 사람들은 '말해도 해결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상태를 알리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사람들의 걱정해주는 눈빛과 말들조차 이들에겐 자극이 된다. 또한, 지나친 조심과 배려는 오히려 우울한 사람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때문에 배려해주는 정수에게 부정은 좋은 말을 해주지 못했던 것이다.
 
아버지 창숙(박인환)은 부정을 웃게 해주는 존재다. 창숙은 부정에게 "니가 그렇게 착한 사람이야"(3회) "너도 그만하면 됐어" (4회) 라며 긍정적인 피드백을 해주고, 어떤 상황에서도 부정을 믿고 기다려준다. 부정이 창숙을 그토록 자주 찾는 이유는 이런 아버지와 함께 있을 때 살고 싶은 마음이 들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부정이 가장 편하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는 대상은 인내해주는 남편도, 한결같이 지지해주는 아버지도 아닌 강재(류준열)다. 부정은 7회 강재와 모텔에 나란히 누워 사라지고 싶은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고도 구체적으로 털어놓는다.

이에 강재는 이렇게 답한다. "다음에 어디서 우연히 만나면 우리 같이 죽을래요?" 아마도 부정에겐 그 어떤 배려보다 이 말이 지지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죽고 싶을 만큼 힘든 게 나만은 아니라고, 죽고 싶은 내 마음이 이상한 게 아니라고 인정해주는 마음은 그녀를 안심시켰을 것이다. 때문에 부정은 힘든 순간 강재를 떠올린다.
 
우울과 함께 살아가려면
 
그렇다면 이 깊은 우울을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드라마는 우울해도 일상을 살아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부정은 위태위태한 순간을 겪으면서도 자신의 일상을 살아낸다. 청소도 하고, 결혼식도 가고, 하루하루를 버틴다. 그런 가운데 '아무것도 되지 못한'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순간들을 만난다. 자살을 시도한 고객의 보호자가 되어준 후 케이크를 선물 받았을 때 전도연은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오늘 누굴 좀 도와줬거든. 너무 고맙대. 내가 생명의 은인이래. 좋아 아부지. 사는 것 같아요." (3회)
 
우울한 정서를 가지고 있는 강재 역시 부정에게 손수건을 빌려준 날을 회상하며 이렇게 내레이션 한다.

"그 날은 저도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아주 오랜만에 조금은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은 그런 기분에 마음이 괜히 즐거웠습니다."(5회)

이런 괜찮은 순간들은 우울해도 살아가는 힘이 되어준다.
 
또한, '우울을 극복하라'가 아닌 '지금 그대로도 괜찮다'는 위로를 받을 때 이들은 살아갈 힘을 얻는다. 부정은 강재와 침대에 함께 누워 있던 날 버스를 타고 귀가하다 창 밖에 내리는 눈을 보고 엷은 미소를 짓는다. 이는 그냥 있어도 괜찮은 순간을 경험한 후 느껴지는 안정감의 표현이었다(7회). 유산된 아기의 기일 날 정수가 "나도 아빠였잖아"라며 슬픔에 함께 머물러 주었을 때 부정은 마침내 부엌에 딸린 작은 방에서 나와 안방으로 들어간다(9,10회). 이처럼 지금 그대로의 모습을 존중받을 때 우울은 조금씩 엷어진다.
 
물론, 부정은 여전히 자살을 꿈꿨던 저수지에 끌리고 순간적으로 밀려오는 공허함과 절망감에 휘청인다. 하지만 괜찮은 작은 순간들을 기억하며 하루하루를 살아낸다. 그리고 벚꽃이 활짝 핀 창 밖을 바라보며 목에 두른 스카프를 풀어내는 평온한 날도 맞이한다(10회). 아무것도 되지 못해 힘들어 하는 부정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어쩌면 이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날들의 경험 아닐까.
  
 부정은 우울한 가운데에서도 자신의 일상을 차근차근 살아낸다.

부정은 우울한 가운데에서도 자신의 일상을 차근차근 살아낸다. ⓒ JTBC

 
정신과 의사 김건종은 저서 <마음의 여섯 얼굴>에서 대상관계 심리학자 마거릿 말러를 인용해 우울을 너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표현했다. 즉, 감정을 느끼고 남의 탓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일종의 힘이라는 것이다. 마거릿 말러는 이런 이유로 '우울자리'는 보다 성숙한 사람이 도달하는 지점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 때문에라는 생각은 죄책감을 유발하고 그래서 우울은 고통스럽다.
 
이 고통스런 자리를 견뎌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바로 지금 그대로도 괜찮다는, 무엇이 되지 않아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나로서 존재할 수 있다는 느낌이다. 지금 우울하다면, 나는 정서들을 느낄 수 있는 힘을 가진 존재임을, 하루하루 버텨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해오고 있음을 기억했으면 한다. 우울한 사람의 곁에 있다면 우울한 모습 자체를 존중해주자. 그럴 때 우리는 무엇이 되지 못해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존재 자체로 이미 충분히 가치 있음을 알아가게 될 것이다.
 
<인간실격>이 어떤 결론을 향해 갈지 나는 전혀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 끝이 어떤 것이든 우울하고 힘들어도 삶은 충분히 괜찮을 수 있음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 드라마를 시청한 사람들의 마음이 조금 더 따뜻해질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