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한 토종빅맨은 우승의 보증수표다'. 한국프로농구(KBL)의 오래된 우승 공식이다. 외국인 빅맨이 전력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KBL에서 그에 필적할만한 국내 빅맨을 보유한 팀은 전술적으로 상당한 이점을 안게 된다. 프로농구 역사를 돌아봐도 김주성·오세근(이상 3회)-서장훈·하승진(이상 2회)-함지훈(5회)-이승현(1회) 등 손꼽히는 토종빅맨을 보유한 팀들은 모두 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지난 시즌도 오세근을 보유한 안양 KGC가 우승을 차지했다. 제러드 설린저라는 특급 외국인 선수의 비중이 컸지만, 오세근의 든든한 골밑 활약이 뒷받침되었기에 설린저가 더 자유롭게 내외곽을 휘저을 수 있었다.

KGC의 프랜차이즈 스타인 오세근은 30대 중반의 나이에도 2020-21시즌 정규리그 48경기에 출전해 평균 10점 4.6리바운드를 기록했으며, 전주 KCC와의 챔피언 결정전에서는 평균 20득점 6.3리바운드 1.3어시스트의 맹활약으로 설린저와 챔피언 결정전 MVP를 경쟁하기도 했다. 창단 이후 우승이 없었던 KGC는 오세근이 프로에 입단한 2011년 이후에만 무려 3번의 우승을 차지하며 명문구단으로 발돋움했다.

지금 당장 은퇴해도 레전드라고 하기에 손색없는 오세근의 커리어에 유일한 아쉬움은 잦은 부상이었다. 데뷔 2년 차에 발목 부상으로 아예 1시즌을 통째로 날리기도 했으며 이후로도 무릎, 갈비뼈, 어깨 등의 부상에 시달리며 수술대에 오른 것만 수차례다.

오세근이 프로 입단 이후 전 경기 출장은 2016-17시즌 한 번 뿐이고, 한 시즌 10경기 미만으로 결장하며 비교적 온전하게 시즌을 소화했다고 할만한 경우가 커리어 9시즌중 4번뿐이다. 그리고 KGC는 오세근이 48경기 이상을 출장한 시즌중 2013-14시즌을 제외하고 나머지 3번을 모두 우승했다. 그래서 나온 별명이 '건세근(건강한 오세근은 무조건 우승)'이다.

2021-22 시즌도 KGC의 성적은 오세근에게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KBL을 평정한 설린저가 떠났고 새로운 외인듀오인 오마리 스펠먼(203cm)-데릴 먼로(197cm)와 호흡을 맞춰야 한다. 백업 역할을 해주던 김철욱(원주 DB)과 김경원(상무)도 자리를 비웠다. 오세근의 기량은 녹슬지 않았지만 어느덧 나이가 들며 출전시간 조절이 필요한 상황이다.

또다른 국가대표 빅맨 김종규에게도 건강이 중요한 화두다. 김종규는 2020-21 시즌 발목 부상과 족저근막염으로 고작 42경기에만 출전했고, 9.8점 5.8리바운드에 그쳤다. 두 자릿수 득점 실패와 더불어빅맨임에도 2점 성공률이 5할(48.9%)에도 미치지 못했는데, 이는 모두 데뷔 시즌을 제외하고 최악의 성적이었다. 부상의 여파인지 골밑에서 운동능력을 내세운 활발한 플레이가 사라졌고 몸싸움에서도 소극적이었다. 2019-20시즌 리그 공동 1위에 올랐던 DB는 지난 시즌에는 김종규의 부진속에 한 때 11연패의 굴욕을 당하는 등 8위라는 초라한 성적에 그쳤다.

김종규에게는 '무관'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서장훈-김주성-하승진-오세근 등 다른 국가대표 계보를 잇는 토종빅맨들이 최소한 한번 이상 소속팀을 챔프전 우승으로 이끈 것과 비교하여 김종규는 아직까지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2013-14시즌 창원 LG에서 정규리그 우승만 한 차례 차지한 것이 최고성적이다. 데뷔 첫해 신인왕 수상 이후 정규리그나 챔프전 MVP와도 아직 인연이 없다. 2021-22시즌 허웅과 함께 DB 공격의 중심에 서야할 김종규에게 올시즌은 명예회복을 위하여 중요한 한 해가 될 전망이다.

고양 오리온에는 이승현과 이종현의 토종 트윈타워가 있다. 대학 시절 막강한 더블포스트를 구축하며 고려대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두 선수는 프로에서는 명암이 엇갈렸다. 이승현이 오리온을 우승으로 이끌며 프로에서도 리그 정상급 빅맨으로 성장한 반면, 이종현은 잦은 부상으로 여러번 수술대에 오르며 역대 빅맨 계보를 이을 선수라는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이종현은 지난 시즌 울산 현대모비스를 떠나 오리온으로 트레이드하며 절친한 선배인 이승현과 재회하게 됐다.

이승현은 그동안 골밑이 약했던 오리온에서 종종 외국인 빅맨까지 전담수비하면서 체력적-정신적 부담이 큰 경우가 많았다. 지난 시즌 이종현이 가세하기는 했지만 오리온에서도 41경기를 뛰며 평균 11분 44초 동안 3.2점 2.2리바운드라는 아쉬운 기록을 남겼다. 이종현은 지난 3년 동안 아킬레스건 파열과 전방십자인대 파열, 슬개골 골절이라는 큰 부상에 시달렸던 후유증으로 이전만큼의 잠재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올시즌 이종현이 부활 여부에 따라 이종현의 부담도 줄이고 오리온의 골밑 높이를 한층 끌어올릴수 있는 관건이 될 전망이다.

서장훈이나 김주성이 지금도 역대급 빅맨으로 회자되고 있는 것은 탁월한 실력과 성적도 있지만 그에 못지않은 꾸준함과 내구성 때문이다. 두 선수는 나란히 KBL 무대에서 16시즌이나 활약하며 서장훈이 688경기(첫 3시즌은 정규리그 45경기 체제), 김주성은 무려 742경기나 출장했다. 

누적 기록도 엄청난데 커리어 내내 소속팀 경기 평균 출장률은 서장훈이 82.1%, 김주성이 85.8%에 이른다. 이는 국가대표 차출로 인한 국제대회 출전 때문에 인한 어쩔 수 없는 리그 결장-말년에 노쇠하면서 떨어진 수치까지 포함된 기록이다. 한마디로 전성기에는 거의 매시즌 전경기를 소화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반면 잔부상이 잦고 관리의 중요성이 부각된 현대의 빅맨들은 A급 선수라도 커리어 평균이 80%를 넘는 경우를 찾기 힘들다.

서장훈-김주성은 심지어 매번 상대의 집중견제와 크고작은 잔부상에 시달리면서 오랫동안 전성기를 유지하며 꾸준한 성적까지 찍었다. 그들이 왜 은퇴한 이후에도 다시 나오기 힘든 레전드라고 불리는지 이유를 보여준다. 지금의 후배 빅맨들도 본받아야 할 자기관리와 프로의식의 모범이라고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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