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분야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흔히 'OO키드'라고 부르곤 한다. 최근에는 일본어 오타쿠가 어원인 '덕후'라는 말이 한 분야에 열중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단어로 널리 쓰이고 있다. 처음에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일 때가 많았지만 성공한 덕후라는 뜻을 가진 '성덕'이라는 말이 흔하게 쓰이고 있는 것처럼 '덕후'라는 말은 이제 더 이상 부정적인 의미로만 쓰이는 단어가 아니다.

그리고 이 '키드'를 소재로 한 영화 한편이 각종 영화제를 휩쓸며 주목을 받기도 했다. 1994년 소설가 안정효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광들의 서글픈 인생을 그린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가 그 주인공이다.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는 청룡영화제 대상과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작품상을 휩쓸었다.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는 청룡영화제 대상과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작품상을 휩쓸었다. ⓒ (주)영화세상

 
90년대 주름 잡았던 터프가이의 상징

최무룡, 독고성, 박노식, 허장강은 5~70년대 한국영화를 빛낸 배우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에게는 모두 배우로 성장한 아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배우 최무룡과 강효실 사이에서 태어난 최민수는 외조부와 외조모부터 3대째 이어진 배우가문이다. 1985년 연극을 통해 데뷔한 최민수는 한동안 '최무룡의 아들'이라는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1991년 <사랑이 뭐길래>에서 이대발을 연기하면서 일약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다.

드라마 <걸어서 하늘까지>와 <엄마의 바다>, 영화 <결혼이야기>,<미스터 맘마>,<가슴 달린 남자> 등을 통해 착실히 커리어를 쌓아오던 최민수는 1994년 정지영 감독의 신작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에 출연했다.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에서 병적인 영화 마니아 임병석을 연기한 최민수는 뛰어난 내면 연기로 배우로서 한 단계 성장했다는 평가를 받았고 이는 1995년 인생작 <모래시계>의 열연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최민수는 그 시절 국내외 많은 스타배우들이 그랬던 것처럼 최전성기에서 그만 '다작의 함정'에 빠지고 말았다. 최민수는 <모래시계> 이후 3년 동안 <나에게 오라>, <피아노맨>, <인샬라>, <블랙잭>, <남자이야기> 같은 영화에 차례로 출연했지만 모두 관객들의 외면을 받았다. 그나마 <유령>으로 대종상 남우주연상, <리베라 메>로 백상예술대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존재감을 뽐낼 수 있었다.

90년대 후반부터 최고의 자리를 한석규와 박신양, 최민식 같은 동료 및 후배 배우들에게 물려준 최민수는 2005년 <홀리데이>에서 '전설의 명짤'을 남기며 악역연기의 새 지평을 열었다. 하지만 최민수는 2004년 조폭 선처 탄원서 사건과 2008년 노익폭행논란(불기소처분), 2015년 PD폭행 사건, 2018년 보복운전사건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서며 대중들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최민수는 3대 영화제 남우주연상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했을 정도로 넓은 연기 스펙트럼과 뛰어난 몰입도를 통해 대중들을 빨아 들이는 흡입력을 가진 배우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자신조차 '창작'이라 믿었던 표절 시나리오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는 충무로 대표 2세배우 독고영재(왼쪽)와 최민수가 주연을 맡아 화제를 모았다.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는 충무로 대표 2세배우 독고영재(왼쪽)와 최민수가 주연을 맡아 화제를 모았다. ⓒ (주)영화세상

 
영화 제목들을 엮어 하나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줄 아는 임병석(최민수 분)은 학급 내 친구들은 물론 선생님들도 혀를 내두르게 만드는 교내 최고의 영화광이다. 영화를 좋아하는 친구 7명이 모여 영화 동아리 '황야의 7인'을 결성하지만 그 중에서도 병석의 '덕력'은 단연 으뜸이다. 그리고 중학교 때부터 차근차근 쌓아온 영화사랑은 고등학교까지 이어졌고 이들은 제법 전문용어를 써가며 영화에 대해 토론을 하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병석이 타고난 천재형 영화광이라면 학교 내에서도 모범생으로 꼽히는 윤명길(독고영재 분)은 철저한 '노력형 영화광'이다. 명길은 영화 프로그램을 잔뜩 소장하고 있는 병석의 프로그램을 훔치면서까지 영화 지식을 쌓지만 병석의 영화지식은 언제나 명길보다 위에 있고 명길은 언제나 그런 병석에게 열등감을 갖는다. 하지만 친구의 갑작스러운 실족사로 인해 할리우드를 꿈꾸던 '황야의 7인'은 흐지부지되고 친구들도 뿔뿔이 흩어진다.

졸업 후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한 명길은 군복무를 마치고 조연출로 영화인의 길에 들어서지만 대학을 중퇴한 병석은 혼자 시골에서 시나리오를 쓰며 폐인처럼 생활했다. 마음을 잡은 병석은 충무로 현장에 뛰어들지만 열악한 충무로 제작 현장에 적응하지 못하고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하지만 병석은 정신병원에 찾아온 친구 명길에게 한 편의 시나리오를 건네고 명길은 병석의 시나리오 <가면고>를 통해 감독으로 데뷔했다.

하지만 <가면고>는 철저한 '짜깁기'로 만들어진 영화였다. 어린 시절 영화 제목들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었던 것처럼 할리우드 명작 영화들의 대사들을 모아 한 편의 시나리오를 쓴 것이다. 문제는 시나리오를 쓴 병석조차 <가면고>가 완벽한 창작인 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인생을 바쳐 완전한 '표절 시나리오'를 쓴 병석은 달리는 차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병석이 시나리오를 쓴 <가면고>가 영화 속 청룡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은 것처럼 정지영 감독의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는 각종 영화제를 많은 상을 휩쓸었다.

1994년 청룡영화제에서 촬영상과 대상(현재는 폐지)을 받은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는 1995년 백상예술대상에서도 감독상과 영화부문 작품상, 영화 부문 대상을 휩쓸었다(하지만 정지영 감독은 1998년 <까>를 끝으로 2011년 <부러진 화살>까지 10년 넘는 공백이 있었다).

<모래시계> 이역 콤비 김정현과 홍경인의 시작
 
 김정현(왼쪽)과 홍경인은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에 이어 <모래시계>에서도 아역 콤비로 출연하며 큰 사랑을 받았다.

김정현(왼쪽)과 홍경인은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에 이어 <모래시계>에서도 아역 콤비로 출연하며 큰 사랑을 받았다. ⓒ (주)영화세상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는 최무룡의 아들 최민수와 독고성의 아들 독고영재가 나란히 주연을 맡으며 크게 화제가 된 작품이다. 물론 최민수와 독고영재는 안정된 연기로 이야기를 잘 이끌어 갔지만 정작 관객들은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에 출연한 두 청소년 배우의 신선한 연기에 더욱 주목했다. 바로 최민수와 독고영재의 고등학교 시절을 연기했던 김정현과 홍경인이었다.

임병석의 아역을 연기한 김정현은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가 영화 데뷔작이었다. 김정현은 '황야의 7인'의 실질적인 리더 임병석 역을 잘 소화했고 1995년 <모래시계>에서도 최민수의 아역을 연기하며 "나... 나 약속 지켰다"라는 명대사로 90년대 중반 최고의 라이징 스타로 급부상했다. 젊은 시절 멋있는 역할을 도맡아 하던 김정현은 어느 정도 나이가 든 후 <자이언트>의 황정식, <기황후>의 당기세처럼 악역 연기로 두각을 나타냈다.

최민수의 아역을 연기했던 김정현이 갑자기 등장한 스타였다면 독고영재의 아역을 연기한 홍경인은 이미 아역계에서는 알아주는 스타 연기자였다. 1992년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엄석대를 연기하며 충무로의 특급유망주로 이름을 알린 홍경인은 <모래시계>에서 박상원의 아역을 연기했다. 그리고 1995년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통해 만19세의 젊은 나이에 춘사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올드 팬들이라면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후반까지 짧게 활동하고 홀연히 대중들 앞에서 사라진 배우 신혜수의 출연이 대단히 반가웠을 것이다. 1987년 임권택 감독의 <아다다>를 통해 대종상과 백상예술대상, 황금촬영상의 신인상을 휩쓸었던 신혜수는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에서 병석과 명길의 첫사랑 현숙을 연기했다. 하지만 신혜수는 1999년 < A+삶 >을 끝으로 결혼과 함께 연예계를 떠났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정지영 감독 최민수 독고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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