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공채 1,2기 개그맨 5명(표인봉,이웅호,홍록기,이동우,김경식)으로 구성된 젊은 개그 집단 틴틴파이브는 <열려라 웃음천국>에서 기존 개그방식과는 다른 신선한 개그들을 선보이며 SBS 개국초기 시청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특히 우스꽝스러운 자체 효과음과 절도있는 움직임을 통해 웃음을 자아내던 코너 '로보캅'은 틴틴파이브의 시그니처 개그로 젊은 시청자들을 중심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1990년대 초반 틴틴파이브가 선보였던 인기 코너 '로보캅'은 10여 년의 세월이 흘러 2004년 <웃음을 찾는 사람들>의 '어쨌든 로보캅'이라는 코너를 통해 부활했다. <어쨌든 로보캅>은 현재 옹알스의 멤버로 활약하고 있는 최기섭과 멋진 동작과 표정연기로 관객들의 감탄을 자아낸 윤진영, 영구나 맹구를 연상케 하는 바보 연기로 웃음지분을 책임졌던 김필수가 콤비를 이뤄 <웃찾사> 리즈 시절의 한 축을 담당했다.

하지만 틴틴파이브의 '로보캅'도, <웃찾사>의 '어쨌든 로보캅'도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한 영화의 패러디에서 시작된다. 지난 1987년 개봉해 북미에서만 제작비의 4배가 넘는 흥행수익을 올리며 큰 사랑을 받았고 여전히 범죄 SF 액션 영화의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바로 <터미네이터> 시리즈와 함께 대중적인 SF 영화의 바이블로 꼽히는 폴 버호벤 감독의 <로보캅>이다.
 
 <로보캅>은 국내에서도 큰 호응을 얻으며 서울에서만 45만 관객을 동원했다.

<로보캅>은 국내에서도 큰 호응을 얻으며 서울에서만 45만 관객을 동원했다. ⓒ 지미필름

 
3연타석 홈런

고교 시절 프랑스 파리에서 미술을 공부했고 대학에서는 수학과 물리학을 전공한 폴 버호벤 감독은 1971년 첫 장편영화를 찍으며 전공분야와는 전혀 다른 길을 선택했다. 1977년 <서바이벌 런>을 통해 골든 글러브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 오르며 주목 받은 버호벤 감독은 1985년 <아그네스의 피>를 연출하며 할리우드의 문을 두드렸지만 흥행과 비평 모두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할리우드 진출작에서 뼈 아픈 시련을 경험한 버호벤 감독은 유치한 제목 때문에 여러 감독으로부터 거절 당했던 한 작품의 시나리오를 영화로 만들었다. 버호벤 감독의 할리우드 첫 성공작으로 꼽히는 <로보캅>이었다. 흥미로운 범죄액션과 SF, 사회풍자 요소가 적절히 섞인 <로보캅>은 13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들어져 북미에서만 5300만 달러의 흥행 수익을 올렸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로보캅>을 통해 할리우드에 무사히(?) 안착한 버호벤 감독은 1990년 <터미네이터>의 근육질스타 아놀드 스왈제네거를 섭외해 또 한 편의 SF 액션 영화 <토탈리콜>은 선보였다. 그리고 1992년에는 <토탈리콜>에 출연했던 샤론 스톤이 열연한 에로틱 스릴러 <원초적 본능>을 통해 세계적으로 3억5200만 달러의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 3연타석 홈런을 날린 버호벤 감독은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흥행감독으로 떠올랐다.

버호벤 감독은 1995년 차기작 <쇼걸>을 선보였지만 골든 라즈베리 시상식 최악의 감독상을 비롯해 7개 부문을 휩쓸며 혹평 받았다. 하지만 버호벤 감독은 이례적으로 시상식에 직접 참석해 "네덜란드에서 '쓰레기 감독' 소리를 들었는데 여기서도 들었으니 역시 미국은 제2의 조국이다"라는 유쾌한 수상소감으로 청중을 웃겼다. 버호벤 감독은 1997년 <스타쉽 트루퍼스>를 흥행시키면서 곧바로 명예회복에 성공했다.

2002년 유럽으로 돌아간 버호벤 감독은 2006년 <블랙북>, 2012년 <트릭>을 연출했고 2016년에는 <엘르>를 통해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했다. 1938년생으로 80대의 고령인 버호벤 감독은 신작 <베네데타> 촬영 도중에 생긴 부상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합병증이 발생해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 하지만 다행히 회복에 성공했고 버호벤 감독의 신작 <베네데타>는 지난 7월 프랑스에서 무사히 개봉했다(국내는 미개봉).

감정 없는 로봇 아닌 인간 머피의 이야기
 
 무적의 로봇경찰 로보캅은 OCP사 임원을 체포할 수 없다는 비밀조항이 시스템 속에 심어져 있다.

무적의 로봇경찰 로보캅은 OCP사 임원을 체포할 수 없다는 비밀조항이 시스템 속에 심어져 있다. ⓒ 지미필름

 
당초 <로보캅>은 형사가 로봇을 잡는 이야기로 기획됐다가 '형사가 로봇'인 아이디어가 나오면서 지금의 이야기가 탄생했다. 가벼운 B급 오락영화였던 <로보캅>은 폴 버호벤 감독을 만나 뛰어난 오락성과 액션, 자본주의에 대한 야유와 풍자, 블랙 코미디 요소들이 뒤섞인 명작으로 재탄생했다. <로보캅>은 국내에서 경찰의 파업 등 주요 장면이 대거 삭제된 채 개봉했음에도 서울 관객 45만으로 크게 성공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유능하고 정의로운 경찰관 머피(피터 웰러 분)는 마약거래를 하는 범죄자 집단을 쫓다가 잔인하게 살해되고 거대기업 OCP의 과학자들에 의해 감정도 기억도 없는 최첨단 사이보그 형사 로보캅으로 태어난다. 로보캅이 첫 출동에서 "총을 버려라, 널 체포한다"라는 기계음을 낸 후 각종 범죄자들을 혼내는 장면들은 <로보캅>에서 가장 통쾌한 장면으로 꼽힌다. 심지어 충격을 받은 피해자에게는 매뉴얼에 따라 시크하게 정신과 치료를 권하기도 한다.

하지만 로보캅은 자신을 살해했던 범죄집단을 다시 만나면서 혼란이 찾아오고 생전 파트너였던 루이스(낸시 알렌 분)의 도움으로 잃었던 정체성을 되찾기 시작한다. 헬멧을 벗어 자신의 진짜 얼굴을 확인한 로보캅은 클라렌스(커트우드 스미스 분)를 향한 철저히 개인적인 복수를 하면서도 끝내 헷멧을 다시 쓰지 않는다. 이는 대기업이 만든 사이보그 로보캅이 아닌 정의로운 디트로이트 경찰 머피로서의 자아를 찾았다는 뜻이다.

머피가 클라렌스에 대한 복수를 마치고 OCP 본사에 찾아가 '만악의 근본'인 딕 존스(로니 콕스 분)를 응징하는 마지막 장면도 관객들의 탄성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머피는 'OCP간부는 체포할 수 없다'는 비밀조항 때문에 존스를 체포하지 못하지만 "넌 해고야"라는 회장의 한마디에 존스에 대한 응징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자네 이름이 뭔가?"라는 회장의 물음에 로보캅은 "머피"라고 대답하며 은은한 미소를 짓는다.

<로보캅>은 1990년 속편, 1993년에는 3편이 제작돼 개봉했다. 그나마 2편까지는 1편의 묵직한 스토리를 잘 계승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13세 이하 관람가로 수위가 낮아진 3편은 아동 취향의 모험영화로 전락하고 말았다. <로보캅>은 지난 2014 호세 파딜라 감독에 의해 리부트됐지만 해외에서의 선전 덕분에 손익분기점을 간신히 넘겼을 뿐 북미 대중들에게는 물론 <로보캅> 마니아들에게도 혹평을 받으며 <로보캅>의 '흑역사'로 남고 말았다.

로보캅의 내면까지 잘 표현한 배우 피터 웰러
 
 로보캅을 연기한 피터 웰러는 로보캅 분장을 하기 전에는 샤프한 이미지의 미남배우다.

로보캅을 연기한 피터 웰러는 로보캅 분장을 하기 전에는 샤프한 이미지의 미남배우다. ⓒ 지미필름

 
감독에게는 역할에 어울리는 배우를 만나는 것, 그리고 배우에게는 자신의 매력을 극대화 해주는 감독을 만나는 것만큼 큰 복이 없다. 그런 점에서 폴 버호벤 감독과 배우 피터 웰러가 <로보캅>을 통해 만난 것은 서로에게 큰 행운이었다. 로보캅의 특수의상을 부착하기 전까지는 상당히 날렵한 미남 배우인 웰러는 무거운 의상과 분장 후에도 로보캅의 딱딱한 움직임은 물론 복잡한 내면까지 잘 표현해냈다.

<로보캅>을 통해 일약 스타덤에 오른 피터 웰러는 <로보캅2>까지 출연했지만 3편에서는 <네이키드 런치> 촬영 때문에 <로보캅>에서 하차했다. 3편의 완성도와 흥행성적을 보면 결과적으로 웰러의 하차는 좋은 선택이었던 셈이다. 물론 웰러 역시 <로보캅> 이후 그에 버금가는 히트작을 내진 못했지만 2010년대에도 <언디스퓨티드: 분노의 격투>,<드래곤 아이즈> 같은 액션 영화에 출연하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1981년 <드레스드 투 킬>에 출연했다가 초대 골든 라즈베리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던 낸시 알렌에게도 <로보캅>은 배우 생활에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된 작품이었다. 알렌은 과거의 기억이 모두 삭제된 로보캅에게 "머피... 그게 너야"라고 말해주며 머피의 정체성을 가르쳐 준 머피의 생전 파트너 앤 루이스를 연기했다. 3편에서 하차한 피터 웰러와 달리 알렌은 <로보캅3>까지 모두 개근했다.

머피를 잔인하게 살해하며 '로보캅 프로젝트'의 원인을 제공한 악당 클라렌스 보딕커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닐 페리(로버트 숀 레오나드)의 완고한 아버지를 연기했던 커트우드 스미스가 맡았다. 딕 존스의 동업자로 온갖 악행을 주도하는 클라렌스는 머피에게 목이 찔려 사망한다. 커트우드 스미스는 드라마 <스타트랙> 시리즈를 비롯해 <언더시즈2>, <브로큰 애로우> 등 스케일 있는 여러 액션 영화들에서 조연으로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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