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맹주' 이란은 한국 축구사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숙적이다. 흔히 한국의 라이벌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일본을 먼저 떠올리기 쉽지만, 역대 전적이나 상성을 고려할 때 아시아 무대에서 가장 오랜 기간 한국 축구를 괴롭혀 온 상대는 바로 이란이었다.

한국은 역대 전적에서 9승 9무 13패로 열세에 있다. 아시아 무대에서 한국이 상대 전적에서 이 정도로 열세를 기록중인 팀은 그리 많지 않다. 특히 이란의 홈구장인 테헤란 아자디 스타디움에서는 1974년 첫 대결 이래 2무 5패로 아직까지 단 한번도 이겨보지 못했다. 한국은 아자디에서 단 3골만 넣고 10골을 실점했다. 최근 3번의 원정 맞대결에서는 모두 0-1로 패했다.

한국과 이란은 1974년 9월 이란 테헤란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본선에서 처음으로 만났다. 당시는 아시안게임에도 A대표팀이 나서던 시절이었고 한국은 정예멤버를 모두 출전시키고도 이란에 0-2로 완패하며 양국의 악연이 시작됐다.

양 팀의 라이벌 구도에 본격적으로 불이 붙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부터였다. 한국은 1996년부터 2011년까지 아시안컵 8강에서만 5회 연속 격돌하는 지독한 악연을 이어갔다. 이중 연장전만 무려 3회였고 승부차기도 1회 기록했다. 1996년을 제외하면 모두 한 골 차 이내로 승부가 갈린 접전이었다.

이란과의 1996년 아시안컵 8강전은 한국축구에 대표적인 흑역사로 꼽힌다. 박종환 감독이 이끄는 한국은 당시 이란의 최고 스트라이커 알리 다에이에게만 4골을 내주며 2-6으로 참패했다. 이 패배의 후유증으로 박종환 감독은 경질당했다. 이 경기는 지금까지 한국 축구가 아시아 무대에 당한 가장 충격적인 참패 중 하나로 회자된다.

물론 한국도 이란에 여러 차례 아픔을 줬다. 2000년 아시안컵(허정무 감독)에서는 연장전에 터진 이동국의 골든골에 힘입어 한국이 2-1로 신승했다. 2004년(조 본프레레 감독)에는 양 팀 합계 7골을 주고받는 난타전 끝에 3-4로 석패했으나, 다음 대회인 2007년(고 핌 베어벡 감독)에는 120분 동안 0-0으로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도 승부차기에서 이운재의 선방에 힘입어 4-2로 승리했다. 하지만 혈전의 후유증 탓인지, 두 팀 중 누가 이겨도 아시안컵 우승에 이르지 못한다는 징크스도 남겼다.

지난 2011 아시안컵에서는 연장전에서 윤빛가람의 결승골로 1-0 승리를 거두며 또다시 이란을 울렸다. 그리고 이 경기는 지금까지 한국이 이란을 상대로 승리한 마지막 경기로 남아있다. 한국이 90분 정규시즌 경기 이내에 이란을 이긴 것은, 2005년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이끌었던 홈 평가전으로 무려 16년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양 팀의 치열한 경쟁구도는 월드컵에서도 이어졌다. 양팀은 2010년 남아공과 2014 브라질 2018 러시아에 이번 카타르 월드컵까지 최종 예선에서만 무려 4회 연속 마주치게 됐다. 이기간 상대 전적은 한국이 3무 3패에 그치며 일방적으로 밀렸다.

2009년 허정무 감독이 이끌던 한국은 홈과 원정에서 이란에 두 번 모두 선취골을 내주고도 박지성의 동점골에 힘입어 1-1 극적인 무승부를 거뒀다. 한국은 남아공 월드컵 예선을 당당히 무패 조 1위로 통과한 반면, 이란을 조 3위로 밀어내며 이란에게 월드컵 본선 탈락의 아픔을 선사했다.

브라질 월드컵 최종 예선에서는 상황이 정반대로 바뀌었다. 최강희 감독이 지휘한 한국은 2012년 10월 테헤란 원정에서 수적 우위를 살리지 못하고 네쿠남에게 결승골을 내주며 0-1로 패했고, 설욕을 꿈꿨던 2013년 6월 예선 최종전 울산 홈경기에서도 김영권의 수비 실책으로 구차네자드에게 뼈 아픈 결승골을 내줬다. 패배 직후에는 경기 전부터 설전을 벌였던 카를로스 케이로스(포르투갈) 감독이 한국 벤치를 향하여 '주먹감자'를 날리며 도발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던 2015년 11월 평가전과 2016년 10월 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에서는 테헤란 원정에서 또다시 잇달아 0-1로 패배하며 이란전 4연속 무득점-1골차 패배라는 불명예 기록을 세웠다. 슈틸리케 감독이 경질되고 난후 신태용 감독이 지휘봉을 물려받아 치렀던 2017년 8월 홈경기에서는 0-0 무승부를 기록하며 연패 사슬을 끊었다. 한국은 최근 두 번의 최종예선 이란에게 일방적으로 밀리고도 조 2위로 월드컵 본선진출 티켓만은 사수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이란과 가장 최근의 맞대결은 현 파울루 벤투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2019년 6월 서울월드컵월드컵 경기장에서 평가전을 치러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한국은 이기지는 못했지만 당시 황의조가 선제골을 넣으며 이란전 8년 연속 무득점의 징크스를 깬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10회 연속 월드컵 본선진출에 도전하는 벤투호에게도 여전히 이란은 가장 위협적인 경쟁자다. 승점 4점를 기록 중인 한국은 이란(승점6)에 이어 조 2위에 있다. 10월 A매치 2연전에서 시리아-이란을 모두 이기면 자력으로 선두로 탈환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한 경기라도 미끄러지면 또다시 가시밭길이 불가피하다.

특히 12일로 예정된 4차전 이란 원정은 이번 최종예선의 최대 고비로 꼽힌다. 한국은 7일 오후 8시 경기 안산 와스타디움에서 시리아와 홈 경기를 치르고 닷새만에 원정에 나서야 한다. 악명높은 중동 원정의 첫 경기이자, 상대는 난적 이란, 경기장소는 난공불락의 테헤란 아자디 스타디움이라는 삼중고를 극복해야 한다.

한국축구가 이란에게 유독 고전한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엄청난 홈텃세를 무시할수 없다. 이란의 홈구장 아자디 스타디움은 해발 1273미터의 고지대에 위치해 산소가 부족하고 잔디 상태도 좋지 않아 익숙하지 않은 원정팀 선수들에게는 체력적인 부담이 크다. 여기에 최대 10만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규모의 경기장에 여성 관중의 입장을 허용하지 않아 이슬람 문화의 특성상 거친 남성팬들 위주의 험악하고 과격한 응원 분위기는 선수들을 위축시킨다.

다만 코로나 19로 인하여 이란 측이 이번 경기에서는 제한적인 관중 입장만을 허용하기로 했다는 점은 우리에게 유리한 변수가 될 수 있다. U-23 올림픽팀에서는 2004년 3월, 2004 아테네 올림픽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이천수의 결승골에 힘입어 이란을 그 악명높은 테헤란에서 1-0으로 이긴 기억도 있는만큼 이란 원정이라고 절대 넘지 못할 산은 아니다.

한편으로 이란의 거친 파워축구와 심리전도 경계해야 한다. 이란의 간판스타였던 네쿠남은 과거 한국과의 대결을 앞두고 "아자디에서 지옥을 맛보게 해주겠다"며 도발한 바 있으며, 케이로스 감독은 당시 한국 사령탑이던 최강희 감독의 얼굴에 우즈베키스탄 유니폼을 합성한 티셔츠를 입고 조롱하기도 했다. 도를 넘어선 신경전과 도발은 그만큼 이란이 한국을 반드시 넘어야할 상대로 의식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로 인하여 이란하면 승리를 위하여 침대축구나 각종 비신사적인 플레이도 마다하지 않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굳어졌지만, 단지 그것만이 이란이 가진 전부는 결코 아니다. 한국은 사실상 유럽 선수들에게 가까운 이란의 탄탄한 피지컬에 밀려 고전한 경우가 꽤 많았다. 선수들의 면면만 봐도 이란은 유럽 러시아리그 득점왕 출신인 사르다르 아즈문(제니트)을 비롯하여 메흐디 타레미(포르투)와 자한바크슈(페예노르트) 등 한국축구와 비교하여 크게 뒤지지않는 화려한 유럽파들을 대거 보유하고 있다.

벤투 감독은 최근 10월 최종예선을 대비하여 손흥민-황희찬-황의조-김민재 등 최정예 멤버들을 모두 소집했다. 이란전을 비롯하여 이번에야 말로 승점 6점을 따내겠다는 분명한 목표를 제시했다. 원정팀의 무덤으로 악명 높은 아자디스타디움에서 이란을 꺾고 조 선두를 탈환할 수 있다면 대표팀은 월드컵 본선행에 대한 청신호를 밝힐수 있고, 최근 경질설이 거론되던 벤투 감독의 지도력에 대한 신뢰도 회복할 수 있게 된다. 과연 한국축구가 이번에야말로 반세기에 걸친 아자디 징크스를 청산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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