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노동자와 함께한 노회찬 전 의원.

청소노동자와 함께한 노회찬 전 의원. ⓒ 명필름-노회찬재단

 
일생을 진보정당 운동에 헌신한 노회찬 전 의원은 남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 아이돌 가수와 스포츠 스타들이 한국 문화의 위상을 높이고 있는 와중에 여전히 한국 정치는 후진국에 머무르고 있다는 내외부의 평가를 복기하면 그의 부재가 아쉽기만 할 것이다. 오는 10월 14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노회찬 6411>은 어쩌면 일상과 전혀 동떨어진 영역이라 치부했던 정치의 가치를 다시 생각할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두 영화인의 기대 또한 같아 보인다. 여러 흥행 영화를 제작해 온 명필름과 <노무현입니다>로 이미 한국 최초의 정치인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최낙용 대표가 손을 잡았다. "각 방송사에 남아 있는 고인의 자료가 많을 텐데 다큐멘터리를 해보면 좋지 않겠냐"는 한 현직 PD의 말을 들은 명필름 심재명 대표가 최낙용 대표에게 제안했고, 고인의 3주기 즈음 개봉을 목표로 의기투합하게 됐다. 지난 9월 29일 서울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두 공동 제작자를 만나 이야기를 더 들어볼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우리가 사는 시대 생각해주시길"

왜 지금 노회찬이어야 했는가라는 물음에 두 사람 모두 영화에 대한 고민과 고인의 존재 의미를 동시에 쏟아냈다. 
 
돌아가신 지 불과 3년이 채 안 된 시점에 영화를 만든다는 게 너무 빠른가 하는 개인적 고민도 있었다. 그럼에도 함께 하시는 분들이 3주기를 바라보고 완성하자고 해서 추진하게 됐다. 국내에 이렇다 할 정치인 다큐멘터리가 많지 않은데 정치인으로서 노회찬은 인지도와 신뢰도가 있는 분이었다. 그가 진보정치를 고민하며 겪은 고난과 고뇌를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로 잘 담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심재명 대표
 
정치를 좀 아시는 분들도 한국 정치사에서 노회찬이 해왔던 진보 정당의 역사에 대해선 잘 모르시더라. 사실 소외된 영역이기도 하다. 이 부분을 영화화하는 게 의미가 있겠다 싶었지. 영화엔 노회찬 본인 이야기도 나오지만 보좌관부터 어릴 때 친구, 동지 등 주변 인물이 많이 나온다.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정치를 해보려 한 역사가 있다. 그것과 별개로 드라마로 바라봤을 때 노회찬은 할리우드 영화 캐릭터에 맞먹는 캐릭터기도 하다. 고대 그리스 비극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비극의 주인공 같은 면이 있지- 최낙용 대표
 
 다큐멘터리 영화 <노회찬 6411>를 공동 제작한 시네마6411 최낙용 대표(좌)와 명필름 심재명 대표.

다큐멘터리 영화 <노회찬 6411>를 공동 제작한 시네마6411 최낙용 대표(좌)와 명필름 심재명 대표. ⓒ 더홀릭컴퍼니

 
영화는 고인이 정치인으로 입문하기 전부터 실천해 온 노동운동 과정과 함께 주변 사람들의 기억을 적절히 교차시키고 있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던 내용엔 없었던 정의당 심상정, 이정미 의원의 증언을 비롯해 고인의 아내이자 정치적 동지였던 김지선씨의 육성 인터뷰도 담겼다. 최낙용 대표는 "김지선씨의 경우 설득의 과정이 필요했다"며 말을 이었다.
 
동료 의원들은 오래 함께 활동했기에 속 이야기를 많이 해주실 것 같았다. 전주영화제 때는 급하게 제출하느라 미처 넣을 시간이 없었는데 이번에 넣게 됐다. 김지선씨는 여러 차례 고사했으나 노회찬 재단을 통해, 그리고 평전의 저자인 이광호 작가님을 통해서도 설득하려 했다. 전주영화제 버전엔 노회찬 개인의 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았는데 개봉 앞두면서 개인이 보이다 보니 저도 여러 차례 울컥하는 지점이 있더라.- 최낙용 대표

그간 < 공동경비구역 JSA >, <바람난 가족>, <건축학개론> 등 상업적으로 크게 흥행한 작품을 만들어온 심재명 대표는 영화적 관점에서 이번 작품의 의미를 설명했다. 돌이켜 보면 명필름의 이은 공동 대표가 학부생 시절 영화 운동 집단인 장산곶매를 통해 <파업전야>를 만들었기에 그 정신과 통하는 지점이 있어 보였다(참고로 명필름은 전태일 열사의 이야기를 다룬 애니메이션 <태일이> 또한 제작해 왔고, 내년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전 상업영화 마케터 출신이고, 이은 대표는 영화 운동을 해 온 사람인데 자연스럽게 명필름 영화들에 우리의 가치관과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담겨 온 것 같다. <파업전야>가 공장노동자를 , <카트>가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를 다뤘다. <노회찬 6411>도 일종의 사회 리얼리즘으로 바라볼 수 있다. 하지만 너무 가르치려 하거나 교훈적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우리 사회와 시대를 생각하게끔 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심재명 대표

두 영화인이 바라본 노회찬

사실 심재명, 최낙용 대표 모두 고인과 사적 친분은 없었다. 비슷한 정치적 지향성을 품고 응원하고 지지하는 대상이었다고 한다. 간접적으로나마 기억하는 노회찬이라는 개인에 두 사람은 "사적으로는 굉장히 수줍음을 타는 사람이었지만 공적으론 굉장히 에너지가 넘쳤다"고 전했다. 
 
진보신당 창당 때 문화예술인들이 지지성명을 냈잖나. 그때 참여한 봉준호 감독, 배우 문소리와도 아마 사적으로 만나진 않았던 걸로 알고 있다. 저도 막연히 지지하는 입장이었지. 이번 영화를 하며 구체적으로 알게 됐다. 전반적으로 진보 운동에 번아웃(burnout) 한 게 너무 안타까웠다. 평생을 노동운동가, 진보정치인으로 살면서 참 고단한 삶을 살았다 싶더라. 영화에 출연하신 분 중 고인을 이렇게 말씀한 부분이 있다. 노회찬은 우산을 씌워주는 사람이 아닌, 함께 비를 맞는 사람이었다고. 사람들의 그런 신뢰를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겠나. 진정으로 진보적이었던 사람이었다.-심재명 대표
 
1992년 무렵 제가 백기완 선생 선거본부에서 일했다. 그해 4월에 노회찬 의원이 감옥에서 나와 백 선생 중앙선거본부 실장을 했더라. 얼굴을 맞대진 않았지만 공통의 목표로 일한 기억이 있다. 그땐 다들 가명을 쓰거나 신분을 밝히지 않고 일했던 때였다. 영화에선 편집됐지만, 초등학교 동창 분이 고인을 '어부를 해도 잘했을 사람'으로 표현한 말이 있다. 그만큼 한 분야 한 분야를 깊이 파고 좋아서 하는 사람이다. 청소년기, 청년기를 거치며 다른 기회를 본인에게 주지 않고 정치 운동에 헌신한 셈이다. 존경스러우면서 미안하고 안타깝다. 뭘 하든 진심인 사람이다.-최낙용 대표
 
 다큐 영화 <노회찬 6411>의 한 장면.

다큐 영화 <노회찬 6411>의 한 장면. ⓒ 명필름-노회찬재단

 
이미 한 차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다큐를 만들며 갖은 고생을 경험한 최낙용 대표는 "고인 장례식장에 가서 영화인들이 모여 얘기할 때 솔직히 내가 아닌 누군가가 노회찬 의원의 삶을 다뤄주길 간절히 바랐다"며 마음 한 켠에 품고 있던 부담감을 털어놨다.
 
돌아가신 분의 이야기를 제가 또 한다는 건 사실 차별성 면에서도 조심스러웠지. 노무현 전 대통령과 노회찬 의원 모두 기성 정치에 도전한 분이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다. 전자는 기존 정치 틀 안에서였고, 후자는 밖이라는 사실이다. 다만 사람의 성정이나 타인을 대하는 태도는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노무현입니다>를 할 땐 한창 박근혜 정권 때라 '노'자만 꺼내도 영화 자체를 못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보안을 철저하게 하며 몰래 준비했지. 이번 작품은 다행히 재단과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완성될 수 있었다.-최낙용 대표
 
우리 사회가 훌륭한 정치인을 많이 갖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다. 게다가 정치사에서 탁월했던 두 사람 모두 안타깝게 죽음을 맞이했다. 노무현은 대통령까지 하신 분인데, 노회찬 의원 또한 집권을 꿈꿨을 거라 생각한다. 굳이 MBTI로 분류하면 노무현은 E형, 노회찬은 I형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실천하는 것과 아는 것이 불일치 하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을 갖고 있는 분이라고 생각한다.-심재명 대표

진보정당이든 민주당이든 노무현과 노회찬을 뛰어넘는 게 한국 정치의 발전과도 연결되는 일이라는 게 영화를 내놓은 두 사람의 생각이었다. <노회찬 6411>을 통해 관객과 정치계에 기대하는 바를 마지막으로 물었다. 촛불의 힘으로 민주 정권이 다시 들어섰지만 진보정치 운동은 그 어느 때보다 위축됐다는 위기감과 함께. 
 
 다큐멘터리 영화 <노회찬 6411>를 공동 제작한 시네마6411 최낙용 대표(좌)와 명필름 심재명 대표.

다큐멘터리 영화 <노회찬 6411>를 공동 제작한 시네마6411 최낙용 대표(좌)와 명필름 심재명 대표. ⓒ 더홀릭컴퍼니

  
거대 양당의 폐해가 심각한 때다. 진보정당에 대한 무관심을 넘어 조롱과 혐오까지 이어지는 게 너무 안타깝다. 그 어느 때보다 정치적으로 암담한 것 같다. 그래서 노회찬의 신념과 고민이 더 절실한 게 아닐지. 노 의원이 불과 7년간 정당 활동을 했는데 120개의 법안을 대표 발의했더라. 그때 이미 차별금지법, 대기업 독과점금지법 등을 발의했는데 지금까지도 구현되지 못하고 왜곡되고 있다. 이 영화에 담긴 노 의원의 신념이 잘 전달되어 앞으로 우리가 함께 풀 숙제는 뭔지 묻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심재명 대표
 
그 어느 시기보다도 사회적, 경제적인 모순과 부조리가 가득한데 변화시켜야 할 정치계가 그걸 제대로 해낼 의지가 없어 보인다. 민주정권 대통령이 몇 번 집권했음에도 사회적 변화가 없어 보이고 오히려 부조리가 고착화 되는 것 같다. 근본 해결이 필요하다. 우리가 그걸 잊고 있지 않나 싶다. 지금의 20대에겐 노회찬이 역사 속 인물처럼 느껴질 수 있는데 그들이 많이 봐서 생각할 거리를 안고 간다면 영광일 것 같다.-최낙용 대표
댓글7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