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피카디리 극장에서 개봉한 <이장호의 외인구단>은 서울에서만 28만 관객(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을 동원하며 큰 사랑을 받았다(그 시절엔 '멀티 플렉스'가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영화들이 단관 개봉했다). 이현세 원작의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이장호의 외인구단>은 '공포'라는 단어가 관객들에게 공포심이나 혐오감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제목이 바뀐 채로 개봉했다.

<이장호의 외인구단>은 당시 한국에서 거의 제작되지 않았던 스포츠 영화였지만 아무래도 1980년대 중반에 만들어진 영화이다 보니 기술적인 한계 때문에 영화 속에 등장하는 야구 장면들은 조악하기 그지 없었다. 실제로 영화 속에서 타자가 배트를 휘두르면 대부분의 수비 장면은 풀샷으로 처리되는데 워낙 원거리에서 촬영을 해서 관객들은 공의 움직임을 전혀 확인할 수 없다(물론 영화는 흥행에 성공하면서 속편까지 제작됐다).

그로부터 18년의 세월이 흐른 2004년, 1980년대 초반을 배경으로 한 또 한 편의 야구영화가 제작돼 세상에 공개됐다. 비록 <이장호의 외인구단>만큼 큰 흥행은 하지 못했지만 실감나는 야구장면의 연출과 휴머니즘 가득한 이야기, 배우들의 호연이 더해지며 야구영화의 수작으로 인정받고 있다. 다시 17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 보면 슈퍼스타 공유의 박철순 연기가 더욱 인상적이었던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이다.
 
 개봉 당시 큰 흥행을 하지 못했던 <슈퍼스타 감사용>은 훗날 야구영화의 수작으로 인정 받았다.

개봉 당시 큰 흥행을 하지 못했던 <슈퍼스타 감사용>은 훗날 야구영화의 수작으로 인정 받았다. ⓒ CJ엔터테인먼트

 
'불사조' 박철순을 연기했던 공유의 유망주 시절

부산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공유는 1999년 청바지 의류브랜드의 모델로 발탁되면서 연예계에 데뷔했다. 2001년 SBS시트콤 <골뱅이>를 통해 연기를 시작한 공유는 같은 해 KBS의 청소년 드라마 <학교4>에서 엉뚱하지만 따뜻하고 사려 깊은 음악과 학생 황태영을 연기하며 주목 받기 시작했다. 물론 당시만 해도 공유는 <뉴논스톱>의 조인성 같은 청춘스타들에 가려 크게 이름을 알리진 못했다.

공유의 영화 데뷔작은 2003년 전국 500만 관객을 불러 모으며 큰 사랑을 받았던 '권상우의 출세작' <동갑내기 과외하기>였다. 공유는 <동갑내기 과외하기>에서 사사건건 지훈(권상우 분)을 시기 질투하는 찌질한 남학생 종수를 연기했다. 영화 데뷔작에서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는 찌질한 조연을 맡았던 공유는 이듬해 <슈퍼스타 감사용>에서 프로야구 원년 MVP이자 22연승 신화의 주인공인 '불사조' 박철순으로 변신했다.

<슈퍼스타 감사용>은 이범수가 이끌어가는 영화지만 공유는 당대 최고의 투수였던 박철순과 높은 싱크로율을 보이며 관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이후 김선아와 함께 두 편의 영화(< S다이어리 > <잠복근무>)에 출연한 공유는 2007년 드라마 <커피 프린스 1호점>을 통해 일약 대세스타로 떠올랐다. 특히 "네가 남자든 외계인이든 상관 안 해, 갈 데 까지 한번 가보자"라는 최한결의 멋진 대사는 많은 여성 시청자들을 설레게 했다.

2011년 문제작 <도가니>에 출연한 공유는 2013년 <용의자>에서 조국에게 버림 받는 북한 최정예 특수요원을 연기했다. 화려한 액션 장면들을 대역 없이 선보인 공유는 <용의자>로 400만 관객을 동원하며 단독주연 신고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공유는 군복무 후 좀비영화 <부산행>에 출연해 데뷔 후 최초로 1000만 관객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사실은 천만 영화 <부산행>이 배우 공유의 '정점'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공유는 같은 해 연말 드라마 <도깨비>의 김신을 통해 케이블 드라마 최초로 시청률 20%를 돌파하며 '대체불가 스타'로 자리 잡았다. <도깨비> 이후 3년의 공백기를 가진 공유는 2019년 <82년생 김지영>으로 복귀했고 지난 4월에는 박보검과 함께 영화 <서복>에 출연했다. 최근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화제의 드라마 <오징어게임>에도 특별 출연한 공유는 연말 공개 예정인 넷플릭스 드라마 <고요의 바다>에 출연할 예정이다.

승리보다 패배가 더 익숙했던 꼴찌팀 선수들 
 
 영화 속에서 박철순(왼쪽)은 자신을 찾아온 감사용을 알아보지 못하고 사인을 해주는 굴욕을 안겼다.

영화 속에서 박철순(왼쪽)은 자신을 찾아온 감사용을 알아보지 못하고 사인을 해주는 굴욕을 안겼다. ⓒ CJ엔터테인먼트

 
40대 이상의 열성적인 야구팬이라면 '프로야구 원년 우승팀'이 두산의 전신인 OB 베어스이고 당시 OB의 우승을 이끌었던 최고의 슈퍼스타가 박철순이라는 사실은 대부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OB만큼 엄청난 기록을 남긴 '전설의 꼴찌팀' 삼미 슈퍼스타즈에 대한 기억 역시 어렴풋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슈퍼스타 감사용>은 프로 원년 승률 .188를 기록한 삼미 슈퍼스타즈, 그중에서도 단 1승에 그쳤던 감사용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다.

영화 속에서 감사용은 평범한 직장인으로 생활하다가 테스트 끝에 간신히 삼미에 입단해 팀 내에서 홀대 받았던 패전처리 투수로 그려진다. 하지만 감사용은 프로 원년 192.1이닝을 던졌던 김재현에 이어 팀 내에서 두 번째로 많은 이닝(133.2이닝)을 소화한 투수였다. 애초에 프로야구에서는 패전처리 투수가 100이닝을 넘게 소화하기는 매우 힘들다. 겉으로 보이는 성적은 초라했지만 감사용은 프로 원년 삼미의 주축투수 중 한 명이었다는 뜻이다.

<슈퍼스타 감사용>이 전국 83만이라는 다소 아쉬운 흥행성적에도 2000년대 야구영화의 수작으로 꼽히는 이유는 감사용을 연기했던 배우 이범수의 호연이 결정적이었다. 그 전까지 대부분의 영화에서 조연 또는 공동주연으로 활약하다가 <슈퍼스타 감사용>을 통해 데뷔 후 처음으로 단독주연을 맡은 이범수는 오른손잡이임에도 왼손투구를 연습해 현역시절 감사용의 투구폼을 비슷하게 재현했다.

프로 원년에 1승을 기록한 감사용은 1986년까지 청보 핀토스와 OB를 거치며 활약했지만 끝내 두 번째 승리를 기록하지 못하고 현역 생활을 마무리했다. 은퇴 후 개인사업을 하던 감사용은 영화 개봉 후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2006년 국제디지털대학교의 감독에 부임했지만 그의 현역 시절처럼 단 1승만 거두고 팀이 해체됐다. 하지만 감사용은 작년 경남대 감독으로 부임해 대학야구에서 지도자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슈퍼스타 감사용>은 지난 2019년 jtbc의 <방구석1열>을 통해 소개된 바 있다. 당시 패널로 출연했던 이원석 감독은 <슈퍼스타 감사용>을 "비록 경기에서는 졌지만 그의 꿈은 계속 되는 열린 결말"이라고 평가했고 배우 양동근은 "지는 게 이골이 난... 마치 '우리' 같은 루저들의 이야기"라고 평가했다. <슈퍼스타 감사용>은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1승을 위해 도전을 멈추지 않는 평범한 사람이 주인공인 영화였다.

프로야구 초창기 선수들 대거 본명으로 등장
 
 영화의 모델이 됐던 박철순(왼쪽)과 감사용은 영화 개봉에 맞춰 20여 년 만에 재회했다.

영화의 모델이 됐던 박철순(왼쪽)과 감사용은 영화 개봉에 맞춰 20여 년 만에 재회했다. ⓒ CJ엔터테인먼트

 
<슈퍼스타 감사용>에서는 프로 원년 삼미 슈퍼스타즈에서 활약했던 선수들의 실제 이름이 그대로 쓰인다. 물론 배우들에 의해 캐릭터는 대거 각색됐지만 실제 선수들이 영화 속에 그대로 등장하면서 야구를 좋아하는 관객들에게는 신선한 재미를 안겼다. 김재현, 감사용과 함께 원년 삼미 마운드의 트로이카로 활약했던 투수 인호봉은 배우 류승수가 연기했다. 영화 속에선 팀 내 분위기 메이커로 많은 웃음지분을 책임졌다.

<벡터맨> 2기에서 베어 역을 맡았던 김혁이 연기한 양승관은 삼미의 유일한 스타로 감사용과 친하게 지내는 인호봉과 달리 비선수 출신인 감사용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물론 OB와의 경기에서는 박철순에게 선제 적시타를 때려냈고 역투하는 감사용에게 조용히 자켓을 걸쳐 주는 등 인간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실제로 양승관은 1982년 삼미에서 최다 타점을 기록했고 1983년에는 3할 타율을 기록했던 강타자였다. 

<슈퍼스타 감사용>에서는 신예배우 공유가 박철순으로 출연한 것을 비롯해 야구광으로 알려진 김현석 감독이 해태 타이거즈의 '이도류' 김성한, 배우 박용우가 롯데 자이언츠의 원년에이스 노상수로 특별 출연했다. 개그맨 정준하는 감사용이 삼미 구단에 테스트를 받으러 올 때 코믹한 투구폼으로 테스트를 받는 지원자로 등장했고 훗날 1억 배우가 되는 하정우는 감사용에게 끝내기 결승타를 때리는 OB의 강타자 김우열을 연기했다(물론 대사는 없다).

사극과 현대극, 선과 악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중견 배우 조희봉은 감사용의 친형 감삼용 역을 맡았다. 초반에는 동생과 티격태격하면서 전형적인 형제연기를 보여주다가 후반부 감사용이 수비 도중 그라운드에 쓰러지자 운전 도중 전봇대를 들이받는 접촉사고를 일으킨다. 하지만 씩씩하게 일어난 감사용이 관중들의 박수를 받자 조사를 나온 경찰을 끌어안고 "지금 던지고 있는 투수가 내 동생이에요"라고 울부짖으며 감격한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 이범수 공유 박철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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