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지켜보는 한화 수베로 감독 10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1 KBO리그 한화 이글스와 LG 트윈스의 경기. 한화 이글스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 경기 지켜보는 한화 수베로 감독 10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1 KBO리그 한화 이글스와 LG 트윈스의 경기. 한화 이글스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 연합뉴스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는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올시즌 여러 차례 화제의 중심에 섰다. 일찌감치 약체로 예상되었을만큼 성적은 비록 최하위에 그치고 있지만, 리빌딩을 선언하며 구단 역사상 최초로 외국인 감독을 선임하고 그동안 볼 수 없었던 파격적인 변화를 시도하여 야구팬들의 눈길을 끌었다.

특히 수베로의 한화는 유독 '야구 문화 차이'를 둘러싸고 올시즌 많은 이슈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시즌 초반에는 점수차가 벌어져 지고 있는 상황에서 투수력 소모를 줄이기 위하여 야수를 투수로 기용한 장면이 화제가 됐다. 수비에서 베이스 하나를 아예 비우고 내야수를 한쪽에 몰아넣거나, 외야에 수비를 사실상 4명을 세우는 등 파격적인 수비시프트를 구사하기도 했다. 물론 한국야구에서 이전에도 이런 상황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수베로 감독이 부임하면서 빈도가 부쩍 늘었다.

야구문화 차이가 낳은 해프닝과 '덕아웃 문제'

한편 수베로 감독이 한국야구 문화에 적응하는 장면들도 나왔다. 한국야구에서는 전통적으로 큰 점수차에서는 서로 도루를 자제하는 암묵적인 불문율이 있었지만, 한화가 크게 이기고 있는 경기에서 도루를 시도하자 상대가 항의하고 한화 벤치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반면 미국에서는 큰 점수 차에서 노 스트라이크-3볼 상황에서는 타격을 하지 않는 불문율이 있는데 NC전에서 나성범이 4구째 공을 스윙하자 수베로 감독이 격분하기도 했다. 모두 옳고 그름의 문제라기보다는 야구문화의 차이가 낳은 해프닝이었다. 또한 수베로 감독은 일부 극성팬들이 개인 SNS로 다음 시즌 신인드래프트 상위 지명을 노린 '탱킹'을 요구하는 메시지를 보내온다고 폭로하며 "승부에서 일부러 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일침을 놓아 야구팬들의 박수를 받고 있다.

최근 한화는 이번엔 '덕아웃 문화'로 구설수에 오르내리고 있다. 수베로 감독 개인이나 경기 운영적인 상황에서의 문제를 넘어서 한화 코치진 전체가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앞선 이슈들과는 조금 성격이 다르다. 경기 특정 상황마다 한화의 외국인 코치진이 의도적인 소음이나 제스쳐를 내고, 이것이 상대에 대한 직접적인 경기 방해와 더불어 불쾌감까지 유발한다는 것이다. 이 소음이란 상대 투수가 세트포지션에서 투구 동작을 시작하는 타이밍에 집중력을 방해하기도 하고, 혹은 안타-볼넷-삼진 등의 상황이 나올 때마다 상대를 자극하는 트래쉬토크 등이 있다.

덕아웃에서 소리를 지르며 아군을 응원하거나 기합을 넣는 것은 야구문화의 일부분이다. 다만 지난해부터 코로나19로 무관중 체제가 시작되면서 덕아웃 문화에도 변화가 있었다. 관중들이 응원할 때는 잘 들리지 않았던 덕아웃 내에서의 소음들이 그라운드는 물론 방송중계를 통하여 시청자들에게까지 그대로 전달되기 시작하면서 매너 문제로 번지는 경우가 잦아졌다. 리그 전체가 소음에 민감한 분위기가 되면서 동료들에게 외치는 파이팅이나 상황에 따른 기싸움도 어느 정도 자제해야하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여러 상대가 불편함 느낀다면 자제해야

한화는 최근들어 상대와 덕아웃에서의 반응 때문에 충돌하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 지난 26일 두산전에서는 양팀 덕아웃 사이에서 고성이 오가는 살벌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 4회 초 한화 공격에서 두산 선발 투수 최원준과 포수 박세혁이 한화 벤치를 바라보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고 두산 강석천 코치는 소리를 치며 강하게 항의했다. 한화 벤치가 투수의 세트 포지션에 들어간 상황에서 고함을 지르는 비매너 행위를 했기 때문이었다. 두산이 더 격분한 이유는 경기전 한화 벤치 측에 이미 이런 행동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했음에도 약속을 깼기 때문이었다.

한화 측은 덕아웃에서 아군에게 파이팅을 불어넣는 일상적인 응원이었을 뿐이라며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KBO리그 야구 규칙에도 인플레이 상황에서 상대 투수에게 혼란을 주는 행위는 금지되어 있다. 자칫 투수의 보크 유도나 사인 훔치기로 오해받을 수 있다. 그리고 규정과 별개로 KBO리그에서는 이런 행위를 비매너로 간주하며 암묵적인 금기로 여겨져왔다.

베네수엘라 출신인 수베로 감독을 비롯하여 한화 외국인 코치들은 아무래도 미국과 중남미식 야구스타일과 소통문화에 익숙하다. 성적이 좋지 않아도 항상 활기차고 시끄러운 분위기는 올시즌 한화 덕아웃의 트레이드 마크이기도 했다. 이러한 덕아웃 문화를 무조건 악의적인 의도로 상대를 방해하거나 이득을 취하려는 행위로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수베로 사단이 현재 활동하고 있는 무대는 베네수엘라도 미국도 아닌, 바로 KBO리그다. 한국에서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 배트플립이나 스리볼 타격을 미국에서 했다면 대번에 빈볼이 날라올 수 있듯이, 한국에서는 한국만의 야구문화가 있다. 미국이나 중남미 야구라고 해서 무조건 개방적인 것도 아니고 어떤 면에서는 한국보다 더 보수적인 측면도 많다. 제리 로이스터-트레이 힐만-맷 윌리엄스 등 다른 외국인 감독들도 덕아웃에서의 파이팅을 강조했지만 수베로의 한화처럼 문제가 된 경우는 없었다.

더구나 덕아웃 소음과 관련된 논란은 야구스타일에 대한 문화적 차이보다는, 상대에 대한 존중과 페어플레이의 영역에 더 가깝다. 여러 상대가 공통적으로 불편함을 느낀다고 지적한다면 자제하는 것이 맞다. KBO리그는 최근 경쟁과 승부욕 못지않게 과정과 매너를 중시하는 분위기가 되어가고 있다. 이런 이슈로 상대팀들과 '감정싸움'에 휩쓸리는 일이 잦아질 경우, 경기마다 불필요한 충돌과 에너지 소모에 대한 우려가 높아진다. 장기적으로 심판이나 팬들에게도 좋지않은 인상을 심어줄수 있다.

야구문화를 바라보는 관점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수베로 감독과 한화 코치진에게는 그저 당연하고 자연스러웠을지 모르는 불문율도, 다른 누군가의 시각과 문화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마찬가지로 외국인인 이들의 시각을 무조건 한국야구만의 관점에서 색안경을 끼고 볼 필요도 없다. 꾸준한 소통과 존중을 통하여 야구문화에 대한 폭넓은 담론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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