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하: 테이크 온 미> 포스터 이미지.

영화 <아-하: 테이크 온 미> 포스터 이미지. ⓒ (주)컨텐츠썬

 
1_'Take on me'로 A-ha를 만나다
 

'Take on me'의 유려한, 그 특유의 한 번 들으면 잊기 힘든 신시사이저 멜로디가 귓가에 울려 퍼진다. 1985년에 발표된 그룹 A-ha의 대표곡이자 전 세계 데뷔곡. 현재까지 13억 회 이상 유튜브에서 공식 뮤직비디오가 클릭, 재생된 1980년대 팝 음악을 대표하는 전 지구적 메가 히트곡이다. 설령 노래는 몰라도 그 인상적인 도입부 멜로디는 한 번쯤 못 듣기도 어려운 바로 그 노래.
 
곡을 부른 그룹 A-ha의 전기 다큐멘터리 <아-하: 테이크 온미>에서 이 명곡은 수십 개의 버전으로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흘러나온다. 경쾌하고 산뜻하면서도 군더더기 하나 느껴지지 않는 익숙한 간주 멜로디가 들릴 때마다 머리와 손과 발이 까딱거리고 어깨가 저절로 들썩인다. 지금 영화를 보고 있는 현장이 콘서트 공연장이 아닌 극장이란 게 원망스럽기만 하다. 그런데 이 노래를 부른 그룹은 지금 뭐하고 있을까?
 
이 다큐멘터리, <아-하: 테이크 온미>는 그런 궁금증에 대한 공지사항 끝판 왕과도 같은 작업이다. 1984년에 데뷔한 노르웨이 출신의 무명 3인조 그룹은 사실상의 데뷔곡인 이 노래로 공전의 히트를 쳤다. 이 시절 국내에서도 오늘날의 보이그룹 인기를 방불케 하는 외국 팝 뮤지션들이 즐비했으되 그 정점은 A-ha, 듀란듀란, 왬으로 대표되는 실력과 미모를 겸비한 영국 계열 그룹들이 차지했다.(A-ha는 노르웨이 출신이지만 영국 무대에서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펼쳤다)
 
국내에서의 인기를 기억할 때면 FM 음악방송과 '길보드' 인기팝송 테이프, 추억의 책받침 코팅을 떠올릴 이들이 적지 않을 테다. 얼마나 인기가 있었는지 추억을 더듬어보다 그룹 이름처럼 'A-ha' 혼자 탄성을 지를 기세다. 거기에 더해 팝 음악의 대중화에 일조한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 '워크맨'의 국내 3대 모델을 떠올려보자. 마이-마이, 요요 그리고 남은 하나가 바로 아하다. 한글 감탄사의 의미에 작명 기반을 뒀겠지만 그럼에도 당대의 인기그룹 이름에 묻어갈 궁리에 고심하지 않았을까? 괜한 상상도 해본다.
 
그런데 그 그룹, A-ha는 이 노래를 낸 후로 벌써 36년이 지났다. 그리고 여전히 현역으로 월드투어를 다닌다. 데뷔곡만으로도 천백만 장을 팔았다지만 이들의 누적 앨범 판매량은 육천만 장이 넘는다. 그럼 '원 히트 원더'가 아닌데? 과연 이들은 이후로 어떤 활동을 펼치며 어느새 60 전후의 노년기에 이른 걸까.(A-ha는 해체와 재결성을 거치긴 했지만 현재도 현역으로 활동 중이다) 영화는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향수어린 그룹의 일대기를 펼쳐보이기 시작한다.
 
2_'Take on me'에 가려진 영욕의 일대기
 
 영화 <아-하: 테이크 온 미> 스틸 이미지.

영화 <아-하: 테이크 온 미> 스틸 이미지. ⓒ (주)컨텐츠썬

 
다큐멘터리 <아-하: 테이크 온미>는 그룹의 태동부터 성공, 방황, 불화, 재평가까지의 장구한 일대기를 두 시간 가까운 러닝타임 동안 알차게 꾹꾹 눌러 담았다. 이들은 국내에서 짧은 전성기를 마치고 대부분의 시야에서 사라진 후에도 꾸준히 부침을 거듭했을지언정 왕성하게 활동을 펼쳐나갔다.
 
데뷔곡뿐만 아니라 1984년 1집 < Hunting High and Low >, 1986년 2집 <  Scoundrel Days >, 1988년 3집 < Stay On These Roads >, 19910년 4집 < East Of The Sun, West Of The Moon >까지 전성기를 구가한다. 이후 1991년 베스트 앨범과 전설이 된 20만 명 가까운 관객을 동원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공연까지를 이견이 없는 A-ha의 전성기로 본다. 그들은 데뷔곡 이상의 히트곡을 내지 못했을 뿐, 2집에선 'Cry Wolf', 007 시리즈 14번째 작품 동명의 주제가 'The Living Daylights', 4집에선 리메이크 곡 'Crying In The Rain' 등 다수의 인기 싱글을 기록하며 활동을 이어나갔다. 세계 팝음악의 가장 큰 시장인 미국에선 주춤했지만 유럽과 일본 등 범세계적 인기는 여전했다.
 
그 와중에 1994년부터 그룹은 약 7년간 무기한 휴식을 선언하고 개인 활동 위주로 시간을 보낸다. 피로 누적과 멤버 개개인의 결혼 등 여러 요소가 겹친 결과다. 다큐멘터리는 국내 관객들이 궁금해 할 해당 시기에 대해 충실히 배경을 설명한다. 21세기 초에 재결합한 이들은 새로운 세기의 첫 10년 동안 여러 장의 앨범을 발매하고 유럽과 월드 투어도 왕성하게 펼친다. 미국 시장에선 새로운 음악 조류에 밀렸지만 특히 유럽권에선 여전한 인기를 구가했다. 다큐멘터리에서도 반짝반짝 빛나는 순간인, 1980년대 'Live Aid'에 이은 아프리카 빈곤퇴치 공연 'Live 8' 출연 당시의 기록영상을 보면 이미 50에 가까운 이 그룹의 인지도와 인기를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2010년 그룹은 공식 해체를 선언하고 만다. 노르웨이 최초의 세계적 팝그룹으로 국가적 영웅이자 문화상징이던 이들의 마지막 월드 투어와 그 피날레를 장식한 수도 오슬로에서의 공연은 전설로 남게 된다. 해체 사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존재한다. 멤버 중 마그네 푸르홀멘에게 닥친 2009년 심장이상 관련 투병을 이유로 드는 이들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그룹의 저작권 수입 대부분을 차지한 폴 왁타 사보이에 대한 멤버들 간의 이견과 갈등이 지배적 원인이라는 '썰'이 국내에서도 팬들 사이에서 크게 논란이 되었다. 영화에서 해당 논란을 다룬 파트는 그에 대해 공식적으로 논해지는 몇 안 되는 사례가 아닐까 싶다.(다만 영화에선 재결합 이후까지 담고 있기에 언급하는 정도로 그칠 뿐 결론을 내리진 않는 편이다)
 
이후 2015년에 다시 뭉친 3인조는 앨범을 발매하고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여전히 이들은 전 세계 공연을 다닐 만큼 관객을 확보하고 있고, 잊을 만하면 히트곡과 앨범을 발표해가며 어느덧 환갑 전후의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다만 데뷔곡을 뛰어넘는 히트송을 더 내지 못했을 뿐이다. 하지만 시대를 대표하는 공전의 명곡을 2개 가진 그룹이 과연 얼마나 될까? 몇 년 공백은 있을지언정 지금도 왕성히 월드 투어를 치르는 이들에게 'Take on me'를 넘어서지 못했다고 타박하는 건 과도한 요구로 느껴진다.
 
3_A-ha를 듣고 자란 세대의 재평가 열풍
 
 영화 <아-하: 테이크 온 미> 스틸 이미지.

영화 <아-하: 테이크 온 미> 스틸 이미지. ⓒ (주)컨텐츠썬

 
A-ha가 데뷔하던 시기는 당대의 펑크록 영향 아래 분화된 수많은 사조들, 뉴웨이브와 뉴-로맨틱스 경향이 유럽에서 전성기를 구가하며 대서양 건너 미국에까지 영향력을 확장하던 시기다. A-ha 또한 처음엔 그저 그런 보이그룹 취급당하기 십상이었고, 그런 부당한 오해는 국내에서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다큐멘터리 후반부에서는 이들이 꾸준히 밴드음악의 정체성을 유지해 왔음을 확인시키는 데 적지 않은 비중을 할애한다.
 
'Take on me'의 메가 히트, 그리고 보컬 모튼 하켓의 시대를 초월하는 조각 같은 외모는 어떻게 보면 그룹으로서 A-ha에겐 저주처럼 받아들여질 법도 하다. 'Take on me'의 기본 곡은 1981년에 이미 그룹 멤버들에 의해 완성되어 있었고, 모튼 하켓은 3옥타브를 넘나드는 고음이 가능한 실력파 보컬이었다는 걸 우리는 알지 못하거나 너무 쉽게 간과해버리곤 한다. 다큐멘터리는 그들과 동시대에 활약했던 당대의 음악인들, 그리고 2000년대 이후 그들의 음악을 들으며 자랐던 세대들의 입을 빌어 (국내에서 특히 간과되어온) A-ha의 음악적 위상과 족적을 충실히 옮겨나가기 시작한다.
 
특히나 A-ha의 음악적 영향을 소리 높여 외치는 그룹 콜드플레이의 프론트 멤버 크리스 마틴의 헌사는 시작에 불과하다. 21세기 이후 활동하는 밴드 중 현존 최고의 인기그룹임을 공인받은 이 슈퍼스타의 A-ha에 대한 간증은 몇 차례에 걸쳐 거듭된다. 과거에 A-ha를 접할 기회가 없었던 세대라면 콜드플레이가 A-ha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며 호기심에 A-ha를 검색하게 될 테다. 그 외에도 다큐멘터리에서는 여러 아티스트들이 이 과소 평가받아온 그룹에 대해 감춰둔 애정과 찬사를 바치는 흐뭇함을 확인할 수 있다.
 
4_그리고 여전히 '현재형'인 그룹
 
 영화 <아-하: 테이크 온 미> 스틸 이미지.

영화 <아-하: 테이크 온 미> 스틸 이미지. ⓒ (주)컨텐츠썬

 
<아-하: 테이크 온미>는 결코 그룹이 우정으로 유지된 것은 아니라며 멤버들이 대놓고 부정하는 장면을 노출시킬 정도로 공공연히 불화가 많았던 그룹의 속사정을 적당히 (100%는 아니다) 풀어내고, 그들 사이의 활동과 음악에 대한 시각차 그리고 장구한 세월 동안 이들이 시도한 성공과 실패의 기록을 연대기 순으로 충실하게 풀어내고 있다. 왜 나는 그들의 1990년대 후반 이후 음악들을 놓쳤던 걸까? 가책을 느끼며 탄식하게 만들 만큼 그들이 '국내에서의 전성기' 이후로 내놓은 음악들이 만만치 않았음에 더 그런 미안함은 커진다.
 
하지만 21세기 들어서도 Live 8이나 MTV Unplugged에서 멋진 모습을 유지해온 활약상이 화면 가득 펼쳐지는 장면들은 그저 반갑기만 하다. 과거 청춘의 기억이 멋스럽게 간직된 멤버들의 모습과 재회하는 순간은 늘 반갑고 벅차게 마련이다. 영화의 시작과 끝 가까이에 모튼 하켓을 알아보고 사인과 사진을 부탁하는 외국 팬들의 표정을 보며 나랑 같겠구나 하는 웃음을 슬며시 지어본다.
 
그렇게 다큐멘터리는 (영화 제작 당시 기준) 2020년 현재도 현역인 그룹의 무대로의 출격을 담아낸다. 그룹을 그토록 스트레스에 빠지게 했음에도 여전히 그들을 상징하는 그 노래의 익숙한 그 선율이 흘러나오며 영화는 저물어간다. 그리고 바로 그 노래의 뮤직비디오에서 화제가 되었던, 로토스코핑 애니메이션 기법을 활용한 멤버들의 현재 모습이 엔딩 크레디트와 함께 등장한다. 나는 그렇게 어깨춤을 들썩거리며 소년시대의 편린과 재회를 반긴다.
 
<작품정보>
아-하: 테이크 온미 a-ha: The Movie
2021|노르웨이, 독일|다큐멘터리
2021. 9. 22. 개봉|108분|12세 관람가
감독 아슬레우 홀름, 토마스 롭삼
출연 아-하: 모튼 하켓(모르텐 하르케/보컬),
폴 왁타 사보이(페울 보크토르사보위/기타, 드럼 프로그래밍),
마그네 푸르홀멘(망네 푸루홀멘/키보드, 베이스 프로그래밍)
수입 및 배급 배급 (주)컨텐츠썬
 
2021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세계음악의 풍경 초청상영작
아-하: 테이크 온미 A-HA 모튼 하켓 음악영화 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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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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