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한 장면.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한 장면. ⓒ 넷플릭스


* 이 기사에는 드라마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살아오며 돈을 아주 많이 번 사람이 있었다. 노인이 되었고,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죽음 앞에서 노인, 그는 죽기 전에 '한판' 실컷 놀아보고 싶었다. 죽음 앞에 선 노인이 선택한 '놀이 대상', 그건 인간이었다.
 
진화의학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랜돌프 M 네스는 자신의 책 <이기적 감정>을 통해 21세기에 이른 인간 탐구학을 총정리해보고자 한다. 지난 2018년 출간 40주년을 맞이한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출간 이래 과학계는 인간이란 종의 실체에 대해 갑론을박했다. 과연 인간은 '자기중심적'인 존재인가? 그게 아니면 집단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이타적'인 존재인가? 그런데 21세기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정신의학계는 그 '답'에 이르지 못한다. 

<이기적 감정>이 말하는 것처럼 인간이라는 존재의 주체는 어쩌면 인간의 '의지'이기보다는 일찌기 리처드 도킨스가 간파하듯 생존을 위한 진화론적 맹목성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맹목적인 생존 본능'조차 간단하지 않다. 집단을 위한 개인의 희생조차도 때론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집단의 생존을 도모할 수 있다는 진화론적 '계산'에 따른 것일 수도 있는 것처럼 복잡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인간이란 종은 여전히 모호하고 단정지을 수 없는 의혹 덩어리다. 그러기에 가장 매혹적인 '놀이'의 대상일지도.  

게임의 말이 된 '인간'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한 장면.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한 장면. ⓒ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마지막 게임을 앞두고, 새벽(정호연 분)은 기훈(이정재 분)에게 '약속'을 청한다. 이곳에서 살아나간 사람이 서로의 남은 가족을 보살펴 주자고. 이 장면은 자신의 어린 동생과 북에 남은 어머니를 구하고자 게임에 참가했던 새벽의 안타까운 사연으로 인해 슬프다. 하지만 새벽으로서는 지금까지 참여해오던 게임의 과정, 그 어느 순간보다도 절실한 '딜'의 순간이다. 새벽은 더는 게임을 지속할 수 없는 상황이다. 자신이 없어도 자신의 동생을 돌보아 줄 사람이 필요하다. 그를 위해 그녀는 죽어가는 순간에서도 최선의 선택을 한다.

상우(박해수 분)는 어떨까? 시즌 내내 기훈이 읊어대듯 쌍문동 동네에서 서울대 경영학과를 간 천재적인 인물, 금융권 직장을 다니며 잘 나가는 줄 알았다. 그런데 60억이라는 천문학적인 빚을 안고 게임에 나선다. 그런 그는 그의 머리를 활용하여 게임의 순간순간 생존한다. 어쩌면 진짜 그의 생존을 도모한 건 그의 머리라기 보다는 결정적 순간 냉혹하게 돌변하는 그의 '생존 본능'일지도 모른다. 그가 기꺼이 자신의 지갑에서 돈을 나누어 주던, 그래서 어느덧 그를 '형'이라 부르던 알리(아누팜 트리파티 분)마저 속여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본능' 말이다. 

그런 그가 자신을 포기한다. 게임의 순간순간 기꺼이 다른 이의 목숨을 희생하며 생존을 도모하던 그였는데 말이다. 하지만 이 역시도 다른 각도에서 보면 그의 '성공'이다. 어릴 적부터 친구였던 상우를 자기 손으로 죽일 수 없는 기훈이 상우를 죽이지 못해 포기한다면 그가 여기까지 온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래서 기꺼이 그런 선택을 한다. 

새벽도, 상우도 어떤 의미에서는 게임을 한 것이다. 그 '게임'은 기훈이라는 사람이다. 그들은 기훈이 '착한 사람'이라는 데 자신의 마지막 '딜'을 걸었다. 기훈이 상훈의 어머니에게 새벽의 동생과 함께 돈가방을 맡기는 장면은 감동적이지만, 다른 의미에서 새벽과 상우가 자신의 생명을 걸어 '승리'를 거머쥔 장면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작 본인들은 죽었으니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라는 반문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기훈이 역시 '승자'다. 하지만, 그는 목숨은 부지했지만 그가 되돌아 나와서도 다시 게임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던 '이유'를 잃었다. 게임을 하는 과정에서도 미련하게 사람에 천착했던 기훈이기에 어머니의 부재는 어쩌면 기훈에게는 '패배'일지도 모른다. 과연 게임의 '승자'는 누구일까? 이긴 사람이 있긴 한 걸까? 그저 저마다 인간이란 종의 속성을 가지고 한판 놀아본 것일까. 

제 발로 생사 건 게임에 참가한 사람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한 장면.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한 장면. ⓒ 넷플릭스

 
이렇듯 한 노인이 던져놓은 그물에 456명의 사람들이 빠져 허우적거리는 이야기가 바로 <오징어 게임>이다. 단계별 생존을 위한 미션에 던져진 사람들의 서사는 새롭지 않다. 정육면체의 방에 던져진 사람들의 이야기 <큐브>에서부터, 이유도 모른 채 정체불명 살인마의 생존 게임에 빠져든 사람들의 이야기 <쏘우> 그리고 최근 지하철이라는 공간을 활용해 새로운 시즌으로 돌아온 <이스케이프 룸>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되어 왔었다. 

공개하자마자 전세계 넷플릭스에서 놀라운 성과를 거두고 있는 <오징어 게임>, 즉 나라를 막론하고 생명을 담보로 한 서바이벌물에 대한 보편적 열광을 반영한다. 사람들은 최고의 극한 상황에서 드러난 인간의 철저한 민낯에 호응한다. 

9개의 회차로 이루어진 시리즈 물인 <오징어 게임>은 시리즈의 특성을 살려 주인공인 기훈이 목숨을 건 서바이벌 게임에 발을 딛게 되는 개연성에서부터 공을 들인다. 기훈의 사례를 통해 죽음을 담보로 한 게임의 타당성을 설득하려 한 것이다. 

장기 인도 서약까지 한 상황, 그래도 기훈은 탈락자가 죽어나가는 상황에서 게임장을 빠져나간다. 하지만 다시 돌아온 현실은 게임장보다 더한 '지옥'으로 그를 맞이하고 기훈은 다시 제발로 그곳으로 돌아간다. 

참가자들은 매번 다음에 자신의 목줄을 죌 게임이 무엇일까 두려워한다. 심지어 그를 위해 이합집산하기도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머물던 거대한 방 벽에 그들이 해야 할 게임이 친절하게(?) 그려져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한 치 앞을 살피지 못한 채 생존의 미로에 빠져든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한 장면.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한 장면. ⓒ 넷플릭스

 
참가자들이 참여할 게임은 단순하다. 그들이 어린 시절 했던 심플한 법칙을 가진 게임들이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줄다리기' 등에서 '오징어 게임'까지. 

어린 시절 극 중 나왔던 게임을 다 해봤었다. '무궁화 꽃을 피었습니다.' 단순한 놀이였지만, 막상 들키지 않고 술래를 치는 그 순간에 이를 때까지의 긴장감은 가슴을 들뛰게 만들었다. 그래서 지레 일찌감치 들켜서 게임의 루틴에서 벗어나려 했던 기억도 있었다. 하지만 드라마에서는 그러면 '죽는다'.

니체는 이를 일찌기 간파했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그는 말한다. 그 단순한 주사위 던지기, 그건 바로 우리 삶의 불투명성, 우리가 던져진 존재의 불안함을 고스란히 드러낸다고. 놀이란 삶의 '시범'이다. 그를 통해 우리는 삶의 긴장감을 풀어낸다는 것이다. 

<오징어 게임>은 바로 이런 니체가 간파한 삶의 '대리적 향연'인 놀이를 역으로 활용한다. 긴장감을 풀어내는 과정이 외려 생명을 담보한 서바이벌이 되면서 오는 역설적인 운명성에 <오징어 게임>의 묘미가 있다. 홀짝을 하면서 그 몇 안되는 구슬알에 쥐락펴락되는 자신에 울그락불그락했던 기억을 모두 가지고 있지 않을까. 줄다리기 줄에 매달려 자신의 모든 것을 걸던 순간의 열정은 또 어떤까. 하지만 그 '단순한 놀이'가 내 생명을 담보한다면? 이 당돌한 상상력이 드라마의 흡인력이 된다. 또한 단순하기에 그 누구라도 놀이의 상황에 빠져든다. 무엇보다 니체의 말처럼 시청자들은 그 단순한 놀이의 상황이 우리 삶의 어처구니없음을 상징한다는 것을 절감한다. 

가장 단순한, 하지만 그 속에 인간의 모든 것이 들어있는 '전래놀이' 과정에서 456 명의 사람들은 장기판의 말처럼 뛰어논다.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보고난 이들은 그런 판을 벌인 노인의 잔혹함에, 그를 가능케 돕는 마스크 집단에, 그리고 거기에 말이 된 사람들의 막다른 어리석음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그런데 정작 진짜 잔인한 건 그 인간 군상들의 서바이벌 드라마를 기꺼이 시청하는 이들 아닐까. 그 누구보다 편안하게 드라마라며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을 '재미'로 삼는 이들 이 글을 쓰는 나를 포함해서 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 https://brunch.co.kr/@5252-jh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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