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영화 <피아노 프리즘>을 연출한 오재형 감독.

다큐멘터리 영화 <피아노 프리즘>을 연출한 오재형 감독. ⓒ 오재형

 
미술작가이자 영화감독으로 종종 실험적 작품을 선보이곤 했던 이 감독이 돌연 회화 작가의 정체성을 묻어두고 잠정 은퇴를 선언했다. 그렇다고 아주 예술 활동을 떠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스무 살 때부터 취미로 해오던 피아노를 내세워 새로운 형태의 실험을 하기 시작했다.

오재형 감독의 자전적 다큐멘터리 <피아노 프리즘>은 오는 10월 6일 개막하는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섹션에 초청돼 공식 상영될 예정이다. 이 영화가 좀 특별한 건 감독의 첫 번째 장편 연출작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국내 영화로선 제작 단계부터 베리어프리(장애인 관객의 관람을 위한) 형식을 반영한 데에 있다. 17일 오후 오재형 감독과 비대면 인터뷰로 영화 이야기를 더 들을 수 있었다.

자기 이야기의 재구성

<피아노 프리즘>은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예술가로서 정체성을 고민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감독의 이야기, 동시에 그가 선보인 단편을 통해 우리 사회 곳곳의 비극을 다시 바라보는 이야기로 말이다. 영화엔 평소 그가 피아노를 배우며 기록한 자기 자신의 모습은 물론이고, <블라인드 필름> <봄날> <강정 오이군> 등 과거에 오 감독이 만든 작품 일부도 들어가 있다. 각 영화들은 세월호 참사,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이슈를 상징적으로 품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과거 영상의 조각들이 오재형 감독의 피아노 연주로 새로운 생기를 얻어가는 구성이다. 

"3년 전부터 제가 피아노 레슨을 다시 받게 되며 막연하게 브이로그라도 해보는 생각에 제 모습을 찍기 시작했다. 2010년부터 단편 영화를 하면서 피아노와 관련이 있다고 느꼈고, 그걸 피아노 연주로 통합시켜 나만의 다큐를 한번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장편 영화를 할 생각은 없었다. 근데 하다 보니 예술가의 노동을 보일 수도 있겠다 싶었고, 취미로 뭔가를 시작하는 분들에게도 나 같은 사람도 있다는 용기를 드릴 수도 있겠더라." 

오 감독은 "단 한번도 영화감독이 꿈인 적이 없었고, 피아노 연주 또한 전혀 목표가 아니었는데 꿈이었던 화가를 은퇴하고 영화와 피아노를 하고 있다. 그 점이 스스로에게 재밌다"고 말했다. 장편 영화로 편집하기로 결심한 뒤 그는 자신의 미술, 단편, 그리고 학부생 시절 촬영한 영상을 긁어 모았다. 시간으로 치면 13년에 해당하는 기간의 자료들이었다.   
 
 영화 <피아노 프리즘>의 한 장면.

영화 <피아노 프리즘>의 한 장면. ⓒ 오재형

 
여기에 더해 베리어 프리 버전으로 제작하 것에 그는 할 말이 더욱 있어 보였다. 일반 다큐멘터리 영화에 비해 <피아노 프리즘>은 자막과 내레이션의 비중이 매우 높다. 청각, 시각 장애인들도 함께 영화를 감상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통상 베리어프리 버전은 영화가 완성된 이후 재가공 과정을 거쳐 탄생하는데, 오 감독은 직접 내레이션과 자막을 입히는 방식으로 결과물을 내놓았다. 부산영화제에서도 지금의 버전으로만 상영된다고 한다.

"몇 년간 장애인 이슈에 관심이 커졌다. 제가 공황장애를 겪기도 했고, 어머니가 10년 전에 뇌졸중으로 신체장애가 왔다. 그 뒤로 관련 책과 영화를 많이 찾아다녔다. 김원영 변호사가 쓴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장애인 이동권 문제를 다룬 박종필 감독의 <버스를 타자>를 비롯해 지금은 국회의원이 된 장혜영 감독의 <어른이 되면>, 이길보라 감독의 <반짝이는 박수 소리> 등을 봤다. 이런 작품으로 탈시설 운동도 알게 되고, 농인의 문화를 간접 체험하게 됐다. 그래서 제 영화도 한번 장애인을 위한 버전으로 만들어보자고 생각했다.

일반인은 물론, 영화 하는 친구들도 베리어프리를 잘 모르더라. 보통 제작이 끝난 영화를 사후적으로 작업하는 방식인데 나름 전 독학을 하면서 편집 단계 때부터 시도하려 했다. 전문가가 아니라 많이 어색하지만 개인적으로 제작자나 감독이 자신의 영화를 베리어프리 버전으로 할 때 직접 관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베리어프리를 염두에 두면 창작자 입장에서도 굉장히 좋은 자극이 될 것이다. 자막을 어떻게, 내레이션을 어떻게 쓸지 실험의 장이 될 수도 있다. 유튜버들도 자기 영상에 자막을 치는데, 영화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는 것 같다."


"베리어프리 영화 경험 나누길 원해"
 
 영화 <피아노 프리즘>의 한 장면.

영화 <피아노 프리즘>의 한 장면. ⓒ 오재형

 
막상 결과물을 만들고 나니 한계점도 보였다. "여전히 영화 곳곳에 들어가 있는 자막과 내레이션을 거슬릴 수도 있다"며 오재형 감독은 "종종 클릭하지 않고 영상 프리뷰만 나오도록 유튜브를 보는 분도 있다. 베리어프리 영화도 그런 식으로 활용 가능하다"고 말했다.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도 자막과 내레이션을 넣으려니 시간이 더 걸리더라. 눈 감고 소리로만 들어본다든지, 소리를 끄고 눈으로만 보면서 했는데 평소보다 대여섯 배 정도 시간이 걸린 것 같다. 눈 혹은 귀로만 영화 관람을 가능하게 만드는 게 어려우면서 재밌기도 했다. 게다가 제 영화는 추상적인 요소가 많아서 어려움이 더했다. 가상의 관객을 생각하며 했는데, 그 분들 입장에선 가져갈 수 있는 감각들이 많아져서 좋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비장애인 관객들에게 체험하게 하고 싶기도 했다. 외국영화에 한글 자막을 넣거나, 한국영화에 영어 자막을 넣는 경우는 많은데 한국영화에 한글 자막을 넣는 일은 거의 없다. <기생충> 같은 영화도 개봉 당시 청각 장애인이 제대로 관람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시간이 한참 지나 베리어프리 버전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에서 비장애인분들이 한번 제 영화로 경험해보셨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그가 다뤄온 사회 문제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시선도 고민 중이었다. <프리즘 피아노>에선 감독 스스로 재밌어하는 방식으로 잊혀진 사람들을 알리고 싶다는 다짐이 나온다. "분명 그런 작업이 작품활동에 원동력이 된 건 맞다"며 오 감독은 "장애 이슈에 관심을 갖고 있다. 언제까지 사회 이슈를 다룰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영화로 한번 정리하고 넘어가자는 생각이 있었다"고 말했다.

잠정 은퇴를 선언한 회화 작업도 사실은 열려 있었다. "피아노와 영화가 마치 취미와 직업의 경계에 있는데 그게 (창작 활동을) 멈추지 않고 길게 갈 수 있는 방법같다"며 그는 "언제든 그만두어도 괜찮다. 그리고 다시 시작해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하고 싶다"고 각오를 덧붙였다. 

"그동안은 나를 너무 드러내지 않았나 싶어 좀 징그럽기도 하다. 나 자신에 대해 말하기가 지쳤달까. 다음엔 날 완전히 숨기고 하거나, 누군가의 조력자로 역할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왕이면 장애 관련 소재를 해보고 싶다."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