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봅니다. 그 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 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편집자말]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2>(이하, <슬의생>)가 막을 내렸다. 전문직 40대 친구들의 일상을 담은 드라마가 나온다고 했을 때 난 조금 의아했었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40대는 인생에서 성장보다는 안정을 추구하는 시기다. 일에서도 가정에서도 자리를 잡게 되고, 새롭고 재미난 일을 시도하기 보다는 지루할지라도 평온함을 추구하는 시기라는 인상이 강하다. 그런 40대의 일상이 드라마의 소재라니 조금은 심심하지 않을까 싶었다.
 
가뜩이나 드라마 속 5인방 송화(전미도), 익준(조정석), 석형(김대명), 정원(유연석), 준완(정경호)은 처음부터 '대단했다'. 유수의 의대를 나온 대한민국 슈퍼 엘리트들이었고, 자신만의 분야에서 이미 최고의 자리에 오른 상태였다. 사적인 생활에선 나름의 갈등과 외로움이 존재하긴 했지만, 현실의 우리들이 보기엔 정말 부러운 삶이었다. 40대 초반에 모든 걸 다 갖춘 듯한 이들 5인방. 이들에게 더 이상의 성장은 없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 분홍빛 노을이 진 하늘을 바라보는 이들의 뒷모습은 어딘가 훌쩍 자라 보였다.
 
돌아보니 정말 그랬다. 이들은 1, 2편을 통틀어 점차 성장하고 있었다. 사실 심리학에서 우리가 성장하지 않는 시기 없다. 다 큰 어른인 40대 역시 발달과제를 안고 있고 이를 해결해가며 우리는 조금 더 어른이 되어 간다. <슬의생> 5인방은 그동안 회피하거나 알아차리지 못했던 자신의 욕구를 알아차리고, 부모와의 관계를 재정립하며, 나를 통합해가는 40대의 발달 과제를 성실히 수행해냈다. <슬의생>의 인물들이 보여준 어른들의 성장과정을 정리해본다.
  
 성장하는 40대의 모습을 보여준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5인방

성장하는 40대의 모습을 보여준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5인방 ⓒ tvN

 
나의 진짜 마음을 알아주기
 
먼저 이들은 자신의 진짜 마음과 욕구를 알아차린다. 시즌1에서 가톨릭 사제가 되고자 했던 정원은 시즌2가 시작되자마자 겨울(신현빈)과의 연애모드로 들어간다. 정원은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자신의 연애를 친구들에게 밝히고 보다 당당하게 겨울과 사랑을 나눈다. 겨울을 선택하고 의사로서의 삶에 더욱 더 정성을 쏟는 그의 모습은 참으로 행복해 보였다.
 
석형은 가장 드라마틱하게 변화한 인물이었다. 석형은 자신의 삶에 지나치게 관여하고, 며느리를 시기하는 엄마 때문에 결혼에 실패한 아픔을 지니고 있다. 그런 그에게 민하(안은진)는 끈질기게 사랑을 고백해온다. 하지만, '곰'같은 석형은 꽤 오랜시간 모른척하며 자신은 더 이상 누군가를 사랑할 자격이 없다 여긴다.

하지만, 5회 송화와의 대화 속에서 석형은 지난 결혼생활 동안 자신이 해왔던 건 회피였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달라지기 시작한다. 마주하지 않았던 감정들을 만나고 표현하더니 사람들과의 관계에도 마음을 활짝 연다. 11회 그는 마침내 미나와 연애를 시작하고 12회엔 늘 피해왔던 사람들로 가득 찬 엘리베이터를 타는 데도 성공한다. 그의 흐뭇한 미소에는 스스로에 대한 긍정이 묻어났다.
 
송화 역시 진짜 자신의 마음을 만난다. 사실 시즌2 내내 송화와 익준의 모습은 우정보다는 사랑에 가까웠다. 송화는 자신이 익준을 대하는 태도가 다른 친구들과는 다르다는 걸 알면서도 애써 모른척 하며 지내왔을 것이다. 하지만, 11회 익준이 사고를 당하자 송화는 마침내 자신의 진짜 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대학시절 고백하려다 거절당했던 아픈 기억을 뒤로 하고 용기내 익준에게 말한다. "고백할 걸. 너 좋아한다고 고백할걸"이라고.
 
나는 이들이 사랑을 선택한 것 자체가 한층 성장하고 강해졌다는 징표라고 생각한다. 정신과 의사 김건종이 <마음의 여섯 얼굴>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듯 말이다.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상처받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고, 버림받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상대의 처분에 내 존재의 의미가 결정될 수 있는 극도로 수동적이고 그만큼 위험한 자리에 머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 강해야 한다. (228쪽)
  
 석형은 자신의 진짜 마음을 만난 뒤 감정표현에 솔직해지며 스스로를 긍정하기 시작한다.

석형은 자신의 진짜 마음을 만난 뒤 감정표현에 솔직해지며 스스로를 긍정하기 시작한다. ⓒ tvN

 
부모와의 관계 재정립
 
40대는 부모와의 관계에서도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다. 30대까지는 부모가 보호자의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40대가 되면 부모는 대체로 70대 이상, 그러니까 명실상부한 노년의 반열에 오른다. 40대에는 자녀가 부모보다 신체적으로는 물론 경제적으로도 풍족해지는 시기다. 이제 자녀가 부모의 보호자가 되며, 새로운 관계를 정립해가게 된다. 동시에 여전히 자신을 아이처럼 통제하려는 부모와는 지혜롭게 선을 긋는 작업도 해야 한다. 드라마 속 인물들은 바로 부모와의 관계 재정립이라는 40대의 발달과제를 순조롭게 해냈다.
 
송화는 7회 익준에게 엄마 뒷담화를 한다. "엄마가 일 얘기를 물으면 왜 짜증이 날까? 전화 끊기 바쁜데 그래놓고는 또 죄책감이. 그래서 또 좀 있다가 다시 전화를 해. 그러면 또 짜증이." 익준 역시 이에 공감한다. 송화와 익준은 엄마들이 손이 너무 커서 반찬 다 먹기가 힘들다며 푸념하기도 한다. 이들의 이런 마음은 아마도 많은 40대들이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여전히 나를 아이 같이 대하며 나의 일상에 관여하고자 하는 부모의 마음에 짜증이 나면서도 왠지 약해지고 작아진 부모의 모습에 마음이 짠해오는 그런 마음 말이다.
 
8회 송화의 어머니는 파킨슨으로 진단을 받고, 정원의 어머니 역시 수술을 받는다. 아마도 이들은 이때 부모의 노화를 실감했을 것이다. 송화는 꽤 오래 눈물을 흘리며 괴로워하고, 정원 역시 속상함에 힘들어한다. 부모의 노화를 받아들이는 일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들은 결국 이런 진실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자식으로 할 도리를 다하되 인간으로서 지닌 한계 역시 외면하지 않는다.
 
반면 석형은 40대에도 여전히 자신을 소유하려 드는 엄마와 지혜롭게 선을 긋는다. 민하와의 연애를 시작하면서 엄마가 방해하지 않도록 꼼수를 쓴 것이다. 석형은 자신이 미국으로 연수를 갈 것처럼 하얀 거짓말을 하고, 이를 민하 때문에 안간다고 함으로써 엄마가 민하를 받아들이게끔 한다. 이는 더이상 엄마에게 휘둘리지 않겠다는 독립선언이기도 했다. 이렇게 40대 어른인 이들은 부모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적절한 선을 그음으로써 한층 더 독립된 어른으로 성장했다.

과거와 현재 속에 나를 통합하고, 남과 나를 구분하기
 
나의 욕구를 알아차리고, 부모와의 관계를 재정립한 이들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시간의 흐름 속에 자신의 모습을 통합해간다. 병원에 새로 들어온 새내기들의 모습을 담은 6회 방송분에서 '공룡능선' 5인방은 자신들의 초보 시절을 돌아본다. 서로의 흑역사를 고발 혹은 공유하며 부끄러워하면서도 즐거워하는 이들의 모습 속엔 변화해온 자기 자신을 수용한 사람들의 여유가 느껴졌다.
 
한편, 이들은 나와 타인의 경계를 알고 함부로 침범하지 않는다. 아무리 친한 5인방 이라 하더라도 이들은 서로의 선을 지킨다. 준완-익순의 연애 같이 당사자가 비밀로 하고 싶은 일들은 알더라도 끝까지 모른 척 해주고,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는 일에 대해서는 굳이 캐묻지 않는다. '사정이 있겠지' '때가 되면 말해주겠지'라는 태도로 친구들을 믿고 기다려준다. 이렇게 서로 침해하지 않는 관계는 이들의 우정이 20년 동안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던 비결이었을 것이다.
 
또한 5인방은 이런 태도를 주변의 다른 인물들에게도 전한다. 익준은 늘 환자들의 선택을 존중해준다. 하지만, 이식받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환자에겐 "자식이 간 기증하는 거 당연한 거 아니에요."(2회)라고 잘라 말하며 기증자 역시 존중받아야 함을 알린다.

정원 역시 아이의 말문을 막는 부모를 향해 "아이도 자신의 몸에 대해 설명할 수 있다"(7회)고 말하며 부모-자녀 사이에 선을 그어 준다. 준완은 아이를 낳지 않는 재학(정문성)부부에게 왜 아이를 낳지 않냐고 질문하지 않는데 경계를 존중하는 이런 태도는 재학이 준완을 믿고 따르는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통합하고, 나와 타인을 잘 구분하며, 타인의 경계를 존중하고 침범하지 않는 이들의 모습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성숙한 인간의 모습과 흡사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5인방은 '꼰대'가 아닌 '진정한 어른'의 모습을 보여줬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5인방은 '꼰대'가 아닌 '진정한 어른'의 모습을 보여줬다. ⓒ tvN

 
"나 꼰대 같니?"

송화는 시즌2에서 몇 차례 후배들에게 이렇게 묻는다. 그때마다 후배들은 한결같이 우리 병원에서 '공룡능선 5인방'은 꼰대 아닌 몇 안 되는 교수라고 알려준다. 슈퍼 엘리트에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40대. 의사에다 대학교수라는 자리는 누가 봐도 권위를 내세우기 쉬운 자리다. 그럼에도 5인방은 '꼰대'와는 거리가 먼 일상을 살아간다. 이는 이들이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며 자신의 경계를 바로 세우고, 타인의 경계를 존중할 줄 아는 심리적 성장을 계속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슬의생> 5인방처럼 나의 진짜 마음을 알아주고, 의존과 독립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가며, 타인을 존중할 수 있다면 현실의 우리들도 계속해서 성장해갈 수 있지 않을까.

꼰대가 아닌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해간다면, 우리도 꽤 즐겁게 나이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완연한 중년에 접어든 나 역시 조금 더 재밌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이런 희망을 보여준 <슬의생> 5인방에게 감사를 전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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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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