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사람들은 인류의 잘못을 지적할 때 도시를 비난하는 경향이 있다.' 

영국의 도시학자 존 리더의 말이다. 환경 오염, 소음, 과밀, 혼잡, 빈부 격차? 아마도 이 모든 것들이 오늘날 도시에 대한 수식어들일 것이다.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 아니라 '최악의 발명품'인 것처럼 보인다. 정말 그럴까?

그런데, 9월 13일부터 16일까지 3부작으로 방영된 < EBS 다큐 프라임 >은 우리가 지금까지 도시에 대해 가지고 있는 '프레임'을 변화하라고 주문한다. 알고보면 도시가 그렇게 비난받을 만한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 EBS 다큐 프라임 > 도시예찬

< EBS 다큐 프라임 > 도시예찬 ⓒ EBS

 
서울은 만원이다? 

<서울은 만원이다>는 1966년 <동아일보>에 연재된 이호철의 소설이다. 1966년에 이미 서울은 꽉 찼다고 했으니 21세기인 오늘날에야 오죽할까.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불과 300년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조선시대 서울은 '단층' 도시였다. 당연히 '저밀도' 도시였다. 그러나 전쟁터가 된 도시는 폐허가 되었다. 그리고 불과 몇 십년 사이에 이루어진 압축적인 경제 성장, 예전의 '서울'에 비해 서울의 몸집은 5배나 불었다. 어디 넓어진 것만일까. 고층 건물들이 즐비한 고밀도의 도시가 되었다. 사람들이 혼잡하고 답답하다고 느끼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서울의 인구 밀도가 높은 편인데 비해, 알고보면 건물 밀도는 그리 높지 않단다. 동일한 대지에 건물을 얼마나 올릴 수 있는가를 알아보는 용적률을 기준으로 서울은 145%로, 파리 277%, 런던 370%에 비하면 널널하다. 하지만 높은 인구 밀도로 인해 단위 면적당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적은 건축 공간에 모여 살기 때문에 우리는 서울을 '고밀도' 도시라 체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뉴욕의 중심부에 떠억하니 자리잡은 센트럴 파크 공원과 달리, 서울의 '녹지 공간'은 접근성이 떨어진다. 차를 타고 한참을 가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가보면 좀 이름있다 하는 공원에는 사람들로 장사진이다. 이러니 자연을 보러 온 게 아니라 사람 구경하러 왔다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런데 이 또한 수치상으로 보면 '오해'이다. 1인당 공원 면적으로 봤을 때 서울은 16.2㎡으로 도쿄 4.5㎡에 비하면 한참 많고 뉴욕 14.7㎡, 파리 10.7㎡보다도 많다. 녹지 비율이나, 생활권 도시숲 비율로 봐도 그 어느 나라에 뒤지지 않는다. 
 
 < EBS 다큐 프라임 > 도시예찬

< EBS 다큐 프라임 > 도시예찬 ⓒ EBS

 
그런데 왜 서울에서는 뉴욕같은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 그건 애초에 도시를 건설할 때 뉴욕처럼 도시의 심장부에 공원을 건설하는 방식이 아니라, 주거 지역과 녹지 지역을 서로 뜀뛰기하듯 분리해서 건설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목동을 예로 들면, 상업 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그 주변에 주거 지역이 감싸고 있는 '아보카도'와 같은 방식으로 도심이 건설되었다. '개발 수익'을 우선하여 도심을 건설하다 보니 주거 지역에는 주거만 건설하는 방식으로 신도시들이 건설됐고, 그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뜀뛰기' 방식으로 건너뛸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심지어 서울하면 아파트가 연상되지만 실제 서울에는 다세대 주택의 비율이 더 높다. 다세대 주택은 주차나 쓰레기 등 공동의 생활 조건에서는 아파트에 비해 불리하다. 그러기에 서울은 '아파트촌'을 지향한다. 구시가지는 재개발하면 아파트촌이 된다. 

그러나 단 하나의 필지로 이루어진 아파트촌은 복원력이 취약하다. 외려 다세대 주택들의 중간 건축은 잘게 쪼개져 새로이 고쳐쓸 수 있는 가능성을 더 많이 가지고 있다. 바람직한 도시의 공간은 양파처럼 삶과 일터, 주거와 상업 등 다양한 시설들이 같은 공간 안에 존재하여 사람들이 편의적으로 이용하며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아직 서울은 '가능성'이 열려있는 공간이다. 

도시는 친환경적? 

서울의 장점은 공간으로서의 긍정적인 면만이 아니다. 3부 <나는 도시인이다>는 사람들이 서울에 사는 장점을 살펴본다. 

김철용 씨는 <윌든>을 읽고 감명을 받아 도시를 떠난 지 6년이 되었다. 산골 생활에서 사업을 하며 받은 스트레스를 달랬다. 하지만 막상 자연과 벗하며 사는 생활은 생각과 달랐다. 나무와 풀에 둘러싸인 자연에 살수록 친환경적인 삶과는 거리가 있었다. 

차만 해도 그렇다. 차 없이는 전원 생활을 누릴 수가 없다. 도시 아파트에서는 옆집 덕분에 덜 나온 난방비도 실내온도 20도를 유지하려면 월 20만 원은 쉽게 나갔다. 인적이 드문 곳, 방범을 위해 cctv는 필수다. 
 
 < EBS 다큐 프라임 > 도시예찬

< EBS 다큐 프라임 > 도시예찬 ⓒ EBS

 
전문가들은 말한다. 도시에 모여 사는 게 자연에는 더 도움이 된다고. 인간이 도시에 모여 살았기에 숲이 남아있을 수 있었다고. 다큐의 시작은 소박한 한 끼를 마련하려다 숲을 다 태워버린 소로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도시 자체가 에너지도 많이 쓰고, 환경을 오염시키지만, 환경 자체로 보면 도시가 있어 '자연'이 그나마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자연은 혼자 놔뒀을 때 아름답다고 다큐는 강조한다. 

환경적인 면만이 아니다. 지하철, 공원, 도로, 도서관같은 도시의 인프라들은 그 자체로 천문학적인 비용이 든다. 공공의 '구매'로 이들이 가능하기에 부자가 아닌 이들도 편리한 삶을 구가할 수 있는 것이 도시의 장점이다. 

다큐의 시선은 '빈민가'로 향한다. 통계적으로 도심에 가까울수록 가난한 사람들이 많다. 서울에만도 12곳의 쪽방촌이 있다. 왜 그럴까? 도시에서 떨어진 곳에 집을 마련해줘도 살 수가 없다. 그나마 그들이 살 수 있는 '경제적인 기회'가 도시에 있기 때문이다. 도시의 높은 인구 밀도는 광범위한 일자리를 상징한다. 하다못해 후원을 하는 사람도, 후원해주는 단체도 도시라 가능한 게 현실이다. 

가난한 이들만이 아니다. 실험점인 소극장도, 비주류 예술가들도 서울에 절반 정도가 집중되어 있다. 공연 시설 수도 마찬가지다. 홍대를 중심으로 번창했던 인디신, 그들 역시 그들의 음악을 '소비'해 줄 수 있는 곳이 도시이기에 그곳에 터전을 잡았다. 

산골에 사는 김철용씨는 자조적으로 말한다. 자연이 좋은 것도 하루 이틀이지 사람이 그립다고. 하지만 정작 도시인들은 자신이 깃들어 사는 도시를 미워한다. 도시에 살면서 '여유롭다'거나, '만족한다'고 하는 사람을 찾기는 드물다. '그냥 산다'는 도시, 하지만, 다큐는 도시는 콘크리트가 아닌 '인간'들로 , 그들의 '관계'로 이루어진 곳이라고 강조한다. 어쩔 수 없이 사는 공간이 아닌 풍요로운 삶의 공간으로 도시에 대한 가능성을 새롭게 만들어 가자고 촉구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 https://brunch.co.kr/@5252-jh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EBS다큐프라임 도시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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