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예린

백예린 ⓒ 블루바이닐

 
지난해 12월 이후 1년이 채 되지 않은 기간 동안 백예린은 숨가쁘게 달려왔다. 정규 2집 < tellusboutyourself >를 시작으로 리믹스 음반 < tellusboutyourself Remixes >(2월), 록밴드 더 발룬티어스의 일원으로 발표한 < The Volunteers >(5월), 그리고 지난 10일 공개된 커버 EP <선물>에 이르는 동안 그녀는 각기 다른 색깔의 음악을 맘껏 구현해냈다.  

알앤비, 애시드재즈 또는 일렉트로니카부터 브리티쉬 록에 이르기까지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장르 경계를 맘껏 넘나들면서 '이런게 백예린이지'라는 생각을 청자들로 하여금 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허전함이 하나 남긴 했다. 'Square'의 청량함, '그건 아마 우리의 잘못은 아닐 거야'의 서정성을 기대했던 이들의 바람과는 살짝 다른 방향의 곡들이었기에 최신작 <선물>은 그간의 허전함을 충족시켜줄 만한 작품으로 받아들여질 만하다.

​일찌감치 사운드클라우드 등을 통해 공개했던 터라 백예린의 골수팬들에겐 친숙한 버전들인 '그럴때마다'(1996년 토이 원곡), '산책'(2010년 소히/이한철 원곡)을 중심으로 <선물>에는 총 6개 트랙의 커버곡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1990년대부터 2010년에 이르는 폭넓은 시기를 아우르는 기존 곡들에겐 딱히 공통점이 없어 보이지만 하나의 일관된 흐름을 갖고 있다. 발표 시기의 청춘들에겐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담당해준 곡들이었다.

힘든 시기 보내는 당신을 위한 '선물'
 
 백예린의 신보 '선물' 이미지를 형상화한 일러스트 아트 (성률 작품)

백예린의 신보 '선물' 이미지를 형상화한 일러스트 아트 (성률 작품) ⓒ 블루바이닐

 
음반의 시작을 알리는 '그럴때마다'는 경쾌한 팝 사운드+여러 보컬리스트의 합작이라는 기존 버전의 틀에서 벗어나 피아노 하나의 소박한 편곡으로 180도 다른 방향을 설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어색함 없이 다가오는 건 통통 튀던 멜로디와는 대비를 이뤘던, 위로의 정서를 담고 있던 원곡 가사의 의미를 잘 녹여내는 목소리 덕분이다.   

검정치마의 명곡으로 손꼽히는 'Antifreeze'(2010년)는 백예린과 프로듀서 구름의 손길을 거치면서 1990년대 풍 기타 팝 사운드로 변모한다. 그녀의 아버지를 비롯해서 음악 동료들의 후렴구 코러스가 덧붙여진 이 버전은 원작의 투박하고 불안한 감정을 잠시 뒷자리로 밀어냄과 동시에 마치 백예린의 원곡인 것 마냥 적합한 주인을 맞아 새 생명을 얻는다. 많은 팬들이 듣는 즉시 "왜 이 곡은 타이틀 곡이 아닐까?"라는 의문을 가졌을 만큼 <선물> 속 6곡 중 가장 중독성 강한 매력을 뽐낸다.

​더블 타이틀 곡 중 하나인 '왜? 날'은 지난 2007년 장기호(빛과 소금)가 KIO라는 이름으로 발표했던 트랙을 하이톤 보컬에 실어 재해석했다. 듣기엔 편하지만 굴곡 심한 멜로디로 인해 완급 조절이 결코 쉽지 않다는 이 노래 또한 음색만으로 분위기를 압도해낸다. 결코 따라하기 힘든 김종완의 목소리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한계'(2006년 NELL 원곡), 일찌감치 백예린 마니아들의 필청곡이 되었던 '산책' 등은 음반의 제목처럼 그녀의 음악을 사랑했던 이들에겐 선물 같은 존재가 되어준다.

모처럼의 우리말 가창... 음색 하나로 사로 잡는 마성의 힘
 
 백예린의 신보 '선물'

백예린의 신보 '선물' ⓒ 블루바이닐

 
2019년 JYP에서의 마지막 작품 < Our Love Is Great > 이후 백예린은 오랫동안 영어 가창 작품에 전력을 기울이면서 독특한 창작 행보를 이어간 바 있다. 남들과는 차별화된 방식이었지만 이에 대한 아쉬움을 피력하는 사람들 또한 적지 않았다.  비록 기존곡을 재해석한 커버 미니 음반이긴 하지만 모처럼 우리말 가창을 선보이면서 <선물>은 그간의 갈증을 단번에 해소시킨다.   

​장르 및 표현의 방식은 각기 다르지만 '그럴때마다'를 처음 만났던 1996년의 정서가 25년이 지난 2021년에도 통할 수 있다는 건 전적으로 백예린의 목소리가 지닌 마성의 힘에 기인한다. 원작 주인공에 대한 기억은 잠깐 지워도 좋을 만큼 과장되지 않은 화법의 편곡, 그리고 "음색 하나만으로 다 했다"는 누군가의 표현이 잘 어울릴 만큼 빼어난 감성의 목소리는 가을의 문턱에 들어선 9월의 정서를 적절히 표현해낸다.

모처럼 음악적 실험성에 얽매이지 않고 평소 자신이 즐겨 듣던 노래들을 나만의 감정을 담은 방식으로 담은 <선물>은 그래서 더욱 신선하게 들려온다. "반복된 하루 사는 일에 지칠 때면 내게 말해요 / 항상 그대의 지쳐있는 마음에 조그만 위로 돼줄게요"('그럴때마다') 라는 노랫말처럼 많은 사람들이 쉽지 않은 시절을 보내고 있는 요즘 시대 사람들에게 이들 커버 곡은 정다운 위안의 선물이 되어준다. 흔하디 흔한 리메이크 음반도 백예린이 만들면 명품이 된다.  
덧붙이는 글 필자의 블로그 https://blog.naver.com/jazzkid 에도 수록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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