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창나이 선녀님>을 연출한 원호연 감독.

영화 <한창나이 선녀님>을 연출한 원호연 감독. ⓒ 이해리

 
'누가 과연 시골 할머니가 소 키우고 집 짓는 이야기를 보고 싶어 할까.'

카메라를 들고 강원도 삼척의 외지 마을을 찾았던 감독의 솔직한 속마음이었다. 자녀들은 출가했고 남편을 여읜 68세 임선녀 할머니를 찾기까지 1년 6개월이 걸렸고, 촬영하고 결과물을 만들어내기까지 2년여가 더 흘렀다. 

그렇게 원호연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한창나이 선녀님>은 제13회 DMZ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 한국 경쟁 부문에 초청받아 관객과 만나는 중이다. 영화제가 한창인 14일 서울 성산동 인근에서 감독을 만나 영화 이야기를 더 들을 수 있었다. 감독 말대로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한 노인의 이야기가 관객들을 울렸다. 총 세 차례의 상영에서 온라인 티켓이 모두 매진됐고, 상영관을 찾은 관객 중 특히 여성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임선녀 할머니의 본질

시작은 EBS의 한 다큐 프로그램이었다. 본래 <인간극장> 등 지상파 방송 다큐를 해왔던 원 감독은 해당 다큐 프로에 나온 한 출연자의 "공부를 하니 너무 행복하다"는 말에 울컥했다고 한다. "별거 아닌 말이지만, 화면에 담긴 그분의 표정과 감성이 그대로 느껴졌다. 그 감동의 정체는 뭘까 궁금했고,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감독은 운을 뗐다.

"전국을 다 뒤지기엔 경비와 시간적 한계가 있어서 강원도 지역의 많은 학습장을 돌아다녔다. 그러다 선녀 어머님을 만난 거지. 사실 처음 뵈었을 때 영화가 될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진 않았다. 늦은 나이에 한글을 배우러 다니시고 소를 키우시는 것이 전부인 일상이었거든. 이처럼 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하는 게 위험부담이 크다. 

그러다가 확신이 든 건 소가 새끼를 낳을 때였다, 그 과정을 전부 지켜보며 근처에서 쭈그리고 주무시기도 하는 모습에 아, 그림이 되는 분이구나. 뭐가 됐든 찍어서 결과물을 내어보자는 확신이 들었다. 소가 새끼를 낳을 때 눈빛, 챙기는 태도에서 그분의 삶이 다 보이더라. 정말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영화엔 임선녀씨가 한글을 배우러 먼 길을 왕복하는 것, 소를 먹이고 외양간을 치우는 것, 그리고 본래 살던 집을 허물고 근처에 새 집을 짓는 과정이 담겨 있다. 감독 말대로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다. 조금 특별한 게 있다면 할머니가 겪는 '이별의 경험'에 무게를 싣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에서 자세히 설명하진 않지만 남편을 여읜 할머니는 가끔 놀러 오는 남편 친구들에게 밥을 차려주곤 한다. 그리고 오랜 시간 홀로 키우며 정이 든 소를 팔기로 결심한다. 카메라는 임선녀씨를 찾는 사람들, 그들이 먹는 음식을 보여주는 대신 임선녀씨의 표정, 눈빛만을 자세히 보여준다. 여타 휴먼 다큐와 차별화 한 지점이다.

"결국 어머님의 느낌, 행복이 중요한 것 같았다. 남편분이 돌아가신 건 상처일 뿐인데 그걸 다룸으로써 어떤 상황을 강조하고 싶진 않았다. 제 나름 표현하는 단어 중에 '인문'이라고 있는데 사람의 문양, 그러니까 그 사람의 표정과 행동에 전체 인생이 다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인물 다큐가 재밌다. 굳이 밥 먹을 때 음식과 주변 사람을 찍을 필요가 없는 거지. 이 다큐를 한 노인의 꿈이라고 단순하게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전 '이별이 만들어낸 꿈'이라고 좀 더 구체화하고 싶다. 소 키우던 평범한 분 안에 한글 공부가 들어가서 이야기가 되겠다고 단순하게 판단했는데 소를 팔고 집을 짓는 데서 이별의 모습을 보게 됐다. 

다큐라는 게 사람을 여러 갈래로 보이게 하는데 난 이별을 중심으로 잡았던 것 같다. 그래서 눈물이 나는 거고 짠하게 다가오는 거지. 어머님이 꿈을 이룬 것도 중요하지만 70 평생 살면서 이런 이별을 어떻게 감당하며 살았을까,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이별을 감당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했다. 그 지점이 이 영화의 중요한 감성을 만들어내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꿈을 꾸는 사람보다는 삶을 살아내는 사람의 이야기라는 게 더 맞는 표현 같다."

 
 영화 <한창나이 선녀님> 관련 이미지.

영화 <한창나이 선녀님> 관련 이미지. ⓒ (주)큰물고기미디어

 
 영화 <한창나이 선녀님> 관련 이미지.

영화 <한창나이 선녀님> 관련 이미지. ⓒ (주)큰물고기미디어

 
다큐 하는 마음에 대해
 
원호연 감독은 이 작품으로 "다큐를 하며 알지 못했던 내 상처들, 두려움이 치유되는 기분이었다"고 고백했다. 2012년 <강선장>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다큐 영화계에 발을 들였고, 현재까지 여러 작업을 해오고 있는 그는 <한창나이 선녀님>으로 첫 극장 개봉을 경험하게 됐다. "극장 개봉을 하기까지 10년이 걸렸다"며 원 감독은 말을 이었다.

"방송일을 할 땐 제 다큐가 방송되는 게 당연했고, 시청자 반응도 빠르게 알 수 있었다. 그에 대한 고마움을 몰랐지. 이후 <강선장>과 <선두>라는 영화를 만들었는데 그건 극장에 왜 안 걸렸을까 생각해봤다. 주제에 매몰되지 말고 사람 자체에 집중하는 게 맞겠더라. 다행스럽게도 이번에 그 부분을 배급사에서 알아주셨다. 관객분들도 공감해주시는 것 같고."

정리하면 이번 작품은 원호연 감독에게 다큐멘터리란 무엇인지까지 질문을 던지게 한 셈이다. "흔히 다큐라고 하면 세상에 강한 화두를 던지고, 뭔가 메시지가 있어야 할 것 같은 압박 같은 게 있는데 이 이야기를 찍으면서 스스로 결핍을 채우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원 감독이 말했다.

"대단한 가치, 진실을 쫓는 것도 중요한데 우리 삶에서 부족한 걸 채울 수 있는 영화도 존재 이유가 있다. <한창나이 선녀님>을 그래서 비타민이나 영양제 같은 작품이라 생각한다. 뭔가 치료할 수 있는 약은 아니지만 결핍을 채울 수 있는 역할이랄까. 결국 감성에 대한 이야기지. 솔직히 다큐하면서 자신과의 싸움이 가장 힘들다. 주인공은 일상을 그대로 보여주면 되지만 감독은 그 일상을 많은 사람들이 보고 좋아하게끔 해야 하니까 그 사람의 매력을 전해야 한다는 부담이 크다.

큰 담론, 주제가 있는 다큐와 달리 휴먼 다큐는 뭔가 그럴싸한 그림이 많진 않거든. 감독이 어떤 감동이나 감정을 강요할 수가 없다. 현장에서 담아낸 걸 촘촘하게 전달할 뿐이지. 그러다가 감동이 오는 순간이 있다. 제가 휴먼 다큐를 하는 이유가 그것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별한 것을 특별하게 보는 것에 익숙한 것 같다. 하지만 평범한 걸 특별하게 보는 것엔 익숙하지 않지. 내가 느낀 평범함에서의 특별함이 있는 한 좋은 작품을 계속 만들고 싶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영화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원호연 감독의 평소 지론이었다. "다만 감독이라면 그 대상을 오래 지켜보고 제대로 담아낼 의무가 있는 것"이라며 그는 "그래서 스스로 다큐 감독이라는 틀로 한정하지 않고 영화하는 사람으로 말하고 싶다"고 오래 품고 있던 생각을 밝혔다.

오는 10월 개봉 예정인 이 영화를 두고 원 감독은 "힘든 시기를 겪고 그 이후를 살아내는 어머님을 통해 우리 또한 삶을 살아나가고자 하는 희망을 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첫 극장 개봉으로 관객과 만남을 기대하는 그의 설렘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후에도 그는 지금껏 해왔던 작업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길 바라고 있었다. 동남아시아 지역 미등록 이주 아동 이야기를 다룬 영화 또한 촬영을 마치고 현재 후반 작업 중이다. 5년간 준비해 온 이 작품 또한 내년 극장에서 볼 수 있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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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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