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는 어떻게 사람을 웃게 만들까. 다소 범박하고 거칠게 정리를 하자면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출연진들은 무덤덤하거나 진지한데 상황을 점입가경으로 만드는 것. 나머지는 평온하고 일상적인 분위기에 우스꽝스러운 인물을 던져놓는 것이다. 어느 쪽이 더 어렵고 수준이 높다고 말할 수는 없다.

상황을 구성하는 작가의 치밀함과 코미디언의 개인기는 서로 비교와 대체가 불가능한 각자의 고유한 기술이다. 심지어 어떤 방식에서든 작가와 출연진의 기여는 동등하다. 난리법석의 상황에서도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 능청을 떠는 것은 연기자의 능력 중 하나다(이걸 단지 무덤덤한 것과 착각하면 소위 '통나무 보는 듯한 연기'가 나온다). 또한 연기자의 개인기도 작가가 발판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면 실패한 소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 '실패한 소란'의 사례로 소개할 만한 일이 얼마 전 발생했다. 바로 지난 11일에 공개된 < SNL 코리아 >의 위켄드 업데이트 코너에서다. 이 코너에 '인턴 기자'역으로 등장한 주현영 배우는 정부의 코로나 거리두기 방역정책에 대해 묻는 앵커 안영미의 질문에 역으로 물음을 던지며 자신만만하게 리포트를 시작한다.

하지만 '도대체 기준을 이해할 수 없다, 추석에는 코로나가 활동을 안 하는 것이냐'며 거리두기 완화 이유를 알 수 없다는 질문을 던지자 주현영 배우는 당황한 모습을 보이고 안영미는 점점 거세게 인턴 기자를 몰아세운다. 결국 멘트를 제대로 잇지 못하던 인턴기자는 눈물을 터트리며 도망가고 안영미가 황당해하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상황은 정리가 된다.

< SNL 코리아 >의 인턴 기자 스케치가 불쾌했던 이유
 

이 영상에 대한 온라인상의 반응은 극단으로 나눠진 모양새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인턴 기자 농담은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웃기기는커녕 불쾌했기 때문이다. 이유가 있다. 일단 이 농담은 별로 공정하지가 못하다. 의아하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코미디야말로 가장 앞장서서 금기를 넘나드는 장르가 아닌가.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금기란 기득권층이나 사회적 고정관념이 그어놓은 것을 의미한다. 현실세계의 모든 윤리를 집어던져도 된다는 뜻이 아니라는 말이다. 오히려 반대다. 비윤리적인 농담을 들으면서 웃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단순히 특정 계급·인종·장애를 희화화하는 것 외에 아무 내용이 없는 농담을 누군가 한다고 생각해보라. 사람들은 웃기는커녕 무언가 잘못됐다고 생각하며 썩은 표정을 지을 것이다. 실패한 것이다.

만약 문제가 된 인턴 기자 영상에서 웃음거리가 되는 쪽이 앵커인 안영미였다고 생각해보자. 실제 현실에서도 앵커와 인턴 기자 사이의 힘의 균형은 불균등 하고 실제로 이를 악용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처절하게 망가지는 권력자의 모습은 웃음을 자아낼 수 있다. 이건 내용을 바꾸라는 게 아니다. 심지어 상급자가 하급자를 착취하는 구도가 그대로여도 상관이 없다.

가령 오리지널 SNL에서 유명 리얼리티 쇼인 '언더커버 보스(기업의 CEO가 일반직원으로 위장해 자기 회사에 잠입하는 리얼리티 쇼)'를 스타워즈 버전으로 패러디한 스케치를 살펴보자. 이 영상에서 실제로 스타워즈 새 삼부작의 악역을 맡았던 아담 드라이버는 '카일로 렌'으로 분하여 자기 기지에 잠입한다. 이 과정에서 멀쩡한 직원들과 달리 보스인 카일로 렌은 안하무인에 독선적이며 착취적이고 공감능력이 매우 떨어지는 모습을 보인다. 즉 권력자의 부조리를 비트는 게 스케치의 웃음요소인데 이러면 풍자가 가능해진다.  
 
 SNL 코리아의 위켄드 업데이트 코너 중 한 장면.

SNL 코리아의 위켄드 업데이트 코너 중 한 장면. ⓒ SNL 코리아

 
하지만 < SNL 코리아 >는 정확히 반대의 방식을 택했다. 인턴 기자가 코너에 몰리다 무너지는 모습을 웃음거리로 삼은 것이다. 이유는 앞서와 동일한데 반대로 전혀 웃을 수가 없다. '인턴'과 같은 말단의 자리에서 상급자의 과격한 질책에 눈물을 쏟는 젊은 여성은 이 세계에 매우 흔하다. 이건 실제로 존재하는 부조리고 아무리 좋게 말해봐야 아주 현실적인 고통이다.

그런데 인턴 기자 스케치에는 현실세계의 불평등과 권력차이에 대한 섬세한 접근이 전혀 없다. 그 결과 부조리를 비트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재현한다. 쉽게 말하면 실제로 존재하는 고통 받는 약자를 전시하고 웃으라고 요구한다는 뜻이다. 그게 농담이 될 수 있을까.

'망가지는 약자 캐릭터' 등장시키고 싶다면 지켜야 할 선

누군가는 이렇게 질문할지도 모르겠다. 방송을 망치는 젊은 여성 기자가 등장하는 코미디 스케치는 만들면 안 되는 것이냐고. 상대적 약자는 늘 완벽하냐고. 그렇지 않다. 알고 보니 무능하거나 여타 다른 이유로 자기 일을 망치는 전문가는 코미디의 주요 소재들 중 하나다. 단지 중요한 조건이 있다. 그 스케치에서 주인공은 바로 그 기자여야 한다. 이건 단순히 비중의 문제가 아니다(물론 비중도 중요하다). 서사를 구성하는 몸통이 되어야 한다.

오리지널 SNL의 사례를 하나 더 들고자 한다. 'Around the Town'이라는 제목의 스케치들인데 이 영상에서 크리스틴 위그는 화제의 지역 인물을 인터뷰하는 동명의 뉴스코너 기자로 등장한다. 문제는 인터뷰 대상자들이 모두 위그가 호감을 가질 만한 사람들인데, 처음에는 약간 샛길로 빠지며 관심을 보이던 그녀는 점점 광기어린 꼬드김을 표현하고 결국 인터뷰는 엉망진창이 된 채로 종료가 된다. 주인공인 위그가 엄청나게 망가지기도 한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이 스케치에서 크리스틴 위그를 제외한 나머지 캐스트들의 역할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앵커 역을 맡은 벡 베넷은 위그를 비난하기는커녕 시종일관 당혹스러워 하는 모습만을 보인다. 그가 통제력을 행사하는 장면은 단 한순간도 없다. 이 스케치는 사실상 크리스틴 위그의 원맨쇼에 가깝다.

< SNL 코리아 >의 '인턴 기자' 스케치와 완벽히 대응하는 상황극은 아니다. 다만 중요한 통찰의 지점이 있다. 여기서 주인공은 단순한 조롱의 대상이 아니라 그 이상의 역할을 맡는다는 것이다. 비록 결과는 좌충우돌에 캐릭터가 엄청난 망신을 당한 채 끝나지만 모든 상황은 주인공의 손끝에서 초래된다. 즉 그 인물이 상황극의 지휘자이자 동시에 능동적인 행위자가 되는 셈이다. 극이 이렇게 진행되면 주인공이 약자일 때도 그 인물을 일방적으로 놀리고 조롱하는 구도가 성립되지 않는다. 운전대를 붙들고 있는 게 망가지는 당사자이고 나머지는 배경으로 밀려나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코미디쇼가 젊은 여성 기자 캐릭터를 등장시킬 때, 반드시 그 인물을 완벽한 사람으로 묘사할 필요는 없다. 그들도 사람이고 실수를 하고 망가짐으로써 웃음을 만들 수 있다. 단 그 캐릭터가 서사를 완벽하게 장악하고 주도권을 쥘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앵커이건 PD이건 상급자의 자리에 앉은 다른 캐릭터가 할 유일한 일은 상황에 개입해 힘을 과시하는 게 아니라 반대로 주춤하는 것뿐이다. 그래야 현실의 권력관계에서 벗어나 웃음을 만들 숨통이 트인다. (다만 반대로 현실 세계에서 권력을 가진 인물을 코미디에서 묘사할 때 반드시 같은 방식을 고수해야 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그 인물에게 힘이 있다는 걸 이미 알고 그래서 상황극 속에서 그가 주도권을 놓친다고 해도 힘의 균형이 무너지진 않기 때문이다.) 

코미디를 보다 진지하게 대해야 하는 이유

마지막으로 말하고 싶은 건 이 인턴 기자 스케치의 진짜 주제는 정부의 거리두기 정책이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앵커 안영미가 폭발하는 건 갑자기 완화되는 방역정책을 이해할 수 없어서이다. 나또한 마찬가지로 코로나와 관련된 모든 정책이 완전히 납득이 되는 건 아니다. 이걸 풍자하는 건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왜 책임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엉뚱하게 젊은 여성 인턴 기자가 불려나와 눈물까지 흘려야 하나.

오리지널 SNL의 캐스트들은 도널드 트럼프부터 캘리언 콘웨이, 이방카 트럼프, 테드 크루즈 등으로 분하며 이들을 웃음의 심판대에 세웠다. 한국과 미국의 미디어 환경이 판이하다는 점을 고려한다고 해도 책임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어중간한 약자를 샌드백처럼 세우는 건 이상한 일이다. 전혀 재미있지도 않다.

어쩌면 이 글을 읽은 누군가는 코미디를 이렇게 복잡하게 다루어야 하냐고 질문할지 모르겠다. 어쩌면 < SNL 코리아 >의 인턴 스케치를 재밌게 즐긴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고 나의 불만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럴 수 있다. 수용자는 각자의 맥락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유머를 수용하고 해석하니까(다만 누구의 시선에 이입해서 재미를 느꼈는지는 한번 고민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모두가 시종일관 날카로운 시선으로 콘텐츠를 봐야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제작자는 다르다. 코미디가 단순히 웃기는 것을 넘어서, 아니 광범위한 사람들을 제대로 웃기기 위해서는 매우 섬세한 접근과 치열한 사유가 필요하다는 점을 몰라서는 안 된다. 단지 재밌어 보인다는 이유로 아무 요소나 마구 가져다 쓰면 안 된다는 뜻이다. 그건 유머와 재치를 사랑하고 매우 진지하게 대하는 사람들에게 모욕적인 태도이기도 하다. 앞으로 이어질 < SNL 코리아 >가 지금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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