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12일 최동원 10주기 추모행사 진행

롯데, 12일 최동원 10주기 추모행사 진행 ⓒ 롯데자이언츠제공

 
2021년 9월 14일은 한국야구와 롯데 자이언츠의 전설 최동원(1958∼2011)이 세상을 떠난 지 정확히 10년이 되는 날이다. 이미 지난 12일에는 최동원의 친정팀인 롯데가 홈인 부산 사직구장에서 키움과의 더블헤더 1차전을 앞두고 공식 추모 행사를 가지기도 했다.

헌화식에는 최동원의 모친 김정자 여사를 비롯하여 이석환 롯데 자이언츠 대표이사, 성민규 단장, 래리 서튼 감독, 주장 전준우 등이 모두 참석하며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전설을 예우하고 추억을 회고하는 시간을 가졌다. 경기 시작 전에는 생전에 사직구장 마운드에서 공을 뿌리던 고인의 모습이 전광판을 통해 방영됐고, 장내 모든 인원이 묵념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또한 최동원 동상이 있는 사직구장 앞 광장에는 코로나19로 조심스러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며칠 사이에 많은 야구팬들이 다녀가며 최동원을 추모하는데 동참했다. 간간이 최동원의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1980년대에 선수생활을 보낸 올드스타이고 어느덧 세상을 떠난지 오래 시간이 흘렀건만, 야구팬들의 가슴속에서 최동원은 여전히 살아숨쉬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최동원은 구덕초-경남중고와 연세대를 졸업하고 1981년 실업팀 롯데와 한국전력에서 뛰었고 KBO리그 출범 2년 차 시즌인 1983년 롯데에 입단해 프로에 데뷔했다. 불같은 강속구와 폭포수같은 커브를 앞세워 '무쇠팔'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용틀임'이라고 불리우는 독특한 투구폼, 야구선수로는 보기드문 '금테안경' 패션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최동원의 야구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은 역시 1984년이다. 최동원은 이미 정규리그서 27승13패 6세이브, 탈삼진 223개라는 눈부신 성적으로 MVP에 올랐고, 후기리그 우승팀 자격으로 첫 진출한 한국시리즈에서는 팀이 거둔 4승을 모두 책임지는 영화같은 역투를 펼치며 롯데의 창단 첫 우승을 이끌고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1984년은 초창기 한국프로야구의 명암이 극명하게 드러난 시즌이기도 했다. 당시 롯데는한국시리즈에서 만난 삼성에 전력상 열세라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삼성은 전기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한국시리즈 티켓을 예약해놓은 상황에서 후반기에는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 한국시리즈에서 만만한 상대를 고르기 위하여 특정팀 밀어주기와 고의패배를 기록했다는 분석이 거의 정설처럼 굳어졌다. 에이스 최동원 역시 정규시즌 삼성과의 상대 전적은 2승 4패로 좋지않은 편이었다.

하지만 최동원은 초인같은 역투를 선보이며 모두의 예상을 뒤집고 홀로 한국시리즈의 판도를 뒤흔들었다. 당시 최동원은 한국시리즈 7경기중 5경기에 등판하여 무려 40이닝을 소화하며 4승 1패 투구 평균자책점 1.80 WHIP 1.08를 기록했다. 앞으로 한국시리즈 역사에서 두 번 다시 나오기도 힘들지만, 다시 나와서도 안될 엽기적인 기록이다.

최동원의 84년 한국시리즈 역투는 이후로도 한국프로야구의 선수 혹사 문제를 비판할 때마다 빠짐없이 등장하는 이야기 중 하나다. 당시 롯데의 마운드는 최동원 이외에는 믿을만한 투수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는데, 강병철 롯데 감독은 이미 한국시리즈를 준비하면서 최동원에게 4경기 이상 등판을 계획해놓은 상태였다. 혹사와 선수관리의 개념 자체가 없었던 1980년대 프로야구 기준으로도 비정상적인 등판이었다.

오죽했으면 7차전을 앞두고 강병철 감독도 미안해하며 "동원아, 우짜노 여까지 왔는데"(어떡하니, 여기까지 왔는데)라며 등판을 부탁하자 최동원이 "알았심더. 함 해 보입시더"(알았습니다. 한번 해봅시다)라고 답변했다는 일화는 지금도 전설로 회자된다. 결국 최동원은 끝까지 빛나는 호투로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롯데가 우승한게 아니라 최동원이 우승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전설의 맞짱'으로 불리우는 라이벌 선동열과의 대결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명장면이다. 최동원과 선동열은 총 3번 만나 정확히 1승1무1패로 우열을 가리지 못했다. 1986년 4월 18일 첫 대결에서는 선동열이 1-0으로 완봉승을 거뒀고, 그해 8월 19일에는 최동원이 2-0 완봉승으로 설욕에 성공했다.

특히 1987년 5월 16일 사직에서 벌어진 롯데-해태전은 두 사람의 마지막 맞대결이자 역대 최고의 투수전으로 꼽힌다. 그날 두 에이스는 나란히 15회까지 완투했고, 경기시간 약 5시간에 이르는 대혈투 끝에 2-2 무승부를 기록했다. 15회까지 선동열은 56명의 타자를 상대로 232개의 공을, 최동원은 60명의 타자를 상대로 209개의 공을 던진 것으로 집계됐다. 말그대로 영화같았던 명승부는 2011년 영화 <퍼펙트게임>을 통하여 재현되기도 했다. 당시 조승우가 최동원, 양동근이 선동열 역을 맡아 화제가 됐다.

최동원의 야구인생을 바꾼 또다른 결정적인 순간은 프로야구 선수협 창설을 주도했다가 트레이드된 사건이다. 최동원은 당시 선수들의 열악한 훈련 환경과 복지 상태를 보며 심각성을 느끼고 선수들을 위한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당시 한국사회는 노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지금보다 훨씬 열악했고, 노조를 추진한다는 것은 곧 기업구단들로부터 '공공의 적'을 자처하겠다는 의미나 마찬가지였다. 이미 부와 명예가 보장되었던 스타 선수였던 최동원이 굳이 앞장서서 총대를 매야 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최동원은 자신에게 닥쳐올 시련을 충분히 알고서도 멈추지 않았다. 자신보다 낮은 연봉과 열악한 복지에 시달리는 동료와 후배들을 위하여 어려운 싸움에 뛰어들었다. 결국 구단들의 집요한 반대와 탄압으로 선수협 출범은 무산되었고 이 과정에서 미운털이 박힌 최동원은 1988년 말 롯데에서 삼성 라이온즈로 트레이드됐고, 2년 뒤 현역 유니폼을 벗었다.그러나 12년뒤 송진우-양준혁 등 후배들에 의하여 결국 선수협이 출범하는데 성공하며 먼저 씨앗을 뿌렸던 최동원의 희생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사실 최동원은 혹사 논란이 벌어진 84 한국시리즈 우승 이후 이듬해에도 20승을 올리는 등 수년간 당대 최고의 에이스로 마운드를 호령했다. 하지만 선수협 파문과 트레이드의 후유증이 컸는지 급격한 침체기로 접어들여 일찍 선수생활을 마감해야했다. 당시 최동원의 나이는 불과 31세, 지금보다 선수생명이 훨씬 짧았던 시절이기는 했지만 한 시대의 호령했던 대투수의 허무한 결말은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최동원이 프로무대에서 활약한 기간은 불과 8시즌에 지나지않아 누적기록에서는 라이벌 선동열에 뒤지지만 그래도 통산 103승 74패 26세이브, 방어율 2.46, 탈삼진 1019개를 돌파했을만큼 뛰어난 성적을 남겼다. 아마추어 시절부터 누적된 어마어마한 혹사와 선수협 파문으로 인한 트레이드같은 외부 악재가 없었다면 더 훌륭한 성적을 올릴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남는다.

최동원은 은퇴 후 한화 2군 감독을 맡는등 지도자는 물론이고 방송 해설가, KBO 경기운영위원, 방송출연에 이르기까지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제2의 인생을 이어왔으나. 2011년 대장암으로 투병 중 향년 53세로 별세하며 야구 팬들을 놀라게 했다. 마지막으로 공식행사에 모습을 비쳤던 프로야구 레전드 매치에서 병색이 완연했던 최동원의 마지막 모습은 팬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당시 최동원은 투병 중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싶어하지 않았고, 그의 병환을 이미 알고있던 기자들도 본인의 부탁을 존중하여 최대한 보도를 자제했다고 한다. 생전에 최동원과 애증의 관계였던 롯데 구단은 최동원이 세상을 떠난 이후에야 뒤늦게 고인의 현역 시절 등번호를 영구결번으로 지정하는 등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다. 최동원은 투병 중에도 그라운드에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열망을 드러냈고, 눈을 감는 마지막 순간에도 야구공을 손에 쥐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질만큼 평생을 진정한 야구인으로 남았다.

오늘날 막대한 부와 명예를 누리는 프로야구 선수들이 연이은 사회적 일탈과 도덕불감증으로 지탄을 받는 모습과, 귀족 선수들의 이익단체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는 선수협의 현재를 바라보면서 '최동원 정신'의 가치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최동원이 단지 '야구만 잘하는 선수'였다면 오랜 세월이 흘러서 아직까지도 많은 팬들의 기억 속에 살아있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최동원은 한 시대를 풍미한 불세출의 재능 이상으로 포기하지않는 근성과 투철한 승부욕을 보여주며 프로다움의 롤모델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선수였다. 또한 그라운드 밖에서도 깨끗한 사생활과 함께 스타 선수로서의 사회적 책임감까지 생각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행동으로 실천했던 인물이다. 최동원이 남긴 가치가 지금까지도 야구 팬들과 후배 야구인들의 마음에 남아 존경을 받고 있는 이유다.

2011년 7월 공식석상에서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최동원의 남긴 어록은 지금도 회자되며 야구계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별은 하늘에만 떠있는다고 별이 아니에요. 누군가에게 길을 밝혀주고, 꿈이 돼줘야 그게 진짜 별이에요. 이젠 그냥 '최동원'이란 이름 석 자가 빛나는 별이 아니라, 젊었을 때 나처럼 별을 쫓는 사람들에게 길을 밝혀주는, 그런 별이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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