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9월 tvN에서 방송된 드라마 <청춘기록>은 고군분투하는 20대 청년들의 일과 사랑을 담은 작품으로 박보검의 입대 전 마지막 드라마로 더욱 화제를 모았다. <청춘기록>에서 메이크업 아티스트인 주인공 안정하(박소담 분)는 좀처럼 일이 풀리지 않는 무명모델 사혜준(박보검 분)을 남몰래 좋아한다. 패션쇼 현장에서 만난 두 사람은 나이가 같아 자연스레 친구가 되면서 가까워지고 결국 연인 사이로 발전한다.

하지만 <청춘기록>같은 이야기가 가능한 이유는 두 사람이 모델과 메이크업 아티스트라는 직업적인 접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게다가 사혜준이 개인 메이크업 스태프를 데리고 다니는 톱스타가 아닌 '생계형' 무명모델이었기 때문에 안정하와 인연이 닿을 수 있었다. 이처럼 연예인과 그를 좋아했던 팬이 연인 사이로 발전하는 것은 제아무리 드라마라도 결코 흔하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연예인에 무관심한 일부 사람을 제외하면 누구나 좋아하는 연예인과의 운명적인 만남과 사랑을 한 번쯤 상상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상상은 언제나 상상으로 끝날 뿐 대부분은 좋아하는 연예인과 대화를 나눠보기는커녕 그를 먼 발치에서 바라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줄리아 로버츠와 휴 그랜트가 출연한 워킹 타이틀의 로맨틱 코미디 <노팅 힐>에서는 좋아하는 스타와의 사랑이 이루어지며 대중들의 로망을 채워준다.
 
 <노팅 힐>은 국내에서도 서울에서만 34만 관객을 동원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노팅 힐>은 국내에서도 서울에서만 34만 관객을 동원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 유니버설 픽쳐스

 
90년대 지배했던 '아메리칸 스윗 하트'

1967년 조지아주에서 태어난 줄리아 로버츠는 1989년 <칠목련>을 통해 골든글러브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며 주목 받았다. 그리고 줄리아 로버츠는 이듬 해 리처드 기어와 함께 <귀여운 여인>에 출연하며 배우인생의 커다란 전환점을 맞게 된다. 14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든 <귀여운 여인>은 세계적으로 4억6300만 달러라는 엄청난 수익을 올렸고 줄리아 로버츠는 단숨에 할리우드의 슈퍼스타로 떠올랐다.

줄리아 로버츠는 90년대 초반 <적과의 동침>, <사랑을 위하여>, <후크>, <펠리칸 브리프>에 차례로 출연하며 할리우드 최고의 여성배우로 군림했다. 하지만 90년대 중반 몇몇 영화가 실망스러운 흥행을 기록하는 사이 산드라 블록, 카메론 디아즈 같은 신예들이 급부상하면서 짧은 슬럼프에 빠졌다. 하지만 줄리아 로버츠는 1997년 카메론 디아즈와 함께 출연한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이 세계적으로 3억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하며 재기에 성공했다.

그렇게 90년대를 대표하는 여성 배우로 군림하던 줄리아 로버츠는 1999년 영국의 제작사 워킹 타이틀의 영화 <노팅 힐>에 출연하며 정점을 찍었다. 할리우드 스타 애나 스콧 역을 맡아 영국의 '멜로 왕자' 휴 그랜트와 호흡을 맞춘 줄리아 로버츠는 특유의 사랑스런 매력을 발산하며 많은 관객들을 열광시켰다. <노팅 힐>은 세계적으로 3억63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했고 줄리아 로버츠는 자신의 티켓파워를 재확인했다.

줄리아 로버츠는 2000년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에린 브로코비치>를 통해 2001년 미국과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골든글러브 시상식을 비롯해 무려 8개의 크고 작은 영화제에서 여우 주연상을 휩쓸었다. <에린 브로코비치>에서 여성 배우 최초로 출연료 2000만 딜러를 돌파했던 줄리아 로버츠는 2003년 <모나리자 스마일>에서는 2500만 달러의 출연료를 받으며 당대 최고의 여성배우 자리를 지켰다.

줄리아 로버츠는 2010년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이후 2013년 <어거스트: 가족의 초상>, 2016년 <마더스 데이> 등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2017년 <원더>를 통해 세계적으로 3억 달러의 흥행성적을 올리며 건재를 과시했다. 2019년 드라마 <홈커밍> 시즌1에 출연했던 줄리아 로버츠는 올해 20여 년 만에 워킹 타이틀과 손을 잡고 신작 <티켓 투 파라다이스>를 준비하고 있다.

유머·감동·음악... <노팅 힐>에 다 있다
 
 줄리아 로버츠는 <노팅 힐>의 다음 작품이었던 <에린 브로코비치>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줄리아 로버츠는 <노팅 힐>의 다음 작품이었던 <에린 브로코비치>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 유니버설 픽쳐스

 
1983년에 설립된 영국의 영화제작사 워킹 타이틀은 '로맨틱코미디 맛집'으로 유명하다. 물론 <파고>와 <빌리 엘리어트>, <오만과 편견>, <레미제라블> 같은 다양한 장르를 시도했지만 관객들의 뇌리에 깊이 박힌 작품들은 역시 <프렌치 키스>와 <브리짓 존스> 시리즈, <러브 액츄얼리>, <어바웃 타임> 등으로 대표되는 로맨틱 코미디 명작들이다. 특히 휴 그랜트는 워킹 타이틀의 로맨틱 코미디와 함께 성장한 배우라고 할 수 있다.

<노팅 힐>은 런던의 '노팅 힐'에서 작은 여행서적 전문서점을 운영하는 윌리엄 태커(휴 그랜트 분)가 일을 하고 있을 때 할리우드의 인기스타 애나 스콧(줄리아 로버츠 분)이 서점에 찾아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리고 여느 로맨스 영화들처럼 윌리엄은 오렌지 쥬스를 애나의 옷에 쏟는 실수를 저지르고 애나는 어쩔 수 없이 윌리엄의 집에서 옷을 갈아입게 된다. 그리고 애나는 윌리엄과 헤어지기 직전 갑작스러운 키스를 통해 윌리엄의 마음을 흔든다.

애나는 매니저의 눈을 피해 윌리엄 여동생의 생일파티에 참석하게 되고 그곳에서 케이크 한 조각이 걸린 '불행배틀 게임'에 참가한다. 애나는 이 자리에서 "내가 상처받을 때마다 신문은 신나게 떠들어요. 얼마 후면 내 아름다움은 시들고 인기도 한물 가고 그럼 난 퇴물배우로 사람들 뇌리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리겠죠"라고 고백한다. 줄리아 로버츠는 이 장면에서 마치 본인의 고민을 고백하듯 뛰어난 몰입도를 선보인다.

애나가 미국으로 떠나기 전 기자회견장에서 윌리엄이 건네는 고백 장면 역시 많은 관객들을 감탄하게 만든 명장면이다. 기자회견장에서 '경마와 사냥' 기자 행세를 하며 질문기회를 얻은 윌리엄은 애나에게 "만약 대커씨가 자기 실수를 깨닫고 싹싹 빌면서 무릎을 꿇고 생각을 돌려 달라고 애원한다면 받아들일 건가요?"라고 묻는다. 애나의 대답은 당연히 "네"였고 이어 영국에 언제까지 머물 거냐는 다른 기자의 질문에는 "영원히요"라고 답한다.

<노팅 힐>은 영화도 크게 히트했지만 이에 못지 않게 OST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특히 프랑스 국민 가수 샤를 아즈나브르가 1974년에 발표한 노래를 엘비스 코스텔로가 리메이크한 < She >는 역대 가장 유명한 로맨스 영화 OST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 She >는 줄리아 로버츠가 처음 등장하는 오프닝 장면과 두 사람이 사랑을 확인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배경음악으로 깔리며 영화의 감동을 극대화했다.

<노팅 힐> 빛낸 윌리엄의 친구와 가족들
 
 <노팅 힐>의 씬 스틸러 리스 이판은 웨일스의 록밴드 슈퍼 퍼리 애니멀즈 보컬 출신이다.

<노팅 힐>의 씬 스틸러 리스 이판은 웨일스의 록밴드 슈퍼 퍼리 애니멀즈 보컬 출신이다. ⓒ 유니버설 픽쳐스

 
휴 그랜트는 워킹 타이틀과 함께 한 대부분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서 사람 좋고 서글서글한 성격을 가진 인물을 연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항상 그의 주변에는 친구가 많은 편이다. <노팅 힐>에서도 애나 주변에는 매니저와 못된 남자친구 제프(알렉 볼드윈 분) 뿐이지만 윌리엄 주변에는 항상 많은 친구들이 있다(물론 윌리엄 역시 인간관계가 넓은 편은 아니라서 만나는 친구들은 한정돼 있다).

관객들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윌리엄의 친구는 단연 리스 이판이 연기한 스파이크였다. 괴짜 같은 성격과 외모를 가진 스파이크는 돌출행동으로 윌리엄을 자주 공경에 빠트리지만 결정적인 순간 뜻 밖의 기억력으로 윌리엄에게 큰 도움을 주기도 한다. 록밴드 보컬 출신의 리스 이판은 대중적으로 크게 알려진 배우는 아니지만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이나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 같은 대작 영화에도 출연했다.

신학을 전공하다가 극단활동을 하며 전업배우가 된 휴 보네빌은 주식 중개인으로 생활하는 윌리엄의 친구 버니 역을 맡았다. 모든 관심이 자신의 일에만 쏠려 있어 할리우드의 대스타인 애나 스콧도 한 번에 알아보지 못했다. 2001년 <아이리스>로 베를린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보네빌은 영국의 인기드라마 <다운튼 애비>에서 그랜섬 백작을 연기하며 2012년과 2013년 에미상 시상식에서 2년 연속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버니가 애나를 한 번에 알아보지 못해 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들었다면 윌리엄의 여동생 허니는 애나를 보고 심할 정도로 유난을 떨어 오빠 윌리엄을 난감하게 했다. 떨어진 과일만 먹는 친환경주의자인 허니는 스파이크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윌리엄의 괴짜 여동생 허니를 연기했던 배우 엠바 챔버스는 지난 2018년 만5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휴 그랜트는 자신의 SNS를 통해 챔버스에 대한 애도의 메시지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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