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사극 <홍천기>에는 도화서에 속하지 않은 일반 화가들이 많이 등장한다. 시장에서 그림을 판매하는 화가도 나오고, 화단에 속한 상태에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도 나온다. 주인공 홍천기(김유정 분)처럼 원작과 똑같은 모작 그림을 그려 생계를 이어가는 화가도 나온다.
 
옛날 화가 하면 흔히 도화서(도화원) 같은 데서 그림을 그리는 화원을 떠올린다. 그렇지 않으면 성리학을 공부하면서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사대부 화가를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그런 화가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도화서 화가나 사대부 화가가 아니면서도 작품 활동을 업으로 삼는 예술가들도 적지 않았다. 이에 관한 언급이 음력으로 중종 28년 7월 13일자(양력 1533년 8월 3일자) <중종실록>에 나온다. 이날 중종 임금이 승정원에 보낸 왕명 중에 "화원은 도화서에만 있는 게 아니라 사화원(私畵員) 역시 많이 있다"는 대목이 있다.
 
'개인'이나 '사사로움'을 뜻하는 한자 사(私)는 과거에는 상당히 부정적인 의미를 띠었다. 국가 공적 영역의 바깥을 가리킬 때 이 글자를 많이 썼다. 이 글자는 민간을 뜻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불법을 가리키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사통(私通)이란 단어가 부정적 느낌을 풍기는 것도 그 때문이다. 현대인의 한자 감각대로라면 사통은 '개인적 교제'를 의미해야 하지만 옛날 사람들한테 그것은 '불법적 교제'를 뜻했다.
 
중종이 언급한 사화원은 민간 화가를 뜻하는 말이었지만, 이 말을 입에 담는 순간의 중종은 불법의 뉘앙스를 떠올렸을 수도 있다. 범죄를 저지른 민간 화가들에 관해 언급하던 도중에 사화원이란 말이 나왔기 때문이다.
 
 SBS 드라마 <홍천기>

SBS 드라마 <홍천기> ⓒ SBS

 
중종이 이 문제를 언급하게 된 발단은 전라도관찰사의 계본(啓本, 보고서)이었다. 도화서 화원을 사칭한 화가들이 브로커들과 함께 거상 및 부자들을 상대로 세자궁에서 제작됐다는 그림을 팔고 다닌다는 보고였다. 사건의 실상이 승정원에 보낸 중종의 왕명에 아래와 같이 담겨 있다. 위 날짜 <중종실록>에 수록된 내용이다. 괄호 속의 한글은 원문 옆에 병기된 주석이다.
 
지금 전라도관찰사의 계본을 살펴보니, 정회석(동궁별감 사칭)이라고 불리는 사람, 화원 김수영·김귀형, 양양 관노 원손, 승려 조희·사인 등이 불탱을 만들어 갖고 부상대고(富商大賈)와 어울리며 여염집에 출입하고 백성을 기만하고 대중을 유혹하면서 동궁에서 나온 것이라고 사칭하고 다닌다고 한다.
 
도화서 화가 및 동궁별감 등을 사칭하면서 세자궁에서 나왔다는 불교 탱화를 갖고 다니며 거상들을 접촉하는 범죄조직에 관한 글이다. 이 조직은 동궁에서 나온 불화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동궁별감·화원·승려에다가 내시까지 세팅했다. 드라마 속의 홍천기 같은 모작 화가가 낀 사기 조직이었던 것이다. 조사해보니, 그들의 신원은 전부 다 가짜였다.

민간 화가와 민간 경제력의 상관관계
 
이 사례에서도 나타나듯이 도화서 화원이나 사대부 화원이 아닌 여타의 민간 화가들도 적지 않았다. 이들이 많은 수를 이루며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민간의 그림 수요 역시 왕실 및 관청의 수요만큼이나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들의 작품을 구매해줄 수 있는 경제력이 민간에도 충분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사극 속의 옛날 사회는 꽤 단순하게 보이지만, 국가권력도 파악하지 못할 정도의 막강한 경제력이 옛날에도 당연히 존재했다. 이런 경제력이 직업 화가들을 부양하는 밑바탕이 됐다고 말할 수 있다.
 
오늘날보다 산업구조가 단순했으므로 국가권력이 민간 경제력을 파악하기 쉬웠을 것처럼 생각될 수도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교통·통신의 한계가 있는 데다가 유급 공무원 숫자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국가권력이 나라 전체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관청에서 일하는 하급 서리의 상당부분이 관노비들이고 이들이 원칙상 무보수로 일했으며 그 때문에 이들을 관리하기가 어려웠던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조선왕조를 포함한 옛날 국가들의 행정능력은 상당한 한계를 띠고 있었다.
 
그런 사례 중 하나를 음력으로 세조 13년 7월 4일자(양력 1467년 8월 3일자) <세조실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조정은 '함길도(함경도) 국경 방어를 위해 쌀 50석(100가마)를 헌납하고 이를 자기 비용으로 국경까지 운반해주는 노비에게 면천 특혜를 제공한다'는 정책을 실시했다. 국가의 역량으로는 함길도 같은 최전방에 군량미를 공급할 여력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가장 보편적인 노동력인 노비의 숫자가 줄어들면, 지주를 비롯한 사용자들의 반발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반발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데도 그 같은 정책을 실시한 것은, 쌀 50석과 운반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노비가 많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소수의 부유한 노비들한테서 군량미 지원을 받아낼 생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조정은 불과 2개월 만에 정책을 취소해야 했다. 뜻밖에도 너무 많은 수의 노비들이 쌀 50석을 내놓는 바람에, 도리어 과도한 노비 면천과 급격한 노동력 감소를 우려해야 할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런 예에서도 나타나듯이, 국가권력이 파악하지 못하는 경제력도 상당했다. 일반 양인(자유인)들뿐 아니라 노비들 중에도 의외로 갑부가 많았다. 이랬기 때문에 화원들의 작품을 감상하고 구매해줄 수 있는 경제력이 민간에도 충분히 존재했다. 중종이 언급한 사화원들의 존재는 이 같은 민간 경제력을 배경으로 하는 것이었다.
 
 SBS 드라마 <홍천기>.

SBS 드라마 <홍천기>. ⓒ SBS

 
불교 사찰에도 미친 파급력
 
그런 경제력이 불교 사찰에도 있었다. 불교계 역시 민간 미술을 지탱해주는 핵심 분야였다. 1994년 <미술사 연구> 제8호에 게재된 미술사학자 안귀숙의 논문 '조선 후기 불화승(佛畵僧)의 계보와 의겸비구(義謙比丘)에 관한 연구(상)'는 "건축이나 범종 같은 공예품들은 일반 사장(私匠, 민간 기술자)들에 의해서도 제작되었던 것에 비해 직접적인 예배의 대상물인 불교 조각이나 불교 회화는 대부분 승려들이 제작하였던 것을 보면, (불교 미술이) 사원에서 얼마만큼 중히 여기는 분야인지는 능히 짐작된다"고 말한다.
 
불교 사찰에서는 신자가 제작한 그림을 공식 의식에 사용했기 때문에, 불교 그림 시장은 비신도 화가한테는 진입 장벽이 높은 곳이었다. 그래서 불교인 출신의 불화 전문가들은 배타적 영역을 확보하기 쉬웠다. 
 
이런 구도는 불교 화가들이 개인이 아니라 조직 차원으로 활동하는 것을 손쉽게 만들었다. 불화 화단(畵壇) 유지에 필요한 조직 비용을 지탱할 수 있는 경제적 수익이 충분했기 때문이다. 위 논문은 이렇게 말한다.
 
조선시대 후기에 들어서도 불화를 그려온 화승들은 중앙의 일반 회화 화단과는 별도로 불교 화단을 형성하였으며, 대체로 산문(山門)을 중심으로 집단체제로서 유파(流派)를 이루어 각 사찰의 불사(佛事)에 초빙되어 방명(芳名)을 드날렸다. 이들은 때로는 불사의 대가로 경제적인 축적도 하여 소속 사찰의 부흥에도 앞장서서 전답을 시주하기도 했다.
 
이 같은 경제적 측면은 불교 화단들이 사립 미술대학의 성격을 띨 수 있도록 하는 데도 기여했다. 다른 화단들도 어느 정도는 그랬던 것처럼, 불화 화단 내에서도 그림 제작 및 판매뿐 아니라 학생 배출 기능까지 함께 수행되는 일이 있었다. 위 논문의 주인공인 의겸의 사례에서도 그런 시스템이 나타난다.
 
"조선 후기 약 250년 동안 뚜렷한 화풍과 유파를 이루었던 많은 화승들 중에서도 독특한 화풍을 전개한 의겸 비구(1713~1757년 활동)는 17세기 말에 태어나 숙종조~영조대에 걸쳐 50년 가까이 지리산 유역을 근거지로 활약하였다"면서 "화사(畵師) 집단을 거느리고 활발한 활동을 하면서 여러 문하생을 배출하였으며, 100여 년 정도 지속되는 의겸파를 형성, 일세를 풍미"했다고 위 논문은 말한다.
 
일부 한국인들은 조선시대를 지나치게 단순하게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양반이 아니면 노비밖에 될 게 없었던 시대로 이해하는 이들도 없지 않다. 하지만 그 시절에도 사회는 어느 정도는 다원화돼 있었고, 자기 꿈을 펼칠 수 있는 무대가 어느 정도는 다양하게 갖춰져 있었다. 드라마 <홍천기>의 주인공처럼 그림에 소질이 있는 사람이라면 도화서 화원이나 사대부 화원이 되지 않더라도 민간 화단에서 교육을 받고 직업 화가로 성장할 기회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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