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극장'에선 처음 또는 다시 볼 만한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세월의 흔적이 묻은 작품부터 아직 국내에 정식으로 소개되지 않은 작품까지 다양하게 다루려고 합니다.[편집자말]
 영화 <캔디맨> 포스터

영화 <캔디맨> 포스터 ⓒ 콜럼비아트라이스타영화(주)한국

 
도시 전설에 관한 논문을 작업 중이던 헬렌(버지니아 매드슨 분)과 버나데트(캐시 레몬스 분)는 우연히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며 캔디맨을 다섯 번 말하면 잘린 오른손에 갈고리를 한 거구의 흑인이 나타나 온몸을 찢어 죽인다는 '캔디맨' 이야기를 듣는다. 자료 조사에 나선 두 사람은 범죄 조직이 장악한 '카브리니 그린'에 사는 주민들이 그곳에서 벌어진 일련의 살인 사건의 범인이 캔디맨이라 믿는다는 걸 알게 된다.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헬렌은 범죄 조직의 공격을 받고 신고를 받은 경찰은 범인들을 일망타진한다. 마음을 놓은 헬렌 앞에 갑자기 전설 속 존재 캔디맨(토니 토드 분)이 나타난다. 정신을 잃었다 깨어난 헬렌은 카브라니 그린에 거주하는 앤 마리(바네사 윌리엄스 분)의 아기를 납치한 범인으로 몰린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도시 괴담(도시 전설)은 그럴싸한 내용으로 포장되어 무수히 떠돌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홍콩으로 가던 할머니가 비행기 사고를 당해 귀신이 되어 하굣길의 초등학생들만 골라 살해한다는 '홍콩할매 괴담'이나 밤에 학교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면 재래식 변기에서 손이 올라와 '빨간 종이를 줄까? 파란 종이를 줄까?'라고 묻는 '화장실 괴담'이 대표적이다. 이런 도시 괴담 속엔 사회의 무의식적인 공포가 반영되어 있다.
 
 영화 <캔디맨>의 한 장면

영화 <캔디맨>의 한 장면 ⓒ 콜럼비아트라이스타영화(주)한국

 
영화 <캔디맨>(1992)은 도시 전설을 소재로 삼은 작품으로 <헬레이저> 시리즈로 알려진 클라이브 바커가 1985년 발표한 단편소설 <더 포비든>에 느슨하게 바탕을 둔다. 그런데 캔디맨 괴담은 새로운 게 아니다. 서구에서 유명한 '블러디 메리 괴담(밤 12시 이후에 혼자 방이나 화장실에서 불을 꺼놓고 눈을 감은 채로 '블러디 메리'를 3번 반복한 후 눈을 떠서 거울을 보면 메리의 형상이 보인다는 내용)'을 그대로 가져왔다. 

소재만 본다면 캔디맨이 나타나 사람들을 마구 죽이는 내용이라 예상하기 쉽다. 그러나 <캔디맨>은 비슷한 시기에 나온 <사탄의 인형3>(1991), <나이트메어6-프레디 죽다>(1991), <팝콘>(1991), <닥터 기글>(1992) 등 여타 슬래셔 영화와 다르다. 연출과 각본을 맡은 버나드 로즈 감독은 극의 무대를 영국의 리버풀에서 미국의 시카고로 옮기고 캔디맨은 백인에서 흑인으로 바꾸었으며 영국의 계급주의에 뿌리를 둔 도시 전설을 가져오되 인종 차별, 사회적 빈곤으로 은유의 범위를 넓히는 등 과감한 각색을 시도했다. 거울 뒤의 구멍을 통해 침입한다는 설정은 실제 사건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캔디맨>은 환상 소설가 클라이브 바커의 작품을 스크린으로 옮긴 영화답게 현실과 꿈을 뒤섞은 화법이 돋보인다. 영화에서 헬렌은 캔디맨을 만난 다음부터 현실과 꿈의 경계가 무너진다. 캔디맨은 실재하는 초자연적 존재일까? 아니면 그녀의 뒤틀린 상상력이 만든 산물인가?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혐오>(1965)의 캐롤(카트린느 드뇌브 분)이 연상되는 정신적 '혼란'이다. 영화에서 캔디맨은 약 15초가량 헬렌 없이 화면에 나타나는데 이것을 편집했다면 한층 더 영화의 모호함이 더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남긴다.
 
 영화 <캔디맨>의 한 장면

영화 <캔디맨>의 한 장면 ⓒ 콜럼비아트라이스타영화(주)한국

 
캔디맨은 <텍사스 전기톱 학살> 시리즈의 레더 페이스, <나이트 메어> 시리즈의 프레디 크루거, <할로윈> 시리즈의 마이클 마이어스, <13일의 금요일> 시리즈의 제이슨 부히스 같은 피에 굶주린 살인마가 아니다. 백인 여성을 사랑한 흑인 남성이란 인종적 차이로 인해 잔인하게 희생당한 후 불멸의 존재가 된 캔디맨의 전설은 그가 백인 여성인 헬렌을 사랑하는 모습은 브람 스토커의 소설 <드라큘라>에 가깝다. 말하자면 공포 소설과 로맨스가 결합한 고딕 소설에 뿌리를 둔 셈이다. 

현대 미국의 도시를 배경으로 한 고딕풍 내러티브 속에서 중후한 저음과 우아한 몸짓으로 노래하는 바리톤 같은 캔디맨은 매혹적이다. "나만의 <오페라의 유령>을 찾고 싶었다"는 버나드 로즈 감독의 설명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한손에 남성의 성기를 떠올리게 날카로운 갈고리를 하고 안에 벌떼를 숨긴 캔디맨의 외모도 강렬하다. 토니 토드의 멋진 연기와 근사한 음색은 캔디맨을 무서우면서 동시에 매력적인 존재로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

한편으로 캔디맨은 인종 차별, 사회적 빈곤을 은유한다. 영화 초반부에 헬렌은 카브리니 그린에 사는 사람들을 향해 "한 지역 사회 전체가 일상의 공포를 전설적 존재 탓으로 돌리고 있어"라고 말한다. 시카고의 부유하고 안전한 곳에서 살던 백인 여성 헬렌은 가난하고 치안이 불안정한 카브리니 그린에 갔다가 캔디맨으로 인해 흑인이 겪는 불안과 부당함을 경험하게 된다. 앤 마리의 "모두 두려워해요. (캔디맨이) 이 벽을 뚫고 들어올 수도 있잖아요"란 대사는 무척 상징적이다. '캔디맨' 자리에 '범죄 조직'이나 '백인 경찰'을 대신 집어넣어면 현실과 들어맞는다. 
 
 영화 <캔디맨>의 한 장면

영화 <캔디맨>의 한 장면 ⓒ 콜럼비아트라이스타영화(주)한국

 
영화 후반부에 이르러 헬렌의 말은 백인들의 위선을 꼬집는 의미로 돌아온다. 백인들의 죄책감을 상징하는 캔디맨의 공포를 떨쳐내고 더는 잘못을 캔디맨 탓으로 돌리지 않을 때 비로소 흑인들은 마음을 열게 된다. 그렇게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백인과 흑인의 화해 가능성을 엿본다. 하지만, 현실을 달랐다. 정부는 범죄율이 높다는 이유를 들어 카브리니 그린의 철거를 결정해 2011년에 완료되었다고 한다. 영화에서 캔디맨의 죽음을 묻어버렸던 것처럼 카브리니 그린은 사라졌다.

<캔디맨>은 고딕 소설과 슬래셔가 근사하고 세련되게 결합한 작품이다. 현대 공포 영화의 고전 반열에 올려도 부족함이 없다. 또한, 유색 인종을 대상으로 한 이야기에 유색 인종 악당 캐릭터가 등장한 최초의 공포 영화이기도 하다. <겟 아웃>(2017), <어스>(2019)를 연출한 조던 필 감독은 13살 무렵 <캔디맨>을 보고 흑인 프레디 크루거나 흑인 제이슨 부하스가 없던 시절에 이런 작품이 나와 "획기적이었다"고 기억한다. 

조던 필은 백인 감독이 연출과 각본을 맡아 백인의 시각으로 유색 인종을 바라본 점이 아쉬웠던 모양인지 오는 22일 개봉 예정인 새로운 <캔디맨>에선 자신이 제작, 각본을 담당하고 <두 여자>(2018)를 연출한 바 있는 흑인 여성 감독 니아 다코스타에게 메가폰을 맡겼다. 주연 배우도 흑인인 야히아 압둘 마틴 2세다.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이 벌어졌던 트럼프의 시간을 지난 지금이야말로 '캔디맨' 이야기를 들려주기에 가장 적당한 타이밍이다. 게다가 토니 토드도 나온다고 하니 더욱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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