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 D.P. 〉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여러 리뷰들이 쏟아져 나오고, 조금 식어가던 넷플릭스의 인기도 덩달아 올라가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급기야 대선 주자들도 자기 입맛에 맞게 〈 D.P. 〉를 언급한다. 드라마를 본 사람들은 저마다 한마디는 꼭 해야 할 것 같고, 안 본 사람들은 봐야만 할 거 같다. 

그중에서도 특히 군대에 갔다 온 예비역들은 이 이야기가 대한민국 군대의 현실을 잘 고발한 드라마라고 이야기한다. 더러는 자기 경험에 기반해 고증이 잘못되었다고, 요즘 군대 저러지 않는다고 드라마를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좀 다른 측면에서 이 드라마를 봤다. 군대 내 가혹행위라든지 사병들이 겪는 현실을 제대로 고발한 드라마라는 평가가 타당하긴 하지만, 군대 고발 드라마로만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 협소한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드라마 〈 D.P. 〉는 군대 내부의 부조리에 대한 이야기면서 동시에 군대 밖에도 만연한 폭력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군대에 대한 드라마? 폭력에 대한 드라마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 D.P. >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 D.P. > ⓒ 넷플릭스

 
이 드라마가 이토록 인기를 끄는 것은 나처럼 군대에 가지 않은/못한 사람들에게도 어필하는 점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군사주의가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 사람들이 겪은 폭력에 대한 다양한 경험과 감각이 이름조차 생소한 DP(탈영병 체포조) 이야기를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로 만든다.

군대는 폭력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장소인 동시에 한국사회에 내재한 폭력에 대한 은유다. 폭력의 속성과 작동방식을 탁월하게 보여주는데, 폭력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을 이만큼 충실하게 해낸 드라마를 본 적이 없다.  

드라마의 결말로 치닫는 신에서 DP조의 한호열 상병(구교환 분)은 탈영한 조석봉 일병을 설득한다. 함께 바꿔나가자고. 하지만 조석봉 일병은 이렇게 대답한다.
 
저희 부대에 수통 있지 않습니까. 거기 뭐라고 쓰여 있는지 아십니까? 1953년 6·25 때 쓰던 거라고…. 수통도 안 바뀌는데 무슨.

군대는 과연 절대 변하지 않을까? 단순한 수치만을 비교하자면 변했다고 할 수도 있다. 2011년에는 군기사고로 101명이 목숨을 잃었고 그 가운데 자살 사건이 97건이었는데, 이 숫자는 점차 줄어들어 2020년에는 44명이 군기사고로 목숨을 잃었고 그 가운데 자살은 42명이었다(출처 : e-나라지표).

겉으로 드러난 수치는 줄어들었지만 폭력이라는 본질이 바뀌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현실에서 너무 쉽게 찾을 수 있다. 당장 최근 연달아 드러나는 군대 내 여군에 대한 성폭력 사건들, 그리고 해결이 요원해 보이는 사이 피해 여군들의 극단적인 선택이 반복해서 일어나는 것은 군대 내 폭력의 본질이 여전히 바뀌지 않았음을 깨닫게 한다. 

< D.P. >의 군대 내 부조리한 장면은 폭력이 구조의 문제라는 점을 보여준다. 앞서 인용한 조석봉 일병의 대사는 변하지 않는 현실에 대한 은유인데, 변하지 않는 이유는 폭력이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구조이기 때문이다.

< D.P. >원작 웹툰에서 김보통 작가는 주인공 안준호의 입을 통해 "내가 특별히 선해서 탈영병을 쫓는 것이 아닌 것처럼, 탈영병도 특별히 악해서 탈영을 하는 것은 아니다. 차이가 있다면 나에게는 그가 탈영을 결심하게 된 그 상황이, 사건이 찾아오지 않았다는 것. 정도라고, 솔직히 생각한다"고 말한다.

꼭 탈영만이 아니다. 권력이 작동하는 폭력이란 특별히 악한 사람이 저지르는 일상적이지 않은 일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 악한 행동을 해도 괜찮은 분위기를 만드는 힘이다. 그러한 거대한 구조 앞에서 때때로 개인은 무력할 수밖에 없다. 그 구조 안에서 개인이 혼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은 어쩌면 방관자가 되는 일이다. 가해자가 되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는 엄청난 투쟁을 하고 있는 것이지만, 안타깝게도 방관자 또한 폭력의 구조를 떠받드는 적극적인 역할이다.

세계적인 작가이자 화학자인 프리모 레비는 자신의 저서 <이것이 인간인가>에서 방관자들의 책임을 통렬하게 지적한다(이 책은 레비가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제3수용소에서 보낸 10개월간의 체험을 기록한 것이다-기자주).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알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알지 못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해 모른 척하고 싶었기 때문에 알지 못했다. (중략) 나는 이런 고의적인 태만함 때문에 그들이 유죄라고 생각한다.

개인으로서 최선의 노력조차 폭력의 구조의 일부라면, 우리는 더 이상 폭력에 대한 저항을 개인에게만 맡겨서는 안 된다. 폭력이 사회 구조의 문제라면 그것을 푸는 일도 사회적인 일이어야 한다.

군대는 어떻게, 왜 폭력에 대한 면죄부가 되는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 D.P. >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 D.P. > ⓒ 넷플릭스

 
군대 바깥 사회에 만연한 폭력에 대한 은유라고 하더라도, 이 드라마를 보고 군대에 대해서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은 "왜 군대는 다른 사회 조직보다 폭력이 만연한가? 왜 군대에서의 폭력은 쉽게 은폐되고, 평범하고 멀쩡한 사람들까지 폭력에 다양한 방식으로 가담하게 만드는가?"이다.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이유는 위계적인 권력구조다. 폭력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니 수직적이고 위계적인 구조가 폭력이 자라기에 좋은 토양인 것은 틀림없다. 나는 여기에 하나를 더 생각해본다.

폭력이 군대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안보라는 이름으로 치장하고 있지만, 군대가 추구하는 안보는 철저하게 군사적인 수단으로 지키는 안보, 물리적 폭력을 기반으로 작동하는 안보다. 상대방보다 강한 군사력으로 전쟁을 억제하거나, 전쟁이 일어나면 전투를 펼쳐 상대방을 무찌른다. 평화를 위한 폭력을 정당화하는 것이 군대다. 

폭력이 정당성을 얻는 곳, 다시 말해 폭력에 면죄부를 주는 곳이라는 군대 특성상 병사들 간의 폭력이 더 쉽게 발생하는 게 아닐까. 비록 법적으로 면죄부를 받는 것은 국가의 폭력인 공권력이지만, 폭력에 대해 무뎌진 감각이 사병들 개인 관계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자기한테 왜 그랬냐는 조석봉 일병의 질문에 황장수 병장이 "그래도 되는 줄 알았으니까"라고 대답한 것은, 폭력이 괜찮다는 감각의 무의식적인 발로가 아니었을까.

조석봉 일병이 병역거부를 했다면

군대 혹은 병역제도를 둘러싼 논란은 간단하지 않다. 수통을 바꾸는 일처럼 변하지 않았지만 비교적 단순한 문제들과, 폭력을 정당화하는 조직이라는 존재론적인 문제점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이 폭력의 구조가 부당하다는 것은 모두 다 알지만 그것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 과연 군대를 바꿀 수는 있는 것인지 난망하기만 하다. 이 압도적인 무력감 앞에서 뭐라도 하겠다고 마음먹은 개인들이 비극의 주인공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 D.P. >는 말한다.

폭력을 탈출할 수 있는 다른 길이 조석봉에게 있었다면 어땠을까? 가혹행위와 그에 대한 보복은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폭력의 두 얼굴이다. 폭력의 구조를 바꾸지는 못하겠고, 뭐라도 해야 해서 나선 일이 결국은 폭력의 쳇바퀴 안에서 발버둥이었고 결국에는 폭력의 구조를 강화하는 일이었다는 건 너무 슬픈 일이다.

나는 자연스럽게 조석봉이 병역거부를 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나는 폭력의 피해자가 되는 것도 무서웠지만 가해자가 되는 것이 더 두려웠고, 그래서 병역거부를 했다. 그 안에서 폭력의 구조와 맞서 싸워 이길 자신은 없었고, 병역거부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저항이었다.

그로 인해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지만, 적어도 나는 폭력으로부터 나를 지킬 수 있었다. 조석봉 일병의 마음이 무너진 결정적 순간은 어쩌면 끔찍한 가혹행위를 반복적으로 당했던 그 순간보다, 피해자였던 자신이 가해자가 되어 후임병들에게 얼차려를 주던 그 순간이지 않았을까? 폭력에 대해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그였기에 자신에게 가해진 폭력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더 큰 무게로, 폭력의 가해자가 된 자신이 더 견디기 힘들지 않았을까?

한국에서는 아직 현역군인의 병역거부권은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조석봉 일병이 병역거부를 한다면 감옥에 가야겠지만, 그랬다면 그는 끝나지 않는 폭력의 쳇바퀴를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군대에 입대하기 전에 병역거부를 해서 대체복무를 할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탈영할 일도 없었을 테고, 대체복무를 하면서 좋아하는 만화를 계속할 수 있었을 테니까. 

시즌2를 기대하며

군대 안에서 변화를 시도하기 어렵다면 군대 밖에서 변화를 추동할 수도 있다. 대만의 경우 대체복무제가 도입된 이후 군대 내 의문사와 각종 사고가 줄어들었다. 다른 선택지가 생기자 청년들이 다들 대안을 택할까 봐 걱정되었던 군대가 스스로를 개혁했기 때문이다. 폭력의 쳇바퀴에서 탈출하거나 그 구조에 들어가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결국 한국 군대도 스스로 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변화가 폭력이라는 본질 자체를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하루가 멀다 하고 피해자가 양산되는 이 상황에서 꽤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쪼록 드라마를 계기로 터져 나온 많은 말과 생각들이 이대로 사라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워낙 인기가 있다보니 자연스럽게 모두들 시즌2를 기대한다. 나 또한 시즌2를 학수고대한다. 바람이 있다면 시즌2에서는 암울한 현실을 보여주는 것뿐만 아니라, 폭력에 저항하는 이들의 이야기도 들어가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이용석 시민기자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이자 전쟁없는세상 활동가입니다. 이 글은 전쟁없는세상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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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거부를 하면서 평화를 알게 되고, 평화주의자로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출판노동자를 거쳐 다시 평화운동 단체 활동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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