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스포츠 선수들은 경기보다 가족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배우자의 출산을 지켜보기 위해 시즌 중에도 출산휴가를 신청하며, 메이저리그에는 출산휴가를 위해 짧은 기간 대체 선수를 활용할 수 있게 배려하는 차원의 엔트리 제도까지 있을 정도다.

KBO리그에도 외국인 선수들을 통하여 가족들을 위해 경기에서 빠질 수도 있는 문화가 어느 정도 정착됐다. 애런 브룩스(전 KIA 타이거즈)는 지난해 가을 가족들의 교통사고 소식을 알게 되자마자 시즌을 일찍 마감하고 미국으로 출국했다. 올해는 시즌 도중 불미스럽게 팀을 떠나긴 했지만, 가족들이 걱정된 나머지 가족들이 모두 광주로 함께 입국하기도 했다.

최근 추신수(SSG 랜더스)도 배우자 하원미씨의 코로나19 확진 소식에 3명의 자녀들을 챙기기 위해 미국 출국을 준비하다 하원미씨의 만류로 계획을 철회하기도 했다. 하원미씨가 집안 일을 잠시 맡아 줄 사람을 빠르게 구한 뒤 바로 연락하여 추신수를 말렸던 것이다.

LG의 외국인 투수 켈리, 둘째 출산휴가 포기 선언
 
인터뷰하는 LG 케이시 켈리 LG 트윈스 선발 투수 케이시 켈리가 9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전을 마친 뒤 인터뷰하고 있다.

▲ 인터뷰하는 LG 케이시 켈리 LG 트윈스 선발 투수 케이시 켈리가 9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전을 마친 뒤 인터뷰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물론 배우자의 출산이 임박했음에도 불구하고 팀을 위해 출국을 포기한 선수도 있다. 그 주인공은 LG 트윈스의 외국인 투수 케이시 켈리였다. 켈리는 9월 14일 배우자가 둘째(아들)를 출산할 예정인데, 일단 배우자와 딸은 시즌이 끝나기 전에 미리 미국으로 돌아가 출산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켈리는 일단 2021 시즌이 끝나기 전까지는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을 예정이다. 평상시라면 시차 적응을 감안한 출산휴가를 주어 선발 등판을 2차례 정도 거르는 선에서 임시 선발투수를 활용하면 되겠지만, 코로나19라는 변수가 있기 때문이다.

켈리는 아직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지 않았고, 이로 인하여 미국에 다녀올 경우 대한민국에 입국한 뒤 2주 자가격리를 실시해야 한다. 이럴 경우 시즌 순위 경쟁이 가장 중요한 9월과 10월에 격리 후 감각 회복까지 1달 정도의 공백이 생길 수 있다.

문제는 LG의 또 다른 외국인 투수 앤드류 수아레즈가 부상으로 전력을 이탈한 상태이기 때문에 켈리가 자리를 비울 경우 LG의 선발진이 위험해진다. 외국인 투수 없이 토종 선발투수만으로 버텨야 하며 경우에 따라 불펜 데이까지 감수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하여 켈리는 팀의 우승을 위해 남은 시즌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출산휴가를 포기했다. 시즌을 모두 마친 뒤 미국에 돌아가 새로 태어난 아들을 만날 예정이며, 출산을 하게 될 아내를 위한 선물도 따로 준비했다.

LG에 성적으로 헌신하고 있는 켈리

1989년 10월 4일 생의 켈리는 2008 메이저리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30번으로 보스턴 레드삭스에 지명됐다. 원래는 유격수로 마이너리그 수련을 시작했다가 투수로 전향하여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이후 아드리안 곤잘레스(2020 도쿄 올림픽 멕시코 국가대표)와 트레이드되어 앤서니 리조와 함께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로 이적했다. 그러나 켈리는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토미 존 서저리)을 받는 등 풍파를 겪으며 메이저리그에 정착하지 못했다.

이후 2019 시즌부터 켈리는 LG와 계약하면서 KBO리그와 인연을 맺게 됐다. 시즌 첫 해부터 켈리는 퀄리티 스타트 24경기로 공동1위(김광현)를 기록했다. 시즌 14승을 거두며 LG의 포스트 시즌 진출에 기여했고, 와일드 카드 결정전에서도 승리투수가 되면서 시리즈 MVP까지 차지했다.

2020 시즌에도 켈리의 활약은 계속됐다. 시즌 초반에는 자가격리의 여파로 페이스가 좋지 않았으나, 이를 극복하고 완봉승을 포함하여 정규 시즌 15승에 성공했다. 와일드 카드 결정전에서도 7이닝 10탈삼진 2실점의 퀄리티 스타트 플러스를 기록하면서 승패와는 인연이 없었지만, 팀의 연장전 승리를 돕는 데는 충분했다.

켈리의 활약은 올해도 계속되고 있다. 시즌 21경기에 선발로 등판하여 9승 5패 평균 자책점 3.08을 기록하고 있으며, 지난해부터 이어진 48경기 연속 5이닝 이상 투구 기록을 진행하고 있을 정도로 꾸준함도 이어가고 있다. 이 부문에서 이전까지 최고 기록을 이어간 선수는 양현종(현 텍사스 레인저스)이었다.

켈리가 우승에 집중해야 할 상황, 상위권의 순위 경쟁

9월 10일까지 리그 1위 kt 위즈는 101경기 59승 3무 39패(0.602)를, 2위 LG는 98경기 55승 2무 41패(0.573)를 기록하고 있다. 승차는 3경기인데, 3위 삼성 라이온즈가 106경기 57승 4무 45패(0.559)를 기록하며 LG를 한 경기 차이로 추격하고 있다.

상위권도 혼돈이지만 중위권도 혼돈이다. 4위 키움 히어로즈(105경기 54승 1무 50패 0.519)와 8위 롯데 자이언츠(101경기 46승 3무 52패 0.469)까지의 승차가 5경기인데, 이 사이에 5팀이 중위권 경쟁을 치르고 있을 정도다. 상위권도 한순간 미끄러지면 바로 이 중위권 경쟁에 합류해야 한다.

LG는 2019년과 2020년 모두 포스트 시즌에 정규 시즌 4위 성적으로 진출했다. 포스트 시즌의 첫 관문인 와일드 카드 결정전부터 치르면서 다소 불리한 위치에서 포스트 시즌을 시작했고, 결국 준플레이오프에서 상대 팀을 넘지 못했다.

LG는 2019년 준플레이오프에서는 키움 히어로즈에게 패했고, 2020년 준플레이오프에서는 두산 베어스를 넘지 못했다. 공교롭게 두 팀 모두 LG를 상대로 시리즈에서 승리한 뒤 한국 시리즈 준우승까지 차지했던 팀들이다. 두 번 모두 와일드 카드 결정전에 등판했던 켈리를 준플레이오프 3차전이 되어서야 활용할 수 있었다.

계단형 시리즈인 KBO리그 포스트 시즌에서 정규 시즌 성적에 따른 시드 배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LG가 최근 가장 높은 자리에서 포스트 시즌을 시작한 기억은 2013년 정규 시즌 2위로 플레이오프에 직행한 기록이 있으며, 2014년에는 정규 시즌 마지막 날 4위(준플레이오프)에 성공하여 플레이오프까지 진출한 적이 있다.

LG가 한국 시리즈에서 우승한 경험은 1990년과 1994년인데, 이때는 모두 8팀 중 정규 시즌 우승을 차지하여 한국 시리즈에 직행했다. 한국 시리즈에 직행하지 못했을 때 우승까지 차지한 적은 아직 없었다. 2000년에는 매직리그 1위를 차지했지만 토너먼트로 치러진 플레이오프에서 패하면서 한국 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했다.

우승을 노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 LG가 잡을 수 있을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현재 리그 1위는 막내 구단 kt가 달리고 있다. 지난해 NC 다이노스가 한국 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면서 이제 한 번도 우승을 경험하지 못한 팀은 kt만 남았다. 그 kt가 현재 정규 시즌 1위를 달리면서 한국 시리즈 첫 진출에 도전하고 있다.

다만 NC도 한국 시리즈에서 2번째 도전 만에 우승했던 점을 감안하면, kt가 한국 시리즈에 직행하더라도 첫 경험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알 수 없다. kt를 추격하고 있는 LG와 삼성은 한국 시리즈 우승 기록은 있지만 현역 선수들 중에서 경험한 세대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오승환 제외).

게다가 전반기 일정이 1주일 일찍 종료되고 남은 경기들이 순연되었는데, 이로 인해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 일정이 둘 다 5전 3선승제에서 3전 2선승제로 줄어 들었다. 이러한 포스트 시즌 일정 단축도 변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 시리즈에 직행한 정규 시즌 우승 팀은 간혹 경기 감각이 둔해져서 한국 시리즈에서 부진하는 경우도 있었다. 업셋 우승에 성공하는 팀들의 경우 포스트 시즌부터 경기 감각을 꾸준히 좋게 유지하여 우승에 성공한 사례들이었다. 가장 최근인 2018년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가 플레이오프부터 시작하여 한국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 일정이 단축되었고 11월 중순부터 고척 스카이돔에서만 포스트 시즌을 치르기 때문에 이들 팀에게 체력 문제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 수 있다. 좋은 경기 감각을 유지하면서 한국 시리즈까지 팀 분위기를 이어갈 수 있는 장점이 생긴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정규 시즌에서 최대한 높은 순위를 기록하는 것이 한국 시리즈 우승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특히 올해부터는 정규 시즌 우승 팀에게 한국 시리즈 홈 어드밴티지가 5경기(1, 2, 5, 6, 7차전)나 주어지는 만큼 그 영향력이 커진다.

그렇기 때문에 켈리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잠시 미뤄두고 팀의 우승을 위해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는 길을 선택했다. 켈리의 선택이 LG 선수들의 힘을 하나로 모아 우승을 향한 길에 보탬이 될 수 있을지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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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널 브랜더/서양사학자/기자/작가/강사/1987.07.24, O/DKU/가톨릭 청년성서모임/지리/교통/야구분석(MLB,KBO)/산업 여러분야/각종 토론회, 전시회/글쓰기/당류/블로거/커피 1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있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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