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이 레바논의 침대축구를 넘어 값진 첫 승을 챙겼다. 하지만 홈에서 보여준 저조한 결정력과 전술적 유연성의 부재라는 벤투호의 숙제를 다시 한번 확인한 경기이기도 했다.

한국축구대표팀은 7일 수원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A조 2차전에서 후반 15분 터진 권창훈의 결승골에 힘입어 1-0 승리를 거뒀다. 앞서 이라크와의 1차전에서 0-0 무승부를 기록했던 한국은 최종예선 첫 홈 2연전을 1승1무로 마무리했다.

레바논전을 앞두고 한국 대표팀에는 큰 악재가 발생했다. 주장이자 에이스인 손흥민이 갑작스러운 종아리 부상으로 출전 엔트리에서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다. 1차전에서 부진했던 벤투호 부동의 원톱 황의조 역시 이날은 선발이 아닌 벤치에서 대기했다. 한국은 어쩔 수 없이 새로운 조합을 시도하는 게 불가피했다. 벤투 감독은 최전방에 A매치 데뷔전을 치른 조규성을 중심으로 나상호와 황희찬을 스리톱에 배치했다. 중원에는 이동경, 황인범, 이재성, 수비에 홍철, 김민재, 김영권, 이용, 골키퍼는 김승규가 선발로 출전한 4-3-3 포메이션이었다.

경기 분위기는 예상대로 한국이 주도했지만 이번에도 골은 쉽게 터지지 않았다. 한국은 전반 45분 내내 슈팅을 13개를 시도했지만 단 한 골도 넣지 못했다. 유효슈팅이 5개에 불과할만큼 정확성이 부족했고, 그나마 전반 10분 이재성의 헤딩슛, 6분 뒤 황희찬의 왼발슛은 골문으로 향한 슈팅도 레바논의 마타르 골키퍼가 잇달아 선방해냈다.

우려했던 레바논의 침대축구(시간지연행위)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밀집수비로 일관하던 레바논 선수들은 작은 신체접촉에도 걸핏하면 그라운드에 넘어지는 헐리우드 액션을 거듭하며 시간을 흘려보내려고 했다.

벤투 감독은 후반들어 황의조와 권창훈 등을 잇달아 투입하며 공세를 강화했고 교체카드가 적중했다. 권창훈이 교체투입 2분만에 찬스가 돌아왔다. 황희찬이 왼쪽 측면에서 연결한 땅볼 크로스를 쇄도한 권창훈이 왼쪽 골포스트 근처에서 왼발 땅볼슛으로 마무리하며 천금같은 한국의 최종예선 첫 골을 신고했다.

선제골을 내준 이후 다급해진 레바논은 더 이상 침대축구를 펼치지 않았다. 후반 막판 한국은 레바논의 역습에 몇차례 아슬아슬한 장면을 허용하기도 했으나 끝내 실점없이 경기를 마무리했다.

한국은 만일 레바논전마저 비기거나 졌다면 최종예선 행보가 상당히 험난해질 수 있었지만 다행히 레바논을 잡으며 최악은 피했다. 홈 2연전에서 1승1무라는 결과는 충분히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실점을 내주지 않았다는 것과 에이스 손흥민 없이도 경기를 승리로 이끌었다는 부분은 긍정적인 성과다.

벤투호의 전반적인 경기력 자체도 이라크와의 1차전보다는 향상됐다. 2연전의 두 번째 경기이다보니 벤투 감독이 강조하는 빌드업(공격전개) 템포가 빨라졌고, 선수들의 조직력과 적극성도 개선된 모습이었다. 이라크전에서 거의 볼 수 없었던 측면에서의 과감한 돌파와 속도감 있는 공격이 늘어난 것은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하지만 부족한 골결정력과 전술적 다양성의 부재는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한국은 2연전에서 총 35개의 슈팅을 때리고도 단 한골을 넣는 데 그쳤다. 이라크전에서도 15개의 슈팅에 유효슈팅이 5개였고, 레바논전에서는 20개의 슈팅 중 유효슈팅이 7개였다. 벤투 감독 부임 이후 약팀을 상대로 경기를 지배하고도 정작 골은 넣지 못하여 고전하는 패턴이 몇 년째 반복되고 있다. 벤투 감독도 레바논전 승리 이후 "결과는 만족하지만 다득점이 나왔어야 하는 경기"이라고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골결정력은 물론 선수 개인의 문제도 있지만, 공격루트와 선수기용의 유연성이라는 감독의 전술적 문제와도 관련이 깊다. 세계적인 공격수로 성장한 손흥민(A매치 92경기 27골)은 정작 벤투호에서는 22경기 4골에 그치고 있다. 벤투호 최다득점자인 황의조(13골) 역시 월드컵 예선에서는 부진한 모습이다.

황의조와 손흥민이 나란히 벤투호 득점 1,2위일만큼 공격비중이 높은데 정작 이 두 선수 모두 포스트플레이나 몸싸움보다는 스피드를 활용한 역습이나 라인브레이킹에 더 강점이 있는 침투형 공격수들이다. 문제는 아시아에서 한국을 상대하는 팀들이 대부분 라인을 내리고 밀집수비에 치중하는 전략 때문에 상성상 황의조와 손흥민의 장점을 극대화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또다른 옵션으로 공중전에서 차별화된 장점이 있는 장신 공격수 김신욱은, 지난해 부상 이후 폼이 떨어진 데다 소속팀 상하이 선화와의 계약이 만료되며 현재 무적 신분이라 대표팀에 뽑히지 못했다.

벤투 감독은 황의조와 손흥민이 대표팀에서 좀처럼 기대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별다른 플랜B를 제시하지 못했다. 레바논전에서 타깃맨 역할을 할 수 있는 조규성을 투입하고도 그의 장점을 활용하기 위한 전술적 변화는 보이지 않았다. 문전에서의 공격작업은 약속된 세밀한 플레이보다는 선수들의 개인능력에 의존도가 컸다. 교체선수가 투입되어도 공격 숫자를 늘린 투톱 혹은 롱볼 전술같은 포메이션과 스타일의 변화라기보다는, 기존의 퍼즐에 선수만 갈아끼운 것에 가까웠다.

선수단 관리에 대한 문제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손흥민과 황의조, 황희찬 등 유럽파 선수들은 소속팀 일정을 마치고 48시간전에 대표팀에 합류하며 대부분 컨디션이 정상이 아니었다. 벤투 감독은 선수들의 몸상태에 문제가 없다고 자신했지만, 막상 유럽파들은 실전에서 시차적응과 체력에서 확실히 정상이 아닌 모습이었다.

심지어 손흥민은 결국 부상까지 당하며 2차전을 뛰지 못했다. 손흥민은 이미 대표팀 합류직전 소속팀에서 햄스트링 부상을 입었던 상태였고, 이번 종아리 부상도 햄스트링의 여파로 반대쪽 다리에 과부하가 생기면서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잔부상이 거의 없었던 손흥민이 최근 1년 사이에 부상만 4번(햄스트링 3회, 종아리 1회)이나 당했다는 것은 그동안 소속팀과 대표팀을 오가며 누적된 피로로 인한 '혹사 논란'과 별개로 생각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벤투호의 진짜 고비는 지금부터다. 앞으로 부담스러운 중동원정 경기들이 더 많이 남아있는 상태이고 최대 난적 이란은 2연승을 거두며 이번에도 한국의 강력한 대항마가 될 것을 예고했다. 홈 2연전에서 승점 2점을 날린 한국은 다득점에도 실패하며 골득실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기회도 놓쳤다. 보수적이고 경직된 팀운영을 고집하고 있는 벤투 감독의 철학에 변화가 없다면, 한국의 최종예선 행보는 험난할 것으로 보인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