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축구 FC서울이 올해도 감독 잔혹사를 피하지 못했다. 박진섭 감독이 지난 6일 팀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서울 감독직에서 사임했다. 강명원 서울 단장도 박 감독과 함께 동반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서울의 후임 사령탑으로는 안익수 선문대학교 감독이 선임됐다.

박진섭 감독은 지난해 12월 FC서울의 제 13대 사령탑으로 부임했다. 2020시즌 광주FC를 사상 처음으로 파이널A(상위그룹)에 진출시키며 역대 최고 성적인 6위를 달성하여 지도력을 인정받았지만 서울에서는 3년 계약의 첫 시즌도 채우지 못하고 불과 9개월만에 물러난 단명 감독이 되고 말았다. 서울은 올시즌 K리그1에서 6승7무14패(승점 25)로 최하위에 머물고 있었다. 최다실점 2위(36골), 최소득점 4위(27골)로 내용도 좋지 않았다.

지난 5일 홈인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끝난 전북 현대전에서 3-4로 역전패를 당한 이후에는 팀성적에 분노한 서울 서포터들이 현수막 시위를 벌이는 사태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비록 무관중이더라도 홈경기마다 관중석 한 쪽을 채웠던 응원 현수막마저 모두 사라진 것은 싸늘한 팬심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결국 박진섭 감독과 주장 기성용은 성난 팬들 앞에 직접 나서서 고개를 숙여야 했다.

여기서 박 감독은 "성적에 대한 모든 책임은 감독이 지겠다"며 모종의 결심을 암시했고 결국 하루만에 전격 사퇴를 선언했다. 서울 구단이 박 감독의 사의를 수용하고 공백기나 대행체제도 없이 곧바로 안익수 감독을 후임 감독으로 발표한 것은, 이미 내부적으로 감독교체에 대한 논의가 이전부터 진행되고 있었음을 보여준 장면이다. 이로서 서울은 '2021시즌 K리그 감독교체 1호'라는 불명예 기록의 주인공이 됐다.

박 감독의 사임 자체는 이미 시기의 문제일뿐 어느 정도 예상된 결과였다. 프로스포츠에서 성적부진에 대하여 감독이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현재 FC서울의 부진은 단지 감독만의 문제가 결코 아니었다.

K리그 명가를 자부하던 서울은 최근 4시즌간 강등 위기만 3번이나 겪고있는 극심한 롤러코스터를 거듭했다. 2018년에는 11위에 그치며 승강 플레이오프까지 내려간 끝에 간신히 잔류했다. 2019시즌 3위로 잠시 반등했으나 2020시즌은 다시 하위스플릿으로 추락하며 9위로 마감했다. 부활을 기대했던 올시즌도 초반만 반짝했을뿐 리그 12경기 연속 무승에 허덕이는 등 최하위로 추락하여 하위스플릿 추락은 이미 유력하고 이제는 2부 강등을 더 걱정해야 할 처지다.

이 기간 서울은 불과 3년 5개월 사이에 정식 감독 3명에 감독대행 4명이 거쳐가는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 2018년 4월 황선홍 감독의 사임을 시작으로 10월에는 이을용 감독대행이 역시 성적부진으로 물러났다. 서울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최용수 감독이 복귀하여 팀을 승강PO에서 기사회생시켰지만, 2020시즌 팀순위가 11위까지 추락하자 7월을 넘기지 못하고 물러났다.

서울은 후임인 김호영 감독대행(현 광주FC 감독)마저 정식 계약문제로 구단과 갈등을 빚다가 두달만에 돌연 사임하면서, 코치인 박혁순 대행이 급하게 뒤를 물려받았다. 여기에 ACL(아시아챔피언스리그)에서는 다시 지도자 라이선스 문제로 스카우트였던 이원준 대행이 시즌을 마무리하면서 한 시즌에만 사령탑이 세 번이나 바뀌는 '대행의 대행의 대행' 체제라는 웃지 못할 촌극을 빚었다.

황선홍-최용수-박진섭 등은 모두 한국축구를 대표하는 스타 출신 감독들이고 지도자로서도 저마다 상당한 커리어와 리더십을 인정받았던 인물들이다. 또한 최용수와 이을용은 서울 출신의 레전드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들 모두 감독으로서 서울에서 연달아 처참한 실패를 맛봤다. 이들은 모두 서울에서 선수단 장악에 실패했고 세대교체와 체질개선이 절실했던 상황에서 구단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지 못하며 자신의 축구철학을 마음껏 펼치지 못한 것이 실패의 공통적인 원인으로 꼽힌다.

서울은 그동안 구단의 소극적인 투자가 한동안 침체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평가도 있지만 선수단의 면면을 보면 이 정도의 성적을 기록할 전력도 절대 아니다. 서울의 선수단 총연봉 규모는 K리그 양강인 전북-울산 정도에게만 뒤질뿐, 꾸준히 상위권에 해당했던 데다 선수들의 면면은 전-현 A대표팀 출신에서부터 최소한 연령대별 대표팀 경력자들이 대다수다. 또한 지난 1년여간만 놓고 보면 이적시장마다 대형 영입을 단행하며 기성용, 나상호, 팔로세비치, 가브리엘, 지동원, 박정빈 등을 줄줄이 보강했는데도 성적은 오히려 더 추락하고 있다는 게 미스터리다.

하지만 정작 서울에게는 이름값만 그럴듯할뿐 끈끈한 '원 팀'으로서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1승이 절박한 상황에서도 상대팀보다 한발이라도 더 뛰겠다는 부지런한 움직임도, 악착같은 투지도 눈에 띄지 않는다. 서포터들이 현수막에 내건 "사무실(프런트)엔 곰팡이, 풀밭 위엔 베짱이(선수들)"라는 문구는 현재 FC서울 선수들의 경기력이 팬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치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서울이 지난 몇 년간 감독들만 성적부진의 책임을 지고 비난과 불명예를 뒤집어쓸동안 과연 간판 선수들은 팀을 위하여 무엇을 했는지 돌아봐야 할 필요가 있다. 서울의 레전드라는 박주영은 2018년 강등위기때 주전경쟁에서 배제되자 SNS에 불만을 드러내는 듯한 글을 올리며 오히려 팀분위기를 어수선하게 만들었고 황선홍-이을용 감독과 연이어 불화설에 시달렸다. 올 시즌 주장을 맡은 기성용은 학폭 의혹-부동산 논란 등 개인적인 구설수에 휩쓸리며 물의를 일으켰고 부상까지 겹치며 꾸준히 팀에 기여하지 못했다. 서울에는 베테랑은 있지만 정작 팀이 어려울 때 확실한 구심점이 되거나, 선수단의 모범이 되어줄만한 리더는 보이지 않는다.

물론 간간이 좋은 활약을 보여준 경기들도 있지만, 이들은 지난 몇 년간 소속팀에서 한 시즌을 온전히 소화한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로 내구성에 물음표가 붙은지 오래됐다. 이들은 더이상 전력의 상수로 놓고 팀을 꾸리기가 어렵고, 나이를 먹어가며 기량도 점차 하락세에 있는 선수들이다.

서울은 역대 최고의 공격수였던 데얀을 떠나보낸 이후 몇 년간 꾸준히 최전방 스트라이커 수혈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오스마르와 역할이 겹치는 중원에서 기성용을 영입한 것이나, 공격수보다 공격형 미드필더에 가깝고 골결정력도 떨어지는 지동원을 영입한 것은, 팀에 필요한 전력보강이라기보다는 보여주기식의 '패닉 바이'에 가까웠다. 결국 서울은 이름값만 그럴듯할뿐 포지션 불균형이 심각하고 개성도 없는 어정쩡한 스쿼드가 되어버렸다.

공교롭게도 박진섭 감독의 마지막 경기가 되었던 전북전에서 비록 패하기는 했지만 젊은 선수들을 과감하게 기용하여 올시즌 최다인 3골을 넣으며 선전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또한 지난해까지 서울의 사령탑을 지냈던 최용수 감독마저 서울 선수들의 경기에 임하는 자세와 집중력을 공개적으로 질타하여 눈길을 끌기도 했다.

지금 서울에 가장 필요한 것이 선수단의 대대적인 물갈이를 통한 팀문화 쇄신이라는 것을 보여준 장면이다. 팀에 제대로 기여하겠다는 의지도 희생도 보여주지 못하면서 과거의 명성에만 기대고 있는 일부 스타급 선수들부터 과감하게 정리하지 못한다면 서울은 앞으로도 위기를 벗어나기 어려워 보인다.

안익수 신임 감독은 선문대를 이끌고 대학무대를 제패한 것을 제외하면 프로에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부산, 성남에선 중위권에 머물렀고, U-20 대표팀에선 성적 부진 탓에 중도 사퇴하기도 했다. 수비축구에 가까운 철학과 강성 지도자 캐릭터는 그동안 FC서울의 이미지와는 상극에 가깝다. 특히 현 주장 기성용과는 부산 감독 시절 2012년 SNS 설화로 악연을 맺기도 했다.

한편으로 구단의 철학과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안익수 감독을 선임해는 극약처방을 감수해야 할 만큼 현재 서울의 위기가 심각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안익수 감독이 '베짱이' 서울의 체질을 바꾸는 구세주가 될지, 아니면 서울에서 실패한 역대 감독들의 전철을 또다시 밟게 될지 많은 축구팬들이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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