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유정이 주연인 SBS 사극 <홍천기>는 무속 신앙을 기본 배경으로 깔고 있다. 왕실에 고용된 국무라는 무녀가 등장하고, 국무가 임금과 함께 국가 중대사를 논의한다. 이 무녀는 웬만한 조정 대신보다 강력한 권력을 갖고 있는 것처럼 묘사된다.
 
제1회 방송 때는 국무가 주관하는 기우제가 꽤 비중 있게 묘사됐다. 국무는 오랜 가뭄을 해소하고자 두 주인공인 홍천기와 하람(안효섭 분)을 기우제의 희생물로 활용했다. 한편에서는, 기우제가 거행되는 어수선한 틈을 타서, 상왕의 어진 속에 갇혀 있던 마왕이 초상화 밖으로 튀어나오는 대형 사고도 발생했다.
 
무녀가 기우제에 참여하는 장면은 <홍천기> 이외의 사극들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조선은 성리학 사회였다는 관념을 깔고 있는 많은 사극은 무녀가 국가 행사에 참여하는 모습을 웬만해서는 보여주지 않는다.
 
기우제에 등장하는 무녀들
 
 SBS 사극 <홍천기> 중 한 장면.

SBS 사극 <홍천기> 중 한 장면. ⓒ SBS

 
조선이 성리학 사회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성리학의 영향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강력하지 않았다. 성리학을 배운 사람들이 나라를 운영하고 문화 현상을 이끌어간 것은 사실이지만, 무속과 불교 신앙 역시 적지 않은 영향력을 발휘했다. <홍천기>에 묘사된 기우제 같은 경우에도 그랬다. 적어도 광해군 다음의 인조 임금 때까지는 무녀들이 이 행사에서 커다란 비중을 차지했다.
 
무당이 기우제에 참여했음을 보여주는 가장 이른 기록은 <고려사> 현종세가(顯宗世家, 현종 편)다. 현종(재위 1009~1031년)은 강감찬 장군의 귀주대첩(1018년)이 있었을 당시의 주상이다. 음력으로 현종 12년 5월 6일(양력 1021년 6월 18일) 거행된 기우제에 무속인들이 참여했다는 기록이 현종세가에 남아 있다. "남성(南省) 마당에 흙으로 용을 만들고 무당과 박수들을 모아 놓고 비를 빌도록 했다"고 현종세가는 말한다. 6부 중 하나인 예부 마당에 토룡을 만들어 놓고 무속인들이 기우제를 지냈던 것이다.
 
열흘 전인 음력 4월 25일(양력 6월 8일)에도 기우제가 있었다. 이날 기록에는 무당·박수가 참여했다는 내용이 나오지 않는다. 그냥 "비를 빌었다"고만 돼 있다.
 
이는 음력 4월 25일 기우제에 무속인들이 참여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근거가 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음력 4월 25일을 포함한 그 이전 기우제 때도 무속인들이 참여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예부 마당에서 토룡을 만들어놓고 거행된 음력 5월 6일 기우제를 특별히 자세히 묘사하다 보니 무당·박수들이 참여했다는 구체적인 정황까지 서술하게 됐을 수도 있다.
 
비가 내린 것은 음력 5월 6일 기우제로부터 열흘 뒤였다. 양력 6월 28일 비가 내렸다. 비가 많이 내리는 시점에 임박해서 기우제의 효험이 나타났던 것이다.
 
무당이 참여한 기우제 중에서 기록상 가장 늦게 확인되는 것은 인조 때 사례다. 기우제에 관한 기록인 <기우제등록>에 따르면, 1647년에도 무녀들이 이 의식에 참여했다. 임진왜란이 종전된 지 반세기가 흐른 뒤에도 무녀들이 참여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녀와 기우제 사이의 높은 상관관계를 느낄 수 있다.
 
조정의 절박한 심정
 
 SBS 사극 <홍천기> 중 한 장면.

SBS 사극 <홍천기> 중 한 장면. ⓒ SBS

 
오늘날에는 증시 지수나 환율 같은 경제지표가 경기 현황을 알려준다. 이런 지표들은 기업뿐 아니라 청와대에도 민감한 영향을 끼친다. 지표의 급격한 변동은 대통령 지지율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농업경제시대에는 강우량이 그런 지표 중 하나였다. 강우량이 너무 적어서 작황에 영향을 줄 정도가 되면, 소작농들은 물론이고 지주들의 민심도 이반될 가능성이 있었다. 그래서 강우량은 민감한 경제지표였다.
 
어느 시대건 간에, 소득이 크게 줄어들 것 같으면 그 원인이 무엇이든 군주부터 욕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법적으로는 토지 소유자이고 사회적으로는 선비였던 상당수 지주들은 농업 수익이 격감할 것 같으면 임금부터 욕하곤 했다.
 
강우량 '폭락'은 주가 폭락만큼 위험했다. 그래서 군주들은 오늘날의 대통령들처럼 비상대책을 강구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여기에 기우제의 존재 의의가 있었다. 정말로 비가 내려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거행했겠지만, 경제를 걱정하고 백성을 염려한다는 마음을 보여주고자 거행한 측면도 적지 않았다.
 
이를 증명하는 것이 1762년에 작성된 <측우기명>이다. 가뭄이 극심했던 그해에 정조 임금의 지시로 측우기에 새겨진 이 글은, 어떤 마음으로 기우제를 거행하고 어떤 마음으로 이를 지켜봤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해 여름에 큰 가뭄이 들어 기우제를 지냈지만, 효험이 나타나지 않았다. 기다리다 못한 정조는 자신이 직접 기우단에 나갔다. 양산을 들어주는 내관이 옆에 없는 상태에서 그는 온종일 태양 아래서 기도를 올렸다.
 
이 모습이 백성들을 감동시켰다. 측우기명은 "이날 도성 남녀들이 우러러보며 감격했다"며 "심지어 눈물을 흘리며 '성상께서 백성을 위해 이처럼 근심하고 애쓰시니 하늘이 어찌 비를 내리지 않을 것인가'라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고 한 뒤 "비록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백성들이 기뻐하는 모습은 마치 비라도 맞는 모습"이었다고 서술한다. 기우제를 거행한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정조가 한여름에 양산도 없이 온종일 고생해야 했던 데서도 느낄 수 있듯이, 기우제는 민심의 향방을 가를 수 있는 중대 의식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성리학자들의 배척을 받는 무속인들이라도 동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조정의 절박한 심정이었다. 유교가 지배한 조선시대에 무녀들이 기우제에 동원된 데는 이런 이유도 적지 않게 작용했다. 그에 더해, 하늘과 산천에 대한 제사만큼은 무녀들이 더 잘했다는 점 역시 중요한 요인이었다.
 
무녀들, 폭염에 솜옷 입고 머리엔 화로를...
 
 SBS 사극 <홍천기> 중 한 장면.

SBS 사극 <홍천기> 중 한 장면. ⓒ SBS

 
그렇지만 무녀들이 대단한 대우를 받았던 것은 아니다. 불교와 유교가 순차적으로 확산되는 속에서 무녀의 위상은 계속 낮아졌고, 이는 기우제 풍경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무녀들이 참가했음을 알려주는 기우제 기록에서는, 이들이 가뭄에 대한 책임을 지고 벌을 대신 받는 존재처럼 묘사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무녀들이 동원되는 기우제는 폭무도우(曝巫禱雨)의 양상을 띠는 일이 많았다. 그들을 햇볕에 노출시킨 상태에서 비를 빌도록 했던 것이다. 무당에게 신체적 고통을 주는 방식으로 기우제가 거행됐던 것이다. 더 심한 경우에는 뙤약볕에 노출시키는 정도가 아니라, 한여름에 무더위 고통을 배가시키는 일도 있었다.
 
세종 7년 6월 20일자(1425년 7월 5일자) <세종실록>에 따르면, 예조 관청이 "무당을 모아서 비를 빌 때, 매우 무더운 날에 솜옷을 입고 화로를 머리에 이도록 하는 것은 신에게 기도하는 의의에 어긋납니다"라며 이 관행을 폐지하자고 건의하는 일이 있었다. 세종은 즉각 재가했다. 이때까지도 그런 식의 기우제가 용인됐던 것이다.
 
1998년에 <진단학보> 제86호에 실린 최종성 서울대 교수의 논문 '국행(國行) 무당 기우제의 역사적 연구'는 국가가 거행한 무당 기우제가 폭무도우의 형식을 띤 것과 관련해 "폭무도우는 가뭄의 책임을 종교 전문가인 무(巫)에게 묻고 그를 심하게 벌주는 희생의례였으며, 또한 무당의 고통을 해소하는 차원에서 하늘이 연민을 느껴 비를 내려줄 것이라는 기대를 전제하고 무당에게 극한적인 고통을 가하는 주술의례였던 것"이라고 설명한다.
 
정조가 온종일 양산도 없이 기우제를 지내자 백성들은 울며 감복했다. 무당들은 그보다 훨씬 힘든 방식으로 훨씬 오래도록 기우제를 지냈지만, 이들의 고통은 오랜 세월 용인됐다. 한민족의 기우제를 위해 무녀들이 얼마나 많은 희생을 감내해야 했는지를 느낄 수 있다.
 
드라마 <홍천기> 제1회에서는 무녀들이 일반 관원들보다 다소 우세한 입장에서 기우제를 거행했다. 또 무녀가 아닌 일반 아이들이 희생물처럼 활용됐다. 하지만, 고려시대는 물론이고 조선시대에도 기우제는 무녀들의 고통을 전제로 거행되는 의식이었다.
홍천기 기우제 무녀 무속 샤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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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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