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가디슈 > 중

< 모가디슈 > 중 ⓒ 롯데엔터테인먼트

 
한국 영화 애호가들의 '주적'이 있다면 무엇일까? 첫 번째로는 '국뽕(국수주의)'을 뽑겠다. 더 이상 관객들은 영화를 통해 애국심을 충전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도쿄 올림픽에서도 시청자들이 열광했던 것은 '국위선양'이 아니라 서사였다. 오히려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고,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의 모습에 열광했다. 메달을 목에 걸지 못했으나, 여자 배구 대표팀이나 육상 우상혁 선수에 대한 환호가 어땠는지를 기억해보자.
 
두 번째는 '신파' 다. 물론 가족애, 비극적인 사랑, 시대적 고통을 이야기하는 데에 있어 신파를 완전히 배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자연스러움은 챙겨야 한다. 오늘날의 관객들은 캐릭터에게 세상의 모든 불행을 집중시키는 신파, '울게 만들겠다'라는 의도성이 눈에 띄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설령 '천만 영화'라 해도, 이 두 요소를 모두 갖춘 작품들은 조소와 비난의 대상이 되곤 한다. 
 
류승완 감독이 연출한 <모가디슈>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7월 28일 개봉한 <모가디슈>는 개봉 33일 만에 마블의 <블랙 위도우>를 제치고 손익분기점인 300만 관객을 돌파했으며, 올해 국내 최고의 흥행작으로 우뚝 섰다. 팬데믹 이후 국내 개봉한 영화 중에서는 세 번째 300만 영화다.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상황에서의 300만 관객은 평시의 1000만 관객 못지 않은 의미를 지닌다. <모가디슈>는 서두에 언급한 모든 위험성을 거세했기에 성공한 작품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1991년 소말리아 내전 당시 벌어진 실화에서 출발했다. 남북이 UN 가입을 위해 적극적인 로비를 벌이고 있었고, 동구권이 붕괴한 시기다. 갑작스러운 내전이 일어나자 남한 대사관 사람들과 북한 대사관 사람들이 함께 사지로부터 탈출한다는 것이 이 영화의 주된 줄기다.

<모가디슈>의 소재는 낯설지 않다. 소말리아 내전을 다뤘다는 점에서는 리들리 스콧의 <블랙 호크 다운>이 떠오른다. 다른 것 없이 탈출 작전이 곧 서사라는 점에서는 벤 에플렉이 연출과 주연을 맡았던 <아르고>가 떠오른다. 최근 대한민국 정부가 탈레반에 점령당한 아프가니스탄으로부터 난민 390명을 탈출시킨 '미라클 작전'을 보고 <모가디슈>를 떠올리는 것도 자연스럽다.
 
소말리아 대신 모로코에서 진행한 올 로케이션 촬영은 관객의 감각을 1991년 소말리아 모가디슈로 이동시켰다. 귀를 때리는 반군의 총격, 빨갛게 그을린 모가디슈 시내의 밤, 그리고 총을 들고 있는 어린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은 섬찟함 그 자체다. 대사관 사람들이 본국과의 연락이 끊기고 고립되는 순간, <모가디슈>는 소말리아의 이야기를 넘어, 한반도 분단의 거시적 역사를 축약한 이야기로 변모하게 된다. 남한 대사 한신성(김윤석)과 북한 대사 림용수(허준호)의 대화는 남북의 대화와 협상을, 남한 참사관 강대진(조인성)과 북한 참사관 태준기(구교환)이 으르렁대는 모습은 남북이 만들어온 불신의 역사를 소환했다.

마음을 나눌 시간이 없다
 
 < 모가디슈 > 중

< 모가디슈 > 중 ⓒ 롯데엔터테인먼트

 
남북의 분단은 시대의 비극이지만, 재미있는 소재다. 이 운명을 그린 영화들은 많이 있었다. 양우석 감독의 <강철비>는 '남쪽 철우(곽도원 분)'와 '북쪽 철우(정우성 분)'가 티격태격하던 끝에, 합일점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그린 버디 무비였다. 박찬욱 감독의 출세작인 <공동경비구역 JSA>의 경우, 개인의 우정으로는 좁힐 수 없는 시대의 간극을 묘사하며 보는 이들의 감성을 간지럽혔다.
 
그러나 류승완 감독은, 때로는 감정을 덜어낼 때 더 큰 감정적 여운을 남길 수 있다고 믿었다. 이 영화는 불편한 동거를 그리고 있다. 남과 북은 서로 등을 맞대고 있는 사이지만, 서로가 수천 마일을 돌아와야 만날 수 있는 관계다. 불편한 동거는 동시에 '아름다운 동거'라는 결론으로 나갈 수 있는 건널목이기도 하다. 그러나 <모가디슈>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남북 대사관 사람들이 어두운 방에서 함께 밥을 먹는다. 그들에게는 서로 붙어 있는 깻잎 반찬을 젓가락으로 떼 줄 수 있는 동질성이 있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갈 여유가 없다. 부모는 북한의 아이들이 남한의 '자본주의 괴뢰 문화'를 볼 수 없도록 눈을 가린다. 그러나 그들은 공통의 목적인 '생존'을 위해 서로의 손을 잡는다. 그들은 전화번호부와 책을 잔뜩 붙인 차를 탄 채, 반군의 총알 세례를 뚫고 나가야 할 뿐이다.

한국 상업 영화에서 보기 드문 건조함은 <모가디슈>의 강점이지만, 동시에 캐릭터의 서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에 아쉬움을 느끼는 관객도 있을 법하다. 그러나 류승완의 선택과 집중은 과감했다. 애초에 이 영화의 캐릭터들은 자신의 애환을 이야기하고자 등장하는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향점이 뚜렷하며 그 과정에 군더더기가 없다. <모가디슈>는 <군함 >(2017)의 실패에 대한 류승완 감독의 선명한 대답이자, 동시에 <베를린>에서 보여주었던 차가운 장르물에 대한 야망의 연장선이다. <모가디슈>가 보여준 '덜어냄의 미학'은 과잉으로 가득 찬 영화들 사이에서 좋은 교보재가 되지 않을까?
모가디슈 류승완 김윤석 조인성 허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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