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8위 롯데 자이언츠에게 2.5경기 차이로 쫓기는 7위에 허덕이고 있지만 두산 베어스는 2015년부터 작년까지 6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해 세 번의 우승을 이뤄낸 강 팀이다. 실제로 올해 40년째가 된 KBO리그의 역사에서 6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을 이뤄낸 팀은 2007년부터 2012년까지의 SK와이번스, 2010년부터 2015년까지의 삼성 라이온즈, 그리고 두산까지 총 3팀 밖에 없다.

두산이 2010년대 중·후반을 풍미하는 왕조를 구축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비결은 역시 막강한 외국인 원투펀치의 존재가 결정적이었다. 실제로 두산은 통합우승을 차지했던 2016년 다승왕 더스틴 니퍼트와 탈삼진왕 마이클 보우덴이 있었다. 통산 6번째 우승컵을 들어올린 2019년에는 MVP 조쉬 린드블럼(밀워키 브루어스)과 '빅게임 피처' 세스 후랭코프(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활약이 절대적이었다.

두산은 6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작년에도 20승 투수 라울 알칸타라와 '가을 에이스' 크리스 플렉센이 마운드에서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두산의 전력에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했던 두 외국인 투수는 작년 시즌이 끝난 후 좋은 대우를 받고 각각 일본 프로야구의 한신 타이거즈와 메이저리그의 시애틀 매리너스로 이적했다. 하지만 현재 두 선수가 일본과 미국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전혀 다르다.

2군으로 쫓겨난 KBO리그 20승 투수

두산은 2019 시즌이 끝난 후 린드블럼이 메이저리그로 역수출됐고 후랭코프마저 메디컬 테스트를 거부하면서 외국인 투수 2명이 동시에 팀을 떠났다. 졸지에 외국인 투수 2명을 새로 구해야 했던 두산은 2019년 kt 위즈에서 활약하며 11승을 따냈던 알칸타라를 영입했다. 알칸타라는 시속 150km를 상회하는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지만 확실한 결정구가 없어 한계가 뚜렷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넓은 잠실 야구장으로 홈구장을 옮긴 알칸타라는 작년 시즌 최고의 활약을 통해 선수생활의 전성기를 활짝 열었다. 31경기에 선발 등판한 알칸타라는 한 번의 완투 경기를 포함해 20승2패 평균자책점2.54를 기록하며 다승왕과 승률왕(.909)을 차지했다. 작년 최동원상과 투수부문 골든글러브 역시 알칸타라의 몫이었다. 그만큼 알칸타라는 작년 시즌 리그 최고의 투수라고 해도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시즌 중반부터 꾸준히 해외리그의 타깃이 된 알칸타라는 작년 12월 2년 400만 달러의 조건에 한신 타이거즈와 계약했다. 일본 프로야구는 전통적인 투고타저 리그이기 때문에 불 같은 강속구를 던지는 알칸타라가 충분히 통할 수 있을 거라는 평가가 많았다. 게다가 한신에는 KBO리그 출신의 제리 샌즈가 있었고 2019년 kt에서 함께 뛰었던 멜 로하스 주니어도 함께 이적해 팀에 적응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일본 프로야구는 역시 만만치 않은 리그였다. 코로나19로 인해 개막일까지 입국을 하지 못해 시즌 준비에 차질을 빚은 알칸타라는 뒤늦게 합류해 7경기에 선발 등판했지만 2승2패4.05로 외국인 투수로서 인상적인 활약을 하지 못했다. 결국 알칸타라는 2020 도쿄올림픽이 끝난 후 불펜 투수로 보직을 변경했고 불펜 변신 후 4경기 연속 무실점 투구를 펼치며 홀드 2개를 기록했다.

그렇게 불펜에서 새로운 적성을 찾는 듯 했던 알칸타라는 지난 27일 히로시마 도요카프전에서 0.1이닝3피안타2실점으로 부진했고 결국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되고 말았다. 알칸타라는 올 시즌 12경기에 등판해 2승2패2홀드4.06을 기록 중이다. 시즌 20승을 기록하며 KBO리그를 호령했던 작년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는 성적이다. KBO리그에서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던 최고의 투수가 일본에서는 1,2군을 오가는 평범한 투수로 전락하고 말았다.

KBO리그 8승 투수, 시애틀 에이스 됐다

뉴욕 메츠의 유망주였던 플렉센은 작년 시즌을 앞두고 총액 100만 달러에 두산 유니폼을 입었다. 두산은 1994년생의 젊은 외국인 투수를 영입하며 분위기 전환을 노렸고 플렉센도 KBO리그에서의 활약을 통해 빅리그 복귀를 꿈꿀 수 있었다. 하지만 플렉센은 작년 2번이나 부상자 명단에 오르며 규정이닝을 채우지 못했고 3.01의 준수한 평균자책점을 기록하고도 8승에 머물며 두 자리 승수를 올리지 못했다.

그렇게 아쉬운 정규리그를 보낸 플렉센은 포스트시즌에서 전혀 다른 투수로 변모했다. 플렉센은 준플레이오프부터 한국시리즈까지 5경기에 등판해 2승1패1세이브1.91을 기록하며 두산의 한국시리즈 준우승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28.1이닝을 던지며 사사구는 단 7개에 불과했고 탈삼진은 32개에 달했을 정도로 투구내용도 매우 뛰어났다. 비록 우승은 하지 못했지만 플렉센의 가을 활약은 2015년의 니퍼트를 연상케 할 정도로 훌륭했다.

1994년생의 젊은 나이와 뛰어난 구위를 겸비한 플렉센은 작년 12월 시애틀과 2년475만 달러의 계약을 체결했다. 물론 KBO리그 출신 외국인 선수가 빅리그 구단과 좋은 조건에 계약하며 역수출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두산 시절 잦은 부상으로 8승에 머물렀고 구종도 비교적 단순한 플렉센이 메이저리그 레벨에서 얼마나 통할 수 있을지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야구팬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플렉센에 대한 걱정은 기우였다. 올해 시애틀의 선발 한 자리를 차지한 플렉센은 24경기에 등판해 140이닝을 던지면서 11승5패3.54로 시애틀의 실질적인 1선발 역할을 하고 있다. KBO리그에서 활약하던 시절에 비하면 삼진률(9이닝 당 6.1개)은 다소 낮아졌지만 9이닝당 볼넷이 1.8개에 불과할 정도로 뛰어난 제구력을 과시하고 있다(참고로 빅리그 정상급 제구력을 자랑하는 류현진의 9이닝당 볼넷은 1.9개다). 

올해 시애틀 선발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승수를 기록하고 있는 기쿠치 유세이가 7승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플렉센이 올 시즌 얼마나 눈부신 활약을 펼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올해 170만 달러, 내년 305만 달러의 연봉을 받는 플렉센은 2023년 시애틀과 400만 달러의 팀 옵션이 걸려 있다. 이미 올해 2년치 이상의 활약을 해내고 있는 플렉센이 내년에도 좋은 활약을 이어간다면 플렉센은 단연 시애틀 최고의 영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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