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법무부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가석방 대상에 포함시켰다. 법무부는 코로나로 인한 경제 침체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입장이었다. 사실 어느 정부에서든 경제적 이유를 고려, 재벌 총수를 가석방하거나 사면하는 일은 있어 왔다. 반복되는 재벌총수의 사면, 여기에도 비결이 있는 걸까. 

지난 22일 KBS 1TV <시사기획 창>은 '회장님 컴백홈 비밀은' 편을 방송했다. 이날 방송에서는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 가석방 배경을 중심으로 현대 자동차와 SK 등 재벌이 사면 받는 방법을 다뤘다. 방송 뒷이야기가 궁금해 '회장님 컴백홈 비밀은'편을 취재한 하누리 기자와 지난 24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시사기획 창>의 한 장면

<시사기획 창>의 한 장면 ⓒ KBS

 
다음은 하 기자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지난 22일 방송된 KBS 1TV <시사기획 창> '회장님 컴백홈 비밀은' 편을 취재하셨잖아요. 방송 끝난 소회가 어떠세요.
"일단 요즘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여론의 호의적 느낌이 커요. '우리나라는 경제가 먼저다, 왜 이런 보도를 하냐'는 악플이 많을까 봐 걱정했는데 의외로 없었어요. 경제 사범에 대한 내용이 중심이고 이재용 부회장 같은 경우에는 주식 이야기도 나와서 좀 어렵지 않을까 했는데, 다들 재밌게 봐주셨더라고요.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 처음에 어디부터 취재를 시작했어요?
"판결문 모으는 거부터 시작했습니다. 판결문의 양형 사유를 쭉 보고 양형 사유에 '경제에 이바지했다'라는 것이 있는지, 5년 치 판결문 전수조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외의 재벌총수 사건 판결문도 다 봤어요. '돈으로 갚는다'는 게 양형 사유로 나올까 싶었는데 그런 문장들이 생각보다 많이 있더라고요."

- '이건희 컬렉션'으로 방송을 시작하셨잖아요. 이유가 있을까요.  
"가장 최근의 일이니까요. '이건희 컬렉션'이 열린 게 한 달 됐는데 시의성 맞게 가장 최근의 그림을 보여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그리고 두 번째는 '이건희 컬렉션' 때문에 사실 이재용 부회장이 가석방된 부분이 커서 이 부분을 보여드리면서 이야기를 풀어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이건희 컬렉션'의 좋은 점이 있죠. 귀중한 국보들을 일반인들이 볼 수 있으니까요. 여론이나 언론이 '(삼성이) 약속 지켰다'고 추켜세우는데, '이게 정말 약속을 지키는거냐'고 묻고 싶었어요."

- 삼성가를 취재하러 한남동에 가셨는데 촬영을 못하셨어요. 어떤 상황이었나요. 
"집 앞에 갔더니 처음에 경호원이 나왔어요. 나중에 골목으로 가니까 골목까지 경호원이 나오더라고요. 서너 번 경호원들을 마주쳤는데 다 그분들이 '삼성 직원'이라고 그러더라고요. 회장 개인 집인데 삼성 직원이 지키는건가 궁금해지더라고요. 이분들이 격렬히 막는 건 아니었고 동태를 살피는 정도였어요. 어디서 촬영왔는지 이런 걸 묻더라고요. 윗선에 보고를 해야 되는 거 같았어요. 아니나 다를까 조금 있으니까 홍보팀에서 연락이 오더라고요."

- 고 이건희 회장의 부동산이 어마어마한가 봐요. 해외에도 있던데.
"제가 찾아보니까 토지와 건물 합치면 한 1000개 정도 되는 거 같더라고요. 이걸 공시지가로 계산했을 때 1조 원이 조금 안 되더라고요. 근데 삼성 측이 발표한 걸로 보면 부동산이 1조 원어치라고 했거든요. 아마 제가 찾지 못한 부동산이 조금 더 있는게 아닐까 싶고요. 관련해서 숨겨진 재산 같은 것도 찾아보고 싶었는데 시간이 부족했어요. 해외에 있는 부동산 같은 경우에는 2013~14년에 저희 선배들이 취재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했어요."
 
 KBS 1TV <시사기획 창>.

KBS 1TV <시사기획 창>. ⓒ KBS

 
- 이번 미술품 기증은 13년 전 이건희 회장의 약속이었다는 보도가 많았죠. 하지만 이 회장이 2008년 당시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한 건 차명주식에 대한 거잖아요. 당시 약 1조 원이던 주식의 가치가 지금은 11조 원이 됐어요. 삼성은 왜 주식이 아닌 미술품을 기증한 걸까요.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해서 가족들 재산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게 주식인데 이 주식을 기증하는 순간 이재용 부회장은 경영권을 잃게 되니까 미술품으로 기부를 한 게 아닌가 싶어요. 앞서 말씀드렸던 부동산을 내놓는다고 해서 일반인들이 공유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러니까 미술품이 (국민들에) 가장 쉽게 다가가고 칭송받기도 쉬운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저희 방송에는 안 썼는데 '미술품 물납제'(상속세 등 세금을 현금 대신 미술품으로 낼 수 있도록 하는 제도) 이야기가 계속 나왔었거든요. 이 부분에 대해 세무사님이나 변호사님들에게 여쭤보니까 이재용 부회장 같은 경우에는 주식이나 현금재산이 있어서 상속세를 물납할 수 없게 돼 있다고 하더라고요."

- 이재용 부회장 출소하던 날(13일), 회사와 집까지 따라가셨는데.
"집까지 따라간 이유는, 일단 저희 프로그램 제목이 '회장님 컴백홈 비밀은 편'이어서 집에 직접 들어가는 모습을 촬영하고 싶었고요. 집 앞에 가면 좀 더 가까운 거리에서 질문이 가능할 거 같아서 가보기로 한 거였거든요. 그런데 서울구치소에서 집이 있는 한남동까지 가려면 강남에서 쭉 올라가야 해요. 저희가 따라가는데 갑자기 차가 북쪽으로 안 가고 동쪽으로 길을 틀어 버리더라고요. 그래서 처음에는 이재용 부회장이 수술하고 그랬으니까 삼성 병원으로 가는건가 했어요. 근데 또 왔다 갔다 하면서 길을 돌리더라고요. 저희도 계속 따라다녔거든요. 그렇게 길을 돌고 돌다가 도착한 게 강남역의 삼성 사옥이었던 거예요. 저희 촬영 감독님이 집에 갈 때까지 기다려보자 해서 기다리셨고요. 저녁 7시쯤 되니까 이 부회장이 나오더라고요."

- 방송을 보면, 2006년 현대글로비스 비자금 의혹 수사로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 재판을 받았는데요. 당시 항소심을 담당했던 판사가 이후 김앤장 변호사로 일하면서 현대 이노션 감사로 있더라고요.  
"변호사님들한테 여쭤봤더니 '그런 판사님들 때문에 사법부 신뢰가 무너지는 게 아니냐, 좀 많이 실망스럽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대기업 감사위원 자리가 돈을 많이 주는 자리인가 찾아봤는데, 현대 이노션 같은 경우는 연 5천 만원 주더라고요. 김앤장 변호사한테 큰 돈은 아닐 것이고요. 그 자리에 왜 굳이 갔을까 궁금했어요. 대기업 임원을 하신 분들한테 여쭤보니까 감사위원을 하면 대기업에서 감사하는 업무 말고 그 외에 다른 일들이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고요. 가령 변호 업무를 하는 등의 일이겠죠. 그러니까 결국 그 기업과 유착될 수밖에 없는 것인데요. 그 기업에 대해서 단죄를 내렸던 전직 판사로서 맞는 행동일까 굉장히 씁쓸했습니다."

- SK 최태원 회장 같은 경우, 2003년 분식회계 혐의로 재판을 받았잖아요. 당시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감형해 준 판사가 이후 2011년 2천억 원대 횡령·배임 혐의의로 재판을 받게 된 최 회장의 변호를 맡았어요.  
"저도 그런 경우는 처음 봤는데 변호사가 말하길, 드문 경우가 아니라고 하시더라고요. 만약 같은 사건에 대해서 재판하고 변호하면 불법인데, 이 경우엔 시간차가 있고 다른 사건이니까 법적으로 괜찮다고 하더라고요. 총수들이나 권력자들의 재판을 맡았던 판사님들이 그 뒤 어디로 가셨는지 전주조사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조사를 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 변호사님이 그 말씀 하시더라고요. 모기업의 경우에는 자기 기업과 관련된 재판을 했던 판사들을 퇴직 후 어떻게든 기용한다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현직에 있는 판사들한테 보여줄 수 있다는 거죠. '우리가 이렇게 보은한다'고. 이런 걸 못하게 차단하는 규제책이 있으면 좋겠어요. 물론 판사들이나 변호사들이 스스로 윤리적인 판단을 하는 게 먼저겠지만요."

- 재벌의 기부 행위가 재판에 영향이 있다고 보시나요.
"성폭행 범죄 같은 경우 가해자가 피해자 관련 단체에 기부를 하면 그것을 양형사유로 봐 주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요즘에는 좀 많이 줄어들었지만요. 비슷하게 재벌의 경우도 사회에 기부하면 '반성했구나' 하고 봐주는 거예요. 이게 진짜 반성일까요. 자신의 강점인 돈으로 해결하는 거잖아요. 물론 이 사람들이 주로 횡령·배임 범죄를 저지른 경제사범이기 때문에 손해끼친 걸 돈으로 갚아야 하는 불가피한 면도 있어요. 이런 부분이 균형을 잘 맞추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만 지금 제가 찾은 사례는 총수들이 기부를 하기도 전에 판결에서 좋게 봐준 거거든요. 이 부분은 고쳐져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들었어요. 강제성이 없으니까요. 명확하게 양형 규정이라든가, 그런게 명시돼야 하지 않나 생각했습니다."

- 재벌총수들이 공탁금 제도(피해자와 합의가 안 되더라도 법원에 돈을 맡겨두면 감형 사유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한 것)를 악용하는 것도 문제로 보이던데요. 
"공탁금 제도가 기부보다 명확하게 감형받을 수 있다보니 이걸 많이 활용하더라고요. 제가 다룬 조현아·최철원 사건은 정말 명확한 피해자가 있잖아요. 공통적으로 합의나 사과가 없는 상태에서 법원에 돈을 맡겨버리고 해결했는데, 그걸 법원은 감형으로 보상해주는 거죠. 논문을 찾아보니까 미국 일부에선 경제 범죄 같은 경우는 공탁금을 내도록 하지만 폭행 범죄, 즉 직접 누굴 다치게 한 범죄 같은 경우에는 돈을 얼마내느냐에 상관없이 죄질에 따라 형을 정하도록 하더라고요. 돈으로 갚을 수 없다고 명시하는 거죠. 합의를 하거나 사과를 했으면 몰라도, 법원에 돈은 던져 놓고 피해자에게 가져 가든지 말든지 하라는 식으로 감형받는 규정은 수정돼야 하지 않을까요."

- 방송 말미에 2015년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을 언급했는데요. '재벌총수에 대한 특혜는 경제정의에 반하는 일이다'라는 게 주요한 맥락이었어요.  
"일단 이번에 법무부에서는 코로나 상황으로 인한 경제문제를 언급하면서 이재용 부회장을 가석방했잖아요. (더 어려운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경제 상황에서 우리가 진짜 돌아봐야 할 사람은 없는지 문제제기 하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2015년 당시 문재인 의원은 그런 부분에 공감하고 우리가 돌봐야 할 주변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했었어요. 그래서 다시 우리도 한번 돌아보자는 의미로 담아 봤습니다. 또 재벌에 대한 사면이나 출소를 허가했던 건 이명박 박근혜 정부때도 있었죠. 심지어 두 전직 대통령의 경우에는 사면의 대가가 오갔고, 법원에서 이 문제로 확정판결을 받거나 수사를 받기도 했었거든요. 문재인 정부는 재벌에 대해서 절대 이렇게 하지 않겠다고 약속도 했었죠.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또 다시 경제 문제를 이유로 경제인에 대한 면죄가 반복된 거잖아요. 왜 자꾸 이런 일이 반복될까 함께 고민해보면 좋겠습니다."

- 취재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시사기획 창>에서 회장님 시리즈를 많이 했어요. 재벌총수의 윤리적· 도덕적 문제, 리스크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다뤘는데 이번이 마지막이면 좋겠어요. 방송 댓글 중에 '만인 앞에 법이 평등해야 되는데 지금 이 법은 만 명에만 평등한 거 아니냐'란 게 있었어요. 이번을 끝으로 달라지고, 저희도 이제 이런 취재를 그만했으면 합니다."
하누리 시사기획 창 재벌 사면 가석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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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와 이영광의 '온에어'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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