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농구 대표팀이 또 한 명의 레전드를 새로운 감독으로 선택했다. '바스켓 퀸' 정선민 전 신한은행 코치가 여자농구 대표팀 사령탑에 올랐다. 대한민국농구협회는 27일 이사회를 열고 정선민 감독과 최윤아 코치를 대표팀을 이끌 새로운 코칭스태프로 선임했다고 밝혔다. 정선민-최윤아 코칭스태프는 9월 27일부터 10월 3일까지 요르단에서 열리는 국제농구연맹(FIBA) 여자농구 아시아컵을 시작으로 2022년 FIBA 농구월드컵 예선, 2022년 항저우 아시안게임, 2022년 FIBA 농구월드컵 대회까지 대표팀을 이끈다.

정선민 감독은 한국여자농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전설이다. 정 감독은 여자프로농구(WKBL) 챔피언 결정전 정규리그 MVP 7회, 챔프전 MVP에 1회 선정되었으며, 베스트5에 14차례 올랐다. 2003년에는 한국 최초로 미국여자프로농구(WNBA)에 진출하기도 했다.

국가대표로도 여자 농구의 중흥기를 이끌었다. 동료인 전주원, 정은순, 유영주 등과 함께 2000 시드니 올림픽 4강 신화의 주역이었고 2007 FIBA 아시아선수권(현 아시아컵) 우승, 2008 베이징 올림픽-2010 세계선수권 8강 등을 이끌었다. 프로 무대 통산성적은 WKBL 정규리그 415경기에 출전하여 통산 8140점(19.6점)-3142리바운드(7.57개) 1777어시스트(4.28개) 771스틸을 기록했다. 2012년 현역에서 은퇴한 뒤에는 KEB하나은행(현 하나원큐)과 신한은행에서 코치로 지도자 경력을 쌓았고, 방송 해설위원으로도 활약했다.

정선민 감독은 작년에도 도쿄올림픽 사령탑 자리를 놓고 대표팀 감독직 공모에 지원한바 있다. 당시는 권은정 코치와 러닝메이트를 이뤘던 정 감독은 최종후보까지 이름을 올렸으나 선배인 전주원-이미선 조에 아쉽게 밀렸다. 도쿄올림픽 이후 전주원 감독이 사임하면서 다시 공석이 된 대표팀 감독직에 재도전한 정감독은 정인교 감독-양지희 코치 조와 경쟁한 끝에 결국 수장이 되는 데 성공했다.

전임 전주원 감독이 도쿄올림픽에서 호평을 받았던 만큼 바로 그 뒤를 물려받게 된 정선민 감독으로서는 부담이 적지 않다. 13년 만에 올림픽 본선무대에 진출했던 여자농구 대표팀은 결과적으로는 아쉽게 3전 전패라는 초라한 성적으로 8강 진출에 실패했지만, 여론의 시각은 오히려 호의적이었다. 전주원호는 세계 랭킹 3위 스페인을 비롯해 4위 캐나다, 8위 세르비아까지 만만치 않은 강호들을 상대로 일방적으로 밀리지 않고 오히려 팽팽한 접전을 펼치며 한국농구의 저력과 발전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찬사를 받았다.

'여성 감독', 그리고 '스타 출신 감독이 성공하기 어렵다'는 속설을 어느 정도 불식시킨 것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한국여자농구의 또다른 레전드였던 전주원 감독은 비록 짧은 기간 대표팀을 맡았지만 '여자농구를 비롯하여 대한민국 하계올림픽 사상 단체구기종목 첫 여성 감독'이라는 상징적인 타이틀로 화제가 됐다.

전주원 감독은 선수와 코치로서 신한은행과 우리은행, 여자농구 2대의 왕조를 견인하며 화려한 경력을 자랑했지만, 감독 경력은 어디까지나 이번 대표팀이 처음인 초보 감독이었다. 하지만 전 감독은 세계 최고의 무대인 올림픽에서 초보답지 않은 전술적 역량과 안정된 리더십을 보여주며 편견을 극복했다.

전 감독이 올림픽을 끝으로 지휘봉을 내려놓는다는 소식이 알려졌을 때 많은 여자농구팬들이 아쉬워한 이유다. 보수적이던 대한민국 농구협회가 '2회 연속 여성 코칭스태프 구성'이라는 파격을 과감하게 선택할 수 있었던 것도 전주원호의 성과가 뒷받침되었었기에 가능했다.

정선민 감독 역시 2013년 FIBA 아시아컵 대표팀을 비롯하여 부천 KEB하나은행(현 하나원큐)과 신한은행까지 다수의 코치직을 역임했지만 감독 경력은 처음이다. 다만 코치 시절 소속팀의 성적은 그리 좋지 않았고 재계약에도 실패했다. 선수 시절의 명성은 의심할 나위가 없지만, 지도자로서의 경력은 전임자인 전주원 감독보다 여러모로 하위호환에 가깝다는 점에서 검증이 필요해보이는 게 사실이다.

정선민 감독의 중요한 과제는 지난 도쿄올림픽에서 희망을 보여준 '한국식 농구'에 대한 연속성을 이어가는 것이다. 전주원호는 올림픽에서 신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스피드와 활동량, 로테이션을 앞세워 높이와 개인 기술에서 우위인 세계 강호들을 괴롭혔다. 선수를 기용할 때와 변화를 줄 때의 타이밍을 제대로 짚으면서 경기의 흐름을 읽고 대처해내가는 유연한 작전 구상과 결단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정선민 감독 선임 직후 협회는 아시아컵에 나설 24인 예비 엔트리 및 12인 최종 엔트리를 선발했다. 발표된 명단을 살펴보면 WKBL에서 활약 중인 박지수와 부상자인 김정은-한엄지가 빠지고 최이샘-양인영-김민정이 가세한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 9명은 모두 올림픽 멤버들이다. 김민정도 원래 올림픽 명단에 발탁되었으나 부상으로 낙마했던 선수다. 사실상 급격한 변화보다는 전임 감독이 구축한 올림픽팀의 연속성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한편으로 정감독이 앞으로 도전하게 될 아시아컵이나 아시안게임은 올림픽과는 기대치가 또 다른 대회다. 올림픽은 세계적인 강호들을 상대로 '졌잘싸(졌지만 잘싸웠다)'만으로 박수를 받을 수 있었지만, 아시아 대회는 우승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아시아농구의 판도는 정선민 감독의 현역 시절 때와는 많이 달라졌다. 당장 라이벌 일본은 이번 올림픽에서 미국에 이어 은메달을 차지하는 놀라운 성과를 올렸다. 8강에서 탈락했지만 여전히 아시아농구의 강자로 불리는 중국도 건재하다.

박지수 외에는 국제적인 레벨의 스타가 없는 여자농구 대표팀은 현재 아시아권에서도 우승을 낙관하기 힘든 전력이다. 자칫 9월로 다가온 아시아컵부터 성과가 좋지 못하면 올림픽을 통하여 얻은 관심과 희망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정선민 감독이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게 될 수도 있다.

정선민 감독 앞에 놓여진 상황은, 부임과 동시에 올림픽을 치러야했던 전주원 감독과는 또다른 의미에서의 어려운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 한국 여자농구의 역량이 아직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물론, 정감독 개인으로서 지도자로서의 커리어에 있어서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는 기회다. 바스켓 퀸은 과연 지도자로서도 한국 여자농구의 레전드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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