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범 감독의 뒤를 이을 23세 이하(U-23) 축구대표팀의 차기 사령탑에 축구팬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김학범 감독은 지난 2020 도쿄올림픽을 끝으로 대한축구협회와 계약이 만료됐다. 올림픽 축구대표팀이 8강에 진출했지만 토너먼트에서 멕시코에 대패하며(3-6) 아쉬운 모양새로 탈락했기에 어차피 김학범 감독과의 재계약 가능성은 낮았다.

예년 같으면 올림픽이 끝나고 난 직후 후임 감독 선정까지 시간적 여유가 있었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약간 다르다. 올림픽이 1년이나 연기되었던 탓에 23세 이하 대표팀은 다음 스케쥴까지 남은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 당장 오는 10월 U-23 AFC아시안컵 예선이 예정돼 있다. 한국은 27일부터 싱가포르에서 열릴 아시안컵 예선 H조에서 싱가포르- 동티모르- 필리핀과 한조에 편성되어있다. 상대들이 모두 몇 수 아래의 약체이기 때문에 부담은 적지만, 23세 이하 대표팀은 지금부터 새로운 장기프로젝트를 위한 새 판짜기를 시작해야 할 시점이다.

당장 내년 9월 중국에서 열리는 2022년 항저우 아시안게임도 1년밖에 남지 않았다. 한국은 지난 2014 인천-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2연패를 달성한 바 있다. 나아가 3년 뒤에 열리는 2024년 파리올림픽에서 사상 첫 10회 연속 본선진출과 메달권 진입이 차기 23세 이하 대표팀의 궁극적인 목표다.

축구계에선 벌써 여러 명의 지도자들이 차기 감독 후보로 하마평에 오르내렸다. 현재 야인으로 머물고 있는 스타플레이어 출신 지도자들은 물론이고, 현직 K리그 감독들도 후보군에 오르내리고 있다. 역대 23세 이하 감독들의 선례를 감안해도 선수와 지도자 경력에 모두 경륜있는 베테랑 감독의 영입에 무게가 쏠리고 있다.

한국축구에서 23세 이하 대표팀 감독의 위상은 다른 국가들에 비교해도 큰 편이다. 23세 이하 대표팀이 나서는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은 축구 선진국들 사이에서는 크게 주목하지 않지만, 한국축구에서는 월드컵 다음가는 비중을 지닌 메이저대회로 인식되고 있다. 여기에 정상급 선수들에게는 민감한 병역혜택 문제까지 걸려 있어서 더욱 소홀히 할 수 없는 대회들이다.

또한 23세 이하 대표팀 감독의 자리가 가지는 또다른 숨은 의미는, 바로 '유력한 차기 A대표팀 감독 후보'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23세 이하 선수들은 연령대별 대표팀의 마지막 단계로 사실상 완성된 성인 선수들이 대부분이며 곧바로 A대표팀으로 차출되는 경우도 많다. 지난 김학범호만 해도 이미 이동경, 이동준, 원두재 등이 23세 이하 주력 멤버이면서 A대표팀에도 동시에 부름을 받은 바 있다.

젊은 선수들이 A팀에서 주축으로 자리 잡아가고, 이들과 일찌감치 호흡을 맞추며 조련해 왔던 23세 이하 감독들이 '선수파악과 전술적 연속성'이라는 측면에서 자연히 차기 A팀 감독 후보로 떠오르는 것은 한국축구 환경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실제로 많은 역대 대표팀 감독들이 23세 이하 팀을 거쳐서 A팀의 지휘봉까지 잡은 바 있다. 허정무-홍명보-핌 베어벡-신태용 감독 등이 대표적이다. 허정무와 고 베어벡 감독은 아예 23세와 A팀 감독을 겸임하기도 했다. 홍명보 감독은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한국축구 사상 첫 동메달을 획득한 공로를 인정받아 2년 뒤인 2014 브라질월드컵 대표팀 사령탑으로 낙점됐다. 신태용 감독은 U20 월드컵과 리우올림픽에서 각급 연령대별 대표팀을 모두 거쳐서 2018 러시아월드컵 A대표팀 사령탑에 오르기도 했다.

특히 홍명보 감독이나 신태용 감독은 '구원투수'로서 대표팀을 물려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홍명보 감독의 경우 전임 최강희 감독이 2013년 월드컵 최종예선까지만 지휘봉을 잡기로 했던 시한부 감독이었기에 본선확정 이후 지휘봉을 물려 받았다. 신태용 감독은 2015년 울리 슈틸리케 전 감독이 최종예선에서의 성적부진으로 경질되면서 대체자로 투입되어 본선행을 확정지었다.

현재 A대표팀 사령탑은 포르투갈 출신 파울루 벤투 감독이 맡고 있다. 코로나19라는 변수가 작용하기는 했지만, 벤투 감독은 2018년부터 4년째 지휘봉을 잡고 있는 태극군단 역대 최장수 감독이다. 벤투 감독은 현재 9월부터 시작되는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을 앞두고 있으며 대한축구협회와의 계약기간은 2022 카타르월드컵까지다. 한국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다고 해도 약 1년밖에 남지 않았다. 벤투 감독이 좋은 성적을 올려서 재계약 할 가능성도 있지만, 역대 한국축구에서 월드컵 본선을 마치고 나서 감독이 바뀌지 않은 사례는 아직 한번도 없다.

여기서 살펴볼 수 있는 것은 한국축구에서 기존의 A대표팀 감독이 갑자기 흔들리거나 자연스러운 사령탑 교체 시기를 맞이했을 때마다, 유력한 대안으로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이 바로 23세 이하 대표팀 감독이었다는 점이다. 만일 김학범 감독이 올림픽에서 4강 이상의 좋은 성적을 거뒀다면 벤투 감독의 뒤를 이을 차기 A팀 감독까지 부상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A대표팀은 벤투 감독 체제로 카타르월드컵 본선까지 성공적으로 마치는 것이 최선의 시나리오다. 다만 벤투 감독이 계약기간을 정상적으로 완주한다고 해도 1년 뒤에는 다시 새로운 감독을 구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벤투호가 조광래나 슈틸리케 감독처럼 최종예선에서 고전하며 월드컵 본선행을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구원투수를 찾아야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다. 만일 차기 U23 감독이 다가오는 아시아 챔피언십 예선과 내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좋은 성적을 올린다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차기 월드컵에서는 유력한 감독후보로 부상할 가능성이 열려있다.

김학범 감독은 올림픽 직전까지만 해도 2018 자카르타 아시안게임과 2020 U-23 챔피언십 연속 우승으로 한창 상종가를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멕시코전에서의 뼈아픈 참패로 인하여 한국축구는 '포스트 벤투' 체제의 대안이 될 수도 있었던 유력한 감독 후보 한 명을 잃은 셈이다.

김학범 감독은 한때 성인대표팀 감독후보로 먼저 물망에 오른 적이 있고 지도자 경력을 감안해도 애초부터 U-23을 맡기에는 감독경력이 높은 인물이었다. 후임 U-23 감독 후보로 황선홍이나 최용수 같이 또다른 거물급 감독들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이들은 커리어만 놓고봤을 때 U23보다는 오히려 A대표팀 감독 후보로 거론될만한 인물들이다.

다른 국가들이 연령대별 전담 지도자들이나 유소년 육성 전문가들에게 맡기는 것에 비하여 한국축구는 23세 이하 대표팀은 사실상 프로축구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정상급 경력의 베테랑 감독들을 더 중용했다. A대표팀과의 연속성이나 미묘한 정치적 위상까지 고려하면, 차기 23세 이하 대표팀 감독은 한국축구 대표팀의 향후 방향성을 엿보는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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