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마르소의 머리 위로 헤드폰이 내려앉은 순간, 사랑은 시작됐습니다. 소녀의 눈앞에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졌지요. 아등바등 사느라 자주 놓치게 되는 당신의 낭만을 위하여, 잠시 헤드폰을 써보면 어떨까요. 어쩌면 현실보단 노래 속의 꿈들이 진실일지도 모르니까요. Dreams are my reality.[기자말]
 안예은 '창귀' 뮤직비디오 캡처

안예은 '창귀' 뮤직비디오 캡처 ⓒ 더블엑스엔터테인먼트

 
"나 이 노래에 너무 꽂혀서 계속 듣고 싶은데 주변에 누구 있어야 들음... 무서워..."

한 가요에 달린 댓글이다. 혼자 듣기 무서운 그런 희한한 가요가 있다면, 그건 필시 안예은의 노래일 것이다. 지난 1일 그가 발표한 '창귀'는 올 여름, 아직 제대로 된 공포물을 못 본 사람에게 필청 곡이 아닐 수 없다. 남은 더위를 모조리 가시게 해줄 테니.

정말이지 이런 유의 가요는 지금까지 없었다. '천재 싱어송라이터'에 이어 그의 이름 앞에 새로이 붙은 '호러송 장르 개척자'라는 타이틀이 딱이다. '상사화', '홍연' 등 한국의 고전적 정서가 깊이 밴 특유의 노래로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구축한 안예은이 이번엔 한국적 공포를 노래에 담았다. 매 여름마다 '귀로 듣는 납량특집' 호러송을 발매 중인 그가 이번 해에 고른 주제는 바로 '창귀'인 것.

"게 누구인가 가까이 와보시게/ 옳지 조금만 더 그래 얼씨구 좋다/ 겁 없이 밤길을 거니는 나그네여/ 내 말 좀 들어보오/ 나뭇잎 동동 띄운 물 한 잔 마시며/ 잠시 쉬어 가오

나무아미타불 신령님이 보우하사/ 나무아미타불 신령님이"


창귀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사람의 혼(魂). 다른 곳으로 가지 못하고 호랑이에게 예속되어 호랑이가 먹을 것을 구하러 다닐 때 앞장서서 먹이를 찾아 준다고 함". 이어지는 설명도 섬뜩하다. "창귀는 또 다른 사람을 범에게 잡아먹히게 해야만 범의 위권과 부림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자, 창귀가 어떤 귀신인지 알았으니 이제 창귀가 등장하는 납량특집 한 편을 처음부터 감상해보자. 그 드라마는 가사 안에 다 들어 있다.

"나는 올해로 스물하나가 된 청년인데/ 범을 잡는다 거드럭대다가/ 목숨을 잃었소만/ 이대로는 달상하여 황천을 건널 수 없어/ 옳다구나 당신이 나를 도와주시게"

화자는 창귀이고, 길 가는 나그네에게 자신이 어떻게 죽었는지를 소개하며 "당신이 나를 도와달라"고 말한다. 자신을 도와달라는 말은, 앞서 설명을 들어 알겠지만 나그네 너가 나 대신 새로운 희생양이 되어줘야겠다는 협박과 다름없다. 죽이겠단 말이다. 왜 '혼자서는 무서워 못 듣겠다'는 댓글이 달리는지 알 것만 같다.
 
 가수 안예은이 지난 16일 오후 홍대 근처 작업실에서 <별들의 책장> 인터뷰에 임했다.

가수 안예은 ⓒ JMG(더블엑스엔터테인먼트)


이 공포는 단지 가사 때문만은 아니다. 판소리를 하는 듯한 안예은 특유의 창법에는 청자의 정신을 아득하게 만드는 묘한 기운이 있다. 목소리에 한이 서려 있달까. 아니나 다를까,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한 안예은은 "가사나 뮤비가 으스스한데 외로움이 섞여 있다"라며 "한국 구전에 기본적으로 '한'이 담겨 있다"라고 설명한 바 있다.

이 곡을 열창하는 안예은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범에게 잡혀 먹힌 21살 청년의 한이 기괴한 형태로 배어나오는 듯하다. 그는 가사 속 이야기의 흐름에 맞춰서 창법에 미묘한 변화를 주며 극적 효과를 만들어내는데, 이게 마치 영화의 소름 돋는 음향 효과처럼 사람 등골을 서늘하게 만든다.  

"나무 사이에는 웅신님이/ 연못 바닥에는 수살귀에/ 아수라발발타/ 벽공너머에는 불사조가/ 나그네 뒤에는 도깨비가/ 아수라발발타/ 교교하다 휘영청 만월이로세 얼쑤/ 수군대는 영산에 호랑이님/ 행차하옵신다"

"자기 전에 이거 듣고 잤는데 악몽 꿈"이라는 또 다른 댓글이 충분히 공감가지 않는가. 이 곡을 작사 작곡한 안예은은 청자의 머릿속에 납량 드라마 한 편을 영상으로 박아놓음으로써 끝내 악몽을 꾸게끔 유도한다. 

흉가에 스스로 찾아들어가는 그런 심리의 하나로써, 제대로 악몽을 꾸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이 곡의 뮤직비디오를 꼭 같이 봐주길 바란다. 전형적인 한국 귀신이 나오지는 않지만, 오히려 그런 영상보다 더 '기 빨리게 하는' 서늘하고 세련되고 예술적인 화면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 빨간 화면을 보고 있자니 뇌가 최면에 걸릴 것만 같다. 그리고 마침내 창귀에 홀릴 것만 같다. 
 
 안예은 '창귀' 뮤직비디오 캡처

안예은 '창귀' 뮤직비디오 캡처 ⓒ 더블엑스엔터테인먼트


"얼씨구 좋다 어절씨구 좋다 그래/ 어디 한 번 어깨춤을 덩실 더덩실/ 하찮은 네 놈 재주를 보자꾸나/ 이곳이 너의 무덤이로다/ 얼씨구 좋다 어절씨구 좋다 우리/ 모두 함께 어깨춤을 덩실 더덩실"

공포와 한이 이 노래를 지배하지만 그렇다고 무겁기만 한 건 안예은 노래답지 않은 법. '얼씨구 좋다 어절씨구 좋다'라며 흥을 돋우는 부분에서는 한껏 신명나는데, 굿판이 그러하듯 오싹한 가운데의 흥겨움이라서 더욱 기괴하고 공포스럽다.

노래는 이렇게 끝난다. 

"눈을 뜨면 사라질 곡두여 이 밤/ 산군의 길 위에서/ 너를 데려가겠노라"

자기 전에 듣고 시원하게 악몽 한바탕 꾸는 것도 스트레스 해소에는 좋겠다만, 너무 현실적일 것 같아서 노약자나 임신부는 이 곡을 피하시는 게 명에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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