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봅니다. 그 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 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편집자말]
tvN <너는 나의 봄>이 끝났다. 마음에 아픔을 간직하고 살아온 다정(서현진)과 영도(김동욱)를 중심으로 젊은이들이 사랑을 통해 상처를 치유해가는 참 따스한 드라마였다. 여기에 어린 시절 같은 장면 속에 있었지만, 너무나 다른 삶을 살아온 이안 체이스(윤박)의 이야기가 겹치면서 긴장감마저 놓칠 수 없었다. 드라마 속 인물들은 모두가 입체적이고 매력적이었다.
 
그런데 나는 이 드라마에서 주축이 되었던 젊은이들만큼이나 마음이 가는 인물이 있었다. 바로 다정의 엄마 미란(오현경)이다. 다정과 매일 통화하며 하루를 나누는 미란은 다정이 4회 표현한 대로 'CCTV 같은 인간'이다. 영상통화 속 배경만 보고도, 다정의 목소리만 듣고도 딸의 상황을 다 파악하는 이 엄마. 아마도 어른인 자녀에게 이런 엄마는 부담스럽고 피하고 싶은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드라마 속 인물들은 힘들 때마다 미란을 찾는다. 다정뿐 아니라 다정의 친구 은하(김예원)마저도. 처음엔 참 의아했다. 이 억척스러운 엄마에게 왜 젊은이들이 마음을 여는 걸까.
 
하지만, 드라마의 후반부로 갈수록, 나도 이 엄마에게 가서 내 마음을 털어놓고 싶어졌다. 미란의 툭툭 내뱉는 말에는 오랜 성찰에서 나오는 삶의 지혜가 묻어있었다. 게다가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고 편견 없이 타인을 보듬어 안는다. '닮고 싶은 어른' 미란의 면면들을 살펴본다.
  
 미란은 딸 다정과 매일 전화통화를 한다. 하지만, 절대로 다정의 경계를 침범하거나 간섭하지 않는다.

미란은 딸 다정과 매일 전화통화를 한다. 하지만, 절대로 다정의 경계를 침범하거나 간섭하지 않는다. ⓒ tvN

 
붙어 있어도 공기가 솔솔 통하는 관계
 
미란은 7회 옛 애인에 대한 상처가 떠올라 강릉에 내려온 은하에게 "둘이 붙어 있어도 공기가 솔솔 통하는 연애가 곧 올 거야"라고 위로해준다. 그런데 가만 보면 바로 미란이 이런 관계를 제공하고 있었다.
 
딸 다정과 매일 통화하며 시시콜콜한 일상을 나누는 미란. 영도의 존재를 안 미란은 아마도 다정의 연애가 무척이나 궁금했을 것이다. 하지만, 5회 다정이 영도와의 관계에서 망설이고 있을 때 이를 눈치 챈 미란은 이렇게 말한다.

"나 영도한테 그러지마? 친한 척하거나 친해지고 싶어하는 거 티내거나 벌써 친해졌다고 착각하거나 그거 다 하지마?"
"뭐 니가 아니면 아닌 거지. 연애가 무슨 의자 뺏기도 아니고. 옆에 누가 무조건 앉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이는 망설일 때 더 궁금해하고, 코치하려 드는 익히 보아온 어른들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다정의 마음을 그냥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주고 더이상 묻지 않으며 딸과 자신의 관계에 공기가 통하게 놔두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이런 미란에게 다정은 "잘 모르겠어. 둘 다 모르겠고 둘 다 알면 안 될 것 같아"라고 아주 솔직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다. 그러자 미란은 "오케. 그러면 회사 재밌어? 난 피자집 재밌어"라고 화제를 옮기며 딸과 정겨운 대화를 이어간다.
 
공기가 솔솔 통하는 관계란 바로 이런 것 아닐까. 상대방의 상황을 내 입장에서 궁금해하는 것이 아니라 말하고 싶은지를 먼저 물어봐주는 것. 숨 쉴 거리가 있는 이 같은 관계를 제공하기에 드라마 속 젊은이들은 힘든 일이 생기면 미란을 찾았을 것이다. 이런 CCTV가 내게도 있다면 무척이나 든든할 것 같다.
 
편견을 알아차리고 고백하는 용기
 
드라마 중반 이후 다정은 영도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영도와 본격적으로 연애를 시작하려 한다. 하지만, 아픈 영도는 다정을 혼란스럽게 한다.

특히 12회 미란으로부터 "아프지만 마"라는 말을 들은 영도는 영원을 약속할 수 없다는 이유로 다정과 헤어지려 한다. 이를 눈치챈 다정은 복잡한 감정에 빠져들고 영도와 아픈 말을 주고받는다. 슬픔에 빠져있던 다정은 마침 걸려온 미란의 전화에 눈물을 터뜨리고 만다.
 
다정은 미란에게 영도의 상황을 솔직하게 말하고 "아프지 말라고 했어? 왜. 왜 그랬어 엄마. 왜 그런 말을 해"라며 목 놓아 운다. 애써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되는 엄마와 딸의 관계가 나는 참 좋아 보였다. 아마도 이들이 공기가 솔솔 통하는 관계를 만들어 왔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미란은 개입해야 할 때와 아닐 때를 안다. 이날 밤 미란은 홀로 힘들어하는 딸을 위해 한걸음에 달려와 꼭 안아주고 실컷 울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다음 날 영도를 만나 이렇게 말한다.
 
"내가 너무 무식한 소리를 했어. 살다 보면 누구든 아플 수 있는 건데 그게 꼭 잘못인 것처럼 말했잖아."(13회)
 
나는 순간 마음이 철렁했다. 우리가 무심코 나누는 인사인 '건강하세요' '건강이 최고야' '건강하기만 하면 돼'라는 말들이 질병을 가진 누군가에겐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프면 안 된다는 생각이 일종의 편견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사실 아프고 싶어서 아픈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도 자신의 질병을 마치 잘못인 양 숨기고 살아가며 위로받지 못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미란은 이렇게 시청자인 나의 마음도 일깨웠다. 이어서 미란은 다정의 안부를 묻는 영도에게 이렇게 말한다.

"멀쩡해. 이럴 때 웃으면 미친 건데 우니까 정상이란 말이야." (13회)
 
슬플 때 슬프고, 울어야 할 때 우는 것을 정상이라 여겨주는 미란의 마음이 참 따스하게 와 닿았다. 부정적인 감정들을 멀리하고 밝고 긍정적인 것만 추구하는 마음들에 둘러싸인 요즘, 우니까 정상이라고 말해주는 미란의 말이 나를 위로하는 듯 했다. 
  
 <너는 나의 봄> 속 젊은이들은 힘든 일이 있을 때 강릉에 있는 미란을 찾아간다.

<너는 나의 봄> 속 젊은이들은 힘든 일이 있을 때 강릉에 있는 미란을 찾아간다. ⓒ tvN

 
나를 성찰하며 수용하는 관대함
 
하지만 15회 미란은 조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돌싱에 지병까지 있는 영도를 다정의 짝으로 받아들이긴 했지만, 이상하게 자꾸만 날이 선다. 다정의 애인에 대해 궁금해하는 시장 이웃들의 "어떤 사람이냐. 혹시 하자 있냐?"는 질문엔 "보수 공사 하니? 하자 찾고 있게? (...) 어디 좀 아프면 어때? 한 번 갔다온 게 그게 모?"라며 버럭 화를 내기까지 한다.

이전까지 미란의 열린 모습에 비하면 조금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미란은 이런 자신의 모습을 성찰한다. 자신의 날 선 감정들이 이야기하는 것에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강릉을 찾은 다정에게 이렇게 말한다.

"엄마가 미안해. 내가 딱히 잘 키운 것도 아니고 넌 니가 혼자서 잘 큰건데 근데도 내가 생색내고 싶었나봐. 로또 같은 내 딸이 너무 아까운가 봐. 마음이 쥐똥 같아지네." (15회)
 
또한, 영도에게도 솔직하게 자신을 보여준다. 남편의 폭력에 시달렸던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며 다정-영도 관계를 걱정하는 마음도 그대로 전달한다. 그리고 당부한다. "아파도 되니까 숨기지 말고 미안해하지 말고 다 말해줘. 뭘 먹어도 될지 뭘 하면 안 되는지. 그리고 다정이에게 니가 말한대로 최선을 다해서 최대한 오래 살아줘"라고. 이에 고맙다는 영도에게 다시 이렇게 말한다.
 
"감사하지마. 아직 내가 미안한 게 더 많아. 나도 어쩔 수 없는 엄마고 속물인가봐." (15회)
 
나는 역시 미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작정 반대하지도, 그렇다고 괜찮은 척 하지도 않으며, 동시에 다른 이들의 관계를 통제하려고도 들지 않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아마도 이는 미란이 자기 자신의 어두운 면을 배척하거나 회피하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바라볼 수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부인되고 회피된 감정들은 무의식 속으로 숨어든다.

그리고 이는 자신도 모르게 남을 통제하려 들거나 가식적인 태도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런 감정들을 솔직히 인정하고 표현하고 나면 오히려 그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미란은 이를 잘 보여주었다. 아마 이런 미란의 태도는 영도와 다정에게도 전달됐을 것이고, 이들 커플이 열린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데 디딤돌이 되어주었을 것이다.
  
 미란은 영도에게 자신의 상처와 복잡한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미란은 영도에게 자신의 상처와 복잡한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 tvN

 
마침내 나는 의문이 풀리는 듯했다. 사실 영도와 다정 중 자신의 마음을 먼저 알아차리고 다가간 건 다정이었다. 영도가 다정의 상처를 치유해준 것은 맞지만 그런 영도를 알아보고 받아들인 것은 다정의 몫이었다. 그토록 끔찍한 일을 겪었던 다정이 어떻게 영도에게 먼저 다가갈 수 있었는지 그게 나는 늘 궁금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엄마인 미란이 보여준 모습들, 그러니까 자신과 타인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관계에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을 보고 자랐기 때문 아니었을까. 이런 힘을 물려받은 다정은 끔찍했던 관계들에 잠식당하지 않고 자신을 지켜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영도에게 다가갈 용기도 낼 수 있었을 것이다.
 
드라마가 끝난 지금, 40대 중반에 이른 내 모습과 주변 어른들의 모습을 돌아본다. 그리고 다짐해본다. 내가 가진 편견을 알아차리고 솔직히 사과할 수 있는 어른이 될 수 있기를, 내가 원치 않았던 나의 모습도 수용해낼 수 있기를, 타인과의 관계에서 공기가 솔솔 통하는 거리를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너는 나의 봄> 속 미란처럼만 나이들어 갈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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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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