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후지 록 페스티벌 최종 라인업 포스터

2021 후지 록 페스티벌 최종 라인업 포스터 ⓒ Fuji Rock Festival

 
여러 번 고백했듯이, 나는 페스티벌 고어(festival goer)다. 페스티벌 고어는 뮤직 페스티벌에 가는 것을 삶의 가장 큰 낙으로 삼는 사람이다. 뮤직 페스티벌의 감각은 결코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다. 팔찌를 찬 친구들과 함께 인증샷을 찍는 것, 아티스트가 등장할 때의 설렘, 생맥주의 시원함.

이런 것은 '언택트' 같은 단어로 대체될 수 없다. 가장 좋아하는 것을 빼앗긴 팬데믹 시대는 공허했다. 페스티벌로 들끓던 매년 여름이 먼 과거처럼 느껴진다. 나와 같은 '페스티벌 고어'들과 대화할 때마다 이런 말이 나왔다.

"우리 (페스티벌 없이) 도대체 어떻게 버텼냐?"

내가 경험한 페스티벌 중 으뜸은 일본 니가타 현에서 열린 '2019 후지록 페스티벌'이었다. 산과 숲을 무대로 울려 퍼지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 그리고 풍부한 콘텐츠가 어우러지는 낙원이었다. 장대비를 맞으며 시아(Sia)의 '샹들리에'를 들었던 순간의 감각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된다. 지난해 후지록 페스티벌 역시 테임 임팔라(Tame Impala), 스트록스(The Strokes) 등 쟁쟁한 뮤지션들을 초대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모든 계획은 사라졌다.

페스티벌은 관객과 함께 완성된다
 
 2021 후지록 페스티벌의 둘째날(8월 21일) 헤드라이너를 맡은 밴드 킹 누(King Gnu)

2021 후지록 페스티벌의 둘째날(8월 21일) 헤드라이너를 맡은 밴드 킹 누(King Gnu) ⓒ Fuji Rock Festival

 
2021년은 달랐다. 지난 8월 20일 금요일부터 8월 22일 일요일까지, 일본 니가타현 나에바 리조트에서 '2021 후지록 페스티벌'이 열렸다. 'NO FESTIVAL, NO LIFE(페스티벌 없이는 삶도 없다)'는 과감한 슬로건과 함께 유관중 체제로 진행되었다. 해외 뮤지션 대신, 현지 뮤지션들로 라인업을 채웠다. 킹 누(King Gnu) 같은 대세 뮤지션들부터 미샤(Misia), 인디록 밴드 쿠루리, 개성파 뮤지션 4s4ki,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Char 등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들이 빛났다. 반전과 평화의 목소리를 높였던 '일본 록의 왕' 이마와노 키요시로(1951 ~ 2009)에 대한 헌정 공연 역시 뜻깊었다.

팬데믹 가운데 열리는 페스티벌인 만큼 올해 후지록 페스티벌에서는 철저한 방역 대책이 강구되었다. 모든 관객들은 행사 직전에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했다. 많은 검문소를 배치하여 체온을 측정했다. 마스크를 쓰고 공연을 보아야 했으며, 주류의 판매와 반입도 일절 금지되었다. PCR 검사에서 양성 판정이 나올 경우 아티스트는 공연에 설 수 없었다. 밴드 인디고 라 엔드(Indigo La End) 역시 페스티벌을 사흘 앞두고 출연을 취소했다.

올해 후지록은 무대란 관객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래드 윔프스(Radwimps)의 보컬 노다 요지로는 관객들을 보며 벅찬 표정을 하고 있었다. 밴드 킹 누(King Gnu)의 라이브 역시 근사했다. 이들은 기타리스트 츠네다 다이키를 중심으로 록과 흑인음악, 전자음악 등 다양한 장르를 팝으로 집대성했다. 숲을 향해 뻗어 나가는 조명의 존재감 역시 관객을 열광시켰다. 첫 곡인 비행정(飛行艇)의 비트에 맞춰 팔을 흔드는 관객들의 모습은 페스티벌의 정수였다.
 
 지난 8월 20일(금)부터 22일(일)에 걸쳐, 2021 후지록 페스티벌이 열렸다. 일부 공연은 유튜브 스트리밍을 통해 중계되기도 했다.

지난 8월 20일(금)부터 22일(일)에 걸쳐, 2021 후지록 페스티벌이 열렸다. 일부 공연은 유튜브 스트리밍을 통해 중계되기도 했다. ⓒ 이현파(본인 촬영)

 
가장 기대했던 것은 텐더(TENDRE)의 공연이었다. 최근 일본에서는 서치모스(Suchmos)처럼 흑인음악에 기반한 밴드 음악이 인기를 끌고 있다. 텐더 역시 그 흐름 가운데에 있는 뮤지션이다. 마스크로 가려져 있지만 행복한 표정으로 춤추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처럼 도회적이고 세련된 그루브에 몸을 맡기고 싶었다. 그리운 풍경이었다.

어디까지나 비대면으로 즐긴 페스티벌이었지만, 영상 속에 포착된 관객들의 모습이 있어 감정을 이입할 수 있었다. DVD 못지 않는 중계 영상 역시 시청자와 아티스트 간의 거리를 좁혔다. 산기슭에 비가 내리면서 안개가 자욱하게 드리우고, 안개와 빗물 사이를 기타 사운드가 가득 채우는 아름다움 역시 여과없이 전달되었다.

"우리도 이런 풍경을 볼 수 있을까?"

옆나라의 록 페스티벌을 실시간으로 지켜 보면서,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우리나라에서도 페스티벌 무대를 수놓을 만한 멋진 국내 뮤지션들이 있지 않는가. 물론 일본의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가 매일 2만 명 이상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후지록 페스티벌의 강행이 무모해 보이기도 한다. 옆 나라에서 페스티벌이 열렸다는 사실이 모든 것을 정당화시킬 수도 없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페스티벌을 다시 살릴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했다는 점에서, 이 시도에는 큰 의의가 있다.

현재의 방역 지침에 따르면, 정규 공연시설이 아닌 시설에서 열리는 공연은 3단계에서 면적 6㎡(약 1.8평) 당 1명, 최대 2000명을 수용할 수 있다. 4단계에서는 정규 시설을 제외한 곳에서의 공연은 아예 개최할 수 없다.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가 9월 5일까지 2주 연장된 지금, 체육관이나 공원, 컨벤션 센터 등을 빌리는 페스티벌은 개최가 불가능하다. 6월 말 '뷰티풀 민트 라이프 페스티벌'이 열리긴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거리두기 단계가 4단계로 격상되고 말았다.

'위드 코로나 시대'는 '위드 라이브 시대'여야

지난 6월 이전까지만 해도 대중음악 공연은 '공연'이 아니라 '집합, 모임, 행사'로 분류되어 100명 이상의 관객을 모을 수 없었다. 지난 6월,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사회전략반장은 "대중음악 공연의 경우 감염 위험성이 크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그 판단의 근거를 말하지 않았다. 다행히 당국은 산업 관계자들의 의견을 받아들였고, 지난 6월 뮤지컬 등 타 장르와의 차별을 철폐했다. 그러나 대중음악이 오랜 편견과 차별에 시달려 온 환경에서 페스티벌을 여는 것은, 적지 않은 수고를 요구할 것이다.

K 방역은 선진 시스템, 시민의 능동적 참여를 기반으로 확진자와 사망자 수를 관리하는 데에 성공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음 단계에 대한 고민도 필요한 시점이다. 그것은 '코로나와 함께 살기 위한 상상력'이어야 한다. 정부는 현재 9월 추석 전까지 전 국민 1차 접종 70%를 목표로 백신 접종을 추진 중이다. 최근 정부는 9월 말에서 10월 초 '위드 코로나' 의 전환 가능성을 언급했다. 대선 주자인 이낙연 전 국무총리 역시 '위드 코로나'론에 힘을 실었다. 위중증 환자와 사망자를 중점적으로 관리하면서, 천천히 일상으로 회귀하자는 것이다. 

시점이 언제가 되었든,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언제까지 자영업자들에게 무한한 희생만을 요구할 수 없듯이, 라이브 공연과 페스티벌 역시 돌아와야 할 것 중 하나다. 누군가는 '그런 것이 없어도 살 수 있지 않으냐'라고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묻고 싶다. 백화점도 되고, 수천 명이 오가는 창고형 매장과 쇼핑몰도, 컨벤션 행사도 된다면, 왜 공연과 페스티벌은 안 되겠는가? 위드 코로나 시대에는 '위드 라이브 시대'의 자리 역시 있어야 한다. 참고로 2021년 8월 24일 기준, 대중음악 공연 발 코로나19 감염자 수는 0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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