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한할 때마다 팬서비스가 워낙 좋아 한국팬들에게 '친절한 톰 아저씨'로 불리는 배우 톰 크루즈는 <7월 4일생>과 <제리 맥과이어>로 두 번이나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배우다. 만약 톰 크루즈가 젊은 시절처럼 아카데미 수상을 노리는 영화를 위주로 활동을 이어갔다면 커리어에서 한두 번 정도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이라는 타이틀을 차지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톰 크루즈는 자신의 재능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이 아닌 일반 관객들을 만족시키는 데 사용하기로 결심했다. 실제로 톰 크루즈는 2000년 <매그놀리아>(남우조연상 후보)이후 한 번도 아카데미 시상식에 노미네이트되지 못했지만 세계적으로 2억 달러 이상의 흥행성적을 기록한 영화는 무려 16편이나 배출했다(이하 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아카데미 트로피는 없어도 충분히 성공적이고 위대한 배우 커리어를 보내고 있는 셈이다.

톰 크루즈처럼 대중지향적인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가 있는 반면에 아카데미 수상을 목표로 삼는 배우도 적지 않다. 총 4번이나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라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를 통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의 꿈을 이룬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대표적이다. 물론 지금처럼 연기파 배우가 된 디카프리오도 훌륭하지만 대중들은 가끔 꽃미모를 발산하며 여심을 사로잡던 <로미오와 줄리엣>의 디카프리오를 그리워하기도 한다.
 
 1996년에 개봉한 <로미오와 줄리엣>은 북미보다 해외에서 두 배 이상의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1996년에 개봉한 <로미오와 줄리엣>은 북미보다 해외에서 두 배 이상의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 (주)프레인글로벌

 
4전5기 정신 보여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4살 때부터 아역배우로 활동을 시작한 디카프리오는 1993년 영화 <길버트 그레이프>에서 어린 아이의 지능을 가진 길버트(조니 뎁 분)의 동생 어니 그레이프를 연기하며 주목 받았다. 디카프리오와 아카데미의 질긴 인연이 시작된 순간이기도 하다(남우조연상 후보). <토털 이클립스>와 <바스켓볼 다이어리>에 출연하며 대배우로 성장할 조짐을 보인 디카프리오는 1996년 <로미오와 줄리엣>을 통해 할리우드 최고의 꽃미남 스타로 떠올랐다.

마치 CF나 뮤직비디오를 보는 듯한 바즈 루어만 감독의 감각적인 연출이 돋보인 <로미오와 줄리엣>은 세계적으로 1억 47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리며 흥행에 성공했다. 그리고 디카프리오의 스타성과 연기를 눈 여겨 본 명감독 제임스 카메론은 그를 차기작 주인공으로 캐스팅했다. 바로 북미흥행 역대 6위(6억 5936만 달러)와 세계흥행 역대 2위(22억 164만 달러)의 대기록을 남긴 디카프리오의 대표작 <타이타닉>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 <아이언 마스크> <캐치 미 이프 유 캔>처럼 상업성이 강한 영화에 출연하며 슈퍼스타로 무난한 커리어를 쌓아 가던 디카프리오는 2004년부터 본격적인 아카데미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에비에이터>에서 첫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디카프리오는 2006년 <블러드 다이아몬드>를 통해 다시 한 번 오스카 트로피에 도전했지만 <라스트킹>의 포레스트 휘태커에게 밀렸다. 

2010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셉션>을 통해 세계적으로 8억 26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하며 슈퍼스타로서 건재를 과시한 디카프리오는 2013년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로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됐지만 또 한 번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디카프리오는 포기하지 않았고 드디어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를 통해 2016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차지했다. 아카데미를 향한 디카프리오의  '도전정신'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디카프리오는 수상소감에서 기후변화에 따른 환경문제에 대해 언급하는 소신발언으로 많은 박수를 받았다. 그렇게 <길버트 그레이프>를 시작으로 무려 25년이 걸렸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아카데미 도전사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됐다. 물론 명배우 디카프리오는 2019년에도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를 통해 또 다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르며 여전히 명불허전의 연기력을 과시하고 있다.

조금(?) 오글거려도 용서되는 고전 원작의 힘
 
 연기파 배우 유망주였던 디카프리오는 <로미오와 줄리엣> 이후 세계적으로 아이돌 그룹 멤버를 능가하는 인기를 누렸다.

연기파 배우 유망주였던 디카프리오는 <로미오와 줄리엣> 이후 세계적으로 아이돌 그룹 멤버를 능가하는 인기를 누렸다. ⓒ (주)프레인글로벌

 
마블의 간판 히어로 스파이더맨이나 DC코믹스의 배트맨처럼 자주 영화로 리부트되는 작품들이 있다. 하지만 셰익스피어의 고전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은 1968년 버전이 나온 후 무려 28년 동안 리메이크되지 않았다. '줄리엣의 상징'이 된 올리비아 핫세의 존재감이 워낙 컸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로미오와 줄리엣>을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고 있던 1996년, 바즈 루어만 감독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앞세워 금기의 희곡을 부활시켰다.

연출 데뷔작 <댄싱 히어로>를 통해 화려한 색감과 빠른 편집으로 주목 받았던 루어만 감독은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도 자신의 재능을 십분 발휘했다. 특히 영화 도입부에 캐플릿가와 몬태규가의 거친 친구들이 사이 좋게(?) 총격전을 벌이는 장면은 마치 한 편의 뮤직비디오를 보는 것처럼 대단히 화려하다. 영화만 보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도시 베로나의 치안이 굉장히 불안하다고 오해할 여지도 있다.

현란한 화면에 정신이 팔릴 때 즈음 영화는 다시 잘생긴 로미오와 아름다운 줄리엣(클레어 데인즈 분)의 운명적인 만남을 통해 영화의 주제를 환기시킨다. 데즈레의 OST 'Kissing You'를 배경으로 대형 어항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는 장면에서 설레지 않는 관객들은 거의 없었다. '가수는 노래 따라 간다'는 말이 있는데 배우들은 OST를 따라가는 모양이다. 영화 속에서 디카프리오와 클레어 데인즈는 눈만 마주치면 키스를 해댄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대중들에게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햄릿, 리어왕, 오셀로, 맥베스) 이상으로 널리 알려진 작품이지만 사실 현대적인 시선에서 보면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많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몇 마디 나눠 보지도 않고 키스를 하고 두 번째 만날 때(심지어 같은 날이다) 결혼을 약속한다. '썸'같은 과정은 이들에게 사치일 뿐이다. 굳이 원수집안이 아니더라도 이런 철 없는 결혼 결정을 집안에서 쉽게 허락할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미오와 줄리엣>의 인스턴트 같은 사랑이 관객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었던 비결은 검증된 고전이 가진 힘과 두 주인공의 애절한 연기 덕분이었다. 디카프리오는 연기 천재답게 다양한 감정을 영화 속에서 자유자재로 표현해냈다. 특히 친척인 머큐쇼(해롤드 페리뉴 분)가 죽고 이성을 잃은 로미오가 티볼트(존 레귀자모 분)에게 복수하는 장면에서 디카프리오는 관객들을 압도해 버리는 소름 끼치는 몰입도를 선보인다.

줄리엣의 정혼자로 출연한 배우는 앤트맨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던 디카프리오에 비해 줄리엣 역의 클레어 데인즈는 '원조 줄리엣' 올리비아 핫세의 아성을 넘지 못했다.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던 디카프리오에 비해 줄리엣 역의 클레어 데인즈는 '원조 줄리엣' 올리비아 핫세의 아성을 넘지 못했다. ⓒ (주)프레인글로벌

 
디카프리오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통해 세계 관객들에게 자신의 얼굴을 널리 알릴 수 있었다. 하지만 줄리엣 역의 클레어 데인즈는 신예답지 않은 무난한 연기와 아리따운 외모에도 디카프리오의 꽃미모와 열연에 가려 크게 빛을 보지 못했다. 실제로 디카프리오가 차기작 <타이타닉>을 통해 곧바로 월드스타로 떠오른 데 반해 데인즈는 <로미오와 줄리엣> 이후 히트작을 만나지 못해 한동안 슬럼프를 겪어야 했다.

특히 국내 관객들이 많이 기억하는 <터미네이터3 – 라이즈 오브 더 머신>에서는 영화의 떨어지는 완성도와 함께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는 외모로 팬들을 실망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데인즈는 2011년 드라마 <홈랜드>를 통해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고 2012년과 2013년 골든글러브 TV 드라마 부문 여우 주연상을 2년 연속 수상하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실제로 클레어 데인즈는 <홈랜드>에서 주연은 물론 프로듀서로도 참여했다.

줄리엣의 사촌오빠이자 캐플릿가의 에이스(?) 티볼트는 로미오에게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있다. 끈질기게 로미오에게 결투를 신청하다가 실수로 몬테규가의 머큐쇼를 죽이고 결국 로미오에 의해 목숨을 잃는다. 티볼트는 연기한 존 레귀자모는 <투 웡 푸> <물랑루즈> 등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했다. 특히 5편까지 개봉된 인기 애니메이션 <아이스 에이지>에서는 나무늘보 시드의 목소리 연기를 맡았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재미있게 본 관객이라면 줄리엣에게 툭하면 청혼을 하는 느끼한 남자 데이브 패리스를 기억할 것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존재감 작은 패리스를 연기했던 배우 폴 러드는 19년 후 마블의 히어로 <앤트맨>의 스캇 랭이 된다. 두 편의 <앤트맨> 시리즈를 통해 세계적으로 11억 달러가 넘는 흥행 성적을 기록한 폴 러드는 오는 2023년 개봉 예정인 <앤트맨과 와스프: 퀀터매니아>에 출연할 예정이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클레어 데인즈 폴 러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