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우 또 골이다 29일 오후(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와바랏주 보고르 치비농의 파칸사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준결승 한국과 베트남의 경기. 한국 세 번째 골을 넣은 이승우가 기뻐하고 있다.

▲ 이승우 또 골이다 2018년 8월 29일 인도네시아 자와바랏주 보고르 치비농의 파칸사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준결승 한국과 베트남의 경기. 한국 세 번째 골을 넣은 이승우가 기뻐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금의 너를 말해주는 건 바로 현재의 모습/행동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히어로 영화 <배트맨 비긴즈>에 나오는 명대사다. 방탕한 재벌 2세의 모습으로 위장한 채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두고 "이건 진짜 내가 아니다"라며 변명하려는 브루스 웨인에게 첫사랑 레이첼 도스가 날린 일침이다. 영화 후반부에서 배트맨은 레이첼을 위기에서 구해내고 이 대사를 그대로 돌려줌으로써 자신의 정체를 공개한다.

어쩌면 '코리안 메시'로 불리우던 이승우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표현이다. 이승우는 한때 손흥민을 뛰어넘을 수 있는 한국축구 최고의 재능으로 꼽혔다. 전 세계 유망주 순위에서 당당히 상위권을 차지할 만큼 인정받는 선수였고, 태극마크를 달고 U20 월드컵 16강-아시안게임 금메달-월드컵 본선출전 등 누구보다 빠르게 화려한 경력을 쌓아갔다. 탁월한 재능과 톡톡튀는 개성으로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그 스타성에 열광하여 이승우의 행적을 맹목적으로 옹호하는 팬들도 많았다.

하지만 2021년 현재의 이승우가 처해있는 현실은 초라하다. 프로에서는 벌써 몇 년째 여러 클럽과 리그를 전전했으나 어디에서도 확실하게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소속팀에서 오랫동안 경기에 제대로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기량이 정체되자, 국가대표팀에서도 점점 외면받았고 심지어 연령대별 대표팀에서도 탈락하는 굴욕을 당했다. 유망주 시절 이승우보다 늦게 주목받았던 또래 선수들이 하나둘씩 소속팀과 자국대표팀에서 주전이자 스타플레이어로 성장할 동안 이승우의 존재감은 오히려 점점 희미해져갔다.

이승우는 벨기에 1부리그 신트트라위던에서 2021-22시즌을 맞이했지만 개막 후 4경기 연속으로 그라운드도 밟지 못했다. 이승우는 그나마 1∼2라운드에서는 벤치 멤버로 대기라도 했지만, 최근 두 경기에서는 아예 출전명단에서 이름이 빠졌다. 신트트라위던은 최근 2연패에 빠지며 벨기에 리그에서도 1부 18개 구단 중 13위(승점 4·1승 1무 2패)에 머물고 있는 약체팀이다. 이승우는 2019년부터 신트트라위던에 입단하며 벌써 3시즌째를 맞이하고 있지만 여전히 팀내 입지는 초라한 수준이다.

만일 이승우가 신트트라위던에서만 부진했다면 '팀과 선수의 궁합이 맞지 않아서'라고 위안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승우가 성인무대에 데뷔한 게 사실상 바르셀로나를 떠나 이탈리아 헬라스 베로나에 입단한 2017년부터이고 4년간 임대 시절을 포함하며 이탈리아-벨기에(신트트라던)-포르투갈(포르티모넨세, 임대)까지 3팀을 거쳤는데 어디에서도 주전급은 커녕 성인무대에서 자리잡았다고 할 만한 일정 수준 정도의 활약도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은 본인의 한계라고 밖에 볼 수가 없다.

이승우의 커리어가 꼬이기 시작한 계기는, 바르셀로나 유스 시절 구단이 유소년 해외 이적 금지 조항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국제축구연맹(FIFA)으로부터 구단에서의 모든 활동을 금지하는 징계를 받으면서부터였다. 실제로 징계 이후 이승우의 성장세는 주춤했고 팀 내 입지도 자연히 감소했다. 2017년에야 2군 격인 바르셀로나B에 올라갈 수 있었지만 1군 진입에는 실패했고 이승우는 끝내 바르셀로나에서의 성인무대 데뷔라는 꿈을 이루지 못한 채 구단을 떠나야 했다.

이후 이승우는 저니맨으로 전락했다. 베로나에서 43경기 출전에 2골, 신트트라위던에서는 2시즌간 17경기 2골에 그쳤다. 2020-21시즌 중반 출전기회를 확보하기 위하여 포르투갈 포르티모넨세로 임대됐지만 고작 4경기에만 출전하여 무득점에 그친 후 다시 신트트라위던으로 복귀했다. 유럽 빅리그 유스팀에서 시작하여 2부리그행-중위권 리그- 전력이 뛰어나지 않은 약팀에 이르기까지, 조금씩 눈높이를 계속해서 낮춰왔음에도 상황이 호전되기는커녕 점점 악화되었다는 데 주목할 만하다.

설상가상 이승우는 경기 외적으로도 여러 차례 구설수에 올랐다. 현지 언론으로부터는 '바르셀로나 시절의 과거에 젖어있다'며 혹평을 받기도 했고, 소속팀 감독들과도 갈등에 휩싸였다. 이승우는 신트트라위던에서만 벌써 4명의 감독을 거쳤는데 이중 케빈 머스캣 감독이 이끌었던 2019-20시즌 초반에 잠깐 중용되었지만 팀 성적은 부진했고, 페터르 마에스 전 감독이나 현 베른트 흘러바흐 감독은 이승우를 그다지 신임하지 않는 모습이다. 이승우가 훈련태도나 경기에서 집중력을 잃은 실수를 저지르며 감독의 눈밖에 났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사실 유럽은 한국에 비하면 비즈니스 마인드가 더 철저하다. 실력만 증명하면 선수의 개성과 사생활에 관대한 편이지만, 가치를 증명하지 못한 선수에게는 혹독한 평가와 대우가 기다리고 있다. 한두 번도 아니고 유럽 경력이 몇 년째인데 어디에서도 꾸준한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으며, 훈련 태도나 언행 등에서도 구설수에 오르내리고 있다는 것은 이승우 스스로도 성찰이 필요해보이는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이승우가 아시아 선수라는 선입견과 문화 차이 때문에 유럽에서 불이익을 받는 게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지난 시즌 이승우의 소속팀 신트트라위던의 에이스는 바로 같은 아시아 출신이자 일본인 선수인 스즈키 유마였다.

이승우보다 2살이 더 많고 일본 J리그에서 활약하다가 2019년 신트트라위던에 입단하며 뒤늦게 유럽 경력을 시작했음에도, 유마는 벨기에 적응에 애를 먹던 입단동기 이승우와 달리 2년간 58경기에서 무려 24골을 터뜨리며 팀의 주포로 굳건히 자리잡았다. 특히 2020-21시즌에는 리그 34경기에서 팀내 최다인 17골을 터트리며 팀내 득점 1위이자 벨기에리그 전체 득점 4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리고 같은 기간 이승우는 주전경쟁에서 밀려 임대를 전전해야 했다.

유마는 자국리그에서부터 차근차근 두각을 나타내며 J리그 우승,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우승과 MVP를 거쳐 유럽진출까지 연이어 성공한 '엘리트 유망주의 성장 과정' 모범사례로도 꼽힌다. 또한 유마 덕분에 일본 선수의 활약에 고무된 신트트라위던은 사간 도스에서 활약하던 일본 올림픽대표팀 공격수 하야시 다이이치를 영입하기도 했다. 유마는 지난 시즌 이후 여러 유럽리그의 러브콜을 받았지만 일단은 신트트라위던에 잔류한 상태다.

이승우는 유마보다 유럽에서 더 일찍 선수경력을 시작했음에도, 지금은 격차가 하늘과 땅만큼 벌어졌다. 그 이유는 온전히 본인의 실력과 적응 실패 때문이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또한 이승우는 지난 6월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김학범 감독이 이끄는 U-23 축구대표팀에 소집되었으나 결국 탈락했다. 최종은커녕 예비엔트리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 하고 2차 명단에서 일찌감치 고배를 마셨다. 몇 년 전만 해도 김학범 감독과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함께했고 성인대표팀에서 월드컵 본선까지 출전했던 선수가 한 단계 아래라고 할 수 있는 올림픽대표팀 승선조차 실패했다는 것은 이승우의 냉혹한 현실을 다시 한번 극명하게 보여준 장면이었다.

6-7년 전의 이승우는 분명히 촉망받던 유망주였지만 어느덧 지금은 성인무대에서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한 별 볼 일 없는 '저니맨 축구선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바르셀로나에서의 불운이 이승우의 성장을 망치게 된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하지만, 언제까지 그 핑계만 대기에는 이후로도 놓친 시간과 기회가 너무 많다. 국내 축구팬들 사이에서도 언제부터인가 이승우의 이미지는 온라인에서 유행한 '돼지불백' 패러디 등에서 보듯 부정적인 조롱과 풍자의 대상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과연 지금으로서 이승우가 더 이상 신트트라위던, 나아가 유럽무대에서 이름만 올리는 선수생활을 이어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다. 이승우가 이제라도 배트맨으로 다시 각성하려면 꾸준히 경기에 출전하며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환경이 절실하다.

이승우는 이제 더 이상 어린 나이의 유망주도 아니고 5년간 유럽에서 거쳐간 리그와 팀도 수두룩하다. 더 이상 허울뿐인 도전의식을 핑계로 한 시행착오나 시간낭비는 이승우의 축구인생 자체를 완전히 망가뜨릴 수도 있다. 이승우와 함께 바르셀로나 유스에서 활약했던 백승호(전북)와 장결희(평택시티즌)도 현재는 한국에서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있다. 이승우도 한국행이나 혹은 제 3의 길을 모색할 시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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