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무가 컵대회에서 아마추어 초청팀의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박삼용 감독이 이끄는 국군체육부대(상무) 배구단은 17일 의정부체육관에서 열린 2021 의정부-도드람컵 프로배구대회 남자부 B조 경기에서 우리카드 위비를 세트스코어 3-2(13-25, 26-24, 29-27, 18-25, 15-11)로 꺾었다. 지난 15일 KB손해보험 스타즈에게 3-1 승리를 거두면서 이번 대회 복병으로 떠올랐던 상무는 지난 시즌 V리그 준우승팀 우리카드까지 제압하면서 4강 진출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상무는 이번 대회 주포 역할을 하고 있는 한국민이 46.92%의 공격 점유율을 책임지면서 50.82%의 성공률로 33득점을 퍼부었고 윙스파이커 이시우가 19득점, 중앙공격수 전진선이 3개의 블로킹과 함께 14득점으로 뒤를 이었다. 아무리 외국인 선수가 없다곤 해도 현재 상무의 전력은 프로 구단들에 비해 약하다고 평가 받고 있다. 하지만 상무는 물러서지 않는 '군인정신'을 바탕으로 이번 대회 돌풍을 일으키며 배구 팬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한국민은 쟁쟁한 프로선수들 사이에서 이번 대회 득점 4위, 공격성공률 5위에 올라 있다.

한국민은 쟁쟁한 프로선수들 사이에서 이번 대회 득점 4위, 공격성공률 5위에 올라 있다. ⓒ 한국배구연맹

 
프로팀의 승점 자판기였던 '아마 초청팀' 시절

한국배구연맹은 지난 2005년 V리그를 출범하면서 큰 고민에 빠졌다. 바로 리그에 참가할 프로구단이 4개(삼성화재 블루팡스,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LG화재, 대한항공 점보스) 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기업들에게 프로구단 창단을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 결국 한국배구연맹은 고육지책으로 실업팀 한국전력과 군인팀 상무를 '아마추어 초청팀' 자격으로 V리그에 참가시켰다.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군에 입대하면 일시적으로 전력이 강해지곤 하던 상무는 지난 1992년 신영철 세터(우리카드 감독)를 중심으로 노진수, 오욱환, 이재필 등을 앞세워 1992년 슈퍼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스타 선수들이 상무에서 혹사를 당하면서 선수생명이 짧아지는 부작용도 있었다. 결국 2000년대 들어 많은 선수들이 상무 입대 대신 나이가 꽉 찰 때까지 실업에서 활약하다가 사회복무요원으로 군복무를 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한국 남자배구는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과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연속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는 분명 한국배구의 큰 호재였지만 반대로 상무의 전력에는 악재로 다가왔다. 김세진과 신진식, 이경수, 문성민, 김요한 등 국가대표 선수들이 대거 병역혜택을 받으면서 상무의 선수수급이 더욱 어려워진 것이다. 이처럼 상무는 실업배구 시절에 비해 한층 열악해진 환경으로 V리그에 뛰어 들었다.

상무는 '군인정신'을 앞세워 프로의 강 팀들과 싸워 보려 했지만 2005-2006 시즌부터 외국인 선수까지 합류한 프로팀을 당해낼 재간은 없었다. 결국 상무는 매 시즌 프로팀에게는 승리 자판기 노릇을 하면서 한국전력과 탈꼴찌를 다투는 신세로 전락했다. 장광균(대한항공 코치)과 임동규(현대캐피탈 코치), 김정훈 등 각 구단의 주전급 선수가 입단하기도 했지만 끝내 원맨팀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상무는 2012년 프로배구를 강타한 승부조작 사건에 전역자 및 현역 복무자가 무더기로 적발되면서 잔여 경기 몰수패 처분을 받았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인해 2011-2012 시즌을 끝으로 더 이상 V리그에 참가할 수 없게 됐다. 한 때 배구단 해체 위기에 몰리기도 했던 상무는 2012년8월 박삼용 감독이 부임하면서 간신히 배구단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KB손해보험 이어 우리카드까지 격파하며 4강 눈 앞

상무가 V리그에서 제외되면서 각 팀 주력 선수들의 '상무기피 현상'은 더욱 커졌다. 실전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상무에 입대해도 1년에 한두 차례 있는 군인대회와 전국체전, 그리고 컵대회 출전 정도를 제외하면 꾸준히 경기를 치를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재덕(한국전력 빅스톰)과 전광인(현대캐피탈), 김규민(대한항공) 등 V리그 스타 선수들은 상무입대 가능 나이(만 27세 이하)를 훌쩍 넘겨 사회복무요원으로 입대했다.

이제 상무는 프로구단에서 붙박이 주전으로 자리 잡지 못한 유망주들이 일찍 병역의무를 마치거나 FA 대박을 기대하기 힘든 중견급 선수들이 가는 곳으로 전락했다. 따라서 이번 컵대회에서 상무의 참가가 결정됐을 때도 이를 주목하는 배구 팬은 그리 많지 않았다. 상무 선수 대부분이 프로 출신이지만 V리그 구단에서 붙박이 주전으로 활약하며 두각을 나타냈던 선수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번 컵대회는 외국인 선수도 출전하지 않고 작년에 이어 코로나 19 대유행으로 무관중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프로 선수들은 좀처럼 승리욕을 끄집어 내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상무 선수들은 달랐다. V리그에 출전할 수 없는 상무에게 컵대회는 프로 선수들과 정식으로 맞붙어 볼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무는 이번 대회에서 남다른 투지를 발휘하며 KB손해보험과 우리카드를 연파하는 이변을 연출했다.

이번 대회 상무에서 가장 돋보이는 선수는 2경기에서 56득점을 퍼부은 주공격수 한국민이다. 194cm의 신장을 가진 오른쪽 공격수 한국민은 인하대 시절부터 차지환(OK저축은행 읏맨)과 함께 팀의 쌍포로 활약했다. 프로입단 후 외국인 선수에 밀려 기회를 잡지 못하던 한국민은 상무 입단 후 잠재력을 폭발시키고 있다. 지난 15일 KB손해보험전에서 23득점으로 친정을 울린 한국민은 17일 우리카드전에서도 33득점을 올렸다.

2012년부터 햇수로 10년째 상무를 이끌고 있는 박삼용 감독은 이번 대회 상무의 가장 큰 무기를 '군인정신'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이번 대회를 맞는 상무 선수들의 눈빛은 기존 프로 선수들의 기선을 제압하기 충분할 정도로 날카롭다. 이번 컵대회를 통해 프로선수들을 압도할 수 있는 저력을 보여준 상무는 오는 9월 12일부터 일본에서 열리는 아시아 남자배구 선수권 대회에 한국을 대표해 단일팀으로 출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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