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배구는 도쿄 올림픽이 끝난 후 커다란 변화의 바람을 맞았다. '배구여제' 김연경이 올림픽을 끝으로 대표팀에서 은퇴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김연경은 공격과 수비, 그리고 팀을 이끄는 리더십까지 대표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선수다. 강소휘(GS칼텍스 KIXX)와 이소영(KGC인삼공사), 정지윤(현대건설 힐스테이트) 등이 대안으로 꼽히지만 김연경의 자리를 메우기 위해서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한국 여자배구가 메워야 할 자리는 김연경이 책임졌던 윙스파이커만이 아니다. 한국 여자배구의 중앙을 든든히 지켰던 김수지(IBK기업은행 알토스)와 양효진(현대건설) 역시 이번 올림픽을 끝으로 대표팀 생활을 마무리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물론 더 오래 대표팀에 머물러 주길 바라는 마음도 있지만 나이로 보나 경력으로 보나 두 선수 모두에게 도쿄 올림픽은 대표팀 생활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기에 더 없이 좋은 무대였다.

현재 V리그에는 1981년생 정대영(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과 1984년생 한송이(인삼공사),1989년생 한수지(GS칼텍스), 배유나(도로공사) 등 베테랑 선수들이 각 팀의 주전 센터로 활약하고 있다. 1990년대생들 중에서도 김수지와 양효진의 뒤를 이을 센터자원은 마땅치 않다. 하지만 한국 여자배구에는 프로 2~3년 차의 2000년대 생 신예들 중 좋은 센터 자원들이 많은 편이라 훗날 '제2의 김수지', '리틀 양효진'이 될 후보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도쿄 올림픽 경험한 유일한 센터
 
 김수지와 양효진이 대표팀에서 은퇴하면 박은진은 도쿄 올림픽을 경험한 유일한 센터자원이 된다.

김수지와 양효진이 대표팀에서 은퇴하면 박은진은 도쿄 올림픽을 경험한 유일한 센터자원이 된다. ⓒ 한국배구연맹

 
도쿄 올림픽에서 대표팀을 이끌었던 스테파노 라바리니 감독은 올림픽 최종 엔트리에 중앙 공격수를 3명 밖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주전 센터로 활약한 김수지, 양효진과 함께 대표팀에 이름을 올린 선수가 바로 프로에서 세 시즌을 보낸 인삼공사의 박은진이었다. 187cm로 센터로는 이상적인 신체조건을 가진 박은진은 선명여고 2학년 시절부터 대표팀에 선발됐을 정도로 한국 여자배구를 대표하는 센터 유망주였다.

선명여고의 에이스이자 고교 넘버원 센터로 군림하던 박은진은 2018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원곡고의 이주아(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에게 전체 1순위를 빼앗기고 말았다. 박은진은 루키 시즌 25경기에 출전해 145득점을 올렸지만 29경기에서 210득점을 기록한 정지윤에게 평생 한 번 밖에 받을 수 없는 신인왕 자리를 빼앗겼다. 하지만 또래 중에서 가장 좋은 신장과 블로킹 능력을 가지고 있던 박은진은 대표팀에선 일찍 기회를 얻었다.

2020-2021 시즌 유효블로킹에서 전체 1위(207개)를 기록하는 뛰어난 효율을 선보인 박은진은 시즌이 끝난 후 VNL 18인의 명단에 포함됐고 도쿄 올림픽 최종 엔트리에 선발되는 영광을 누렸다. 물론 박은진은 올림픽에서 주로 스코어가 벌어진 상황이나 원포인트 블로커로 출전하는 백업센터로 활약했다. 하지만 터키와의 8강 5세트에서는 과감한 서브로 경기의 흐름을 가져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도쿄 올림픽을 끝으로 김수지와 양효진이 대표팀에서 은퇴를 하면서 박은진은 도쿄 올림픽 멤버 중 센터 포지션으로 활약한 유일한 선수가 된다. 당장 내년으로 다가올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비롯한 여러 국제대회에서 박은진이 한국의 중앙을 지킬 주역으로 활약해야 한다는 뜻이다. 부디 도쿄 올림픽 4강이라는 경험이 박은진이 한국 여자배구의 기둥센터로 성장하는데 소중한 밑거름이 됐기를 희망한다.

양효진 노하우 전수 받을 수 있는 특급 유망주
 
 정지윤이 날개 공격수로 외도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이다현은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정지윤이 날개 공격수로 외도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이다현은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다. ⓒ 한국배구연맹

 
이주아, 박은진, 정지윤까지 중앙공격수 자원이 즐비했던 2018년 신인 드래프트에 비해 2019년 신인 드래프트에서는 중앙 공격수 자원이 그리 많지 않았다. 185cm의 신장을 자랑하는 중앙여고의 정통센터 이다현이 더욱 주목 받은 이유다. 1순위 지명권을 가지고 있던 인삼공사는 '리틀 김연경'으로 불리던 대형 윙스파이커 정호영을 지명했지만 2순위 지명권을 가진 현대건설은 이다현을 놓치지 않았다.

2018-2019 시즌 센터로 활약하면서 신인상을 받은 정지윤을 보유하고 있는 현대건설은 이다현이 가세하면서 선수기용의 폭이 다양해졌다. 단순히 정지윤이 부진하거나 몸 상태가 좋지 않을 때 교체선수로 들어가는 것 뿐만 아니라 이다현이 센터 자리에서 양효진과 짝을 이루면 정지윤은 날개로 자리를 옮겨 더 넓은 활동량을 가져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다현은 루키 시즌 백업 센터로서 준수한 활약을 펼치고도 박현주(흥국생명)에게 신인왕을 내줬다.

하지만 이다현은 2년 차 시즌 슬럼프에 빠지거나 큰 부상을 당하지 않고 24경기에 출전해 31개의 블로킹과 함께 107득점을 기록했다. 그리고 센터로서 이다현의 뛰어난 감각을 눈 여겨 본 라바리니 감독은 이다현을 VNL 대표팀 명단에 포함시켰다. 비록 도쿄 올림픽 최종 명단에는 포함되지 못했지만 이다현에게 첫 성인 대표팀 선발과 VNL대회 출전은 더할 수 없이 소중한 경험이었다.

현대건설에는 11시즌 연속 블로킹 여왕과 10여 년 동안 국가대표 주전 센터로 활약했던 양효진이라는 대선배가 있다. 최고의 롤모델이 될 수 있는 양효진의 노하우를 잘 전수 받으면 센터로서 갖춰야 할 기본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는 이다현은 충분히 리그 정상급 센터로 성장할 수 있다. 그리고 이다현의 빠른 성장은 한국 여자배구 센터 포지션의 세대교체가 빨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리틀 김연경' 대신 '리틀 양효진' 노린다
 
 단순히 '높이'만 보면 정호영은 센터 유망주들 중에서도 단연 으뜸이다.

단순히 '높이'만 보면 정호영은 센터 유망주들 중에서도 단연 으뜸이다. ⓒ 한국배구연맹

 
지난 2016년 광주체육중학교에 189cm의 신장을 가진 윙스파이커 유망주 정호영이 등장했다. 배구팬들은 '제2의 김연경이 나타났다'며 흥분했고 정호영은 명문 선명여고에 진학해 부족한 기본기부터 착실히 배워 나갔다. 인삼공사는 당연히 정호영을 전체 1순위로 지명했고 프로에 입단하자마자 리그를 지배했던 김연경 정도는 아니라도 충분히 좋은 활약을 할 수 있을 거라 크게 기대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본 결과 '윙스파이커 정호영'의 기량은 수준미달이었다. 수비가 불안한 것은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28.13%의 성공률에 머물렀던 공격도 배구팬들의 기대와는 한참 거리가 멀었다. 결국 정호영은 한 시즌 만에 '윙스파이커'로 낙제점을 받고 시즌이 끝나자마자 중앙 공격수로 변신했다. 감독대행을 맡았다가 정식 감독으로 부임한 이영택 감독이 센터 출신이기 때문에 정호영의 변신에 도움이 될 거란 기대도 있었다.

컵대회에서 센터로서 첫 선을 보인 정호영은 3세트부터 교체선수로 들어와 5개의 블로킹을 기록하며 성공적인 센터 데뷔전을 치렀다. 정호영은 컵대회에서 68.75%의 공격성공률과 함께 세트당 1.33개의 블로킹을 기록하며 '괴물센터'의 등장을 알렸다. 하지만 작년 정호영은 10월 기업은행과의 정규리그 첫 경기에서 착지 도중 무릎이 뒤틀리면서 쓰러졌고 전방십자인대 파열로 허무하게 시즌 아웃됐다.

배구팬들이 윙스파이커로 '기량미달' 판정을 받았고 V리그에서 센터로 단 한 경기 밖에 출전하지 못한 정호영에게 기대를 거는 이유는 바로 190cm의 신장과 컵대회에서 보여준 어마어마한 가능성 때문이다. 물론 정호영이 당장 '블로킹 여왕' 한송이와 국가대표 박은진을 제치고 인삼공사의 주전 센터 자리를 차지할 확률은 높지 않다. 하지만 정호영이 V리그를 대표하는 센터로 성장하는 날, 한국 여자배구는 '리틀 양효진'의 적임자를 찾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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