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봅니다. 그 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 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편집자말]
매주 목요일 밤 흐뭇함을 선사하는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 주인공 5인방인 송화(전미도), 익준(조정석), 준완(정경호), 정원(유연석), 석형(김대명) 외에도 이 드라마엔 매주 다른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바로 5인방의 진료실을 찾는 다양한 사연의 환자들이다.
 
지난 목요일 방송된 8회분에는 나이든 환자들이 그 주인공이었다. 이날 방송분엔 유난히 노인 환자들이 많이 등장했다. 치매에 걸릴까봐 두려워하는 정원의 어머니 사연을 시작으로, 간이식 수술을 받고 또다시 심장수술을 위해 병원을 방문한 할아버지가 등장한다. 그리고 준완에겐 77세의 할아버지 환자, 송화에겐 78세의 뇌종양 환자가 가족과 함께 찾아온다. 수술만이 답인 질환을 가진 준완의 할아버지와 송화의 할머니 환자. 이들은 위험을 감수하고 수술을 받아야 할지, 남은 여생을 병과 함께 살아가야 할지 결정해야 하는 기로에 놓인다. 그리고 이 일을 둘러싸고 가족들은 한바탕 설전을 벌인다.
 
드라마는 이 가족들의 모습을 진득하게 카메라에 담는다. 내겐 이 가족들이 주고받는 말들이 무척이나 아프게 와 닿았다. 이들의 말들 속에서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있는 노년에 대한 편견을 감지할 수 있었고, 나 역시 예외가 아님에 마음이 뜨끔해 왔다. 그럼에도 할머니, 할아버지 환자들의 선택을 통해 진정으로 타인을 존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배울 수 있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 포스터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 포스터 ⓒ tvN

 
이 연세에 무슨
 
늘 바쁜 외래 진료 날. 말할 때마다 숨이 가빠진 77세의 할아버지 환자가 두 딸과 함께 준완의 진료실을 찾아온다. 할아버지는 원래 그런 줄 알고 살아왔지만, 요즘 숨이 더 가빠져 불편하다며 힘겹게 말을 한다. 준완은 선천적 질환인 심방중격결손증을 가지고 있으며, 최근 여러 질환들이 겹치면서 증상이 심해진 거라고 설명한다.

77년 동안 병을 앓아왔다는 말에 할아버지와 딸들은 놀람을 금치 못한다. 그리고 수술만이 편안해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설명하자 딸들의 목소리는 점점 불안해진다. 이어 "고령의 환자에게는 효과가 뚜렷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준완의 설명에 딸들 중 한 명은 날 선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정리하면 77세 나이에 좋아질지도 알 수 없는 수술을 무모하게 선택하느냐, 아니면 좀 불편하시더라도 안전하게 이대로 쭉 사시느냐네요."
 
비슷한 시간. 송화에게도 78세의 할머니 뇌종양 환자가 아들, 딸과 함께 찾아온다. 이미 유방암으로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으며 투병한 이력이 있는 할머니는 전이된 암일 가능성이 크다는 송화의 말에 마음이 착잡해진다. 함께 있던 가족들도 망연자실하고 아들은 "수술은 가능합니까?"라고 묻는다.

송화는 "수술하고 방사선치료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명확하게 알려준다. 하지만, 이 말을 들은 할머니는 "수술 안 합니다. 이 나이에 제가 얼마나 더 산다고"라고 말하고, 함께 있던 아들과 딸은 송화가 보는 앞에서 이 상황을 두고 다툰다. 무조건 수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딸은 "내일 모레면 80인데"라며 고민하는 오빠에게 "지금 무슨 고민을 하는 거야"라며 쏘아붙인다.
 
나는 이들의 모습에 마음이 복잡해져 왔다. 애틋하고 공감되면서도 어딘가 서운하고 아팠다.
 
나이듦에 대한 편견
  
이 가족들의 모습엔 분명 부모님의 건강을 생각하는 절절한 마음이 담겨있었다. 준완의 할아버지 환자 딸들의 짜증 섞인 말투도, 송화를 앞에 두고 엄마의 수술 여부를 두고 언성을 높이는 할머니 환자의 아들과 딸도, 모두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이 앞섰을 것이다. 놀라고 당황스럽고 눈물이 차오르면서도 화도 나는 이 감정들에 나는 공감이 갔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딘지 이들의 모습은 자꾸만 불편하게 느껴졌다.
 
도대체 나는 이들의 모습이 왜 이토록 불편했을까. 이는 이들의 걱정하는 모습이 환자 본인, 그러니까 나이 든 부모의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는 듯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아픈 것도, 불편한 것도, 수술을 받고 그 힘든 과정을 견뎌내야 하는 것도 환자 본인이다. 수술대 위에 뉘어질 몸의 주인 역시 할아버지와 할머니 자신이다. 그런데 드라마 속 가족들은 아픈 몸의 주인인 당사자의 뜻은 물어보지도 않고, 자신들의 견해만을 밝히며 언쟁을 한다.
 
송화의 할머니 환자의 남매는 진료실 밖에서도 한바탕 이렇게 다툰다. "엄마는 분명 수술하고 싶어하실거야"(딸), "아니 유방암 때 그렇게 고생했는데 그걸 또 하고 싶겠어. 아닐거야"(아들). 하지만 정작 엄마 본인은 어떤 마음인지 아무도 물어보지 않는다. 준완의 할아버지 환자의 딸들은 아버지에게 생각할 시간도 주지 않고 그 자리에서 "저희는 이대로..." 라고 수술을 하지 않겠다고 결정해 버린다.
 
이런 말들 속엔 나이듦에 대한 편견이 들어 있었다. 노인의학자 마크 E. 윌리엄스는 저서 <늙어감의 기술>에서 사람들은 나이 든 사람에 대해 '하루하루 망가져 가고 있는 사람' '사회적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는 존재' '학습능력 등 인지력이 떨어지는 존재'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이런 편견들은 노인을 자신의 삶의 주체로 바라보지 못하게 한다. 많은 이들은 살 날도 얼마 남지 않고, 제대로 결정도 못내리고, 가족들의 돌봄이 필요한 노인들이기에 자신의 삶에 대해 제대로 판단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젊은 가족들이 대신 결정을 내리고 돌봐주는 게 노인을 위한 길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한 사람을 그 자신의 삶의 주체로 생각하지 않는 것은 일종의 대상화와 다름없다.
 
드라마 속 자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부모를 위하긴 하지만, 이런 편견에 기반해 있었기에 생과 사를 가르는 매우 중요한 결정조차 부모 본인의 뜻은 묻지 않는다. 노년의 부모 역시 자신의 삶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가진 주체적인 존재임을 완전히 잊은 채 말이다.
  
 송화의 진료실을 찾은 78세 뇌종양 할머니 환자의 가족들은 엄마의 수술을 여부를 두고 설전을 벌인다.

송화의 진료실을 찾은 78세 뇌종양 할머니 환자의 가족들은 엄마의 수술을 여부를 두고 설전을 벌인다. ⓒ tvN

 
'자기 결정권'을 지킨 노인 환자들
 
하지만, 드라마 속 환자들은 가족들의 편견에 당당하게 저항한다. 준완의 할아버지 환자는 딸들이 "저희는 이대로" 라고 말을 꺼내자마자 이렇게 말한다. 

"수술하고 싶습니다. 수술해주세요. 내일 죽더라도 하고 죽겠습니다. 하루를 살아도 사람답게 살다 죽으렵니다. 저 수술합니다. 수술 해주세요." 
 
할아버지의 단호한 태도는 아마도 딸들에겐 큰 울림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하루를 살아도 사람답게 살다 죽으렵니다"라는 할아버지의 말은 인간의 존엄을 지키겠다는 말로도 들렸다. 내 마음까지 숙연해지는 것 같았다.
 
송화의 할머니 환자는 진료실에서 착잡한 표정으로 "수술을 안 하겠다"고 밝힌 바가 있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복도에서 아들과 딸의 언쟁을 몰래 듣고는 마음을 바꾼다. 아마도 자신의 삶에 대해 자신을 배제한 채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자녀들의 모습에 여러 가지 생각을 했을 것이다. 마침내 할머니는 진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한다. 그리고 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앞둔 날 송화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 힘든 항암도 이겨냈는 걸요 뭘. 검사하고 수술받는 거 괜찮아요. 잘 이겨낼 수 있어요."

이렇게 말하는 할머니의 표정은 무척이나 밝아 보였다.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을 스스로 선택해 용기를 낸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모습은 자기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젊은이들의 모습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았다.
  
 "하루를 살더라도 사람답게 살고 싶다"며 77년 동안 모르고 살아온 선천적 질환을 수술해 달라는 할아버지 환자

"하루를 살더라도 사람답게 살고 싶다"며 77년 동안 모르고 살아온 선천적 질환을 수술해 달라는 할아버지 환자 ⓒ tvN

 
우리 중 어느 누구도 나이 들어가는 것을 피해갈 수 없다. 평균 수명만큼만 산다고 해도, 우리 대부분은 노년을 맞이할 것이고 노인으로 꽤 오랜 시간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노년기 내내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존재' '자녀들의 결정에 따라야 하는 존재' '도움이 필요한 존재'로 살아가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내 삶의 주인으로 여전히 일상을 살아내고 싶을 것이며, 병들어 의학적 도움을 받을 때도 그 도움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어르신을 대하는 태도도 이제는 조금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나이가 많으셔서 불편하시니 저희가 대신 해줄게요'가 아니라 한 개인으로서의 주체성을 존중해주는 태도가 우선 되어야 할 것이다. 노년기에 있는 부모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때, 부모님의 마음을 먼저 물어보자. 누군가의 마음을 존중하고, 삶의 주인공으로 대해주는 것은 그 어떤 도움과 배려보다 진정한 공경과 효가 될 것이라 믿는다.
 
생의 그 어느 단계에서도 내가 나의 삶, 나의 몸의 주체가 아니어도 되는 시기는 없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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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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