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메달을 목에 걸고 물러나겠다는 마지막 꿈은 끝내 이루지못했다. 하지만 후회없는 도전이었다. 대한민국이 낳은 세계적인 '배구여제' 김연경과 태극마크의 16년 인연이 올림픽 4강이라는 아름다운 성과를 남기고 피날레를 맞이했다.

스테파노 라바리니 감독이 이끄는 여자배구 대표팀은 8일 일본 도쿄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배구 여자 동메달 결정전에서 세르비아에 0-3(18-25, 15-25, 15-25)으로 패하며 4위로 대회를 마감했다. 2012년 런던대회 이후 9년만에 4강에 오른 대표팀은 준결승에서 브라질, 동메달 결정전에서 세르비아의 벽을 남지못하고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이후 45년만의 메달 도전이라는 꿈을 다음으로 미뤄야했다.
 
[올림픽] 환호하는 김연경 4일 일본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여자 배구 8강 한국과 터키의 경기에서 승리, 4강 진출에 성공한 한국의 김연경이 환호하고 있다

▲ [올림픽] 환호하는 김연경 4일 일본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여자 배구 8강 한국과 터키의 경기에서 승리, 4강 진출에 성공한 한국의 김연경이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루키 시절의 급성장

어쩌면 이 경기가 또다른 의미에서 배구팬들에게 남다르게 다가왔던 이유는, 바로 김연경의 '올림픽과 국가대표 고별전'이 될수 있었기 때문이다. 김연경은 세르비아전에서 11점을 기록하며 끝까지 마지막 투혼을 불태웠다. 김연경은 대회 내내 대표팀의 주장이자 에이스로서 솔선수범하며 동료들을 독려했고, 약체로 평가받던 한국 여자배구를 이번 대회 돌풍의 주인공으로 이끈 수훈갑이었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일찌감치 도쿄올림픽이 자신의 '마지막 무대'라고 공언한 바 있다. 한국은 불세출의 스타 김연경과 함께했던 세 번의 올림픽에서 두 번의 4강과 한번의 8강을 이뤄냈다. 메달에는 늘 한뼘이 모자맀지만 김연경이 없었다면 한국 여자배구가 결코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것이라는게 많은 이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김연경은 만 17세 고등학생이었던 2005년 프로에 데뷔했고 그해 11월 국제배구연맹(FIVB) 그랜드챔피언스컵을 통하여 성인 국가대표에도 처음 이름을 올렸다. 첫 국제대회였음에도 쟁쟁한 선배 언니들을 제치고 주포로 나섰고 공격득점 전체 3위에 오를만큼 단숨에 두각을 나타냈다.

김연경은 배구를 처음 시작할때만 해도 작은 키 때문에 교체 세터나 리베로로 뛰었으나 고교 시절 키가 20cm 이상 급성장하며 기량이 만개했다. 축복받은 신체조건, 탁월한 운동능력, 여기에 기존 여성선수들에 대한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카리스마와 뛰어난 배구지능까지, 한국 여자 배구계는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가 탄생했다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당시 많은 이들은 김연경을 가리켜 앞으로 "10년간 한국배구를 이끌어갈 선수"라고 극찬했지만 지금와서도 돌아보면 이 정도도 과소평가였다. 김연경은 10년을 훌쩍 넘어 16년이 되도록 한국배구를 대표하는 슈퍼스타로 건재하며 이제는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전설의 반열에 올랐기 때문이다.

이후 김연경이 걸어온 길은 그 자체로 한국배구의 새로운 역사가 됐다. 사실 국가대표 경력 초기만 해도 김연경의 개인 활약은 빼어났지만 받쳐주는 선수가 없었던 탓에 대표팀의 성적은 저조했다. 이로 인하여 아직 어린 선수였던 김연경에게 모든 책임이 쏠리며 마음고생을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김연경은 2009 FIBV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에서 국가대표 첫 득점상을 수상했고,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는 은메달로 첫 메달을 따내며 차근차근 자신과 대표팀을 모두 성장시켜 나갔다.

2012년 런던올림픽은 김연경이 세계적인 스타로 주목받는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이 당시 한국선수로는 드물게 유럽무대에 진출하며 최고의 선수로 올라선 김연경은 대표팀에서도 한국 여자배구를 8년만에 올림픽 본선으로 이끈데 이어,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36년만의 4강진출이라는 업적을 이뤄냈다. 김연경은 모든 경기를 풀타임을 소화하며 총 207점으로 득점왕에 올랐으며, 메달을 따내지 못했음에도 국제배구연맹에서 선정한 런던 올림픽 MVP로까지 뽑히는 영광을 누렸다.

김연경의 헌신

김연경은 2014년에는 26세의 나이에 대표팀 주장으로 첫 선임되었고 그해 열린 인천 아시안가엠에서 금메달을 차지하며 마침내 국가대표 무관의 타이틀에서 벗어났다. 2015년 아시아선수권에서는 준우승, FIVB월드컵에서는 6위에 그쳤으나 득점왕을 차지했고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도 다시 한번 본선진출과 8강행을 이뤄냈다.

천하의 김연경도 30대에 접어들며 서서히 은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김연경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일본을 꺾고 동메달을 수확하며 처음으로 마지막을 암시하는 발언을 했다. 김연경은 2020 도쿄올림픽 무대를 자신의 국가대표 은퇴무대가 될 것을 오래전부터 공언해왔다.

배구팬들이 가장 안타깝게 여겨왔던 것은 김연경이 대표팀에서 보여준 놀라운 기량과 헌신에 비하면 운이 따르지 않은 편이라는 것이다. 김연경이 만일 미국이나 브라질 선수였다면 메달을 벌써 몇 개는 더 땄을 것이라는게 많은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여자배구계의 세계적인 레전드이자 중국대표팀 감독인 랑핑은 "중국에 김연경같은 선수가 있었다면 세계 챔피언이 되었을 것"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사실 선수생활 내내 국가대표 김연경을 가장 힘들게했던 것은 어쩌면 세계의 강호들이 아니라 바로 '내부의 적'이었는지도 모른다. 김연경은 데뷔 당시부터 항상 대표팀 부동의 에이스로서 엄청난 기대감과 상대의 집중견제라는 이중고를 극복해야했다. 매년 소속팀과 대표팀을 오가는 강행군으로 '혹사'당하며 수술대에 올라야했던 것만도 여러 번이다.

김연경의 능력을 제대로 활용하지못하면서 중요한 경기에서 패배의 책임을 전가하는 무능한 대표팀 감독들도 있었고, 협회의 부실한 지원으로 인하여 국제대회에서 김연경이 통역과 매니저 역할까지 일정부분 겸해야했던 상황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연경은 대표팀을 위하여 항상 묵묵히 헌신을 다했고 국제대회에서 부상을 제외하고 폼이 크게 떨어진 모습을 보여준 적이 거의 없었다.

오히려 김연경은 다양한 국제대회와 해외리그 경험을 바탕으로 국가대표 선수차출의 편파성 논란, 아시안게임 금메달 이후 김치찌개 회식 사건, 올림픽 스태프 부실 지원 논란 등 각종 사건사고 때마다 한국 여자배구와 대표팀의 잘못된 현실에 대하여 회피하거나 침묵하지 않고 여러 차례 소신 발언을 하기도 했다.

어디서나 할말은 하는 김연경의 솔직하고 거침없는 성격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수적인 한국 체육계의 특성상 슈퍼스타라도 나서시가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김연경의 존재 자체가 여론의 관심을 한번더 끌어모으는 효과가 있었던데다 김연경같은 스타가 용기를 내어 앞장서서 목소리를 내준 덕분에 불합리한 관행을 공론화하며 변화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계기가 마련될수 있었다. 국제대회 성적 이상으로 김연경이 대표팀의 문화에 남긴 보이지않는 업적이다.

김연경의 국가대표 피날레 무대가 된 도쿄올림픽은 어쩌면 가장 최악의 조건이었다. 대표팀은 한국 배구계를 강타한 이다영-재영 쌍둥이 자매를 둘러싼 논란으로 전력과 분위기에 모두 타격을 입었다. 쌍둥이와 흥국생명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김연경은 소속팀에 이어 대표팀에서도 팀분위기를 수습하는 리더 역할을 혼자 감당해야했다. 천하의 김연경도 어느덧 30대의 노장이 됐고, 대표팀은 올림픽 직전 열린 발리볼 네이션스리그에서는 3승 12패라는 저조한 성적에 그치며 우려를 자아냈다.

하지만 대표팀은 도쿄올림픽에서 누구도 기대하지못한 아름다운 반전을 이뤄냈다. 도미니카공화국-일본과의 예선전, 터키와의 8강전은 모두 풀세트까지 가는 접전이었고 한국은 여기서 모두 전승을 거뒀다. 여기서 김연경은 엄청난 개인 활약상은 물론, 끊임없이 선수들을 할수있다고 독려하는 강한 언니 리더십으로 존재감을 발휘했다. 국제배구연맹(FIVB)은 터키와의 8강 경기에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한 김연경을 두고 "10억명 중에 1명 나올까 말까 한 선수"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물론 8강까지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 탓인지 브라질과의 4강전, 세르비아와의 동메달 결정전은 모두 한 세트도 따내지못하며 무기력했고 김연경 역시 상대의 수비에 막혀 큰 활약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애초에 조별리그 통과도 힘들다던 한국이 강팀들에게 선전하며 여기까지 올라온 것만해도 충분히 기적이었다.
 
  6일 일본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여자 배구 한국과 브라질의 준결승전. 한국의 김연경이 3세트 실점하자 답답한 표정을 짓고 있다.

6일 일본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여자 배구 한국과 브라질의 준결승전. 한국의 김연경이 3세트 실점하자 답답한 표정을 짓고 있다. ⓒ 연합뉴스

 

한 시대의 종언

한국보다 오히려 전력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던 중국과 일본조차 모두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며 이번 대회 4강까지 진출한 아시아팀은 한국이 유일했다. 김연경은 "우리에게는 팀워크가 있다. 올림픽에서 최대한 오래 있다오겠다"고 약속했고, 결국 구기종목중 가장 늦게 대회 일정을 마감하며 그 약속을 지켰다. 김연경을 중심으로 '원팀'으로 똘똘 뭉쳐 수차례 한계를 뛰어넘었던 여자배구대표팀의 선전은, 팬들에게는 메달로 환산할수 없는 '감동'을 선물한 순간들이었다.

어쩌면 이번 도쿄올림픽은 한국 여자배구에게 있어서 한 시대의 종언을 의미하는 상징적인 대회로 기억될 전망이다. 김연경을 비롯하여 양효진, 김수지, 김희진 등 오랫동안 여자배구를 지탱해왔던 선수들에게도 이번이 올림픽이 마지막이 될 가능성이 높다. 많은 배구팬들은 지난 16년간 한국배구를 이끌어온 김연경이 없는 대표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일각에서는 김연경의 기량과 비중을 고려하여 좀더 태극마크를 달고 뛰어주기를 기대하는 팬들도 많다. 하지만 김연경은 이미 충분히 대표팀을 위하여 온몸 바쳐 헌신을 다했고 수많은 위대한 역사를 썼다. 정상의 자리에서 아름다운 기억을 남기고 마무리하고 싶다면 선수의 의사를 존중하는 것도 레전드의 헌신에 걸맞는 예우일 것이다. 김연경은 세르비아전이 끝나고 울컥하는 모습으로 "사실상 오늘 경기가 국가대표로 뛰는 마지막 경기다"라고 공언하며 국가대표 은퇴 의사를 다시한번 확인했다.

김연경은 한국 여자배구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고, 여성 스포츠 선수들의 사회적 위상을 높였을뿐 아니라 '여성적 리더십'의 가치를 증명했다는 점에 있어서 한국 배구와 스포츠사에서 배구선수 이상의 신드롬을 남긴 특별한 인물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한국 배구팬들은 지난 16년간 김연경이 있어서 함께 배구를 즐길수 있었다는게 진심으로 행복했다. 태극마크를 내려놓더라도 팬들은 아주아주 오랫동안 김연경의 빈 자리를 기억하고 그리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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