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봅니다. 그 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 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편집자말]
관계와 사랑에 대한 성찰이 돋보이는 드라마 tvN <너는 나의 봄>. 지난 3일 방영된 10회 방송분엔 매우 의미심장한 장면이 있었다. 친구들과 캠핑을 가 한바탕 시끌벅적하게 놀며 긴장을 푼 다정(서현진)과 영도(김동욱)는 밤에 둘 만의 산책을 한다. 그리고 이들은 서로의 어린 시절 '상처받은 아이'와 대화를 한다.

7살의 다정은 코뿔소에 쿵 받쳐서 서울에서 강릉으로, 또 다른 집으로 옮겨 다녔다고 고백하다 이젠 '발이 생겼다'며 신나한다. 잘 넘어지던 7살의 영도는 숨기고픈 주삿바늘 자국을 다정에게 들킨다. 영도는 상처 자국을 보여주기 싫어하지만, 다정이 내민 손을 기꺼이 잡고 일어선다. 이는 이들이 사랑하는 걸 막고 있었던 어린 시절의 상처를 보듬어 안았음을, 자신들의 깊고 오래된 상처에도 불구하고 사랑하기로 결심했음을 상징하는 장면이었다.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다정), 다른 사람까지 아프게 할까봐(영도) 사랑을 두려워했던 이들은 어떻게 다시 사랑을 시작할 수 있었을까? 이들이 사랑하기로 용기를 낸 여정을 따라가 본다.
 
 어린 시절의 상처를 간직한 이들이 서로에게 '봄'이 되어주는 과정을 그린 tvN 드라마 <너는 나의 봄>

어린 시절의 상처를 간직한 이들이 서로에게 '봄'이 되어주는 과정을 그린 tvN 드라마 <너는 나의 봄> ⓒ tvN

   
강다정씨 잘못은 없어요, 그냥 넘어진 거예요
 
어릴 적 아버지의 폭력 때문에 늘 '옆집 딸'이 되고 싶었던 다정은 성인이 되어 여러 남자들을 만난다. 다정의 친구 은하(김예원)의 보고에 따르면 다정은 그동안 알코올중독, 양다리, 입만 열면 거짓말인 남자들을 만나왔다. 다정은 이런 연애의 상처들로부터 거리를 두고 새출발을 하기 위해 새로 지은 99빌딩 4층에 입주한다. 동시에 이번엔 괜찮을 것 같은 남자와 연애를 시작하려 하지만, 남자는 자살하고 그가 살인마였음이 밝혀진다. 다정은 이런 불행의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서 찾는다.
 
다정의 사건을 지켜봐온 3층 입주자, 정신과 의사 영도는 3회 힘들어하는 다정에게 "강다정씨 잘못은 없어요"라고 위로한다. 하지만 다정은 이렇게 말한다. "어디에 뭔가는 있었겠죠. 그게 주영도씨 말처럼 내가 아직 질질 끌고 다니는 어린 시절 기억 때문이든, 점쟁이가 말한 사주팔자 때문이든, 아니면 내가 진짜 무슨" 그러자 영도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집에 차키를 놓고 와서 불도 안 켜고 다시 들어갈 때 있잖아요. 캄캄한데 뭐에 걸려 넘어지고 나서 불을 켜면 내가 다 잘못한 거 같아요. 책도 안 읽으면서 책은 왜 산거야. 차키는 저기 걸어둬야지. 센서 등은 왜 안 고친거야. 그냥 넘어진 거예요. 누가 기다릴까봐 서두르다가 더 안 다쳐서 다행인 거고. 다음부턴 불 켜고 움직이면 되는 거고."
 
심리학 서적이 대중화된 요즘. 현실의 많은 사람들 역시 다정처럼 자신이 겪고 있는 불행의 이유를 어린 시절에서 찾는다. 그리고 내가 겪은 상처 때문에 나는 지금 고통받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과거의 그 일들이 나에게 영향을 주긴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일들은 영도의 말처럼 '그냥 넘어진 일' 그러니까 그냥 벌어진 일일 뿐 나 때문에 벌어진 것이 아니다. 어떤 일의 원인이 내게 있지 않다고 인식하는 것은, 스스로를 자괴감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또한, 다음엔 다를 수 있음을 깨닫게 한다. "이 모든 일에 너의 잘못은 없다"는 영도의 말은 아마도 다정에게 용기의 씨앗이 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영도는 안전한 거리를 만들어준다. 섣불리 다가가거나 함부로 묻지 않고, "둘이 붙어 있어도 공기가 솔솔 통하는"(7회, 미란) 거리에서 다정을 바라본다. 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안전한 느낌은 다정이 발을 붙이고 마음을 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었을 것이다. 때문에 다정은 "우리 친구할래요"라고 말하는 영도에게 먼저 다가갈 수 있었을 것이다(7,8회).
 
영원히 함께 하자 그런 말은 필요 없어요
  
 영도는 처음으로 깊은 상처를 토해내는 다정을 가만히 꼭 안아준다.

영도는 처음으로 깊은 상처를 토해내는 다정을 가만히 꼭 안아준다. ⓒ tvN

 
영도는 자신의 아픔이 타인까지 아프게 할까봐 사랑하기를 주저하는 인물이다. 그토록 많은 환자들을 따스하게 맞이하고 도우면서 정작 자기 자신을 위한 사랑은 할 줄 모른다. 심장병을 앓던 영도는 어릴 적 형을 살리지 못했다는 죄책감, 의사로서 첫 환자를 살리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괴로워한다. 그러다 다른 사람의 심장을 이식받고 살아난다. 그는 7회 아픈 자신을 위해 죽을 사들고 온 다정에게 상처들을 내보이며 이렇게 말한다.
 
"심장이식 수술을 받은 환자는 10년 생존률이 50% 정도밖에 안 돼요. (...)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강다정씨를 좋아하게 됐기 때문이에요. 보통은 누구를 좋아하게 되면 영원히 같이 있자 이런 약속을 하잖아요. 그런데 그런데 나는. 그래서 말인데 우리 친구 할래요?"

영도의 이 말에 집으로 돌아가던 다정은 다시 달려와 그를 꼭 안아준다(8회). 아마도 이는 당신의 상처를 다 내가 수용하고 포용하겠다는, 그래도 괜찮다는 위로였을 것이다. 이에 영도는 이렇게 내레이션한다. 
 
'그 밤 당신이 안아준 사람은 형을 잃은 11살의 나였고, 환자를 잃은 26살의 나였으며, 세상에 빚을 질 수 없어 당신조차 잃으려 하는 바보 같은 지금의 나였다.'
 
아마도 이 때 영도는 자신의 상처를 타인과 함께 나누어도 괜찮다는 믿음이 생기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리고 며칠 후 다시 만난 다정은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영원히 함께 하자 그런 말은 필요 없어요. 진짜 영원이 뭔지 어차피 본 일도 없고, 두 시간 짜리 영화에서는 두 시간이 영원이잖아요. 나는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요."(8회)
 
사실 그렇다. 모든 사랑엔 끝이 있다. 연애를 하다 이별을 하든, 결혼했다 이혼을 하든, 아니면 백년해로 하다 사별을 하든, 모든 사랑은 끝이 난다. 때문에 영원하지 못할까봐 끝이 날까봐 사랑을 시작하지 못한다면 정말 영원히 사랑을 할 수 없게 된다. 사랑이 끝나더라도, 그 사랑을 통해 내가 성장했다면,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했던 기억들을 마음에 새긴다면, 사랑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 다정의 말은 영도에게 이런 깨달음을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영도도 사랑하기 위한 용기를 낸다.
 
좋은 기억으로 나쁜 기억을 덮을 수는 있어요
 

이렇게 용기 낸 두 사람은 이제 한층 가까워진다. 9회 다정은 평생토록 한번도 말하지 못했던 자신의 과거를 영도 앞에서 토해낸다. "말하고 싶은데 말이 안 나올 것 같아요. 아무에게도 한번도 말해 본 적이 없어서"라면서도 마침내 상처를 고백하는 다정을 영도는 아무말도 없이 그저 꼭 안아준다.

마치 다정이 영도에게 그랬듯 말이다. 서로 주고받은 이들의 포옹은 '그날의 당신을 안아주지는 못했지만 그 시간을 이겨낸 지금의 당신을 안아주고 싶다'는 가장 따뜻한 위로(7회)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과거의 기억을 지울 순 없냐는 다정에게 영도는 의학적 지식을 살려 이렇게 설명한다.

"좋은 기억으로 나쁜 기억을 덮을 수는 있어요." (9회)
 

이후 이들은 서로의 일상을 물어주고, 소소한 메시지와 선물들을 주고 받으며 좋은 기억을 쌓아간다. 영도의 책을 읽고 다정이 정리하듯 편도체에 새겨진 나쁜 기억들을 해마에 좋은 기억들로 채워나가는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아마도 이 좋은 기억들은 상처받은 내면의 어린 아이에게 발이 생기게 하고, 상처를 보여줄 용기를 내게 했을 것이다(10회). 이들은 앞으로도 함께 좋은 기억들을 쌓아갈 것 같다. 그리고 함께 쌓은 좋은 기억들은 과거의 상처를 덮어줌은 물론,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르는 미래를 살아갈 수 있는 힘까지 더해줄 것이다. 
  
 좋은 기억을 많이 만들어주고 해마가 열심히 일을 하면 무서웠던 기억을 좋은 기억으로 덮을 수 있어요.

좋은 기억을 많이 만들어주고 해마가 열심히 일을 하면 무서웠던 기억을 좋은 기억으로 덮을 수 있어요. ⓒ tvN

 
그러니 우리도 한 번 그럼에도 사랑할 용기를 내보면 어떨까. 과거의 상처가 부끄러워서, 혹은 또 다시 상처를 반복할까봐 겁이 나는가. 사랑하는 사람 곁에 영원히 있어 주지 못할까봐 두려운가. 그래서 사랑을 시작하지 못한다면 <너는 나의 봄>의 영도와 다정이 서로에게 보낸 메시지를 떠올려보자.
 
나의 과거는, 내게 난 상처는 나의 잘못이 아니다. 그냥 일어난 일 때문에 나 자신을 탓하고 사랑할 기회를 놓친다면 그건 나한테도, 나를 사랑하는 상대방에게도 너무 가혹한 일 아닐까. 이별이 두려워 망설인다면, 이별 없는 관계는 없음을 기억하자. 헤어지더라도 서로 깊이 사랑한 순간들을 마음에 간직하고, 이를 통해 각자가 성장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그 사랑을 영원히 간직하는 길일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의 사랑은 좋은 기억으로 나쁜 기억을 덮을 절호의 기회다. 부디 상처를 치유하고 좋은 기억을 채워가며 성장할 기회를 날려 버리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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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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