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국제시장>의 한 장면.

영화 <국제시장>의 한 장면. ⓒ CJ엔터테인먼트

 
"그래, 장남이나 가장은 가족을 잘 돌봐야 되는 거 아이가?" (황정민이 연기한 윤덕수)
"그만큼 했으면 됐어요. 뭘 더해요. 왜 항상 당신만 희생을 해야 되냐고요." (김윤진이 연기한 오영자)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고 가족을 돌보기 위해 베트남전에 참전하겠다는 남편. 그런 남편을 어떻게든 말리고픈 아내. "누구는 가고 싶어서 가는 줄 아나. 이런 게 내 팔자라고. 내 팔자가 이런데 내보고 우짜란 말이고!"라며 남편이 마지못한 듯 성을 내는 사이, 공원 안에 애국가가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맞다. 영화 <국제시장>(2014)의 한 장면이다. 이 국기 하강식은 노태우 정권이던 1989년 1월 폐지 전까지 1971년 3월부터 약 18년 동안 이어졌다. <국제시장>의 해당 장면은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그때 그 시절' 국가주의의 풍경을 꽤나 적절하게 묘사해 화제를 모았다.

영화 속 이어진 장면. 말싸움을 멈추고 뒤도 안 돌아보고 국기에 경례를 하는 남편 덕수와 달리 서러움에 복받친 아내 영자는 벤치에 앉아 눈물을 훌쩍인다. 그때 한 할아버지가 가슴에 손을 얹은 채 '뭐하는 짓이냐'는 듯 눈치를 주고, 영자는 그제야 일어서서 국기에 대한 경례에 동참한다.

주의를 둘러보면,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사람들 모두 비장한 표정으로 국기에 대한 경례 중이다. 마치 동참하지 않으면 돌이라도 맞을 것 같은 표정들이 무척 인상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어머니 손을 붙잡고 피란을 떠났다던 흥남철수 작전을 시작으로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사건들을 통해 아버지 세대를 향한 찬가를 부르는 <국제시장>.

최근 한 대선출마를 선언한 정치인이 가족 명절모임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 속엔 손자손녀를 포함해 십 수 명의 가족들 전체가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감사원장직을 중도 사퇴하고 대선 레이스에 뛰어든 최재형 국민의힘 예비후보는 "가족 전체가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른다"는 설명을 내놨다.

이를 두고 <국제시장> 속 저 '국기에 대한 경례' 장면과 오랜 군사정권 하의 국가주의 풍경을 떠올렸다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최근 앞서거니 뒤서거니 대선출마를 선언한 일부 정치인들의 언사가 과거로의 회귀를, 퇴행을 가리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잇따랐다. 그 과정에서 소환된 영화는 <국제시장> 뿐이 아니었다.

<국제시장> 속 국기에 대한 경례와 <설국열차> 속 단백질 양갱
 
 국민의힘 대권 주자인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6일 경북 칠곡군 왜관시장을 찾아 상인들과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국민의힘 대권 주자인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6일 경북 칠곡군 왜관시장을 찾아 상인들과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주 52시간제로 일자리가 생긴다고 주장했지만 일자리 증가율이 0.1%에 불과하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실패한 정책입니다. 게임 하나 개발하려면 한 주에 52시간이 아니라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7월 19일 윤석열 국민의힘 예비후보 <매일경제> 인터뷰 중)

"일하고 싶은 청년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최저임금 인상은 범죄와 다름없다." (7월 31일 최재형 국민의힘 예비후보 페이스북글 중에서)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과 최저임금 인상 공약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나온 두 후보의 이 같은 발언은 논란을 자처할 수밖에 없었다. 과격하기 짝이 없는 주장이기도 하거니와 실제 IT 기업이나 스타트업 기업의 현실이나 최저시급을 받는 노동자들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과도한 정치적 수사란 비판이 쇄도했다.

소셜 미디어 등에서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가 소환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일각에선 같은 인터뷰에서 "완전히, 정말 먹으면 사람이 병 걸리고 죽는 거면 몰라도. (이를 테면) 부정식품이라고 하면, 아니 없는 사람은 그 아래 것도 선택할 수 있게, 더 싸게 먹을 수 있게 해줘야 된다 이거다"는 윤 전 총장의 '부정식품' 발언을 두고 <설국열차> 속 꼬리칸 사람들이 먹는 (바퀴벌레를 갈아서 굳혀 만든) '단백질 바'를 연상시킨 이들이 적지 않았다.

"선진국 반열에 진입한 대한민국은 없는 사람은 불량식품이라도 먹어야 살아가는 사회여서는 안 된다. 윤 예비후보는 영화 <설국열차>에서 꼬리칸에 배급된 단백질 양갱이 용인되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냐, 현재보다 후퇴한 사회로 만들자는 주장을 하는 대선후보를 국민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2일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주 120시간 노동 주장이나 최저임금 인상이 범죄란 주장 모두 저 <국제시장> 속 저개발의 기억과 맞닿아 있다. 가족을 위해서라면 베트남전 참전도 불사하던 시대, '전태일 열사'와 같이 노동착취의 구조 속에서 저임금을 받고서라도 제 한몸 갈아 넣어 희생하던 '노동자상'을 여태껏 버리지 못한 이들이 누구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아울러 보수야권 정치인들이 입이 아플 정도로 부르짖는 구호가 바로 '한미동맹' 강화다. 그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4월 최저임금 15달러로 인상이 포함된 행정명령에 서명해 눈길을 끌었다. 취임 초 1조 9000억 달러(2113조 원) 규모의 코로나19 피해 구제법안을 추진한 데 이어 연방정부 계약직 노동자들의 임금 임상을 추진한 것이다.

이렇게 코로나19 팬더믹 시대의 미국, '트럼프 시대'를 종식한 바이든 미 대통령이 '부자증세'와 함께 최저임금을 인상하고 노동자‧서민을 위한 정책으로 환영받는 사이, 보수야권의 유력 주자들은 매일 같이 반노동, 친기업 정서를 부추기는 언사들로 퇴행을 역설하는 중이다. 그러면 그럴수록 '냄새'로 사람을 구분하고 계층‧계급 사이의 '선'을 강조하던 <기생충> 속 박 사장 가족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기생충>의 기우는 그 저택을 구입 할 수 있을까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가 3일 오후 서울 은평구 응암역 앞에서 국민의힘 당원 가입을 독려하는 홍보 활동을 위해 이동하며 지지자들과 악수하고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가 3일 오후 서울 은평구 응암역 앞에서 국민의힘 당원 가입을 독려하는 홍보 활동을 위해 이동하며 지지자들과 악수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반지하에 살던 <기생충> 속 기택네 가족은 인터넷을 설치할 돈이 없어 윗집 와이파이를 나눠(훔쳐) 쓴다. <국제시장> 속 과거였다면 '도전(盜電)'이라 불리던 도둑질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택시 기사도 하고 카스테라 가게도 했던 아버지 기택을 비롯해 이들 가족 모두가 애초부터 실업자 신세는 아니었다.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사회 구조는 그렇게 '없는 사람들'을 더 쉽게 나락으로 떨어뜨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더 나아가 "박 사장님, 리스펙"을 외쳤던 근세처럼 '없는 사람' 취급을 받는 이들 또한 현실엔 비일비재하다.

그렇다면 이렇게 되물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검찰총장과 감사원장직에서 물러나기 전까지 고위 공무원으로 승승장구 했던 두 예비후보는 <기생충> 속 '선' 안쪽과 바깥쪽 중 과연 누굴 위한 정치를 구상 중인가 라고 말이다.

"아버지, 저는 오늘 계획을 세웠습니다. 근본적인 계획입니다. 돈을 벌겠습니다. 아주 많이. 대학, 취직, 결혼 뭐 다 좋지만 일단 돈부터 벌겠습니다. 돈을 벌면 이 집부터 사겠습니다. 이사 들어가는 날에는 저랑 엄마랑 그냥 정원에 있을게요. 햇살이 워낙 좋으니까요. 아버지는 계단만 올라오시면 됩니다."

<기생충>의 말미, 아들 기우가 아버지 기택에게 쓴 편지 내용은 이랬다. 기우가 실제 큰 돈을 벌 수 있을 거라고, 아버지가 계단에서 올라오는 일이 벌어질 거라고 쉬이 동의하는 관객들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어느 누리꾼은 기우가 현실에서 최저임금을 벌어들여 박 사장네 저택을 구입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직접 계산해 봤다고 한다. 무려 547년이었다.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마음껏 쉬라는" 윤석열 예비후보도, "청년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최저임금 인상은 범죄와 다름없다"는 최재형 예비후보도 본격적으로 대선 경선에 뛰어들기 전 <기생충>부터 보고 오시길. 봉준호 감독이 실감나고 경이롭게 꼬집은 계급 문제에 전 세계인들이 공감한 데는 다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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