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배구대표팀이 대한민국 단체 구기종목의 마지막 자존심을 걸고 위대한 도전에 나선다. 스테파노 라바리니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6일 일본 도쿄의 아리아케 경기장에서 강호 브라질과 준결승을 치른다. 한국은 일본과 중국이 조기탈락한 이번 대회에서 아시아팀으로는 유일하게 4강에 올랐다. 2012 런던 대회 이후 9년만이다.

브라질에 승리하면 8일 오후 1시 30분 결승전을, 패하면 8일 오전 9시 동메달결정전에 진출한다. 만일 한국 여자배구가 결승에 진출한다면 사상 최초가 된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동메달 이후 무려 45년 만에 올림픽 메달을 확보하는 새 역사를 쓰게 된다.
 
여자배구 '이제 4강이다!' 4일 일본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여자 배구 8강 한국과 터키의 경기에서 승리, 4강 진출에 성공한 한국의 김연경 등 선수들이 손가락 네개를 펴보이며 즐거워하고 있다.

▲ 여자배구 '이제 4강이다!' 4일 일본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여자 배구 8강 한국과 터키의 경기에서 승리, 4강 진출에 성공한 한국의 김연경 등 선수들이 손가락 네개를 펴보이며 즐거워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배구 여제' 김연경의 마지막 올림픽 도전

사실 이번 올림픽이 개막하기 직전만해도 한국 여자배구가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을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올림픽을 앞두고 열린 전초전 격이었던 네이션스리그에서는 3승 12패로 전체 16개팀중 15위에 그쳤다. 대표팀은 올해 2월 이재영·다영 쌍둥이 자매가 학창 시절 폭력 문제로 국가대표 자격을 박탈당하면서 전력이 크게 약화됐다. 쌍둥이 사건 이후로 배구계 전반에 폭력이 뜨거운 화두로 부상하면서 한국배구를 바라보는 여론의 시각도 차가워졌다.

1988년생 '배구 여제' 김연경에게는 사실상 이번이 마지막 올림픽 도전이기도 했다. 김연경은 2004년 청소년 국가대표로 발탁됐고, 고등학생이던 2005년 만 17세에 성인 국가대표팀에 첫 승선했다. 그로부터 17년째 김연경은 막내에서 최고참이 될 때까지 변함없이 한국 국가대표 에이스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국 배구 역사를 넘어 현역 세계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 김연경이지만 아직 올림픽 메달과는 인연이 없었다. 첫 기회였던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대표팀이 본선무대도 밟지 못했고 본인도 부상으로 아시아예선전을 뛰지 못했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는 팀을 4강으로 이끌었으나 3·4위전에서 숙적 일본에 패하며 메달을 눈앞에서 놓쳤다. 하지만 김연경은 팀이 노메달에 그쳤음에도 득점왕과 MVP를 차지했을 만큼 독보적인 기량을 인정받았다. 김연경이 세계적인 선수로 인정받는 전환점이 된 대회였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대회에서는 8강서 네덜란드의 벽을 넘지 못하고 또 한번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그리고 마지막을 예고한 2020 도쿄올림픽, 김연경도 어느덧 30대 중반을 바라보는 베테랑이 됐다. 매년 소속팀과 대표팀을 오가는 강행군에 몸과 마음도 지칠만했다. 특히 올해는 올림픽 준비를 위하여 연봉 자진삭감까지 감수하며 국내 복귀를 선택했으나 뜻하지 않은 쌍둥이의 학폭 논란과 불화설에 휘말리며 김연경 역시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봐야 했다. 설상가상 대표팀의 전력은 오히려 2012년이나 2016년보다 더 약해졌다는 비관적인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김연경은 마지막이 될 수 있는 올림픽에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감동의 '라스트 댄스'를 만들어가고 있다. 김연경은 8강까지 6경기에서 115점을 올려 티아나 보스코비치(세르비아, 140점)에 이어 득점 2위에 올라 있다. 공격 효율은 35.02%로 5위, 수비 부문인 디그는 세트당 2.63개로 4위, 리시브는 60.94%의 성공률로 8위에 올라 그야말로 공수 전방위에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도미니카전에서 20득점, 일본전 30득점, 터키전 28점 등 고비마다 해결사 역할도 언제나 김연경의 몫이었다.

김연경의 높은 팀공헌도는 개인기록에서 그치지 않는다. 김연경은 코트 위에서 항상 솔선수범하고 동료들을 독려하는 리더십으로 찬사를 받았다. 터키전에서는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경기흐름이 넘어갈 위기에 놓이자 경고를 불사하며 강한 어필로 팀을 결속시키고 분위기를 바꿨다. 조별리그 매경기가 끝난 후 목이 쉴 정도로 끊임없이 선수들의 기운을 북돋는 장면은 모두 김연경이 대표팀에서 어떤 존재인지를 확인시켜주기 충분했다. 

외신들도 김연경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월드오브발리'는 터키전 승리로 한국이 4강에 진출한 직후 "김연경은 10억분의 1의 별"이라고 극찬하며 "터키전은 한국 여자배구 사상 최고의 선수 김연경의 리더십과 클래스를 확인한 경기"라고 경의를 표했다. 한국의 숙적이자 김연경이 선수생활을 보내기도 했던 일본 언론에서도 "김연경의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넘지 못했다(요미우리 신문)"며 최고의 선수임을 인정했다. 
 
[올림픽] 환호하는 김연경 4일 일본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여자 배구 8강 한국과 터키의 경기에서 승리, 4강 진출에 성공한 한국의 김연경이 환호하고 있다

▲ [올림픽] 환호하는 김연경 4일 일본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여자 배구 8강 한국과 터키의 경기에서 승리, 4강 진출에 성공한 한국의 김연경이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4강 진출 이끈 박정아, 숨은 주역 된 염혜선

한편으로 이번 대표팀은 결코 김연경만 홀로 분전하는 '원맨팀'이 아니다. 박정아는 이번 대회 중요 승부처마다 클러치 능력을 발휘하며 한국 여자배구의 4강 진출을 이끌었다. 조별리그 일본전에서는 5세트 15-14 매치포인트 어려운 상황에서는 득점에 성공하며 직접 경기를 끝냈다. 터키전에서도 김연경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16득점을 고비마다 성공시키며 승리를 뒷받침했다. 5년 전 2016 리우올림픽에서 극심한 부진으로 미운 오리새끼 취급을 받았던 백조로 화려하게 거듭난 모습은 팬들에게 또 다른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이 밖에도 대표팀에서는 그동안 이다영의 그늘에 가려져 백업에 머물던 염혜선은 이번 대회를 통하여 당당히 주전 세터로 올라서며 첫 한일전 승리와 4강 진출의 숨은 주역이 됐다. 부상으로 지난 발리볼네이션스리그에 불참했던 김희진과 김수지는 최종 명단에 극적으로 포함되며 대표팀의 수비에 힘을 보탰다. 김연경과 함께 마지막 올림픽 도전으로 꼽히는 베테랑 센터 양효진도 중요한 순간마다 여러 차례 블로킹을 성공시키며 거미손다운 위용을 과시했다.

김연경은 지난 1일 한일전 승리 이후 자신의 SNS에 대표팀 선수들이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활짝 웃고 있는 그림을 게시하며 '스포츠로 인해 모두가 하나가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우리는 하나다"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모두의 저평가를 극복하고 진정한 원팀으로 거듭난 대표팀에 대한 자부심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대표팀의 선전에 국민들의 성원과 관심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당초 올림픽 개막 직전 만해도 야구나 축구 등 다른 인기종목에 비하면 기대감이 덜했던 배구지만, 한일전 승리를 기점으로 국민들의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4강 상대 브라질은 세계 랭킹 3위 강호로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우승했으며 이번 대회 조별리그 1차전에서 만나 김연경이 12점으로 분전했으나 전력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우리나라가 0-3으로 완패한 바 있다. 한국은 세계 랭킹 14위 브라질과 역대 전적에서도 18승 45패로 밀리고 있다.

브라질은 이번 대회에서 6전 전승을 거두며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히고 있다. 한국전에서도 맹활약한 페르난다 로드리게스-가브리엘라 기마레스 등 높이와 힘, 탄력을 두루 갖춘 선수들이 대거 포진한 브라질은 객관적인 전력면에서 우리가 넘기 어려운 상대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조별리그 첫 경기 때와 비교하여 지금의 한국은 전혀 다른 팀이다. 한국은 조별리그에서 난적 도미니카-라이벌 일본을 잇달아 넘은 데 이어 8강에서는 터키마저 격파하고 엄청난 상승세를 타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은 이번 대회 풀세트로 치러진 3경기에서 모두 전승하며 접전에 강한 뒷심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대회 대한민국을 대표하여 출전한 구기종목들은 대체로 부진하다. 여자농구가 조별리그에서 전패로 탈락했고, 남자축구와 여자핸드볼도 8강을 넘지 못했다. 야구대표팀은 미국과의 녹아웃 스테이지에서 패배하며 도미니카와의 동메달 결정전으로 밀렸다. 지난 206 리우 대회에 이어 2회 연속 단체 구기종목 노메달에 그칠 수도 있는 고비다.

암울했던 한국 구기종목에 그나마 한줄기 빛이 되어준 것이 바로 여자배구 대표팀의 선전이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투지와 열정으로 똘똘 뭉친 여자배구대표팀의 감동적인 여정을 모든 국민들도 마음으로 함께 동참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 여자배구는 또 한 번의 한계를 뛰어넘는 기적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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