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무거운 발걸음 5일 일본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야구 패자 준결승전 한국과 미국의 경기. 9회 마지막 타자로 나선 양의지가 아웃당해 경기에 패한 뒤 무거운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나가고 있다.

▲ [올림픽] 무거운 발걸음 5일 일본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야구 패자 준결승전 한국과 미국의 경기. 9회 마지막 타자로 나선 양의지가 아웃당해 경기에 패한 뒤 무거운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나가고 있다. ⓒ 연합뉴스

 
결국 두 번째 기적은 없었다. 김경문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야구대표팀은 8월 5일 일본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0 도쿄 올림픽' 제2 준결승 미국과의 경기에서 2-7로 패했다.

선발 이의리가 5이닝 9피안타 2실점, 9개의 탈삼진으로 호투했지만 1-2로 팽팽한 승부를 이어가던 6회말 불펜이 대거 5실점을 허용하며 무너진 게 뼈아팠다. 타선도 강백호-양의지-오재일 등 중심타자들이 제 몫을 하지 못하며 고작 2득점을 뽑아내는 데 그쳤다. 2008 베이징대회에 이어 13년 만의 올림픽 무대에 나섰던 야구대표팀은 대회 2연패와 한일전 설욕의 기회를 놓치며 이제 7일 도미니카 공화국과 동메달 결정전만을 남겨두게 됐다.

2020 도쿄올림픽 야구는 참가국이 6개국에 불과했다.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가 개최국 지정 종목 중 하나로 야구를 지정하면서 13년 만에 올림픽무대에서 부활하게 됐지만, 종목당 출전 가능 선수를 144명(팀당 엔트리 24인)으로 제한하면서 참가국의 숫자가 줄어들었다.

한국은 2019 프리미어12 준우승으로 올림픽 티켓을 획득했고, 미국, 도미니카, 멕시코, 이스라엘 등이 지역예선을 통하여 합류했다. 호주, 대만, 중국 등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세계 최종 예선에 불참했다. 출전국이 적은 탓에 되도록 많은 경기를 치르기 위하여 녹아웃 스테이지와 패자 부활전 같은 방식이 채택됐다.

베이징 대회에 비하여 참가국이 줄어든 대신 각 경기의 난이도는 더 높아졌다. 올림픽에는 비록 현역 메이저리거들은 출전하지 못하지만 각 팀 모두 야구실력을 인정받은 강국이었고 메이저리그 경력자들도 다수 보유하고 있었다. 만만한 상대가 한 팀도 없을 만큼 매 경기가 결승전이었다. 디펜딩챔피언 입장이었던 한국은 금메달이 아니면 사실상 큰 의미가 없다는 것도 부담이었다.

결과적으로 한국야구는 대회 2연패에 실패했다. 가장 큰 이유는 결국 실력차였다. 한국은 이번 대회 참가국 중 멕시코를 제외한 모든 팀과 한 번 이상 격돌했다. 이 중에서 이스라엘 정도를 제외하고 한국보다 전력이 떨어진다고 할 만한 팀은 아무도 없었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지금까지 3승 3패를 기록했는데 이스라엘에게 두 번, 도미니카에 한 번 이겼다. 반면 일본에 한 번, 미국에게는 두 번 패했다. 그나마 도미니카전도 경기 종반까지 1-3으로 끌려가다가 9회에 기적같은 대역전승을 일궈냈고, 이스라엘과의 개막전에서는 연장접전 끝에 1점차로 신승했다.

한국이 상대를 압도했다고 할 만한 경기는 이스라엘과의 두 번째 대결에서 거둔 콜드게임승 단 한 번이었다. 반면 한국보다 확실히 전력에서 우위라고 평가받았던 미국-일본에게는 나름 선전하기는 했지만 경기 중반 이후 힘의 차이를 드러냈다. 그리고 이것이 현재 한국야구의 현재 객관적인 실력이자 한계였다.

야구대표팀은 전승 우승을 달성했던 2008 베이징대회와 비교하여 전력이 크게 떨어졌다. 당시에는 류현진, 김광현, 봉중근, 윤석민, 정대현 같은 확실한 에이스급 투수들이 있었고 타선에는 이승엽-이대호같은 해결사들이 고비에서 한 방을 터뜨려줬다.

하지만 이번 올림픽에서는 지난 10여 년간 한국야구를 이끌어왔던 에이스급 투수들이 모두 현역 메이저리거 신분이라 차출이 불가능했고, 타선에는 믿음직한 4번타자감이 없었다. 차세대 에이스와 거포 육성에 어려움을 겪고있는 KBO리그의 문제점이 그대로 대표팀까지 이어진 것이다.

또한 베이징 대회에서는 여러모로 운도 따라줬다. 베이징에서도 야구대표팀이 매경기 월등한 경기력으로 우승까지 차지한 것은 아니다. 경기 대부분이 1~2점차 승부였고 미국전 끝내기 승리, 쿠바전 병살플레이, 일본전 역전승 등 짜릿한 순간도 있었지만 최약체 중국과도 승부치기까지 가는 등 기복도 있었다.

김경문 감독은 부진에 빠져있던 이승엽을 일본과의 준결승전까지 믿고 기용하거나, 캐나다전 류현진의 완봉투, 일본전 김현수의 대타 기용, 쿠바전 정대현의 구원 투입 등 고비마다 믿음과 파격을 오고가는 과감한 용병술이 신기할 만큼 맞아떨어지며 자국리그에서도 못이룬 올림픽 우승의 역사를 쓸 수 있었다.

그러나 도쿄 대회에서는 김경문 감독의 '마이웨이'가 두 번은 통하지 않았다. 이는 바로 이번 올림픽대표팀의 선수구성을 둘러싼 아쉬움으로 이어진다. 한국야구의 선수층이 일본이나 미국에 뒤처진다는 것은 어쩔수 없었지만, 많은 팬들이 정말 우려했던 것은 과연 김경문 감독이 선택한 대표팀이 과연 '현재 한국야구가 내놓을 수 있었던 최상의 전력이었는가'라는 의구심이었다.

김경문 감독은 이번 대회에서 '세대교체'와 '지키는 야구'를 대표팀의 콘셉트로 내세웠다. KBO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준 젊은 선수들이 대거 승선했고, 수비력과 작전수행능력에 무게가 쏠렸다. 타선에서는 김현수과 이정후가 맹활약을 펼쳐줬고, 약점으로 평가받았던 선발은 고영표(일본전)-이의리(미국전) 등도 기대 이상의 호투를 선보였다. 과거 아시안게임 논란으로 대표 선발에 잡음이 있었던 오지환과 박해민도 중요한 순간마다 깜짝 활약을 선보였다. 김경문 감독의 판단이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볼 수 없는 증거들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고비마다 대표팀의 발목을 잡은 약점들도 역시 우려했던 대목에서 나왔다. 대표팀은 대회 내내 타선의 결정력 부족으로 고전했다. 한국의 타선이 제대로 폭발한 경기는 이스라엘전 2경기 뿐이고, 도미니카전(4-3)도 9회에 3득점을 뽑기 전까지는 타선이 터지지 않았다. 패배한 3경기(미국-일본)에서는 경기당 2득점씩을 뽑는 데 그쳤다. 반면 한국 마운드는 고비마다 상대의 장타력에 고전하며 어려운 경기를 펼쳐야 했다.

한국 타선은 대회 내내 4번 타순에서 발목이 잡혔다. 양의지, 강백호는 물론이고 좋은 활약을 펼쳤던 김현수마저도 미국전에서 4번에 기용되자 침묵했다. 

양의지는 KBO리그에서는 최고의 공수겸장 포수로 꼽히지만 국제대회에서는 유독 약하다는 징크스가 있었다. 오재일, 황재균, 강백호도 큰 활약을 해주지 못했고 최주환은 부상이 있는데도 무리해서 올림픽까지 데려갔지만 대타 자원으로밖에 쓸 수 없었다. 대표팀 타선은 김현수-이정후-오지환의 활약에 크게 의존해야했다. 한국이 대회 내내 경기를 치른 요코하마 스타디움에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타자친화형 구장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이승엽이나 이대호같이 한방을 터뜨려줄 거포의 부재는 더욱 뼈아팠다.

또한 마운드에서는 소수정예로 운용된 불펜의 과부하가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김경문 감독은 이번 대회에서 불펜자원을 조상우, 고우석, 오승환 단 세 명밖에 뽑지 않고 나머지를 모두 선발자원으로 채웠다. 좌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부상에서 회복한 지 얼마 안 되는 차우찬과 리그에서도 그리 좋은 활약을 펼치지 못한 김진욱까지 선발했다. 가뜩이나 불펜 의존도가 컸던 대표팀 마운드 운용의 특성상, 필연적으로 몇몇 투수들의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었다.

메달의 분수령이 된 일본과 미국전에서 한국은 모두 경기후반 불펜싸움에서 무너졌다. 일본전에서는 8회 고우석의 뼈아픈 실수와 제구력 난조가 패배의 빌미가 됐고, 미국전에서는 그동안 호투하던 조상우마저 무너졌다. 미국전에 구원투입된 원태인과 최원준은 선발투수에 익숙해진 탓인지 부담이 큰 국제대회에서 짧은 이닝을 전력투구해야하는 불펜 역할에 적응하지 못했다. 2경기 모두 김경문 감독은 흔들리는 투수들이 이닝을 끝내주기만 믿고 기다리다가 투수교체 타이밍을 실기하는 뼈아픈 판단착오를 저질렀다.

물론 모든 게 지고 나서 결과론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김경문호의 한계는 이미 대표 선발 과정에서부터 전문가-야구팬들 지속적으로 제기되어온 문제점들과 결코 무관하지 않았다. 베이징 대회 때는 다행히 결과가 좋았기 때문에 김경문 감독의 선택이 '믿음과 뚝심'으로 미화되었지만, 도쿄 대회에서는 '고집과 독선'으로 변했다. 과거의 성공 방식이 내일의 결과까지 보장하지 않는다는 좋은 반면교사였다. 물론 김경문 감독에게만 이번 대회 성적과 한국야구의 한계에 대한 모든 책임을 전가해서도 안된다.

대표팀의 부진이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번 올림픽이 한국야구를 바라보는 팬들의 싸늘한 여론을 그나마 회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는 데 있다. 공교롭게도 올림픽 휴식기를 코앞에 두고 KBO리그 내에서 방역수칙 위반 선수가 줄줄이 나오면서 리그가 조기 중단되었고, 야구계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여론의 질타가 쏟아졌다. 역시 당초 최종엔트리에 선발되었던 박민우(NC), 한현희(키움)가 논란에 휘말려 하차하는 후폭풍도 있었다. 김경문 감독 역시 선수선발의 공정성과 특정팀 차별 논란에 휩싸이는 등 시선이 곱지 않았다.

결국 김경문호는 이래저래 싸늘한 여론앞에서 무거운 분위기를 안고 도쿄행에 올라야 했다. 도미니카전의 짜릿한 9회 역전승과 이스라엘전 콜드게임 승으로 잠시나마 여론을 반전시키고 기대감을 높인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반드시 넘어야했던 일본과 미국을 상대로 잇달아 중요한 고비를 넘지못하고 무너지며 끝내 아쉬움만 남긴 올림픽이 되고 말았다. 야구가 2024년 파리대회에서는 다시 정식종목에서 제외되기에 야구대표팀을 올림픽에서 언제 다시 보게 될지도 알 수 없다.

김경문호는 한국야구의 현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많은 숙제를 남겼다. 도미니카와의 동메달 결정전은 김경문 감독의 대표팀에서의 고별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 비록 2연패는 놓쳤지만 동메달을 통하여 끝까지 유종의 미를 거두는 모습이 필요하다. 그리고 최종전이 끝난 후 한국야구가 어떤 결과로 이번 올림픽을 마치든, 뼈아픈 성찰과 혁신은 불가피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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