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핸드볼 에이스 류은희의 마지막 선택은 재치있는 어시스트였다. 라이트백 실력자로 널리 알려진 자신에게 수비수들이 한꺼번에 몰리는 것을 잘 알고 혼자서 무리하게 공격하기보다는 팀 플레이를 엮어낸 것이다. 59분 49초에 만든 이 극장 동점골 덕분에 우리 대표팀은 8강 토너먼트에 턱걸이할 수 있게 됐다.

강재원 감독이 이끌고 있는 한국 여자핸드볼대표팀이 2일(월) 오전 9시 요요기 국립경기장에서 벌어진 2020 도쿄올림픽 여자핸드볼 A조 앙골라와의 다섯 번째 게임에서 31-31(전반 16-17)로 비겨 순위를 4위까지 끌어올렸다. 2일 밤 마지막 일정으로 잡힌 '일본 - 노르웨이' 게임 결과에 따라 우리 선수들의 8강 진출 확정 소식이 뜰 것으로 보인다.
 
 2일 일본 요요기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여자 핸드볼 A조 조별리그 한국과 앙골라의 경기. 류은희가 후반전 동점이 되자 환호하고 있다.

2일 일본 요요기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여자 핸드볼 A조 조별리그 한국과 앙골라의 경기. 류은희가 후반전 동점이 되자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강은혜'의 극장 동점골과 '주희'의 슈퍼 세이브

한국만큼이나 승리가 절실한 앙골라는 체격 조건이 월등한 피봇 플레이어 둘(릴리아나 베난시오, 알베르티나 카소마)을 한꺼번에 들여보내 공격 성공률을 높이는 전술을 자주 사용했다. 이를 위해 골키퍼를 임시로 빼고 필드 플레이어를 더 들여보내는 '엠티 넷(Empty Net)'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 흐름 속에 우리 선수들은 전반전 내내 끌려가고 말았다. 10분 12초 골키퍼 정진희의 세이브 후 정유라의 속공이 성공하면서 6-3까지 앞서가던 한국은 약 8분 뒤 9-12까지 점수차가 벌어지며 흔들렸다. 앙골라의 더블 피봇 중 릴리아나 베난시오에게 빈 골문을 내준 것이다. 그리고 23분 6초에 이사벨 귀알로에게 비교적 멀리서 던진 9미터 골을 내줘 11-15로 차이가 더 벌어지고 말았다. 이대로 끌려가서는 8강 목표가 흐려질 수밖에 없었다.

질 수 없는 게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우리 선수들은 전반전 끝나기 직전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하여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전반 종료 6초 전 미들 속공을 통해 정유라의 어시스트 패스를 받은 피봇 강은혜가 침착하게 따라붙는 골을 성공시켜 16-17 점수판을 만들었다. 후반전을 위해 매우 중요한 흐름을 놓치지 않은 것이다.

후반전 시작 후 19초만에 센터백 강경민의 어시스트 패스를 받은 조하랑이 왼쪽 날개 공격을 재치있는 오버 슛으로 성공하여 17-17을 만든 우리 선수들은 핸드볼 팬들에게 근래에 보기 드문 긴장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한국이 역전 시키면 앙골라가 따라붙고, 또 앙골라가 달아나면 한국이 끈질기게 따라붙는 게임 흐름이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도록 만든 것이다.

믿기 힘든 후반전 드라마는 3분 정도를 남겨놓고 절정에 이르렀다. 29-31 두 점 차로 끌려가던 한국은 앙골라의 높은 수비벽에 막혀 슛을 던지지 못하고 패시브 상황까지 몰렸고 에이스 류은희가 급하게 던진 공이 상대 골키퍼 엘레나 수자에게 막히고 말았다. 이렇게 57분 47초에 공격권까지 넘겨줬으니 우리 선수들은 정말로 벼랑 끝에 몰린 듯했다. 여기서 선택할 것은 끈질긴 수비뿐이었다. 

58분 28초에 앙골라의 빈 골문을 앞두고 역습 기회를 잡은 한국은 심해인의 엠티 넷 골 덕분에 점수판을 30-31로 만들었다. 이어진 앙골라 공격 시도를 우리 골키퍼 주희가 기막히게 막아냈고 그 덕분에 동점골 기회를 잡아낸 것이다. 여기서 에이스 류은희에게 앙골라 수비수들이 몰렸고 재치있는 어시스트 패스가 피봇 강은혜에게 이어졌다. 게임 종료 11초를 남기고 31-31 극장 동점골이 이렇게 나온 것이다.

그래도 몇 초가 남았기에 앙골라는 퀵 스타트를 시도해 이 게임 최다 득점 선수 이사벨 귀알로(8골)에게 마지막 슛을 맡겼다. 그리고 종료 버저가 울리는 순간 우리 골키퍼 주희의 슈퍼 세이브가 빛났다. 주희 골키퍼가 포기하지 않고 막아낸 덕분에 우리 선수들은 얼싸안고 귀중한 승점 1점을 얻은 감격을 나눌 수 있었다. 이렇게 한국은 일본을 최하위로 밀어내며 A조 4위 자리에 올랐다. 조별리그 마지막 게임에서 최강 노르웨이가 일본에게 지지 않는다면 우리가 8강에 올라가는 시나리오가 만들어진 것이다.

개최국 일본은 2일(월) 오후 9시 30분 같은 장소에서 이번 올림픽 금메달을 노리고 나온 강팀 노르웨이와 만난다. 여기서 큰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한국은 극적으로 8강에 올라  오는 4일(수) 오후 8시 45분 B조 1위가 유력한 스웨덴과 만날 수 있다.

2020 도쿄 올림픽 여자핸드볼 A조 결과(2일 오전 9시, 요요기 경기장)

한국 31-31(전반 16-17) 앙골라
- 한국 선수들 득점 기록 : 강은혜 7골, 정유라 7골, 류은희 5골, 조하랑 3골, 심해인 2골, 이미경 2골, 강경민 2골, 최수민 1골, 김보은 1골, 김진이 1골

- 양팀 주요 기록 비교
슛 적중률 : 한국 67%(31/46), 앙골라 65%(31/48)
6미터 샷 : 한국 6/8개, 앙골라 12/15개
윙 슛 : 한국 6/7개, 앙골라 4/8개
9미터 샷 : 한국 1/7개, 앙골라 7/16개
7미터 던지기 : 한국 3/4개, 앙골라 1/1개
속공 : 한국 8/10개, 앙골라 3/3개
브레이크스루(개인 돌파) : 한국 4/6개, 앙골라 4/5개
엠티넷 골 : 한국 3/4개, 앙골라 0개
2분 퇴장 : 한국 0회, 앙골라 7회
골키퍼 세이브 : 한국 주희 26%(9/34), 정진희 25%(2/8),  / 앙골라 엘레나 수자 23%(8/35)

A조 현재 순위표(4위까지 8강 토너먼트 진출)
1 노르웨이 4게임 8점 4승 133득점 98실점 +35
2 네덜란드 4게임 6점 3승 1패 139득점 114실점 +25
3 몬테네그로 4게임 4점 2승 2패 110득점 112실점 -2
4 한국 5게임 3점 1승 1무 3패 147득점 165실점 -18
5 앙골라 5게임 3점 1승 1무 3패 130득점 156실점 -26
6 일본 4게임 2점 1승 3패 99득점 113실점 -14
- 승점이 같을 경우 순위 결정 방식 : 승자승 - 골 득실차 - 다득점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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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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