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협동 수비 1일 일본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여자농구 조별리그 A조 3차전 한국과 세르비아의 경기. 한국 진안과 김단비가 리바운드볼을 노리고 있다.

▲ [올림픽] 협동 수비 1일 일본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여자농구 조별리그 A조 3차전 한국과 세르비아의 경기. 한국 진안과 김단비가 리바운드볼을 노리고 있다. ⓒ 연합뉴스

 
기적은 없었다. 하지만 부끄러운 결과는 아니었다. 비록 1승도 8강도 이루지는 못했지만 어려운 상황에서도 세계적인 강호들을 상대로 선전하며 한국농구가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줬다는 것만으로도 '여랑이(한국여자농구대표팀의 애칭)'들의 투혼은 누구보다 빛났다.

전주원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여자농구 대표팀은 1일 일본 사이타마 슈퍼아레나에서 열린 세르비아와 2020 도쿄올림픽 여자농구 A조 조별리그 최종 3차전에서 61-65, 4점차로 석패했다. 앞서 스페인(69-73)과 캐나다(53-74)에 패했던 한국은 결국 아쉬운 3패로 도쿄올림픽 여정을 마감하게 됐다.

한국은 경기 초반부터 세르비아의 높이와 압박에 고전하며 경기 시작 후 초반 10개의 야투가 모두 빗나가는 난조까지 겹쳤다. 하지만 선수들의 적극적인 움직임을 바탕으로 수비가 무너지지 않으며 세르비아를 물고 늘어졌고 박혜진과 김단비의 연속 3점슛이 터지기 시작하며 공격의 리듬을 찾아갔다. 전반을 24-32로 뒤진 한국은 김단비와 박지현, 박지수가 내외곽에서 고르게 공격을 이끌며 한때 10여 점차까지 벌어졌던 점수를 동점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후 양팀은 경기 종반까지 승패를 예측하기 어려운 접전을 펼쳤다.

마지막 4쿼터에서. 55-56으로 턱밑까지 추격했던 한국은 박지현의 연속 3점포가 터지며 61-56으로 리드를 잡았다. 기적이 눈앞에 다가오는 듯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3점이 한국의 경기 마지막 득점이 될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한국은 연속 공격자 반칙과 리바운드 열세로 경기 막판 세르비아에 공격권을 내주며 흐름을 잃었다. 종료 4분 여간 득점을 추가하지 못한 한국은 세르비아에 내리 9실점을 허용하며 뼈아픈 역전패를 당했다.

한국은 박지현(17점 7리바운드 5어시스트), 김단비(15점 6리바운드) 박지수(8점 11리바운드, 박혜진(8점 4어시스트) 등이 고르게 활약했으나 뒷심 부족과 높이-체력 열세, 주전 의존도를 극복하지 못하고 다시 한번 분루를 흘렸다. 이로서 한국은 A조 최하위인 4위에 그치며 13년 만의 올림픽 도전을 마무리했다.

여랑이가 여기까지 오는 길은 결코 쉽지 않았다. 1979년 FIBA 농구월드컵(구 세계선수권) 2위, 1984년 LA올림픽 은메달을 차지하는 등, 한때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강호로 꼽혔던 한국 여자농구는 2000년대 이후 세대교체 실패와 농구인기 하락으로 침체기를 거쳤다. 농구대잔치 세대의 마지막 황금기이던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4강에 오른 것을 끝으로 한국 여자농구는 더 이상 세계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2008 베이징올림픽 8강을 끝으로는 2회 연속 올림픽 본선진출조차 실패했다.

여자농구는 지난해 2월초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최종예선에서 조 4개팀 중 3위까지 주어지는 본선 티켓을 획득하며 13년 만의 본선무대를 다시 밟게됐다. 하지만 최종 예선까지 대표팀을 지휘했던 이문규 감독이 계약기간 만료와 함께 대회 기간내내 선수 혹사와 용병술 등에서 여러 가지 논란에 휩쓸리며 올림픽 티켓을 따내고도 결국 협회의 재신임을 받는 데 실패했다. 대한민국 농구협회는 감독 공모를 거쳐 한국 여자농구의 '레전드' 전주원 감독과 이미선 코치를 올림픽대표팀을 이끌 새 코칭스태프로 선택했다.

전주원 신임 대표팀 감독은 한국 여자농구 역사상 최고의 가드 중 한 명으로 꼽힌다. 현역시절 아시안게임에서 금·은·동메달을 모두 수상했고, 2000 시드니올림픽 4강신화의 핵심멤버이기도 했다. 지도자로서도 여자농구계를 장기집권했던 신한은행과 우리은행, 무려 두 개의 왕조를 코치로서 함께하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무엇보다 전주원 감독은 하계올림픽 역사상 단체 구기 종목 최초의 여성 감독이라는 명예로운 타이틀을 얻게 됐다. 동계올림픽까지 포함하면 2018년 평창 대회에서 남북단일 여자 아이스하키팀을 지도했던 캐나다 국적자 새라 머리 감독에 이어 두 번째였다. 프로무대에서 코치경력만 있었던 전주원 감독은 역대 대표팀 전임사령탑중 최초로 감독 경험이 없는 초보 감독이라는 타이틀도 얻게 됐다. 여러모로 국내 여성지도자로서는 보수적인 한국농구계의 유리천장을 깼다는 점에서도 눈길을 끌었다.

올림픽이 가시밭길이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시작한 도전이었다. 한국은 FIBA(국제농구연맹)3위 스페인, 4위 캐나다, 8위 세르비아와 한 조에 편성됐다. 한국의 랭킹은 19위로 올림픽 참가 12개국을 통틀어 가장 낮은 최약체로 꼽혔다.

코로나19와 농구협회의 부실한 지원이라는 구조적인 문제로 올림픽을 앞두고도 전지훈련이나 평가전 등은 꿈도 꿀 수 없었던 게 현실이었다. 미국여자프로농구(WNBA)에서 뛰는 에이스는 박지수는 코로나19 위험으로 대표팀 합류가 늦어지며 올림픽 직전까지 동료들과 제대로 손발을 맞춘 건 일주일에 불과했다. 당초 대표팀에 뽑혔던 김한별, 김민정이 부상으로 낙마하며 전력이 예상보다 더 약해지는 악재도 겹쳤다.

야구, 축구, 배구, 핸드볼같은 메달권까지 기대했던 다른 구기종목에 비하면 여자농구는 1승과 8강이 소박한 목표였지만, 그나마도 현실적으로 큰 점수차로 전패하지만 않으면 다행이라고 할만큼 비관적인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뚜껑을 열자 여랑이는 모두의 예상을 비웃듯 눈부신 선전을 펼쳤다. 메달권 전력을 갖춘 유럽의 강호 스페인과 세르비아를 상대로 경기 종반까지 팽팽한 접전을 펼치며 상대를 벼랑끝까지 몰고갈 뻔했다. 캐나다전도 막판에 점수차가 벌어졌을뿐 일방적인 경기는 아니었다. 한국을 1승 제물로 만만히 여겼던 상대팀들은 여랑이의 끈끈한 투혼에 진땀을 흘려야 했다.

이문규 감독이 이끌던 최종예선과 비교하면 경기내용은 더 발전했다. 한국은 당시에도 스페인과 최종예선에서 한조에 편성되었으나 당시는 37점차(46-83)로 대패를 당했다. 영국전(82-79)에서는 한국이 승리하고도 주전급 선수만 풀타임을 기용하는 혹사로 하마터면 대역전을 당할 뻔했다. 전주원 감독은 올림픽 무대에서 적극적인 교체로 가용자원을 최대한 고르게 활용하며 체력과 스피드를 앞세운 강력한 로테이션 수비를 선보였다.

전주원호는 세계 8강팀들을 잇달아 상대한 올림픽 본선에서 3경기 평균 70.6점밖에 내주지 않았다. 한국은 190cm 이상의 장신이 박지수 한 명인 반면 상대팀들은 3~4명 이상을 보유하고 있었다. 높이와 체격조건에서 매번 열세인 단신팀이 상대팀들의 야투율을 40% 이하로 떨어뜨렸다는 것은 대단히 고무적이다. 공수에 걸쳐 많은 활동량을 가져가면서도 불필요한 움직임을 최소화하는 간결하고 효율적인 전술적 플레이가 돋보였다. 전주원 감독의 현역시절에 활약하던 대표팀의 데자뷰를 떠오르게했던 장면이다.

하지만 한계도 명확했다. 많이 뛰는 농구를 하다보니 경기 후반으로 갈수록 체력이 빠르게 고갈되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전주원 감독이 로테이션으로 선수들의 체력을 어느 정도 안배해주긴 했지만 결국 승부처에서는 주전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박지수를 대체할 자원이 없어서 잠시라도 벤치로 물러나면 골밑에서 구멍이 뚫리기 일쑤였다. 3경기 모두 잘싸우다가 4쿼터에 체력저하-실책-공격리바운드 허용이라는 패턴이 반복되며 무너졌다.

전주원호는 수비를 통하여 강호들을 어느 정도 괴롭힐수는 있었지만, 정작 한국의 공격도 답답했다는 게 문제였다. 박지수, 김단비, 박지현 등이 적극성을 보여줬지만 승부처에서 확실한 한 골을 보장할 수 있는 해결사나 클러치 3점 슈터는 없었다. 한국은 스페인전 4쿼터, 캐나다전 3쿼터, 세르비아전 1, 4쿼터처럼 3점슛이 터지지 않으면 3~4분 이상 무득점에 그치는 장면이 여러 차례 나왔다. 수비에서는 충분히 경기를 잘 풀어나가고 있었기에 슛 몇 개만 더 잘들어갔어도 흐름을 가져올 수 있었다는 아쉬움이 컸던 순간이다. 감독의 전술적 역량만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한국농구의 구조적인 문제에 가까웠다.

비록 기적은 없었지만 전주원 감독과 대표팀 선수들은 주어진 환경에서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동네북 취급을 당할 것이라는 우려를 뒤집고 한국 여자농구의 저력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한 사실만으로도 박수받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전주원호가 어렵게 살린 희망의 싹을 어떻게 키워가야할지는 앞으로 한국농구에게 남은 숙제다. 감독과 선수들이 아무리 국가대표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투혼을 불사른다고 해도 제대로 된 투자와 지원, 계획이 없이 맨땅에서 정신력만으로 기적을 일궈내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여랑이의 선전을 4년 뒤 올림픽 무대에서도 다시 볼 수 있을까.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