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경기 앞에서는 '노메달의 아쉬움' 같은 수식어가 붙을 틈이 없었다. 그저 한국 신기록을 뛰어넘은 환호, 비인기 중에서도 비인기로 불리던 종목의 경기가 우리의 무대가 되는 기쁨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한국 높이뛰기 간판 우상혁(국군체육부대)이 지난 1일 도쿄 카스미가오카 국립 경기장에서 열린 남자 높이뛰기 결승전에서 2m 35의 성적을 거두었다. 이는 최종 4위의 성적이면서, 동시에 한국 신기록 경신이었다. 1996년 아틀란타 올림픽에 출전한 이진택이 기록했던 2m 29, 그리고 결선 8위라는 기록을 넘어섰다.  

한국 육상은(특히 필드와 단거리 종목에서) 들러리 역할을 서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번 올림픽 우상혁의 선전을 통해 육상 종목이 우리의 잔치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엿봤다. 

국민들의 성숙함 역시 우상혁의 성적을 빛냈다. 우상혁이 경기를 뛰는 내내 국민들은 열띤 응원을 펼쳤다. 모두가 축하하고, 환호하고, 박수를 보냈다. 
 
 1일 도쿄올림픽 남자 높이뛰기에서 2m35 한국신기록을 세우며 4위를 차지한 우상혁이 도쿄 올림픽스타디움에서 경기 종료 후 태극기를 펼치며 기뻐하고 있다.

1일 도쿄올림픽 남자 높이뛰기에서 2m35 한국신기록을 세우며 4위를 차지한 우상혁이 도쿄 올림픽스타디움에서 경기 종료 후 태극기를 펼치며 기뻐하고 있다. ⓒ 연합뉴스


마지막 순간까지... 우상혁은 모든 경기를 즐겼다

올림픽에 나선 것부터가 '이변'이었던 선수였다. 기준 기록을 통과하지 못하던 차, 한 달 전 열린 우수선수 초청대회에서 2m 31로 자신의 최고 기록을 써내며 랭킹 포인트를 충족해 올림픽에 나섰다. 그랬기에 그에게는 무엇보다도 간절하고 기대가 되는 올림픽이었을 터.

결선이 열렸던 1일 저녁에는 한창 야구 경기가 펼쳐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우상혁의 도전은 초반 그리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다른 육상종목이 펼쳐지고 있던 와중에 잠깐잠깐 그가 뛰어오르는 장면이 중계되는 정도였다. 하지만 그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 경기를 보던 시청자들도 점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2m 19에 이어 2m 24, 그리고 2m 27을 뛰어넘은 우상혁은 개인 신기록에 근접하는 2m 30을 넘을 때에도 중압감 대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었다. 여유롭게 관중석에 앉은 이들에게 박수를 유도하고, 뛰어넘는 순간까지 함박웃음을 지으며 올림픽이라는 무대 자체를 즐기는 모습을 보였다.

개인 기록을 돌파하는 2m 33. 우상혁은 첫 번째 시기에서 호기롭게 도약을 시도했지만, 아쉽게도 엉덩이 끄트머리가 크로스바에 걸리며 실패했다. 하지만 우상혁은 두 번째 시기를 도전하기 전 박수를 유도하고,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자신에게 주문을 외쳤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2m 33을 뛰어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도움닫기. "화이팅! 가자"라는 포효와 함께 도움닫기를 한 그는 단 한 번에 크로스바를 뛰어넘는 데 성공했다. 2m 35. 24년 동안 국내 단 한 명의 선수도 넘지 못한 그 높이를 우상혁이 뛰어넘은 순간이었다. 

하지만 두 번의 기회가 주어졌던 2m 39의 1차 도약에서 실패한 우상혁이 밝은 모습으로 "괜찮아"라고 포효할 때에도 국민들은 SNS, 경기 라이브 댓글로 '괜찮다'며 역시 화답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는 한결같았다. 2m 39에서 두 번째 실패한 순간, 우상혁 선수는 매트 위에서 슬퍼하거나 실의에 찬 모습을 보이는 대신 번쩍 몸을 들어올렸다. 밝은 표정으로 똑바로 선 그가 마지막으로 국민들 앞에 보여준 포즈는 '거수경례'였다. 관중석에서, TV 앞에서 그를 응원한 모두에게 남긴 경례였던 셈이었다.

성숙한 국민들, 메달에 연연하지 않았다

국민들도 성숙했다. 비록 우상혁 선수가 메달을 따지는 못했지만 그를 응원하고 축하했다. 우상혁 선수도 마찬가지였다. 우 선수는 믹스드존 인터뷰에서 "행복한 밤이었다. 이제는 홀가분하다"며 "이건 정말 후회 없는 경기가 맞다. 나는 행복하다"고 말했다. 

현재 상무에 있는 그는 메달을 땄다면 바로 전역을 할 수 있었던 상황. 그와 관련된 짓궂은 질문에도 "비록 메달은 못 땄지만 괜찮다. 한국 역시에 한 획을 그었다는 데 만족한다"며 "군에 갔기에 이렇게 할 수 있었다, 다음 올림픽에서는 우승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봤다"고 답했다. 

경기장의 분위기를 어떤 곳보다도 밝게 만들었던 우상혁 선수는 그 누구보다 멋진 올림픽의 한 장면을 만들어냈다. 이제 그의 목표는 다음 올림픽일 터. 2021년 8월 감동적인 드라마를 써 낸 우상혁이 앞으로 또 어떤 드라마를 써 내려갈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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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혁 2020 도쿄 올림픽 높이뛰기 육상 국민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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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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