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라켓소년단>의 한 장면

SBS <라켓소년단>의 한 장면 ⓒ SBS

 
이사 오기 전 살던 동네에 실내 배드민턴장이 있었다. '오호라' 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배드민턴장으로 향했던 세 식구는 생각지도 않은 망신을 당하고 의기소침해 돌아왔다. 배드민턴장을 이용하기 위해 전용화를 신어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세 식구는 입장부터 곤란을 겪었다. 어찌어찌 겨우 입장했으나 이번엔 마트에서 산 저렴한 배드민턴 라켓이 우리 기를 죽였다.

또한 코트 안의 모두는 편한 옷을 대충 걸치고 간 우리 식구들과 달리 누가 봐도 선수 복장이 분명한, 폼 나는 유니폼들을 입고 있었고 무엇보다, 깃털처럼 가벼울 것 같은 배드민턴공을 스매싱으로 때려 바닥에 곤두박이게 하는 출중한 실력으로 배드민턴 초초보인 우리를 주눅 들게 했다. '이런 잘못 왔군' 하며 조용히 돌아 나온 굴욕 에피소드가 SBS 드라마 <라켓 소년단>을 보다 떠올라 피식 웃었다. 드라마 대사처럼 "어르신들 약수터에서 치는" 배드민턴인 줄 알았다간 큰 코 다친다.
 
<라켓 소년단>은 중학교 배드민턴부의 성장 스토리를 담은 드라마다. 다양한 청소년의 이야기를 다룬 서사가 드문데, 오랜만에 운동하는 청소년의 얘기를 담은 드라마라 반가웠다. '소년단'이라기에 남자 청소년 배드민턴부의 이야기만 담은 줄 알았는데, 소년들뿐 아니라 소녀들도 등장하지 않는가. 게다 이 소녀들의 넘치는 파이팅과 에너지는 소년들을 무색하게 할 정도다. '소년'이 보편적 청소년을 포함한다고는 하지만 누가 들어도 남자 소년들을 상상하게 한 드라마 타이틀이 적절하다고 할 수는 없겠다.
 
내 딸도 드라마의 주인공들처럼 열여섯이라는 시기를 지났지만, '요즘 애들'로 호명되는 청소년들을 이해하는 일은 쉽지 않다. 10~20년을 거치며 디지털화가 거의 모든 면에서 급격하게 이루어졌기에, 이 변화를 따라가는 것만도 벅찬 장년에게 '디지털 네이티브'인 '요즘 애들'의 '힙함'이란, 고문서를 해독하는 것 만큼이나 난해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요즘 운동하는 애들의 이야기는 어떻게 그려졌을까.
 
아름다운 지방 도시가 감추고 있는 진실
  
 SBS <라켓소년단>의 한 장면

SBS <라켓소년단>의 한 장면 ⓒ SBS

 
해남으로 원하지 않는 이주를 하게 된 해강(탕준상)은 한반도 땅 끝에 있는 작은 마을이 만만했다. "여기라면 나도 1등할 수 있겠다"는 해강의 무심한 농담은, 자칫 그 우스갯소리에 맞아 죽을 수도 있는 개구리의 존재를 경시하고 있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동네 할머니 말처럼, "서울은 우고 여기는 아래"라는 서울 중심적 사고에 터 잡고 있다. 나고 자란 서울을 떠나온 것이 속상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해강이 지방의 중학교 배드민턴부를 얕잡아본 것은 부인할 수 없을 터다.
 
그렇다면 해강이 단번에 접수하리라 깔봤던 해남서중 배드민턴부의 면면은 어땠을까? 어떤 운동이든 재미로 하는 것이 아닌 바에야 정상에 서기 위한 고진감래는 수순일 터, 서울이라고 지방의 마을이라고 고군분투해야 하는 운동의 근본이 다르겠는가. 실력이 늘고 정상으로 다가갈수록 명징해지는 것은, 최고가 되기 위해 넘어서야 할 대상이 눈에 보이는 라이벌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통찰이지 않은가. 해남서중과 해남제일여중의 아이들 또한 다르지 않다.
 
이미 실력을 인정받는 해남제일여중 에이스 세윤(이재인)은 최고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갱신해야 할 대상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악바리'다. 어려서 흘린 눈물이 헛되지 않게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세윤은 이미 최고지만, 최고가 되기 위해 잃은 것이 왜 없겠는가. 최고가 되는 길은 꽃길이 아니다. 더 많이 연습해야 했고, 당연히 더 많이 땀 흘렸고, 더 많은 울음을 삼켜야 했다. 지금 열리고 있는 올림픽 배드민턴장의 선수들도 그렇게 그 자리에 서게 되었으리라.
 
드라마는 운동하는 청소년들의 경쟁심뿐만 아니라 '함께'라는 가치 또한 중요하다고 여기는 듯하다. "이겨도 같이 져도 같이"라며 팀워크을 다지게 하는 감독의 구호는 이 드라마가 보여주고자 하는 방향을 넌지시 일러준다. 배드민턴이 개인기로 승부를 거는 단식뿐 아니라 팀워크가 필수인 복식도 있기 때문일 터다. 해강과 윤담(손상연)도 복식조가 되어 연습하며 치열하게 기싸움을 벌이지만 결국, 서로의 들숨과 날숨을 조절하지 않고 제멋대로 했다간 경기에서 결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드라마는 '함께' 성장해가는 아이들을 싱그럽게 그리지만, 현실이 그러할지는 잘 모르겠다. 대회에 출전해 경력을 쌓고 이를 기반으로 대학에 진학하거나 좋은 몸값을 받아 실업팀에 가는 것이 주된 목적이 돼버린 학교 스포츠 판에, 아이들의 이런 미담이 온전히 발아되고 성숙될 수 있을까. 스포츠로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과열 경쟁으로 대회 출전 기회를 얻거나 승부를 조작하기까지 하고, 운동부의 기강을 잡는다는 명목으로 폭력이 질서를 세우는 당연한 도구로 여겨지는 부정의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아이를 뒷받침해야 하는 부모도 고달프긴 마찬가지다. 골프 하는 아이를 둔 한 지인이 아이 운동비용 대느라 허리가 휘어진다는 푸념은 괜히 해보는 죽는 소리가 아니다. 드라마 중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아이 훈련비를 대는 부모가 있는 것처럼, 고비용의 학교 스포츠는 이미 저소득 계층에겐 언감생심 꿈같은 이야기다.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부모가 감독과 코치의 비위를 맞추고 돈을 상납하는 현실도 실재한다. 학교 스포츠 현실은 이렇게 각박하고 차별적인데, 호젓하고 아름다운 시골마을 배경과 사투리로 버무려진 순박한 지방인들이라는 캐릭터들은 때 묻은 현실을 지우게 한다.
 
엄마인 영자는 왜 작아져야 하는가
  
 SBS <라켓소년단>의 한 장면

SBS <라켓소년단>의 한 장면 ⓒ SBS

 
드라마는 해강의 가족들을 또 다른 줄기로 뻗어내며 이 드라마의 한 부분을 훈훈한 가족 드라마로 가져가고 있다. 해강의 아빠 현종(김상경)은 사람 좋은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사람 좋음은 가족을 위기에 처하게 했고 결국 해남으로 떠나게 만들었다. 여기서의 떠남은 그가 "유배"라 자조하듯 일종의 도피인데, 서울의 치열함과 극악함을 피하는 곳으로 상정된 곳이 지방의 시골마을 해남인 것이다. 그러나 시골이라 하여 더 이상 낭만적인 곳은 아니며, 그곳을 지키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낭만화는 코웃음을 치게 할 일이다. 낭만화되곤 하는 시골(지방)이란 그 지역민들에겐 그저 삶의 현장인 것이지, 좌절한 사람들이 힐링하기 위해 삼삼오오 모여들어 쉬는 곳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현종의 사람 좋음을 "너도 꽤 괜찮은 아빠"라는 친구의 덕담으로 극대화한다. 그러나 현종의 사람 좋음이란 알고 보면, 주변인(남자)에게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안달에서 비롯하고 있다. 선배의 청을 거절하지 못해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안고 가족을 시골로 이주하게 만드는 무책임이 호인으로 묘사되는 것은 곤란하다. 가족만을 생각하는 가족이기주의도 문제지만, 아내에게조차 의논 없이 일을 저지르고 그 뒷감당을 낯선 곳으로 이주하는 방식으로 가족이 지게 하는 것이 가장다움일 수는 없지 않은가.
 
현종에게 빚을 지게 한 선배가 눈물겨운 가장이 되는 방식도 부적절하다. 아들의 병원비를 대기 위해 갚지 못할 빚임을 알면서도 형편이 어려운 후배를 나락으로 빠뜨리는 행태가 숭고한 부성이 될 수 있는가. 사회 복지의 무능을 적절히 다룰 수 없는 드라마는 이들 무기력한 아빠들에게 '고개 숙인 아버지'라는 타이틀을 주고 있다. 후배를 희생양 삼아 자신의 가족을 지키려는 가장이나, 가족을 희생양 삼아 사람 좋음을 좇는 가장이나, 참으로 딱하다. 드라마가 그릴 수 있는 이 시대의 부성이라는 것이 고작 자기애적인 가부장이어야 하는가.
 
이번엔 해강의 엄마 영자(오나라)가 나쁜 엄마가 되는 방식을 보자. 영자는 기량이 출중한 배드민턴 선수였지만 해강을 임신하고 운동을 접을 수밖에 없었고, 남편의 부채를 같이 짊어지기 위해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고통을 기꺼이 분담하고 있다. 이런 사정에 아빠 현종의 책임이 크지만, 해강은 어쩐지 엄마를 멀리하고 원망한다. 아빠의 사람 좋음이 낳은 대가를 엄마가 대속하느라 아이들을 덜 돌볼 수밖에 없는 사정은 인정되지 못하고, 아들에게서 "왜 이제 와서 평범한 엄마처럼" 구느냐는 타박을 듣게 한다.
 
이후 해강이 엄마와의 오해를 푸는 과정에서 현종이 해결사가 되는 설정도 억지스럽다. 해강의 열여섯이란 나이는 세상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어도, 부모의 사정을 이해하기에는 충분하다. 왜곡되지 않은 충분한 설명이 있다면 말이다. 영자는 열심히 살았다. 정상의 선수가 될 수 있었지만 엄마가 되기 위해 이를 포기했고, 대신 좋은 감독이 되는 길을 걷고 있다.

가까이서 돌볼 수는 없지만, 최선을 다해 두 아이를 잘 키우려 애쓴다. 영자가 선수 커리어를 포기하고 임신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도 해강에게 이해받고 존중받아야 하지만, 드라마는 영자가 해강의 어린 시절을 외롭게 했다는 이유로 부족한 엄마가 되게 한다. 현종이 어리석은 선택으로 가족을 위기에 빠뜨렸을 때에도 가족을 위기에서 지키고 든든한 가장이 된 사람은 영자임에도, 영자는 제대로 평가받고 인정받지 못한다. 왜 이다지도 멋진 커리어 여성은 엄마라는 이름 앞에 서면 번번이 작아져야 하는가.
 
드라마는 열여섯 청소년들의 성장담을 담으며, 아이들과 같이 성장하는 부모(어른) 역시 성장통을 통해 성숙해지는 과정을 담으려 했을 것이다. 드라마는 성장 스토리답게 훈훈하게 마무리되지만, 마땅히 상찬 받아야 할 사람이 비난받고 비판받아야 할 사람이 얼렁뚱땅 미화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또한 지역을 지방이라 낮춰보고 그곳에서 일구어가는 사람들의 삶을 가볍게 대상화하지는 않았는지 톺아보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윤일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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