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조구함, 은메달 은메달을 획득한 조구함이 29일 일본 도쿄 무도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유도 남자 -100kg급 시상식에서 메달을 들어보이고 있다.

▲ [올림픽] 조구함, 은메달 은메달을 획득한 조구함이 29일 일본 도쿄 무도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유도 남자 -100kg급 시상식에서 메달을 들어보이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 유도 중량급 간판 조구함(KH그룹 필룩스)은 29일 일본 부도칸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남자 100kg급 결승에서 일본의 혼혈선수인 에런 울프와 접전을 펼쳤으나 연장전에서 한판패를 당하며 아쉬운 은메달을 기록했다. 조구함의 개인 첫 올림픽 메달이자, 도쿄올림픽 한국 유도가 수확한 첫 메달이었다. 2004 아테네 대회의 장성호(은메달) 이후로 한국 유도가 이 체급에서 입상한 것은 무려 17년 만의 기록이었다.

유도는 대한민국 올림픽 역사에서 금메달만 11개를 안긴 대표적인 효자종목이다. 하지만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는 은메달 2개, 동메달 1개에 만족해야 했고, 도쿄올림픽에서도 2회 연속 '노 골드'의 위기에 몰려있다. 안바울과 안창림이 모두 준결승에서 탈락하며 동메달 2개만 추가했다. 윤현지도 준결승과 동메달 결정전에서 잇달아 패배하며 노메달에 그쳤고, 가장 금메달에 가까웠던 조구함마저 결승전에서 고비를 넘지 못하고 분루를 흘렸다. 특히 올림픽이 열리는 무대가 유도 종주국인 일본이고, 마침 결승전 상대도 일본 선수를 만나게 되어 '도쿄올림픽 첫 유도 한일전'이라는 상징성이 있었기에 더욱 아쉬울 만한 결과였다.

그런데 정작 팬들 사이에서 더 화제가 된 것은 패배 직후 조구함이 보여준 뜻밖의 반응이었다. 경기가 끝나고 조구함은 잠시 아쉬운 표정을 지었으나 금세 툭툭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나서는 승자인 울프와 나란히 서더니 갑자기 오른손으로 상대의 왼팔 옷깃을 잡고 위로 들어올리고는 왼손가락으로는 울프를 가리켰다.
 
[올림픽] 아름다운 패배 29일 일본 도쿄 무도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유도 남자 -100 kg급 결승 경기에서 한국 조구함이 일본 에런 울프를 상대로 패한 뒤 울프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 [올림픽] 아름다운 패배 29일 일본 도쿄 무도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유도 남자 -100 kg급 결승 경기에서 한국 조구함이 일본 에런 울프를 상대로 패한 뒤 울프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 연합뉴스

 
마치 '당신이 진정한 챔피언'이라고 인정하는 듯한 제스처였다. 울프도 조구함의 돌발행동에 살짝 당황하면서도 감동한 기색을 드러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조구함은 "울프는 국가대표를 하면서 만난 상대 중 가장 강했다. 상대가 나보다 준비를 많이 했다. 부족함과 패배를 인정하는 의미에서 손을 들어줬다"고 고백했다. 시상식에서도 조구함은 한치의 후회나 미련이 느껴지지 않는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조구함에게 이번 도쿄올림픽 결승까지 올라오는 과정은 인고의 시간이었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을 앞두고 왼쪽 전방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큰 부상을 안고 올림픽에 나섰지만 2경기 만에 16강에서 탈락하고 수술대에 올라야했던 아픈 기억이 있다. 조구함은 긴 재활을 거쳐 2018년 세계선수권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성공적으로 복귀했고 자신의 두 번째 올림픽에서 명예회복을 위하여 땀방울을 쏟았다.

그렇게 힘들게 올라온 올림픽 무대, 그것도 금메달을 바로 눈앞에 두고 놓쳤을 때 찾아올 아쉬움과 허탈감의 깊이는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상상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더구나 결승전 상대는 가위바위보도 져서는 안 된다는 한일전이었다. 패자가 십중팔구 화를 내거나 눈물을 흘리며 좌절해도 이상하지 않았을 반응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예상과는 정반대로, 조구함이 패배를 깨끗하게 받아들이는 성숙한 매너는 스포츠에 항상 승부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일깨워줬다. 조구함은 앞서 준결승에서 조르지 폰세카(포르투갈)를 이기고 승자의 입장이 되었을 때는 상대 선수를 껴안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조구함과 폰세카는 평소 국제대회에서 자주 만나며 우정을 주고받았던 사이로 알려졌다. 경기 중에는 후회없이 치열하게 모든 것을 쏟아부었지만, 승부가 끝난 이후에는 결과에 승복하고 상대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스포츠맨십을 보여준 장면이었다.

최선 다했기에 보여줄 수 있는 '여유와 매너'
 
[올림픽] 이것이 태권도 정신 27일 일본 마쿠하리 메세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여자 태권도 67㎏ 초과급 결승 한국 이다빈-세르비아 만디치. 이다빈이 패한 후 인사하는 승자에게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이고 있다.

▲ [올림픽] 이것이 태권도 정신 27일 일본 마쿠하리 메세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여자 태권도 67㎏ 초과급 결승 한국 이다빈-세르비아 만디치. 이다빈이 패한 후 인사하는 승자에게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이고 있다. ⓒ 연합뉴스

 
젊은 선수들이 패배를 받아들이는 성숙한 대응은 조구함만의 미담이 아니다. 한국 여자 태권도의 간판 이다빈(서울시청)은 지난 27일 열린 도쿄올림픽 태권도 여자 67㎏ 결승에서 밀리차 만디치(세르비아)에게 7대 10으로 져 은메달을 차지했다. 이다빈은 경기가 끝난 후 상대 선수에게 먼저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진심어린 축하를 건넸다. 만디치도 이다빈의 축하에 가슴에 손을 얹고 가볍게 머리를 숙여 인사하면서 화답했고, 두 선수는 서로 하이파이브를 주고받으며 미소를 지었다.

남자 태권도의 간판 이대훈도 동메달결정전에서 자신을 이긴 자오 슈와이(중국)의 등을 두드리며 축하해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매너를 보여준 바 있다. 사격 황제 진종오는 올림픽에서 탈락한 이후 추가은 등 어린 후배들에게 응원 메시지를 보내며 앞으로 한국 사격을 이끌어갈 젊은 선수들에 대한 관심과 격려를 당부하기도 했다.

이대훈은 이번 대회를 끝으로 현역 은퇴를 선언했고 진종오에게도 마지막 올림픽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개인적으로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한 아쉬움이 더 클 법도 하지만, 먼저 상대 선수와 스포츠 자체에 대한 예의를 지키려는 모습은 한때 한 분야를 호령했던 위대한 전설들의 '품격있는 퇴장'이란 무엇인지 모범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흔히 스포츠는 전쟁이라고 이야기한다. 과거에는 성적지상주의에 치우쳐서 무조건 1등이 아니면 나머지는 의미가 없다고 보는 인식이 강했고, 결과에 대한 집착은 스포츠맨이라면 당연한 승부욕처럼 여겨졌다. "경기에 졌는데 어떻게 웃어?", "나를 이긴 상대 선수(특히 일본같은 라이벌)를 칭찬한다고?" 예전같으면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장면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대는 달라졌고 젊은 선수들의 인식도 점차 바뀌고 있다. 어떤 이들은 태권도나 유도가 이번 대회에서 아직까지 노골드에 그친 결과와 굳이 연결시켜 선수들의 근성이 약해진 것 아니냐고 의심하기도 한다. 그러나 선수들이 오랜 시간 올림픽을 준비하며 흘린 피땀눈물의 가치는 전혀 변한 것이 없다. 오히려 코로나19와 올림픽 연기 등으로 인하여 어느때보다 변수가 많은 어려움속에서도 우리 선수들은 흔들림없이 최선을 다했다.

달라진 것은 결과와 패배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좀더 성숙해졌을 뿐이다. 아직도 올림픽을 중계하는 방송사들은 결승전이나 라이벌전마다 '민족주의'와 '국뽕' 정서를 부추겨 상대를 폄하하거나 자극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팬들까지 부끄럽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스포츠는 그저 스포츠이지 전쟁이 아니며, 상대 선수도 선의의 경쟁자일 뿐 '적'으로 취급할 필요는 없다. 경기에 지고도 웃을 수 있는 것은 근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부끄러움없이 최선을 다했기에 보여줄 수 있는 여유와 매너인 것이다.

조구함과 이다빈은 놓쳐버린 금메달의 아쉬움에 미련을 갖기보다 벌써부터 다음 올림픽을 기약하며 새로운 희망을 이야기했다. 오늘날의 젊은 선수들이 패배를 극복하고 다시 일어서는 나름의 방식이다. 메달의 색깔만으로 모든 것을 평가받는 낡은 시대와 경기관에서 벗어나,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와 승부의 과정 자체를 '즐길 줄 알게 된' 우리 선수들의 스포츠맨십이 금메달 이상으로 자랑스러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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